프란시스 쉐퍼와 에디스 쉐퍼5
프란시스 쉐퍼와 에디스 쉐퍼5
자료출처 http://cafe.daum.net/CPI2002/5m8A/103
Francis And Edith
SCHAEFFER
Defenders of the Faith
Sam Wellman
- Barbour Books -
five
“뉴버그의 우리집에서 어느날 저녁 전 어머니와 단 둘이 있었어요.” 이디스가 프랜에게 말했다. 갑자기 이디스의 어머니는 그녀에게 전에 결혼한 적이 있었다고 말했다. 이디스는 뒤통수를 얻어 맞은 것 같았다. 전에 결혼한 적이 있었다고? 그렇다. 제시 메리트는 월터 그린을 만날 때 회계사로 일했다. 월터는 중국으로 가기 원하는 헌신된 그리스도인이었다. 그들이 서로 사랑하게 된 후, 중국은 그들의 공통의 목표가 되었다. 그들은 돈을 모아서 중국을 위한 선교사를 훈련시키는 토론토의 성경대학에 갈 수 있었다. 그들은 1894년에 결혼했다. 곧 제시는 아이를 갖게 되었다. 그러나 1년만에 그녀의 결혼은 재가 되어버렸다. 그녀의 아들이 죽었을 뿐만 아니라 3주 후에 고열에 시달리던 월터도 폐결핵 말기라는 선고를 받았다. 며칠 후에 월터도 세상을 떠났다.
제시는 그의 죽음을 생각할 때 몹시 힘들어 했다. “그는 중후한 멋이 있었지만 모든 것을 태워버리는 불처럼 열정적이었지.”
“오, 엄마..” 이디스는 울었다.
21살의 제시는 아이까지 잃은 과부가 되었다. 어느 누가 그런 슬픔을 견딜 수 있겠는가? 어머니께서 그런 말씀을 지금까지 안하셨던 것이 이해되고도 남았다. 말도 못하게 힘든 슬픔이었을 것이다. 그런 기억들은 세빌랴가가 다시 돌아간다는 것에 걸림돌이었다. 고등학교 2학년이 되기 전쯤, 세빌랴 가는 아버지가 CIM에서 한달에 한번 편찬하는 잡지 중국 민중(China’s Millions)를 편찬하는데 부편집인으로 일하게 되어 캐나다의 토론토로 이사했다. 이디스의 사회 생활은 매우 한정적이어서 그녀는 뉴버그에서 만난 사람중에 에밀리 말고는 별로 생각나는 사람이 없었다.
그녀는 밝고 명랑했지만 토론토의 고등학교에서 눈에 띄는 학생은 아니었다. 그러나 그녀는 토론할 때만은 남다른 모습을 보였다. 기독교 원리 부분에서는 어느 누구도 그녀를 꺾을 수 없었다. 다른 학생들이 분별없이 진화에 대한 사상을 받아들이는 동안 그녀는 맹렬하게 맞섰다. 그녀에게 진화론은 하나님을 믿는 것보다 더 어리석은 것으로 보였다. 그녀는 친구들이 화석이나 생물 분류에 대해 문외한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러면서도 그들은 진화론을 무턱대고 받아들였다. 그녀는 학생보다 선생님들이 더 지식이 부족하다고 생각했다.
“그렇다고 사회성이 전혀 없는 문제아는 아니었죠.” 이디스는 프랜에게 말했다.
그녀는 스포츠 행사에 참여하기도 했다. 믿음에 충실했던 그녀조차 부모님을 속이기 시작했다. 그녀는 축구, 농구나 하키 게임이 끝난 후에 종종 파티에 가곤 했다. 부모님께는 운동을 한다고 말하고 파티장에서 춤을 추고 있었다. 결국 그녀는 영화관에도 몰래 가게 되었다. 1930년대 까지 영화는 매우 선정적이었다. 어느 누가 그런 영화를 보기 싫어하겠는가? 그녀는 많은 사람을 속이고 있었다. 마치 연극을 하는 것처럼. 부모님 말고는 어느누구도 그런 것에 대해 심각하게 말하지 않았다.
“넌 날 잘 몰라, 난 사실 이런 모습이 아닌데..” 그녀는 데이트 상대에게 이렇게 말하곤 했다.
“정말?” 상대는 농담으로 여기며 대답하기 일수였다.
“난 사실 아주 진지한 사람이야. 나는 진리를 알리는 데 내 인생을 걸 생각이야.”
상대는 실망을 감추지 않고 이렇게 대답하곤 했다. “이상한데..”
그녀의 가족들이 사는 곳에는 크리스찬 청년 공동체가 없는 것 같았다. 독서만이 그녀에게 유일한 탈출구였다. 그녀는 역사책이나 전기문 등을 읽었다. 책에 나오는 인물들은 실제로 그녀가 만나는 사람들만큼 실제적이었다. 위인들은 더 흥미진진했다. 그녀는 독서가 어떤 면에 있어서는 실제적이라는 것을 알게되었다. 그것은 과거로 가는 문이었다. 그러나 그녀는 과거의 위인들에 대한 책만 읽은 것은 아니었다. 그녀는 루시 모드 몽고메리의 저서들(에이번리의 앤, 푸른 벽의 앤, 섬의 앤, 새 달의 에밀리 등등)에 매료되었다. 그녀는 마치 그녀가 에드워드 왕자의 섬에 살고 있는 것처럼 느꼈다.
그녀는 가끔 에드원드 왕자와의 아름다운 전원 생활을 하거나 중국에서 선교를 하며 보내는 삶을 사는 공상, 또는 파리에서 예술을 공부하는 학생이 되는 공상에 잠기곤 했다. 공상에 잠기는 것은 편안한 일이었다. 천장에 전등이 고상하고 아름다운 천국으로 변했다. 그녀는 냄비 하나만으로 맛있는 식사를 준비했다. 그녀는 어머니 처럼 집안일에 뛰어난 안목을 가지고 있었다. 그 꿈들은 여럿이 모여서 먹고 자고 이야기하고 책읽고, 기도하는 환경을 만들어 내는 모두 그녀의 기적적인 솜씨였다.
“토론토 고등학교에서 상급학년이 되기 직전, 아버지는 다시 저먼타운으로 가게되셨죠.” 이디스는 한숨지으며 말했다, “잡지사가 그곳으로 이사했기 때문이었어요.”
세번째 고등학교라니! 그녀는 고3이었다. 가족들은 저먼타운에서 가까운 아쉬미드 남성에 적당한 집을 찾았다. 그 집은 벽난로와 밖으로 내민 창이 있는 아름다운 집이었다. 이디스 세빌랴는 고3이 되기에는 어린 16살의 나이였다. 그녀는 12년동안 저먼타운에서 살았었고, 스티븐 여학교에도 다녔었지만 학교 친구들에게 별로 알려지지 않은 학생이었다. 그녀는 조용하고 작은 학생이었다. 그녀의 억양은 특이했다. 그녀는 여전히 토론을 좋아했다. 부모님을 가끔 속이는 것 외에는 거의 다른 사회 생활을 하지 않았다.
이디스는 가끔 계명을 어기기도 했지만 신실하려고 노력했다. 그녀에게 가장 충격적이었던 사건중에 하나는 그녀의 언니 자넷이 더 이상 하나님을 믿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대학은 자넷의 믿음을 파괴했다. 성경은 자넷에게는 거북한 것이었다. 그녀의 말에 따르면 이성적인 사람들은 그런 옛날이야기를 믿지 않는다. 이디스는 두려워졌다. 자넷 같은 사람도 변하다니.. 합리적인 주장만이 통했다. 그래서 이디스는 전보다 더 책벌레가 되어갔다. 이전에 그녀는 모더니즘에 관한 토론을 들었었다. 그러나 지금은 열심히 J. 그레샴 메이첸과 다른 보수 장로교리에 대한 책을 읽고 있다. 그녀는 읽으면서 메모하고 논지를 정리했다. 그녀는 웨스트민스터 신학을 지키려는 J.그레샴 메이첸과 딕 윌슨의 강의를 들으러 필라델피아까지 가기도 했다. 그녀의 마음 한곳에는 그녀의 믿음을 잃게 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자리잡았다. 대학은 그녀에게 멀게만 느껴졌다.
이디스는 저먼타운 고등학교에서 고3을 보냈다. 특이한 억양의 까다로운 소녀는 1932년 5월에 그 학교를 졸업했다. 그녀의 부모님은 그녀가 근처의 비버 칼리지(장로교회와 결연을 맺은)에서 공부하기를 원하셨다. 그녀는 진실로 그녀의 삶을 진리를 알리는데 쏟고 싶었다. 그러나 어떻게 그일을 할수 있는지는 확신이 서지 않았다.
“그리고 나서 1932년 6월, 나처럼 까다롭고 거침없이 말하는 프란시스 쉐퍼를 만났어요.” 이디스는 웃으며 말했다.
프랜과 이디스는 서로에게 사로잡혔다. 그는 20세였고, 그녀는 17세였다. 그들은 몇 년 동안 기독교의 진리를 함께 나눌 이성친구를 찾고 있었다. 그리고 만약 그들이 서로 이성으로 만나지 않았다면 아마도 아가페 적인 사랑이었을 것이다. 그들은 처음부터 영성이 잘 조화되는 것 같아보였다.
프랜이 처음으로 이디스에게 전화를 걸었을 때, 그는 그녀의 집이 불과 2년전 앤소니 제올리의 부흥 집회에 참여했던 사우스 아쉬미드에서 가깝다는 것을 알고 기뻐했다. 이디스는 전보다 더 하나님의 섭리를 느꼈다. 프랜은 이디스의 가족들도 좋아했다. 결국, 그는 목사의 딸에게 청혼하는 예비 목회자가 되었다. 그렇게 그녀의 가족들에게 환대받던 그 때는 이디스 없는 삶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그렇지만 프랜은 이디스에게 말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디스는 확신할 수가 없었다. 그때 당시에는 남자쪽에서 먼저 마음을 표현해야 했다. 어떻게 여자가 먼저 마음을 표현한단 말인가?
프랜은 양말 방문판매직을 구했다. 그가 바빠져서 이디스를 볼 시간도 없었을까? 그렇지 않았다. 하루라도 그녀를 보거나 편지를 쓰지 않고는 하루를 보냈다고 할 수 없었다. 세빌랴 가족이 모두 아틀란틱 시 근처의 선교 별장으로 2주간 휴가를 떠났을 때, 프랜은 그녀에게 처음으로 편지를 썼다. 그래서 그는 나머지 한주를 그들과 함께 휴가를 보낼 수 있었다. 서로에게 끌린 프랜과 이디스는 7마일이나 되는 해변 거리를 파도소리도 아랑곳하지 않고 함께 산책했다. 그들은 전에 누구와고도 이야기 할 수 없었던 것들을 이야기 했다.
우리의 이야기 거리는 바닥날줄을 몰랐다고 프랜은 회상한다.
프랜의 일기장은 이디스와 함께 한 시간들로 채워졌다. 그들은 노천극장에서 로빈후드 델의 콘서트에도 갔었다. 음학학원에서의 콘서트에서 그들은 충격을 받았다. 지휘자 스토코우스키가 관중석에서 나와서 공산당 노래를 부른것이다. 적들이 곳곳에 있었다. 프랜과 이디스는 J.그레샴 메이첸의 기독교와 자유주의라는 글을 생각해 보았다. 그들은 그레타 가르보의 영화 “당신이 나를 원하는 대로”를 보러 갔다. 그녀는 건망증이 있는 여자 역이었다. 갑자기 그녀는 낯선 남편의 아내가 되었다. 영화는 만족스러운 결론을 내지 못했다.
프랜은 가끔 조지 세빌랴(이디스의 아버지)와 함께 테니스를 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조지 세빌랴와 프랜 모두 마른 체구에 경쟁을 좋아했다. 프랜이 학교에서 육상선수였던 반면에 조지는 축구와 테니스를 했었다. 조지는 56세였다. 그는 태어나서 12살 까지 피츠버그의 과수원에서 자랐다. 그는 젊을 때 언어에 대한 능력이 남달랐다. 그래서 그는 이디스가 라틴어를 못한다는 사실을 이해하기 힘들었다. 프랜은 그가 어린 시절을 즐겁게 보냈다는 사실을 좋아한다는 것을 알았다. 그는 좋은 학생이기도 했지만 가끔 교칙을 어기기도 했다. 그는 운동선수 였을 뿐 아니라 기타도 잘 쳤다. 조지는 가끔 이디스나 프랜보다 그 두사람의 사이에 대해 더 심각하게 여겼다.
그는 햄프던 시드니로 돌아갈 때까지 지체했다. 그리고 나서 그는 이디스를 차에 태웠다. 달빛이 어른 거리는 강가에 차를 세웠다. 프랜은 이디스에게 키스를 했다. 그러나 그는 곧 그의 돌발적인 행동에 죄의식을 느꼈다.
“미안해. 이러지 말았어야 하는데.. .”
이디스는 이 일에 대해 실망스러워 했다. 물론 프랜 때문이다. 왜 갑자기 키스를 하다가 멈췄을까? 나한테 무슨 잘못이 있는 건가? 그녀는 화가 났다. 나중에서야 이디스는 오해를 풀 수 있었다.
그날 프랜은 일기장에 이렇게 썼다.
내 열정대로 하는 것은 쉬운 일이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주님, 우리를 이끄시고 강하게 하시고 당신의 길 안에서 우리의 행복을 찾게 하소서.
프랜은 공부를 하러 다시 떠나야 했다. 아직 이디스에게 청혼하지 못한 상황이었다. 그는 하나님께서 이디스와 그가 결혼하기로 계획하셨다면 그 일을 이루실 것이라는 것에 대해 의심하지 않았다. 그는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했다. 프랜은 자신이 이디스보다 여러 면에서 유리하다는 것을 깨닫지 못했다. 그가 햄프던 시드니로 돌아가 대학생활에 완전히 몰입했던 것에 비해 이디스는 겨우 대학생활을 시작했었다. 그녀는 돈이 없어서 기숙사에서 지낼 수는 없었고 통학했다. 저먼 타운에서 웨인역까지 전차를 타고 가서 캠퍼스가 있는 젠킨 마을까지 기차를 타고 갔다. 그녀는 파리에서 미술학도가 되는 꿈을 꿨었지만 실현되기는 어려웠다. 이디스의 전공은 가정경제였다. 물론 학사 과정이었다. 그것은 화학과 관련된 식품, 영양학, 의복 제조, 실내 디자인 등을 포함하는 까다로운 과정이었다.
결혼을 위한 완벽한 커리큘럼이었다. 그녀는 프랜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결국 그들은 결혼하게 될 것이었다. 하나님의 계획하심이었다. 그렇게 조화롭고 서로에게 딱 맞는 그런 커플이 또 있을까?
그들이 주고 받은 편지는 또 얼마나 많았던지. 처음에는 한주에 두번씩 편지를 주고 받더니 그것도 모자라 3번이 되고 나중에는 매일매일 편지를 주고 받게 되었다. 주일에는 추가 우송료를 내야 했다. 서로에 대한 그들의 사랑은 주고 받는 편지 속에서 꽃을 피웠다. 크리스마스 방학이 되어 프랜이 저먼타운으로 돌아왔을 때, 그들의 사랑은 잠시 좌절을 겪었다. 프랜은 그가 느끼는 이디스를 향한 열망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결국 12월 31일 그는 혼란스러워 하며 이렇게 말했다.
“우리가 서로 너무 지나치게 좋아하는 건 아닐까?” 프랜은 불쑥 이런 말을 내뱉었다. “어떤 여자도 따라올 수 없는 그런 곳으로 가야할 것 같아..”(왜? -_-;;; - 역자)
이디스는 그녀의 귀를 의심했다. 그녀는 프랜과 결혼하게 될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영원히 떨어져야 하다니! 저녁때 까지 그녀는 흐느껴 울었다. 어머니는 그녀를 위로 하려고 했다. 그녀의 아버지도 이해할 수가 없었다. 저녁 식사후에 전화벨이 울렸다. 프랜이었다.
“널 떠나 있는 동안 나 너무 힘들었었어. 너 없이 살 수 없다는 걸 이제야 알았어. 지금 너한테 가도 되겠니?”
프랜은 달려와서 숨을 헐떡이며 말했다. 그는 이디스에게 대학 졸업 때 까지 기다려 달라고 했다. 결국 프로포즈였다. 1932년 새해 전날이었다. 그는 키스로 그의 프로포즈를 마무리 했다. 버지니아의 학교로 돌아온 후에 그들의 편지는 다시 하루에 한 통씩 늘어갔다. 여전히 편지는 충분치 않았다. 이디스는 매일 같은 시간에 Daily Light(기독교 잡지 인듯)를 읽자고 제안했다. 그것은 멀리 있는 그들을 하나로 이어주는 끈이었다. 프랜은 그것이 아주 멋진 생각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편지가 좀 지체되긴 해도 그들을 잇는 가장 강력한 것이었다. 1933년에 이디스가 보낸 편지 중에 하나이다. 프랜이 그가 설교한 대로 행동하지 못함으로 인해 친구들에게 비난 받고 본인도 괴로워 하던 때 이디스가 쓴 것이다.
프랜.
우리 인간들은 생각의 짧음으로 인해 낙담할 때 쓰러지는 것 같아요. 그러나 우리는 그런 것-당신이 실행한 것을 설교했기 때문에 그래야 한다는-에 찬성하기를 원치 않아요. 우리는 진정으로 그리스도인의 삶을 설교할 것을 원해요. 그리고 그렇게 살기를 원하구요. 그러나 우리는 인간이고 완벽하지 못해요. 우리의 실수에 대해 용서라는 것이 있어요. 내 의도가 잘 전달되고 있는 지는 모르지만, 나는 당신을 그렇게 몰아가는 친구들도 잘못이 있다고 생각해요. 사실 크리스천도 인간이라는 사실이 당신에게 도움이 되기를 바래요. 다른 점이 있다면 크리스천들은 그의 실수와 어려움이 있을 때 좌절하는 것이 아니라 나아갈 대상이 있다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이게 제 생각이에요. 그리고 난 당신이 존귀하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당신의 올곧음을 존경해요. 당신의 용기두요. 그리고 그 모든 것보다 당신을 사랑해요. 라디오에서 유대인에 대한 히틀러의 대우에 대한 회의가 나오네요. 혼란스러운 시대에요. 그렇죠?
좋은 꿈 꿔요. 이디스
1933년에 쓰여진 다른 편지이다.
프랜.
당신의 편지 속에 쓰여진 말들이 제 마음을 울리네요. 글자들이 살아있는 것 같아요.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그렇지만 사실이지요… 그건 단지 사랑이 아니라는 것 그건 당신을 위한 내 사랑을 포함하는 것 보다 더 큰 것이에요. 그리고 그 이상이에요. 내 마음 속에 있는 사람을 돕고 싶어 했었고 또 그랬고, 하나님의 가장 위대한 종으로 그와 모든 것을 나누고 싶었어요.
다른 사람들은 알게 될 거에요. “하나님의 멋진 사람”, “빛나는 사람”, “남자 중의 남자” 라고 말이에요. 그러나 나는 그의 반려자로서 모든 것에서 그를 가장 완벽하게 아는 한 사람이 될 거에요.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모든 것을 이루시는 하나님은 선하신 분”이라는 것에요. 인생은 짧지만 그 후에 영원한 삶이 있잖아요. 그리고 그 곳에 당신이 있을 거라고 생각해 봐요. 잘못이 있으신가요? 나는 다른 사람들로 당신과 같은 잘못이 있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난 이제 이렇게 말해요. 여유를 가지세요. 아니면 차를 타고 모래사장에 나가 보아요. 셀 수 없이 많은 모래들은 삶을 즐겁게 하는 것들이잖아요!
전 어제 공부했어요. 8시 반에 수업을 듣고 와서 사탕 과자를 만들었어요. 그리고 당신을 위해 이니셜을 새긴 손수건과 함께 포장했어요. 그리고 심리학 숙제를 하고, 저녁을 먹은 후에 화학 실험서를 쓰고 저녁 7시부터 밤 12시 반까지 노트를 정리했어요. 오늘 아침에는 손가락에 경련이 나고 한자세로 오랫동안 앉아 있었더니 허리도 아팠어요. 그래도 일어나서 교회에 갔어요. 비버 목사님의 설교는 모든 아픔을 잊게 하기 충분했어요. 가끔 그 자리에 당신도 함께 있으면 얼마나 좋을지 생각해요. 그의 설교를 같이 들을 수 있잖아요. 케익 한 조각에서부터 아름다운 장면들과 사랑스런 음악들 까지 모두 즐기는 중이에요. “프랜 당신과 함께 이 즐거움을 함께 했으면 좋겠어요.”
은빛 나는 초승달이 떴네요. 본 적 있나요? 이만 줄여야 겠네요. 선반에 있다면 영국 희곡을 읽고 싶어요. 주중에 한 번 더 편지 할게요. 시험 끝나면 두둑한 편지 보낼게요.
이디스.
그녀가 약속했던 두둑한 편지의 9쪽이다.
바람이 많이 부는 날이네요. 눈이 와서 그런지 지나가는 차들이 오독오독 소리를 내요. 춤추면서 내려오는 눈송이들이 바닥에 앉기를 주저하는 것 같아요. 이야기 하기 좋은 날이네요. 나뭇잎이 흔들거리고 창문이 바람에 덜컥거리는 소리가 나는 난롯가에 앉아서 말이에요. 불 옆에 앉아서 있다가 애플파이를 구워먹는 거에요. 사랑하는 사람이랑 마주 앉아서 밤새도록 이야기 하는 거에요. 아니면 소리내어 시 한 구절을 읽거나 재미있는 이야기를 읽는 거에요.. 그리고 장작이 다 타들어 갈 때까지 당신의 손을 잡고 있는 거에요. 생각만 해도 좋네요. 오늘은 어쨌든 평안해요. 그리고 당신이 아주 가까이에 있는 것 같아요. 내가 말하면 당신이 대답할 것 같아요. 손을 뻗으면 당신을 잡을 수 있을 것 같아요. 눈을 감고 당신이 거기 있다고 생각해요. 그렇지만 없네요. 이번 주에 내내 존 골즈워디의 희곡을 읽고 있어요. 그 사람이 쓴 “정의”라는 희곡 읽어 봤나요?
내가 당신에게 갖는 이 마음.. 끝날 것이라는 상상을 하기가 어려워요. 적어도 백만년 후에나 당신을 잊을까요. 이해하나요?
당신의 이디스
물론 프랜도 답장을 했었다.
자료출처 http://cafe.daum.net/CPI2002/5m8A/103
Francis And Edith
SCHAEFFER
Defenders of the Faith
Sam Wellman
- Barbour Books -
five
“뉴버그의 우리집에서 어느날 저녁 전 어머니와 단 둘이 있었어요.” 이디스가 프랜에게 말했다. 갑자기 이디스의 어머니는 그녀에게 전에 결혼한 적이 있었다고 말했다. 이디스는 뒤통수를 얻어 맞은 것 같았다. 전에 결혼한 적이 있었다고? 그렇다. 제시 메리트는 월터 그린을 만날 때 회계사로 일했다. 월터는 중국으로 가기 원하는 헌신된 그리스도인이었다. 그들이 서로 사랑하게 된 후, 중국은 그들의 공통의 목표가 되었다. 그들은 돈을 모아서 중국을 위한 선교사를 훈련시키는 토론토의 성경대학에 갈 수 있었다. 그들은 1894년에 결혼했다. 곧 제시는 아이를 갖게 되었다. 그러나 1년만에 그녀의 결혼은 재가 되어버렸다. 그녀의 아들이 죽었을 뿐만 아니라 3주 후에 고열에 시달리던 월터도 폐결핵 말기라는 선고를 받았다. 며칠 후에 월터도 세상을 떠났다.
제시는 그의 죽음을 생각할 때 몹시 힘들어 했다. “그는 중후한 멋이 있었지만 모든 것을 태워버리는 불처럼 열정적이었지.”
“오, 엄마..” 이디스는 울었다.
21살의 제시는 아이까지 잃은 과부가 되었다. 어느 누가 그런 슬픔을 견딜 수 있겠는가? 어머니께서 그런 말씀을 지금까지 안하셨던 것이 이해되고도 남았다. 말도 못하게 힘든 슬픔이었을 것이다. 그런 기억들은 세빌랴가가 다시 돌아간다는 것에 걸림돌이었다. 고등학교 2학년이 되기 전쯤, 세빌랴 가는 아버지가 CIM에서 한달에 한번 편찬하는 잡지 중국 민중(China’s Millions)를 편찬하는데 부편집인으로 일하게 되어 캐나다의 토론토로 이사했다. 이디스의 사회 생활은 매우 한정적이어서 그녀는 뉴버그에서 만난 사람중에 에밀리 말고는 별로 생각나는 사람이 없었다.
그녀는 밝고 명랑했지만 토론토의 고등학교에서 눈에 띄는 학생은 아니었다. 그러나 그녀는 토론할 때만은 남다른 모습을 보였다. 기독교 원리 부분에서는 어느 누구도 그녀를 꺾을 수 없었다. 다른 학생들이 분별없이 진화에 대한 사상을 받아들이는 동안 그녀는 맹렬하게 맞섰다. 그녀에게 진화론은 하나님을 믿는 것보다 더 어리석은 것으로 보였다. 그녀는 친구들이 화석이나 생물 분류에 대해 문외한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러면서도 그들은 진화론을 무턱대고 받아들였다. 그녀는 학생보다 선생님들이 더 지식이 부족하다고 생각했다.
“그렇다고 사회성이 전혀 없는 문제아는 아니었죠.” 이디스는 프랜에게 말했다.
그녀는 스포츠 행사에 참여하기도 했다. 믿음에 충실했던 그녀조차 부모님을 속이기 시작했다. 그녀는 축구, 농구나 하키 게임이 끝난 후에 종종 파티에 가곤 했다. 부모님께는 운동을 한다고 말하고 파티장에서 춤을 추고 있었다. 결국 그녀는 영화관에도 몰래 가게 되었다. 1930년대 까지 영화는 매우 선정적이었다. 어느 누가 그런 영화를 보기 싫어하겠는가? 그녀는 많은 사람을 속이고 있었다. 마치 연극을 하는 것처럼. 부모님 말고는 어느누구도 그런 것에 대해 심각하게 말하지 않았다.
“넌 날 잘 몰라, 난 사실 이런 모습이 아닌데..” 그녀는 데이트 상대에게 이렇게 말하곤 했다.
“정말?” 상대는 농담으로 여기며 대답하기 일수였다.
“난 사실 아주 진지한 사람이야. 나는 진리를 알리는 데 내 인생을 걸 생각이야.”
상대는 실망을 감추지 않고 이렇게 대답하곤 했다. “이상한데..”
그녀의 가족들이 사는 곳에는 크리스찬 청년 공동체가 없는 것 같았다. 독서만이 그녀에게 유일한 탈출구였다. 그녀는 역사책이나 전기문 등을 읽었다. 책에 나오는 인물들은 실제로 그녀가 만나는 사람들만큼 실제적이었다. 위인들은 더 흥미진진했다. 그녀는 독서가 어떤 면에 있어서는 실제적이라는 것을 알게되었다. 그것은 과거로 가는 문이었다. 그러나 그녀는 과거의 위인들에 대한 책만 읽은 것은 아니었다. 그녀는 루시 모드 몽고메리의 저서들(에이번리의 앤, 푸른 벽의 앤, 섬의 앤, 새 달의 에밀리 등등)에 매료되었다. 그녀는 마치 그녀가 에드워드 왕자의 섬에 살고 있는 것처럼 느꼈다.
그녀는 가끔 에드원드 왕자와의 아름다운 전원 생활을 하거나 중국에서 선교를 하며 보내는 삶을 사는 공상, 또는 파리에서 예술을 공부하는 학생이 되는 공상에 잠기곤 했다. 공상에 잠기는 것은 편안한 일이었다. 천장에 전등이 고상하고 아름다운 천국으로 변했다. 그녀는 냄비 하나만으로 맛있는 식사를 준비했다. 그녀는 어머니 처럼 집안일에 뛰어난 안목을 가지고 있었다. 그 꿈들은 여럿이 모여서 먹고 자고 이야기하고 책읽고, 기도하는 환경을 만들어 내는 모두 그녀의 기적적인 솜씨였다.
“토론토 고등학교에서 상급학년이 되기 직전, 아버지는 다시 저먼타운으로 가게되셨죠.” 이디스는 한숨지으며 말했다, “잡지사가 그곳으로 이사했기 때문이었어요.”
세번째 고등학교라니! 그녀는 고3이었다. 가족들은 저먼타운에서 가까운 아쉬미드 남성에 적당한 집을 찾았다. 그 집은 벽난로와 밖으로 내민 창이 있는 아름다운 집이었다. 이디스 세빌랴는 고3이 되기에는 어린 16살의 나이였다. 그녀는 12년동안 저먼타운에서 살았었고, 스티븐 여학교에도 다녔었지만 학교 친구들에게 별로 알려지지 않은 학생이었다. 그녀는 조용하고 작은 학생이었다. 그녀의 억양은 특이했다. 그녀는 여전히 토론을 좋아했다. 부모님을 가끔 속이는 것 외에는 거의 다른 사회 생활을 하지 않았다.
이디스는 가끔 계명을 어기기도 했지만 신실하려고 노력했다. 그녀에게 가장 충격적이었던 사건중에 하나는 그녀의 언니 자넷이 더 이상 하나님을 믿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대학은 자넷의 믿음을 파괴했다. 성경은 자넷에게는 거북한 것이었다. 그녀의 말에 따르면 이성적인 사람들은 그런 옛날이야기를 믿지 않는다. 이디스는 두려워졌다. 자넷 같은 사람도 변하다니.. 합리적인 주장만이 통했다. 그래서 이디스는 전보다 더 책벌레가 되어갔다. 이전에 그녀는 모더니즘에 관한 토론을 들었었다. 그러나 지금은 열심히 J. 그레샴 메이첸과 다른 보수 장로교리에 대한 책을 읽고 있다. 그녀는 읽으면서 메모하고 논지를 정리했다. 그녀는 웨스트민스터 신학을 지키려는 J.그레샴 메이첸과 딕 윌슨의 강의를 들으러 필라델피아까지 가기도 했다. 그녀의 마음 한곳에는 그녀의 믿음을 잃게 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자리잡았다. 대학은 그녀에게 멀게만 느껴졌다.
이디스는 저먼타운 고등학교에서 고3을 보냈다. 특이한 억양의 까다로운 소녀는 1932년 5월에 그 학교를 졸업했다. 그녀의 부모님은 그녀가 근처의 비버 칼리지(장로교회와 결연을 맺은)에서 공부하기를 원하셨다. 그녀는 진실로 그녀의 삶을 진리를 알리는데 쏟고 싶었다. 그러나 어떻게 그일을 할수 있는지는 확신이 서지 않았다.
“그리고 나서 1932년 6월, 나처럼 까다롭고 거침없이 말하는 프란시스 쉐퍼를 만났어요.” 이디스는 웃으며 말했다.
프랜과 이디스는 서로에게 사로잡혔다. 그는 20세였고, 그녀는 17세였다. 그들은 몇 년 동안 기독교의 진리를 함께 나눌 이성친구를 찾고 있었다. 그리고 만약 그들이 서로 이성으로 만나지 않았다면 아마도 아가페 적인 사랑이었을 것이다. 그들은 처음부터 영성이 잘 조화되는 것 같아보였다.
프랜이 처음으로 이디스에게 전화를 걸었을 때, 그는 그녀의 집이 불과 2년전 앤소니 제올리의 부흥 집회에 참여했던 사우스 아쉬미드에서 가깝다는 것을 알고 기뻐했다. 이디스는 전보다 더 하나님의 섭리를 느꼈다. 프랜은 이디스의 가족들도 좋아했다. 결국, 그는 목사의 딸에게 청혼하는 예비 목회자가 되었다. 그렇게 그녀의 가족들에게 환대받던 그 때는 이디스 없는 삶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그렇지만 프랜은 이디스에게 말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디스는 확신할 수가 없었다. 그때 당시에는 남자쪽에서 먼저 마음을 표현해야 했다. 어떻게 여자가 먼저 마음을 표현한단 말인가?
프랜은 양말 방문판매직을 구했다. 그가 바빠져서 이디스를 볼 시간도 없었을까? 그렇지 않았다. 하루라도 그녀를 보거나 편지를 쓰지 않고는 하루를 보냈다고 할 수 없었다. 세빌랴 가족이 모두 아틀란틱 시 근처의 선교 별장으로 2주간 휴가를 떠났을 때, 프랜은 그녀에게 처음으로 편지를 썼다. 그래서 그는 나머지 한주를 그들과 함께 휴가를 보낼 수 있었다. 서로에게 끌린 프랜과 이디스는 7마일이나 되는 해변 거리를 파도소리도 아랑곳하지 않고 함께 산책했다. 그들은 전에 누구와고도 이야기 할 수 없었던 것들을 이야기 했다.
우리의 이야기 거리는 바닥날줄을 몰랐다고 프랜은 회상한다.
프랜의 일기장은 이디스와 함께 한 시간들로 채워졌다. 그들은 노천극장에서 로빈후드 델의 콘서트에도 갔었다. 음학학원에서의 콘서트에서 그들은 충격을 받았다. 지휘자 스토코우스키가 관중석에서 나와서 공산당 노래를 부른것이다. 적들이 곳곳에 있었다. 프랜과 이디스는 J.그레샴 메이첸의 기독교와 자유주의라는 글을 생각해 보았다. 그들은 그레타 가르보의 영화 “당신이 나를 원하는 대로”를 보러 갔다. 그녀는 건망증이 있는 여자 역이었다. 갑자기 그녀는 낯선 남편의 아내가 되었다. 영화는 만족스러운 결론을 내지 못했다.
프랜은 가끔 조지 세빌랴(이디스의 아버지)와 함께 테니스를 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조지 세빌랴와 프랜 모두 마른 체구에 경쟁을 좋아했다. 프랜이 학교에서 육상선수였던 반면에 조지는 축구와 테니스를 했었다. 조지는 56세였다. 그는 태어나서 12살 까지 피츠버그의 과수원에서 자랐다. 그는 젊을 때 언어에 대한 능력이 남달랐다. 그래서 그는 이디스가 라틴어를 못한다는 사실을 이해하기 힘들었다. 프랜은 그가 어린 시절을 즐겁게 보냈다는 사실을 좋아한다는 것을 알았다. 그는 좋은 학생이기도 했지만 가끔 교칙을 어기기도 했다. 그는 운동선수 였을 뿐 아니라 기타도 잘 쳤다. 조지는 가끔 이디스나 프랜보다 그 두사람의 사이에 대해 더 심각하게 여겼다.
그는 햄프던 시드니로 돌아갈 때까지 지체했다. 그리고 나서 그는 이디스를 차에 태웠다. 달빛이 어른 거리는 강가에 차를 세웠다. 프랜은 이디스에게 키스를 했다. 그러나 그는 곧 그의 돌발적인 행동에 죄의식을 느꼈다.
“미안해. 이러지 말았어야 하는데.. .”
이디스는 이 일에 대해 실망스러워 했다. 물론 프랜 때문이다. 왜 갑자기 키스를 하다가 멈췄을까? 나한테 무슨 잘못이 있는 건가? 그녀는 화가 났다. 나중에서야 이디스는 오해를 풀 수 있었다.
그날 프랜은 일기장에 이렇게 썼다.
내 열정대로 하는 것은 쉬운 일이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주님, 우리를 이끄시고 강하게 하시고 당신의 길 안에서 우리의 행복을 찾게 하소서.
프랜은 공부를 하러 다시 떠나야 했다. 아직 이디스에게 청혼하지 못한 상황이었다. 그는 하나님께서 이디스와 그가 결혼하기로 계획하셨다면 그 일을 이루실 것이라는 것에 대해 의심하지 않았다. 그는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했다. 프랜은 자신이 이디스보다 여러 면에서 유리하다는 것을 깨닫지 못했다. 그가 햄프던 시드니로 돌아가 대학생활에 완전히 몰입했던 것에 비해 이디스는 겨우 대학생활을 시작했었다. 그녀는 돈이 없어서 기숙사에서 지낼 수는 없었고 통학했다. 저먼 타운에서 웨인역까지 전차를 타고 가서 캠퍼스가 있는 젠킨 마을까지 기차를 타고 갔다. 그녀는 파리에서 미술학도가 되는 꿈을 꿨었지만 실현되기는 어려웠다. 이디스의 전공은 가정경제였다. 물론 학사 과정이었다. 그것은 화학과 관련된 식품, 영양학, 의복 제조, 실내 디자인 등을 포함하는 까다로운 과정이었다.
결혼을 위한 완벽한 커리큘럼이었다. 그녀는 프랜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결국 그들은 결혼하게 될 것이었다. 하나님의 계획하심이었다. 그렇게 조화롭고 서로에게 딱 맞는 그런 커플이 또 있을까?
그들이 주고 받은 편지는 또 얼마나 많았던지. 처음에는 한주에 두번씩 편지를 주고 받더니 그것도 모자라 3번이 되고 나중에는 매일매일 편지를 주고 받게 되었다. 주일에는 추가 우송료를 내야 했다. 서로에 대한 그들의 사랑은 주고 받는 편지 속에서 꽃을 피웠다. 크리스마스 방학이 되어 프랜이 저먼타운으로 돌아왔을 때, 그들의 사랑은 잠시 좌절을 겪었다. 프랜은 그가 느끼는 이디스를 향한 열망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결국 12월 31일 그는 혼란스러워 하며 이렇게 말했다.
“우리가 서로 너무 지나치게 좋아하는 건 아닐까?” 프랜은 불쑥 이런 말을 내뱉었다. “어떤 여자도 따라올 수 없는 그런 곳으로 가야할 것 같아..”(왜? -_-;;; - 역자)
이디스는 그녀의 귀를 의심했다. 그녀는 프랜과 결혼하게 될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영원히 떨어져야 하다니! 저녁때 까지 그녀는 흐느껴 울었다. 어머니는 그녀를 위로 하려고 했다. 그녀의 아버지도 이해할 수가 없었다. 저녁 식사후에 전화벨이 울렸다. 프랜이었다.
“널 떠나 있는 동안 나 너무 힘들었었어. 너 없이 살 수 없다는 걸 이제야 알았어. 지금 너한테 가도 되겠니?”
프랜은 달려와서 숨을 헐떡이며 말했다. 그는 이디스에게 대학 졸업 때 까지 기다려 달라고 했다. 결국 프로포즈였다. 1932년 새해 전날이었다. 그는 키스로 그의 프로포즈를 마무리 했다. 버지니아의 학교로 돌아온 후에 그들의 편지는 다시 하루에 한 통씩 늘어갔다. 여전히 편지는 충분치 않았다. 이디스는 매일 같은 시간에 Daily Light(기독교 잡지 인듯)를 읽자고 제안했다. 그것은 멀리 있는 그들을 하나로 이어주는 끈이었다. 프랜은 그것이 아주 멋진 생각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편지가 좀 지체되긴 해도 그들을 잇는 가장 강력한 것이었다. 1933년에 이디스가 보낸 편지 중에 하나이다. 프랜이 그가 설교한 대로 행동하지 못함으로 인해 친구들에게 비난 받고 본인도 괴로워 하던 때 이디스가 쓴 것이다.
프랜.
우리 인간들은 생각의 짧음으로 인해 낙담할 때 쓰러지는 것 같아요. 그러나 우리는 그런 것-당신이 실행한 것을 설교했기 때문에 그래야 한다는-에 찬성하기를 원치 않아요. 우리는 진정으로 그리스도인의 삶을 설교할 것을 원해요. 그리고 그렇게 살기를 원하구요. 그러나 우리는 인간이고 완벽하지 못해요. 우리의 실수에 대해 용서라는 것이 있어요. 내 의도가 잘 전달되고 있는 지는 모르지만, 나는 당신을 그렇게 몰아가는 친구들도 잘못이 있다고 생각해요. 사실 크리스천도 인간이라는 사실이 당신에게 도움이 되기를 바래요. 다른 점이 있다면 크리스천들은 그의 실수와 어려움이 있을 때 좌절하는 것이 아니라 나아갈 대상이 있다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이게 제 생각이에요. 그리고 난 당신이 존귀하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당신의 올곧음을 존경해요. 당신의 용기두요. 그리고 그 모든 것보다 당신을 사랑해요. 라디오에서 유대인에 대한 히틀러의 대우에 대한 회의가 나오네요. 혼란스러운 시대에요. 그렇죠?
좋은 꿈 꿔요. 이디스
1933년에 쓰여진 다른 편지이다.
프랜.
당신의 편지 속에 쓰여진 말들이 제 마음을 울리네요. 글자들이 살아있는 것 같아요.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그렇지만 사실이지요… 그건 단지 사랑이 아니라는 것 그건 당신을 위한 내 사랑을 포함하는 것 보다 더 큰 것이에요. 그리고 그 이상이에요. 내 마음 속에 있는 사람을 돕고 싶어 했었고 또 그랬고, 하나님의 가장 위대한 종으로 그와 모든 것을 나누고 싶었어요.
다른 사람들은 알게 될 거에요. “하나님의 멋진 사람”, “빛나는 사람”, “남자 중의 남자” 라고 말이에요. 그러나 나는 그의 반려자로서 모든 것에서 그를 가장 완벽하게 아는 한 사람이 될 거에요.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모든 것을 이루시는 하나님은 선하신 분”이라는 것에요. 인생은 짧지만 그 후에 영원한 삶이 있잖아요. 그리고 그 곳에 당신이 있을 거라고 생각해 봐요. 잘못이 있으신가요? 나는 다른 사람들로 당신과 같은 잘못이 있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난 이제 이렇게 말해요. 여유를 가지세요. 아니면 차를 타고 모래사장에 나가 보아요. 셀 수 없이 많은 모래들은 삶을 즐겁게 하는 것들이잖아요!
전 어제 공부했어요. 8시 반에 수업을 듣고 와서 사탕 과자를 만들었어요. 그리고 당신을 위해 이니셜을 새긴 손수건과 함께 포장했어요. 그리고 심리학 숙제를 하고, 저녁을 먹은 후에 화학 실험서를 쓰고 저녁 7시부터 밤 12시 반까지 노트를 정리했어요. 오늘 아침에는 손가락에 경련이 나고 한자세로 오랫동안 앉아 있었더니 허리도 아팠어요. 그래도 일어나서 교회에 갔어요. 비버 목사님의 설교는 모든 아픔을 잊게 하기 충분했어요. 가끔 그 자리에 당신도 함께 있으면 얼마나 좋을지 생각해요. 그의 설교를 같이 들을 수 있잖아요. 케익 한 조각에서부터 아름다운 장면들과 사랑스런 음악들 까지 모두 즐기는 중이에요. “프랜 당신과 함께 이 즐거움을 함께 했으면 좋겠어요.”
은빛 나는 초승달이 떴네요. 본 적 있나요? 이만 줄여야 겠네요. 선반에 있다면 영국 희곡을 읽고 싶어요. 주중에 한 번 더 편지 할게요. 시험 끝나면 두둑한 편지 보낼게요.
이디스.
그녀가 약속했던 두둑한 편지의 9쪽이다.
바람이 많이 부는 날이네요. 눈이 와서 그런지 지나가는 차들이 오독오독 소리를 내요. 춤추면서 내려오는 눈송이들이 바닥에 앉기를 주저하는 것 같아요. 이야기 하기 좋은 날이네요. 나뭇잎이 흔들거리고 창문이 바람에 덜컥거리는 소리가 나는 난롯가에 앉아서 말이에요. 불 옆에 앉아서 있다가 애플파이를 구워먹는 거에요. 사랑하는 사람이랑 마주 앉아서 밤새도록 이야기 하는 거에요. 아니면 소리내어 시 한 구절을 읽거나 재미있는 이야기를 읽는 거에요.. 그리고 장작이 다 타들어 갈 때까지 당신의 손을 잡고 있는 거에요. 생각만 해도 좋네요. 오늘은 어쨌든 평안해요. 그리고 당신이 아주 가까이에 있는 것 같아요. 내가 말하면 당신이 대답할 것 같아요. 손을 뻗으면 당신을 잡을 수 있을 것 같아요. 눈을 감고 당신이 거기 있다고 생각해요. 그렇지만 없네요. 이번 주에 내내 존 골즈워디의 희곡을 읽고 있어요. 그 사람이 쓴 “정의”라는 희곡 읽어 봤나요?
내가 당신에게 갖는 이 마음.. 끝날 것이라는 상상을 하기가 어려워요. 적어도 백만년 후에나 당신을 잊을까요. 이해하나요?
당신의 이디스
물론 프랜도 답장을 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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