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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목사 신학 건전한가?

이근호목사 신학 건전한가? 
자료출처 http://cafe.daum.net/yangmooryvillage/RlBq/696 
 
이근호 목사의 신학을 건전한가, 아닌가로 판단해서는 안 됩니다.
왜냐하면 이근호 목사는 성경말씀이 아닌 자기 신학을 가르치는 자이기 때문입니다.
그에게 가르침을 받는 사람들에게 있어 성경말씀은 절대 실천될 수가 없고,
행하라고 주신 말씀이 아니기에 순종이란 있을 수 없다고 가르치기 때문입니다.
단순히 죄인 된 자신의 모습과 죄에 대해서 열심히 공부해서, 죄를 공부한 만큼
십자가 피의 능력만 알면 그 것으로 복음 ‘아는자’가 되고, 아는 것으로 끝나야지
믿는 자의 순종을 주장하는 사람은 그의 십자가마을에선 복음 모르는 자로 몰리게 됩니다.
성화는 물론 입 밖에도 꺼내면 안 되지요. 그러기에 성령님의 내주하심과 이끌어 가심도 부정합니다.
성령은 가끔씩 접촉했다 떨어졌다 하는 효과적 기능일 뿐입니다.
하나님이 통치하시고 섭리하시는 성도의 삶에 대해서도 말하지 않습니다.
‘구조론’으로 설명되는 성도의 도구적 기능만 있을 뿐입니다.
그래서 성도를 송장이니, 점이니, 연장이니 하는 말이 나오는 겁니다.
그냥 도랑 같은 것을 파놓고 물 흘러가듯이 살게 되어있다는 거지요.
그래서 살다보면 한사람은 천국에 와있고 한사람은 지옥에서 발견된다는 겁니다.
여기에 성도의 거룩을 향한 자발적 순종, 곧 완전할 수는 없지만(불완전까지도 감사이기에)
주신 사랑안에서 거룩을 향해 순종함을 요구하는 성령님의 간섭과 열매는 찾아볼 수가 없고, 아예 기대조차 않는 겁니다.
안되니까 생각조차 말고 포기하라는 겁니다. 정면으로 성경을 대적하는 가르침입니다. (살전4:3~8) (골1:21~22)
(엡4:13) (히5:12~13)(마16:27) (마7:21~23) (빌2:1~8) (롬6;4) (시119:97,127) (엡4;1~6) (롬1:5) (롬16:25~26) (벧전1:14~16) (엡2:20~22) (히13:16)
창세전 예정하시고 완성하신 하나님나라와 백성, 그리고 지금도 완성을 향해 성도를 재창조하시고 통치, 섭리하시는 경륜을 모르고, 부정하고
자신의 십자가신학을 위해 동원되는 세상학문과 하나님의 말씀을 동일선상에 두는 것 입니다.
그러나 이미 물과 성령과 피로 거룩하게 된 성도는 자신을 피로 사신 예수님의 삶을 당연히 좇아 살게 하시고,
십자가에 죽기까지 복종하신 주님의 순종을 배워가는 삶이 자신을 부인하고 십자가를 지는 그리스도인의 삶이요 천국백성의 거룩일 것입니다.
그리스도와 연합된 성도에게서 나오는 당연한 지향점이요 열매이며,
율법 아래서 나시고 율법의 요구를 다 이루신 분으로부터 받은 구원의 은혜로 인해
율법아래 있지 않게 된 성도들의 거룩한 율법을 즐거워함일 것입니다.
이미 이 땅에서 천국백성의 삶을 사는 자녀들이 항상 기뻐할 수 있는 이유이고 감사입니다.
그러나 이근호목사 에게는 이러한 머리되신 주님으로 부터 연결된 성도의 삶
곧 성도의 세세한 삶까지 통치하시는 하나님, 그 하나님이 없기에
성도의 거룩한 삶의 열심도 거룩한 기쁨도 감사도 없게 됩니다.
날이 갈수록 피폐한 영혼과 자기신학을 추종하지 않는 사람을 판단하고 심판하는 독선과 강퍅함만 남는 것입니다.
저주의 십자가, 이근호목사에게 복제되고 박제된 교인의 삶만 있습니다.
이근호목사 자신도 "내가 복음 전하면 됐지 내게서 뭘 더 바라느냐"고 당당하게 주장합니다
즉 나한테 말씀에 있는 성도의 삶 같은 건 요구하지 말라고 하는 거지요.
그래서 강의나 설교에서 서슴없이 맘대로 살라고 합니다. 어차피 인간은 성깔대로 살게되어 있으니까 그냥 살라는 겁니다.
하나님의 성도와 성도 아닌자의 구별조차 없다는 말입니다.
십자가마을의 최종 결정권자는 하나님이 아닌 이근호목사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누군가가 영의 아버지를 진정 사랑하기에, 그 분을 기쁘시게 해드리기 위해,
그리고 그 것이 성도의 가장 행복하게 사는 길이고 생명으로 충만한 삶인 것을 알기 때문에
말씀에 기록하신 하나님의 성품과 교훈과 삶의 방식을 기쁨과 즐거움으로 받아들이고 순종해야 한다고 하면,
또는 그렇게 살도록 권면하고 책망하면 복음 모르는 자로, 행위주의자, 성화주의자 곧 이단으로 몰려 결국 쫒겨나게 됩니다.
최근에도 이근호 목사를 오랜 세월 알고 열심했던 한 장로가 위와 같은 이유로 이근호 목사를 책망하고 십자가마을을 떠났지요.
복음, 복음 떠들면서 온갖 비 복음적인 비리가 난무하는 실상을 책망한 것입니다.
당연히 나올 수밖에 없는 결과요 육의 열매들입니다.  진짜 심각한 문제는 책망에 대한 회개는 없고 오히려 변호하고 당연시하면서
그러한 모습이 복음적인 것처럼 왜곡하는 신학을 지금도 버젓이 가르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가짜가 진짜보다 더 진짜 같다는 말이 바로 이근호목사의 십자가신학입니다.
더 이상의 피해자를 양산하지 않도록 (마7:15~27)(마23:13~15)(유1:1~25)
건전과 불건전이 아니라, 말씀에 비추어 이단인가 아닌가를 알려야 할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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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 의견 1

  • wngidrl · 2011-04-29 15:13
    이근호 신학은 초지일관 죄인론신학입니다. 이근호의 자기주의복음이 어디까지 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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