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립 E. 휴즈 [요한계시록 주석]<사단이 일천 년 동안 결박됨>
필립 E. 휴즈 [요한계시록 주석]<사단이 일천 년 동안 결박됨>
2012.05.09. 23:12http://cafe.daum.net/yangmooryvillage/RlPO/3644
2. 막간의 환상(20:1~10)
(1) 사단이 일천 년 동안 결박됨(20:1~6)
20:1~3. 또 내가 보매 천사가 무저갱 열쇠와 큰 쇠사슬을 그 손에 가지고 하늘로서 내려와서 용을 잡으니 곧 옛 뱀이요 마귀요 사단이라. 잡아 일천 년 동안 결박해 무저갱에 던져 잠그고 그 위에 인봉해 천 년이 차도록 다시는 만국을 미혹하지 못하게 했다가 그 후에는 반드시 잠깐 놓이리라.
이제 막 소개되기 시작한 요한계시록의 결론 부분에는 사단과 그의 종자들 최후와 예전에 그렇게 되기로 결정된 영광의 상태에 들어간 창조의 새롭게 됨이 그려져 있다.
요한이 지금 보고 있는 무저갱 열쇠를 가지고 하늘로서 내려오는 천사가 18장 1절의 큰 권세를 가진 천사와 동일한 천사인지 아니면 9장 1절의 무저갱 열쇠를 받은 천사인지 우리에게 알려지지 않았다. 그 천사가 무저갱의 천사요 또한 아바돈 아볼리온으로 알려진(9:11) 마귀를 결박하기 위해 그의 손에 큰 쇠사슬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봐 이 천사는 두려운 형상을 하고 있었음에 틀림없다.
사단이 이 쇠사슬에 결박되고, 무저갱에 던짐을 받고, 그를 가둬 놓은 무저갱을 닫고 인봉하는 것 같은 제반 행위들은 사단과 무저갱에 대한 권세가 바로 그가 반역했던 전능하신 하나님께 속한다는 것을 가리킨다. 무저갱의 열쇠ㅡ이는 만물의 운명을 좌우하는 열쇠인데ㅡ는 사단이 아니라 하나님과 하나님께서 주신 열쇠를 받은 천사가 견지하고 있다.ㅡ
천 년의 기간은 (본서 요한계시록의 숫자 사용에서 일관성 있게 표현되고 인식됐던 것처럼) 비교적 길고 완전한 시대 또는 시간을 가리키는 상징적인 기간이다. 일천 년이 인간의 관점에서 볼 때는 길며, 하나님께서 미리 정하신 시간표와 관련해서는 완전하다. 일천 년이 한정된 기간이라는 것은 일천 년이 지나 사단이 그의 마지막 반항이 잠시 동안 지속되다가 마침내 마지막 심판을 맞게 되는(19:17 이하) 반드시 잠깐 놓이게 된다는 사실에서 분명해진다.
마귀를 이렇게 결박하는 목적은 그가 다시는 만국을 미혹하지 못하게 하려는 데 있다. 만일 천 년 동안 그가 자유롭게 만국을 미혹할 수 없게 된다면 자연히 생각할 수 있는 것은 그가 이렇게 능력이 억제 당하기 전에 부지런히 사람들을 미혹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미 살펴봤듯이 요한계시록 12장 9절에는 마귀가 ‘온 세상을 속이는 자(미혹하는 자)’로 묘사됐다. 12장에 묘사된 그가 그의 천사들과 함께 하늘에서 내쫓김을 당하고, 갈보리에서 그리스도의 희생으로 말미암아 철저하게 패배했다는 사실은 본문에 묘사된 그가 결박되고 무저갱으로 던짐을 받았다는 장면과 중요한 관련성이 있다.(12:7~9 주석을 참조하라.)
또한 본문에 그를 옛 뱀이요 마귀요 사단이라고 명명한 것은 12장에서 그를 명명한 것의 반복이라는 점에서 흥미롭다. 첫째 아담을 속이고 그를 패배하게 한 자가 이제 그 적수, 아니 그것보다 더한 분을 만났다. 바로 둘째 아담이신 성육하신 하나님의 아드님이시다. 본문의 요지는 그리스도의 출현으로 말미암아 사단과 열국 사이의 관계에 변화가 초래됐다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성육신 이전에는 열국은 사단의 속임수에 유혹을 받아 어두움과 무지 가운데 있게 됐다. 열국은 “자기들의 길을 행했다.”(행 14:16) 이와 대조적으로 땅 위에 있는 모든 백성 가운데 이스라엘만 하나님의 말씀을 맡았으며(롬 3:2), 그들은 하나님의 계시가 가져오는 지식과 총명을 지녔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길로 행함으로써 주변의 이방 나라들과 구별되는 그들의 독특성을 유지해야만 했다(참조; 신 5:32,33, 10:12, 12:1 이하 등등)
“너는 네 하나님 여호와의 성민이라. 여호와께서 지상 만민 중에서 너를 택해 자기 기업의 백성을 삼으셨느니라.”(신 14:2) 그러나 이렇게 이스라엘을 택하신 목적은 이스라엘 백성의 조상인 아브라함에게 약속한 후손인 성육하신 아드님을 통해 하나님께서 지상의 모든 나라들에게 복을 가져다주시는 것이었다(창 22:18, 갈 3:16).
그렇다면 열국은 더 이상 미신의 그림자 속에 남아 있지 않는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구원이 “모든 백성 앞에 예비됐고”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의 영광만이 아니라 열국의 신적 계시의 빛이 되시기 때문이다(눅 2:30~32). 이제 하나님의 백성에는 그 어떤 구별도 없다. 그들 공통의 사명은 이방인의 충만한 수가 들어오기 위해 세상 끝까지 복음의 소식을 선포하는 것이다(마 24:14, 28:19,20, 롬 10:12,13, 11:25).
열국에 대한 사단의 권세는 복음의 능력으로 말미암아 분쇄됐다. 마귀의 속이는 어두움은 “내가 세상의 빛이다.”고 선언하신 분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물러가 버리고 말았다(요 8:12, 9:5). 그래서 예수께서 ‘이방의 갈릴리’에 계신 것을 마태는 이사야 선지자가 예언한 말씀의 성취로 봤던 것이다. “흑암에 앉은 백성이 큰 빛을 봤고, 사망의 주변과 그림자에 앉은 자들에게 빛이 비췄느니라.”(마 4:13~16, 사 9:1,2)
열국에 복음의 빛이 비친 것은 그리스도의 강림과 사단을 결박하심으로 말미암은 것이다. 그리스도의 강림과 사단의 결박은 서로 연관성이 있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서기관들이 자신에 대해 귀신의 왕의 힘을 빌어 귀신을 내어쫒는다고 비난하자, 이에 대해 사단이 사단을 내어쫓고 자기나 자기 나라를 나눈다는 것은 말도 안 된다는 지적으로써 대답하셨다.
그리고는 “아무도 그가 먼저 강한 자를 결박하지 않고는 강한 자의 집에 들어가 세간을 늑탈할 수 없다.”(막 3:22 이하, 마 12:24 이하)는 말씀을 덧붙이셨다. 이 말씀이 암시하는 내용은 분명하다. 그리스도께서 귀신을 내어쫒으신 것은 귀신의 왕인 ‘강한 자’의 집이 늑탈됐고 ‘그 강한 자’ 사단이 결박됐다는 증거였다.
그러므로 용을 무저갱으로 던진 것을 우리는 요한계시록 12장 7절~9절에 기록된 그를 하늘에서 내어 쫒은 것과 동일한 사건으로 이해한다. 이것은 그리스도께서 파송한 칠십 인이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심지어 마귀도 그들에게 굴복했다는 기쁜 소식을 가지고 돌아왔을 때 예수께서 친히 하신 말씀과도 일치한다. “내가 사단이 하늘에서 번개 같이 떨어지는 것을 봤다. 보라. 내가 원수의 모든 능력을 제어할 권세를 줬노라.”(눅 10:17~19)
이러한 주님의 말씀은 ‘강한 자’가 결박돼 갇혔다는 것을 시사하며, 예수께서 십자가의 시련과 승리에 직면해 선언하신 내용과도 같다. “이제 이 세상의 심판이 이르렀으니 이 세상 임금이 쫓겨나리라. 내가 땅에서 들리면 모든 사람을 내게로 이끌겠노라.”(요 12:31,32)
그래서 부활하신 주님께서는 이와 같은 용기를 주신 말씀으로 그의 사도들에게 사명을 주셨다. “하늘과 땅의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으라.”9마 28:18,19) ‘온 세상을 미혹하는 (속이는) 자’가 더 이상 열국을 속일 수 없게 됐다(12:9). 온 우주에 대한 능력을 가지신 분은 모든 사람을 자기에게 이끄시고 모든 족속으로 제자 삼기 위해 그의 종들을 보내시는 그리스도이시다.
마귀가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모든 나라를 통치하신다.’(12:5) 그리스도께서 사단보다 더 강한 분이시라는 사실은 히브리서에서도 분명하게 볼 수 있다. 히브리서 저자는 하나님의 성육하신 아드님께서 “사망으로 말미암아 사망의 세력을 잡은 자, 곧 마귀를 없이 하시며 또 죽기를 무서워하므로 일생에 매여 종노릇하는 모든 자들을 놓아 주시기 위해” 육신을 입으셨다고 기록했다(히 2:14,15).
이러한 증거로 인해 우리는 사단이 매이고 감금되는 일천 년의 기간은 영원하신 아드님의 성육신과, 특히 그 성육신의 목적 성취, 즉 갈보리 십자가로 사단과 그의 영역을 정복하시고 십자가에서 흘러나오는 은혜로 말미암아 사람을 구원하시는 일과 함께 시작됐다고 결론을 내리게 된다. 이렇게 그리스도께서 마귀를 정복하신 것은 그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시고 승천하시고 지극히 높으신 분의 오른편 영광의 보좌에 앉으신 일로 확증된다(히 1:3, 12:2)
...{하략}...
* 필립 E. 휴즈 [요한계시록 주석] 오광만 옮김 (서울: 여수룬, 1994) 303쪽~307쪽.
RPTministries 정태홍 목사
http://www.esesang91.com
http://twtkr.com/rptministries
http://www.facebook.com/RPTministries
독자 의견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