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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국: 김홍전 <예수께서 마귀의 시험을 용인하신 까닭>

천국: 김홍전 <예수께서 마귀의 시험을 용인하신 까닭>

2012.05.09. 19:34http://cafe.daum.net/yangmooryvillage/RlPO/3643 
예수께서 마귀의 시험을 용인하신 까닭
 
      그렇지만 예수님께서 주리셨다고 해서 마귀 말을 듣고 돌로 떡을 만들어 잡수실 그러한 방황을 하시겠습니까? 그럴 리가 없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해서 마귀가 시험을 했습니까? 바로 거기에 마귀의 약점이 있는 것입니다. 마귀는 자기가 도무지 예수님을 시험할 수 없다는 사실을 생각하고 처음부터 단념하는 그런 존재가 아닙니다. 마귀는 ‘결국 모든 경우에 어떻게 해도 안 된다면 나라도 최후에 한 번이라도 해 보겠다.’ 하고 끈질기게 덤빕니다. 이것이 마귀 된 소이(所以)요 마귀의 어리석음입니다.
 
원래부터 마귀가 마귀 된 소이는 하나님께 반항을 해 보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마귀가 언감(焉敢)히 반항할 수 있습니까?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욥기를 보더라도 마귀는 하나님의 보좌 앞에서는 엎드리고 하나님의 명령에 ‘예.’ 하고 순종할 수밖에 없는 존재입니다(욥 1:6~12, 2:1~7 참조). 그러면서도 틈만 있으면 반항을 해 보겠다고 나서는 것입니다. 이런 끝없는 반동 정신과 반동의 성격을 거의 본능적으로 가지고 악으로만 가득한 자가 마귀입니다. 그 마귀가 그런 성격을 가지고 좌우간 한 번 해 본다 해 예수님께 나와서 시험을 한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네 이놈, 네가 언감히 나를 시험해?’ 하고서 일언지하(一言之下)에 “사탄아, 물러가라.” 하고 물리치신 것이 아닙니다. “사탄아, 물러가라.” 하실 때는 마귀도 한계가 있어서 그 한계에 이르러 멱이 찼을 때 ‘이제는 물러가거라.’ 하신 것입니다. 이것이 예수님께서 하신 중요한 말씀입니다. 아무라도 그 말을 함부로 쓰는 것이 아닙니다.
 
마귀가 온다고 해 덮어놓고 “사탄아, 물러가라.” 하면 물러가는 줄 아십니까? 그런 소리 해 봐도 안 물러갑니다. 사탄이 가까이 와서 눈앞에 이르렀다면 그만큼 용의주도하게 나보다 훨씬 더 많은 지혜를 가지고 나를 넘어뜨리려고 오는 것인데, “물러가거라.” 하고 말 한 마디로 호령한다고 물러갈 사탄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그런 말씀을 하셨으니 나도 한 번 써 본다는 식으로 덮어놓고 그냥 흉내를 내는 것은 보기에도 참 우습습니다. 옛날 소설에 돈키호테라는 사람이 나오는데, 교인들이 돈키호테 식으로 사는 것은 좋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 흉내를 내고 자꾸 그 말씀을 인용해서 자기도 그렇게 할 수 있는 것같이 말하는 것은 분수를 몰라서 그러는 것입니다.
 
      “사탄아, 물러가라.” 하실 때 ‘사탄아, 네가 거기까지만 하고 그 이상은 못하는 것이다.’ 하고 주재자(主宰者)요 통재자(統宰者)로서 사탄에게 사탄의 한계를 주의하도록 하신 것입니다. ‘너는 올 데까지 다 오지 않았느냐? 이 이상은 더 갈 데가 없지 않느냐? 이제는 가거라.’ 하시는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 “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든지 “사탄아 물러가라” 하는 말씀을 두어 번 하신 것을 우리가 성경에서 봅니다. 이 세 가지 시험 끝에도 “사탄아, 물러가라.”고 하셨는데, 특별히 ‘절하라.’ 하는 문제에서 사탄은 멱이 찬 소리를 했습니다. 그 이상은 더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사탄이 하나님께 절하지 않고 하나님의 아들로서 “말씀이 육신이 되신”(요 1:14) 그분더러 자기에게 절하라고 한 것은 사탄이 할 수 있는 참람(僭濫)의 극한에 달한 이야기입니다. 그러니까 ‘이놈, 네가 그 이상 더 무슨 말을 할 수 있느냐? 물러가라.’ 하고 물리치신 것입니다.
 
나중에 시몬 베드로에게도 한 번 그런 말씀을 하신 일이 있습니다만(마 16:23, 막 8:33), 좌우간 문제는 그렇게 ‘너는 조금도 나를 시험을 할 수가 없다.’고 사탄을 제한하신 것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그 시험을 받아 주셨다는 사실입니다. ‘그래, 네가 나를 시험하느냐?’ 하고 받아 주신 것입니다.
 
 
...{다음에}...
 
 
*   김홍전 [예수께서 광야에서 받으신 시험: 제1권] <제1강: 예수께서 광야로 가신 목적>에서.
 
*   길게 옮기면 지루해 하실 분도 계셔서 나눠서 옮깁니다.
 
*   예수님께서 사탄에게 허락하신 시험은 요한계시록에 적힌 사탄의 결박과 얽혀 있습니다. 물론 사탄의 결박은 전투하는 교회로서 주님의 교회와 관련이 있습니다.
 
*  라마드 님께서 후크마 글을 처음 올리셨을 때 ‘무(친親)천년 주장에 따르면 예수님께서 사탄의 시험을 이기심으로써 사탄을 결박하셨다는데, 그러면 왜 주님께서는 십자가에 돌아가셔야만 했는가?’ 라는 반론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주님의 십자가가 놓인 골고다는 주님과 사탄이 싸우는 대전 장소, 싸움터가 아니었습니다. 즉, 주님의 십자가는 하나님의 공의를 만족케 하셔서 창세 전에 택하신 하나님의 백성과 그 백성의 거소로서 천지를 하나님께 화목케 하시는 십자가였지, 그 십자가가 세워진 골고다 언덕은 사탄에게 그 어떤 대가, 속전(주님의 피)을 지불해 택하신 백성을 하나님의 나라로 넘겨 받아 오시는 장소가 아니었다는 점에서, 주님을 대적하는 사탄의 적극적인 활동이 있었을지라도, 대전 장소가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RPTministries 정태홍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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