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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리교실

몇몇 사람들이 이단에 빠지거나 죄악에 빠질 때_조나단 에드워드

몇몇 사람들이 이단에 빠지거나 죄악에 빠질 때 
(조나단 에드워드)
   
어떤 예외적이고 특별한 힘에 영향 받은 것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지독한 이단과 죄악에 빠져 버렸다고 해도, 그것만 가지고서 그 일이 하나님의 일이 아니라고 입증하는 것은 옳지 못하다.  
물론 언제나 가짜가 있는 법이지만, 항상 그런 것만은 아니다. 그 속에 진실 된 것도 여전히 있다.  
부흥 운동과 회개 운동이 몰아칠 때, 이런 현상은 나타나게 마련이다. 교회사에 나타난 모든 부흥 운동을 고찰해 보면, 이 점이 입증 될 수 있을 것이다.  
사도들의 시대에조차도 그러했다. 성령의 충만한 감동을 받은 것으로 보였던 사람들 가운데 몇몇이 이단에 빠지는가 하면, 몇몇은 죄악에 빠지기도 했다.  
그들의 체험과 그들의 행동들이 너무나 확실했기 때문에 그들을 지켜보던 많은 사람들이 그들을 진정한 형제요, 진정한 동료 일꾼으로 받아들였다. 사람들은 그들이 교회를 떠나고 나서야 비로소 무엇인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아차리기 시작하였다. 그들 가운데 몇 사람은 이적적인 성령의 은사를 충만히 받은 교회의 중직자요 선생들이었다! (히 6장)  
이러한 경우를 실증하는 한 예를 가롯 유다에게서 찾아볼 수 있다. 가롯 유다가 예수님을 배신함으로써 자기 자신마저도 배반하고 나서야 비로소 다른 제자들은 무엇인가 잘못되었다고 깨달을 수 있었다.  
예수님은 겉으로 보기에 모든 면에서 유다를 진정한 제자로 여기고 있었다. 예수님은 그를 사도라 부르셨으며, 성령의 이적적인 은사들을 선물로 주시며 그를 복음을 전파하는 전도자로 파송하셨다. 그리스도께서는 유다에 대해 모든 것을 알고 계셨다. 그러나 그분은 모든 것을 다 알고 있는 심판자처럼 행동하지 않으셨고, 심령을 꿰뚫는 감찰자처럼 행동하지 않으셨다.  
대신 그리스도께서는 교회의 평범한 사역자로서의 본을 몸소 보여 주셨다. 오늘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보여 주신 이러한 모범을 통해서, 우리가 사람들의 심령을 꿰뚫어 볼 수 있는 척해서도 아니 되며, 그렇게 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 것처럼 행동해서도 아니 된다는 교훈을 배워야 할 것이다. 다만 우리는 공개적으로 분명하게 우리의 맡은 바를 다하면 되는 것이다.  
사도들의 시대에는 하나님의 은혜를 충만히 받아 세간의 존경을 받고 있던 사람들 가운데, 위험한 배교자가 된 사람의 경우가 적지 않게 발견된다. 초대교회 일곱 집사 가운데 한 사람이었던 니골라가 그 대표적인 예일 것이다.  
예루살렘의 그리스도인들은 그가 성령 충만한 사람이라고 믿고 있었다. 바로 그런 이유 때문에 니골라는 많은 후보자 중에서 일곱 집사에 선택되었다.(행 6:3,5) 
하지만 나중에 니골라는 타락하여 추잡한 행실을 일삼는 음탕한 이단 종파의 우두머리가 되었다. 사람들은 그를 추종하는 무리들을 그의 이름을 따서 니골라당이라고 불렀다(계 2:6,15) 
종교개혁 시대에도 많은 사람들이 잠시 동안 개혁자들의 진영에 가담하였다가 등을 돌려, 어리석기 짝이 없는 잘못과 지나치게 추잡한 행실을 자행하기도 하였다.  
위대한 부흥운동이 일어날 때마다, 많은 사람들이 얼마간 부흥 운동에 관여하였다가 나중에 등을 돌려 종잡을 수 없는 기이한 잘못들을 저지르는 현상이 발생하곤 한다. 이는 부흥 운동이 지니는 특수한 위험 요소라 할 수 있다. 이런 자들은 자기들이 높은 영성을 소유했다는 것을 뽐내며, 자신들이 완벽의 경지에 도달했다고 자랑하는 한편, 다른 모든 이들이 지나치게 세상적이라고 비난한다.  
사도들의 시대에 영지주의자들이 그러했으며, 종교개혁 시대에 몇몇 종파들이 그런 오류를 저질렀다. 그래서 개혁자들은 로마 카톨릭을 상대로 싸워야 했을 뿐 아니라, 개혁 진영 가운데서도 남들보다 월등한 광명을 소유하고 있다고 자처하는 사람들을 상대로도 싸워야 했다.  
이러한 일부 집단들은 성경을 발판으로 삼고 있는 사람들을 향해'문자주의자'니 '글자주의자'니 하며 비난을 일삼았다. 말하자면 개혁자들이 성경의 문자와 성경의 글귀만을 알고 있을 뿐이지, 하나님의 영은 전혀 모른다는 주장이었다! 
복음이 로마 카톨릭에 빛을 던지기 시작하고, 로마 카톨릭을 압도하기 시작할 때마다 마치 밀밭에 잡초가 자라나듯 그러한 무리들이 출현하곤 하였다.  
그 결과, 많은 사람들이 종교개혁을 조롱하고 비웃게 되었으며 루터가 세속적인 복음을 전파한다는 구실로 그를 신랄하게 비난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이러한 사람들 가운데 상당수가 처음에는 개혁자들에게 높은 평가를 받던 자들이었다.  
영국에서도 마찬가지였다. 크롬웰과 찰스 1세 당시 기독교가 부흥을 구가하였을 때, 이와 똑같은 현상이 발생했다.  
아메리카의 뉴잉글랜드에서도 동일한 문제들이 발생했었다. 아무튼 사단은 들판에 가라지를 뿌리며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다. 그렇지만 성령의 사역은 영광스럽게 지속될 것이다. 
(부흥을 원하면 고정관념을 버리라 / 54)

 
로이드존스연구사이트 http://www.lloydjones.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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