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태홍 목사의 성경적 상담 연구소 RBD COUNSELING INSTITUTE
멘탈리티의 핵심 키워드 : 신성한 내면아이, 구상화, 의미와 통일성, 도약~
목록
교리교실

소시니안주의, 소키누스주의

소시니안주의, 소키누스주의

------------------------------------ 인용 자료 시작 ------------------------------------
소시니안주의, 소키누스주의
poemcity 2004.06.25 21:09
2
조회 883
▶단어 : 소시니안주의, 소키누스주의
▶영문 Socinianism
▶내용 : 소시니안주의, 소키누스주의(Socinianism)

1. 16세기 후반과 17세기 초에 폴란 등에서 꽃피웠고, 후에는 저지대(Low Countries)와 영국에까지 전파된 종교개혁 후시대의 한 신학적 운동이다. 이 운동은 반삼위일체적 교리 뿐만 아니라, 합리주의적이고 윤리적인 강조점에 있어서도 유니테리안주의(Unitarianism)의 선구자로 알려져 있다. 이 운동은 삼위일체, 그리스도의 선재(Pre-existence), 원죄, 구속의 만족설(Satisfaction) 등에 대한 반대자로서 알려져 왔는데, 이 운동이 그 교리들을 반대한 이유가 그 교리들이 가지고 있는 비성경적이며 비합리적이기 때문이라는 것을 강조하는 것은 더욱 중요하다.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 나타난 계시의 최종성은 인정하였으나, 이 교리들은 부인한 것이다. 그들의 만족설에 대한 반대의 이유는 매우 전형적인 것이다. 즉, 하나님이 절대적인 주권을 가지고 있다면 자신이 생각하기에 적당한 어떤 방법으로든지 죄를 용서할 것이다. 더욱이 죄의 용서와 만족설은 서로 상충되는데, 이는 하나님이 죄를 용서하신다면 보상은 필요가 없는 것이고, 보상이 필요하다면 용서라는 것은 한낱 환상에 불과한 것이 되기 때문이다. 저명한 교회사가 하르낙(Adolf von Harnack, 1851-1930년)은, 이 소시니안주의는 신자들 개개인에게 성경을 연구할 수 있는 자유를 부여하였다는 점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고 결론지었다.

2. 역사적으로 볼 때 법정적 신학(the forensic theology)에 대해 가장 날카로웠으면서도 그러면서 가장 소득이 없었던 비판을 한 것이 소키누스주의였다. 소키누스주의는 그 추상성과 형식주의의 면에서 중세기의 마지막 때에 해당하는 중세사상의 연장이었다. 소키누스주의의 하나님은 스코투스주의자들이 말하는dominium absolutum(절대 권능)을 의인화한 것이었다. 하나님의 의지는 도덕적 진공상태 속에서 작용한다. 죄는 사채에 불과하다. 그리고 속죄(사채에 대한 보상의 뜻)는 사채에 비해 넘치는 것이다. 소키누스주의자들은 중세사상의 논리를 그 극단으로까지 철저히 추구해 나가는 데에 교회당국의 금지를 조금도 받지 않았던 단순한 스코투스주의자들에 불과하였다. 그들의 도식은 바깥에서 안으로 다시 전향한 중세 정통사상이다. 따라서 라틴신학의 배후에 있었고 종교개혁 신학에서 의문시되지 않았던 중세의 절대주의적 하나님 관점으로부터 보속설에 대한 소키누스주의자들의 비평이 가해졌고 또 이 비평은 이 하나님 관점이 형식상의 일관된 적용인 것이다. 그러나 라틴신학의 배후에 있던 이 절대주의적 하나님 관념은 그리스도교의 하나님 관념은 아니기 때문에 소키누스주의의 비평은 그리스도교 경험의 핵심을 건드리지는 못한다. 보속과 사면은 상호배타적인 것이며 은총과 공로는 상충적이라고 한 소키누스주의의 생각에는 우리가 외형상으로는 동조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소키누스주의가 이 비평에서 간과한 것은 다음과 같은 사실이다. 즉 어느 누구도 십자가 위에서 고난을 당한 사람(그리스도)으로부터 떠나서는 신적 용서를 경험할 수 없다는 것과 모든 구속받은 자는 신적 용서의 경험의 통일성 속에서 gratuito(무보수적 은총)와 propter Christum(가까이 계시는 그리스도)를 파악하게 된다는 사실이다.

그리스도께서 십자가 위에서 고난받으실 때 하나님은 자신에게 보속을 행하셨다고 말하는 것은 논리적으로 불합리하게 들릴지 모른다. 그러나 구원을 받는 신앙은 하나님이 그 구속행위와 고난 속에 있으심과 구속의 대가를 스스로 담당하셨음을 명석하게 인식한다. 보속설은 중대한 윤리적 신학적 오류를 범하였음이 사실이다. 즉 그 논리는 신적 속성들을 개별적으로 분리시키고 특히 거룩과 사랑을 서로 대립적인 것으로 위치시켰다. 그러나 하나님에 대한 체험적 지식은 도저히 함께 생각할 수 없는 것을 함께 생각할 수 있게 해주며,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전 특징, 즉 사랑 안에서 거룩을 그리고 거룩 안에서 사랑을 보게한다. 소키누스주의는 개인주의이다. 그것의 방법은 가설저거 전제들로부터 결론들을 연역해 내는 형식논리의 방법이다. 보속설의 강점은 하나님과 사람의 필연적 관계들을 도덕적 우주 속에서 인식하였다는 데 있다. 그것의 약점은 절대군주에 의해 통치되고 엄격한 재판적 절차에 의하여 치리되는 제국적 영역으로 우주를 개념화하고 있다는 데 있다. 그런데 당시의 그리스도인의 의식은 더 나은 우주개념을 마다하고 이 우주개념을 받아들였다. 왜냐하면 당시로서는 소키누스주이 안에서보다 보속설의 우주개념 안에서 도덕적 가치들과 구속의 능력을 확보하는 것이 더 안전하다고 느껴졌기 때문이다
(자료출처 네이버지식사전에서, http://kin.naver.com/open100/detail.nhn?d1id=11&dirId=1111&docId=158128&qb=7IaM7Iuc7JWI7KO87J2Y&enc=utf8&section=kin&rank=1&search_sort=0&spq=0&pid=R6MFi35Y7uhsscPu4HKsssssstw-331718&sid=UD9EERQsP1AAAGb@Eew)
------------------------------------ 인용 자료 끝 ------------------------------------

RPTministries 정태홍 목사
http://www.esesang91.com

http://twtkr.com/rptministries
http://www.facebook.com/RPTministries

이 글 공유하기

독자 의견

댓글이 없습니다.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