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개혁과 창립기념주일
종교개혁과 창립기념주일
자료출처http://blog.naver.com/midagef?Redirect=Log&logNo=40030262400
서양 중세 천년의 역사가 그 끝에 이르렀을 때, 그래서 세상은 더욱 어둡고 빛은 거의 찾아볼 수 없을 때, 마르틴 루터는 분연히 일어섰다. 로마 가톨릭의 불의에 대해서는 냉철한, 그리고 하나님에 대해서는 뜨거운 마음이 담긴 95개조의 반박문(95 Theses)을 들고서…! 비텐베르크 성(城) 교회 문에 루터가 이 문서를 못 박는 소리는 그 후로 세계 역사를 새로 쓰는 소리로 메아리쳐졌다.
몇 년 전부터, 우리 교회 창립 주일을 8월의 평화통일주일에서 10월의 종교개혁주일로 옮긴 것은, 물론 휴가철과 몹시 더운 날씨 때문이기도 했지만, 그보다는 종교개혁 기념 주일에 맞추어서 교회의 본질을 다시 한 번 되새기며 우리의 자세를 추스르자는 뜻이 있었다. 유럽 땅의 1/3을 소유한 교회는 더 이상 평안과 탐욕을 버릴 수가 없었다. 그리고 이미 부유해져버린 교회는 끝없는 탐욕의 구렁텅이로 끌려 내려간다. 루터의 선언은 스스로 죄에 빠져 사망선고를 받을 교회를 되살리려는 극약 처방이었다. 그리고 500년 후, 종교개혁주일 위에 우리 교회 창립 기념 주일을 얹어 놓은 것은 교회란 무엇이며, 우리 교회는 어떤 모습으로 변화되어야 하는가를 깊이 숙고해보는 계기를 만들기 위한 것이었다.
새 해를 두 달 정도 앞둔 시점에 서면 목회자는 마음이 분주해진다. 지나온 1년을 돌아보면 아쉬움과 부끄러움이 많고, 베드로의 신앙 고백과 종교개혁의 거울에 우리 교회를 비춰보면 모자람이 너무 많아 죄스럽기까지 하다. 교인들의 신앙 상태를 살피고 양육하라고 주님이 사명을 주셨는데, 나는 그 사명을 얼마나 성실하게 감당했는지 자문할수록 가슴이 점점 무겁게 내려앉는다. 역사와 사회 속에서 교회의 책임을 온전히 감당하려면 우리의 내부 모습이 주님 보시기에 합당해야 하건만, 교인들의 신앙을 살피고 가꾸는 일에 태만하고 때로는 방치한 것 같아 주님의 음성을 듣기가 두려워진다.
무엇보다도 교회는 믿음의 공동체다. 하나님을 믿고 그 믿음을 사람들 사이에서 확인하면서 하나님 나라를 넓혀가는 것이 교회의 본질이다. 오늘의 한국 교회는 위기이며, 그럴수록 개혁이 시급한 것은 문제의 처음과 끝이 바로 이 ‘믿음’에 닿아있기 때문이다. 가난한 것도 무지한 것도 무능한 것도 좋은 것은 아니지만 그 자체로 죄가 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믿음으로 모이고 믿음 없는 세상에 믿음을 심어야 할 교회가 불신의 대상으로 전락하고 있는 것은 우리의 현실을 절망케 하고 우리의 미래를 어둡게 한다. 교회는 하나님이 살아계심을 믿어야 한다. 폭풍처럼 밀려오는 세파가 역사의 힘은 돈, 지식, 권력에 있다고 큰소리쳐도 공의로우신 하나님, 사랑이신 하나님, 구원의 주 하나님을 믿어야 한다. 교회가 이 사실을 안 믿으면 누가 믿는단 말인가! 그리고 세상이 교회를 믿게 해야 한다. 다른 것 다 못 믿어도 교회는 믿을 수 있다는 말을 들어야 한다. 교회이기 때문에, 단순히 그 이유 때문에 불신의 시대까지도 하나님의 교회를 믿을 수 있다는 평가야 말로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시는 교회의 모습일 것이다. 그것은 하박국-바울-루터로 이어져 내려온 “의인은 오직 믿음으로 살리라!”는 선언의 사회적 진의(眞意)일 것이다.
종교 개혁의 신앙고백이 곧 밀알 교회에서 현실화 될 날을 기대하고 기도하면서…!
자료출처http://blog.naver.com/midagef?Redirect=Log&logNo=40030262400
서양 중세 천년의 역사가 그 끝에 이르렀을 때, 그래서 세상은 더욱 어둡고 빛은 거의 찾아볼 수 없을 때, 마르틴 루터는 분연히 일어섰다. 로마 가톨릭의 불의에 대해서는 냉철한, 그리고 하나님에 대해서는 뜨거운 마음이 담긴 95개조의 반박문(95 Theses)을 들고서…! 비텐베르크 성(城) 교회 문에 루터가 이 문서를 못 박는 소리는 그 후로 세계 역사를 새로 쓰는 소리로 메아리쳐졌다.
몇 년 전부터, 우리 교회 창립 주일을 8월의 평화통일주일에서 10월의 종교개혁주일로 옮긴 것은, 물론 휴가철과 몹시 더운 날씨 때문이기도 했지만, 그보다는 종교개혁 기념 주일에 맞추어서 교회의 본질을 다시 한 번 되새기며 우리의 자세를 추스르자는 뜻이 있었다. 유럽 땅의 1/3을 소유한 교회는 더 이상 평안과 탐욕을 버릴 수가 없었다. 그리고 이미 부유해져버린 교회는 끝없는 탐욕의 구렁텅이로 끌려 내려간다. 루터의 선언은 스스로 죄에 빠져 사망선고를 받을 교회를 되살리려는 극약 처방이었다. 그리고 500년 후, 종교개혁주일 위에 우리 교회 창립 기념 주일을 얹어 놓은 것은 교회란 무엇이며, 우리 교회는 어떤 모습으로 변화되어야 하는가를 깊이 숙고해보는 계기를 만들기 위한 것이었다.
새 해를 두 달 정도 앞둔 시점에 서면 목회자는 마음이 분주해진다. 지나온 1년을 돌아보면 아쉬움과 부끄러움이 많고, 베드로의 신앙 고백과 종교개혁의 거울에 우리 교회를 비춰보면 모자람이 너무 많아 죄스럽기까지 하다. 교인들의 신앙 상태를 살피고 양육하라고 주님이 사명을 주셨는데, 나는 그 사명을 얼마나 성실하게 감당했는지 자문할수록 가슴이 점점 무겁게 내려앉는다. 역사와 사회 속에서 교회의 책임을 온전히 감당하려면 우리의 내부 모습이 주님 보시기에 합당해야 하건만, 교인들의 신앙을 살피고 가꾸는 일에 태만하고 때로는 방치한 것 같아 주님의 음성을 듣기가 두려워진다.
무엇보다도 교회는 믿음의 공동체다. 하나님을 믿고 그 믿음을 사람들 사이에서 확인하면서 하나님 나라를 넓혀가는 것이 교회의 본질이다. 오늘의 한국 교회는 위기이며, 그럴수록 개혁이 시급한 것은 문제의 처음과 끝이 바로 이 ‘믿음’에 닿아있기 때문이다. 가난한 것도 무지한 것도 무능한 것도 좋은 것은 아니지만 그 자체로 죄가 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믿음으로 모이고 믿음 없는 세상에 믿음을 심어야 할 교회가 불신의 대상으로 전락하고 있는 것은 우리의 현실을 절망케 하고 우리의 미래를 어둡게 한다. 교회는 하나님이 살아계심을 믿어야 한다. 폭풍처럼 밀려오는 세파가 역사의 힘은 돈, 지식, 권력에 있다고 큰소리쳐도 공의로우신 하나님, 사랑이신 하나님, 구원의 주 하나님을 믿어야 한다. 교회가 이 사실을 안 믿으면 누가 믿는단 말인가! 그리고 세상이 교회를 믿게 해야 한다. 다른 것 다 못 믿어도 교회는 믿을 수 있다는 말을 들어야 한다. 교회이기 때문에, 단순히 그 이유 때문에 불신의 시대까지도 하나님의 교회를 믿을 수 있다는 평가야 말로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시는 교회의 모습일 것이다. 그것은 하박국-바울-루터로 이어져 내려온 “의인은 오직 믿음으로 살리라!”는 선언의 사회적 진의(眞意)일 것이다.
종교 개혁의 신앙고백이 곧 밀알 교회에서 현실화 될 날을 기대하고 기도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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