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사에 나타난 이단들 1: 반 삼위일체(三位一體) 이단들
교회사에 나타난 이단들 1: 반 삼위일체(三位一體) 이단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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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성서는 온갖 종류의 우상숭배를 배격하면서 하나님은 한 분 이시라는 사상을 명백히 선언하고 있다. 그러나 신약성서도 구속사업을 성취하신 예수님과 구속사업을 개개인에게 적용하시는 성령님에 대해서도 신성이 있음을 또한 의심의 여지없이 밝히고 있다. 피상적으로 보기에 모순되는 듯한 신구약 성서의 가르침을 조화시킨 교리가 삼위일체론이었다.
교회는 삼위일체를 고백함으로써 유일신론만을 고집하는 유대교와도 구별하게 되었고, 다신론을 신봉하는 이방종교와도 차이를 보이게 되었다. 마태복음 28장19절에 나타난 침례의 형식에도 성부 성자 성령의 이름이 동등한 위치에서 사용되었고, 고린도후서 13장 14절에 나타난 사도의 축도에도 성부 성자 성령의 이름이 나란히 나타나고 있다.
325년 이후 네 번에 걸친 종교회의에 의해서 삼위일체 교리는 완숙한 신학적 표현을 얻게 되었지만, 325년 니케아 종교회의 이전에도 교회는 교리문답이나 신앙고백서 등에 직접적으로 혹은 간접적으로 삼위일체 신앙을 고백해 왔다. 삼위일체 교리는 초대교회로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기독교회의 신성한 상징이요 기본적인 신앙이 되어온 것이다. 그러므로 삼위일체를 부인하는 자들은 논쟁할 필요없이 이단자로 간주되어도 무방한 것이다.
교회 역사 속에는 끊임없이 삼위일체를 부인하는 이단들이 존재해왔다. 우선 3세기부터 5세기 동안에 교회의 신앙을 어지럽힌 삼위일체 반대자들을 살펴보고자 한다.
군주신론자(Monarchianism)
군주신론자들은 한나라에는 하나의 군주만이 존재하듯이 하나님은 숫자적으로 한 분이심을 강조한 사람들이었다. 이들은 2세기 말부터 등장하기 시작하여 3세기에 많은 추종자들을 얻은 이단자들이었다. 일신론사상을 지나치게 강조하고 보존하려다가 하나님이 3위로 존재하신다는 사실을 무시하게 되었고, 필요에 따라서 그리스도의 본질을 변형시켰다. 그리스도의 신성이나 인성가운데 어느 한 면을 훼손함으로써 하나님의 단일성을 보존코자 한 것이었다.
군주신론은 두 가지 형태를 띠고 나타났는데 그리스도의 신성을 부인한 형태를 동태적 군주신론(Dynamic Monarchianism)이라 하고, 그리스도의 인성을 부인하는 형태를 양태적 군주신론(Modalistic Monarchianism)이라고 한다.
동태적 군주신론
동태적 군주신론이란 하나님은 한 분이시며, 신약에 나타난 그리스도는 하나님이 아니라 단지 착한 인간인데 하나님께서 신적인 능력을 부여 하셨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는 본질상 신성을 지난 존재가 아니라 단지 초인적인 힘을 가진 선한 사람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170년경에 소아시아 지방에서 일어난 “아로기파”(Alogi)는 그리스도가 요한복음에 나타난 로고스임을 부정하는 집단으로서 동태적군주신론의 선두주자가 되었다. “아”라는 접두어는 “아니다 혹은 없다”는 의미를 지닌 말이고 “로기”는 “로고스”를 뜻하는 말이니 두 말이 결합된 “아로기”는 “그리스도는 로고스가 아니다”라는 뜻을 지니게 된다. 요한복음에 나타난 로고스는 분명히 신성을 지닌 존재이기 때문에, 인간 예수를 그 로고스로 볼 수 없다는 것이다. “아로기파”는 아울러 요한복음의 저자가 사도요한이라는 사실도 부정하였다.
190년경에 로마에서 또 다른 동태적 군주신론자가 등장했는데 그의 이름은 “데오도투스”(Theodotus)였고, 직업은 가죽피장이었다. 그의 고향은 비잔티움이었는데 로마에 와서 활약했다. 역사가들은 그가 소아시아의 “아로기파”의 영향을 받았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데오도투스에 따르면 예수님은 보통 인간이었는데 침례를 받을 때에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양자로 선택하시고 신적인 능력을 부으셔서 그리스도를 삼으셨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데오도투스의 이론을 “양자기독론”(Adoptianism) 이라고 한다. 양자기독론은 본질적으로 그리스도의 신성을 부인하기 때문에 동태적 군주신론의 한 형태라고 할 수 있다.
데오도투스의 아들은 “환전상”을 직업으로 한 사람이었는데 그 아버지보다도 더 희한한 사상을 주장했다. 하나님이 양자 삼으셔서 그리스도가 된 예수는 하나님과 인간사이를 중보하는 일을 하지만, 멜기세덱은 하나님과 천사들 사이를 중보하는 일을 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멜기세덱이 예수 보다도 훨씬 높은 존재라는 것이다. 그래서 이러한 사상을 주장하고 따르는 사람들을 “멜기세덱파”라고 하였다.
로마교회의 감독들은 양자기독론자들이나 멜기세덱파 모두를 주저함 없이 이단으로 선언하고 교회에서 파문했다. 210년경에 로마에는 “아르테몬”(Artemon)이라는 사람이 또 나타나서 그리스도를 하나님이라고 말하는 교리는 인간이 만들어낸 사상이며 기독교를 이방 다신교로 전락시키는 가르침이라고 주장했다. 로마교회는 아르테몬도 이단이라고 정죄했다.
3세기 후반에 동태적 군주신론을 가지고 교회를 오염시킨 인물은 260년에 안디옥의 감독이 된 “사모사타의 폴”(Paul of Samosata)이었다. 폴에 의하면 예수는 보통 인간으로서 삶을 시작했지만 하나님의 능력이 예수안에 머물러 있게 됨으로 말미암아 예수는 점차 그리스도의 위치로 승격되어 갔는데 부활 후에는 하나님과 거의 비슷한 경지까지 올라감으로 인해서 예배의 대상이 되었다는 것이다.
폴은 감독의 직분을 이용해서 자기의 이단적 사상을 찬송가나 교회의식서 등에 도입하고자 했다. 268년경에 안디옥에서 열린 감독들의 회의는 폴의 사상을 이단으로 선언하고, 폴의 직분을 폐위시켰다. 폴이 폐위된 후에 동태적 군주신론은 한풀 꺾이게 되었지만 일부 잔존자들은 4세기 경에도 나타났다. 교회는 계속해서 이런 사상을 이단으로 선언했다.
양태적 군주신론
군주신론의 두 번째 형태는 양대적 군주신론 혹은 양태론이라고 불리는 사상이다. 하나님은 한 분이신데 하나님의 자유의지에 의해서 인간이 되셨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자는 다름아닌 육신을 입고 나타나신 성부라는 것이다. 이 사상을 처음으로 유포시킨 사람은 오아시아 출신의 “프랙시어스”(Praxeas)라는 사람이었다. 요한복음 10장 30절(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니라) 말씀과 요한복음 14장 9절(나를 본자는 아버지를 본 것이라)의 말씀을 들어서 성부가 성자로 오셔서 수난을 맏았다고 주장했다. “프랙시어스”를 반박한 터툴리안이라는 교부는 프랙시어스가 성부를 십자가에 못박았다고 비난했다. 터툴리안은 프랙시어스의 사상을 “성부 수난설”(Patripassionism)이라고 표현했다. 성부와 성자 사이의 구별을 무시해 버렸고, 성자의 신성만을 강조함으로써 인성적인 특징을 철저히 무시해 버린 이론이었다. 서머나 지방에서는 “노에투스”(Noetus) 라는 사람이 같은 사상을 발표했다.
양태론은 심지어 로마의 감독 조차도 오염시킨 이단사설이었다. 3세기 초의 오마 감독 “칼릭스투스 1세”(Calixtus Ⅰ)는 노에투스의 사상을 이어받았다. 성부께서 육신을 취하셨고, 성부와 성자는 한 하나님이 모습을 바꾸어 나타나신 것에 불과한 것이므로 성부와 성자가 두 분이 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성자의 육신안에는 성부가 계신 것이므로 성자가 수난 받은 것은 성부가 수난 받은 것이라는 사상이었다.
양태론의 주장자 가운데 가장 널리 알려진 인물은 “사벨리우스”(Sabellius)였다. 그는 215년경에 로마에서 가르쳤는데, 다른 양태론자들이 성부와 성자의 관계만을 언급했다면 사벨리우스는 성령까지도 포함하여 설명했다는 것이 두드러진 특징이었다. 하나님은 한 분이시지만 역사가 진행함에 따라서, 혹은 계시가 발전함에 따라서 포장을 달리하여 나타났다는 것이다. 구약시대에는 율법을 주시는 성부로 나타나셨고, 신약시대에는 성령으로 나타나셨다는 것이다.
사벨리우스는 양태론을 예화를 들어 설명했다. 성부를 태양에 비유한다면 성자는 태양빛으로 성령은 태양열로 각각 비유할 수 있다는 것이다. 또 성부를 인간의 몸으로 비유한다면, 성자는 혼으로, 성령은 인간의 영으로 각각 비유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두 가지 예화는 사벨리우스가 사용한 것인데 양태론의 전형적인 예화이므로 정통교회에서는 사용하기를 거부한 것이었다.
20세기에도 삼위일체 교리를 쉽게 설명하기 위해서 성경교사들이 사용하는 예화가운데는 양태론적인 것이 많이 있으므로 상당한 주의를 요한다. 예를 들어서 성부, 성자, 성령의 관계를 얼음과 물과 수증기의 관계로 설명하는 것은 전형적인 양태론이다. 한 사람이 집에서는 아버지요, 회사에서는 과장님이요, 교회에서는 집사님으로 장소에 따라 지위가 달라진다고 설명하는 것도 역시 양태론이다. 그러므로 삼위일체를 이해시키기 위해서 어설프게 현상적인 예를 드는 것은 삼가야 할 일이다. 성경에는 인간이 이해하고자 해도 인간의 차원에서 이해되지 않는 요소도 많은 것이다. 이성으로 이해되지 않는 것이기 때문에 마음의 믿음을 요구하는 것이다. 이성으로 이해되지 않는 것은 결코 믿을 수 없다는 태도는 결국 위대한 삼위일체 교리를 거부하는 이단을 낳게 된다.
사벨리우스는 성부, 성자, 성령의 구별은 영원한 구별이며 본질상의 구별이라는 점을 무시하고, 성부, 성자, 성령은 단지 한 하나님이 일시적으로 모습을 바꾸신 것에 불과 하다고 한 것이다. 이로 인해 사벨리우스는 260년경에 로마의 감독이나 알렉산드리아의 감독들에 의해서 이단자로 정제되었다. 성부, 성자, 성령의 관계는 한동안 그 뜨거운 논쟁이 식었지만 4세기 초에 알렉산드리아의 장로였던 아리우스에 의해서 다시 뜨거운 감자가 되었다.
아리우스주의(Arianism)
아리우스주의는 320년경에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에서 인기있는 장로이자 설교자였던 “아리우스”(Arius)의 이름을 따서 명명된 사상이었다. 아리우스의 사상은 세가지로 핵심내용을 요약할 수 있다. 첫째, 하나님은 시작이 없으신 분이시지만 하나님의 아들은 시작이 있는 존재라는 것이다. 둘째, 하나님은 어느 시점에 아들을 창조하셨기 때문에 아들은 존재치 않던 시기도 있었다는 것이다. 셋째, 따라서 아들은 하나님의 피조물일뿐 완전한 하나님은 아니라는 것이다. 아리우스의 가르침에 따르면 성자 예수님은 완전한 하나님도 못되고 그렇다고 해서 완전한 인간도 못 되는 중간적인 괴물에 불과했다.
아리우스가 이와 같은 이단적 사상을 전파하자 알렉산드리아의 감독은 지방종교회의를 개최하여 아리우스를 정죄하고 장로직분을 파면해 버렸다. 그렇게 되자 아리우스는 가까운 친구이자 황제의 측근인 “니코미디아의 유세비우스”(Eusebius of Nicomedia)에게 지원을 요청함으로써 이 논쟁은 확산되어 교회가 분열될 위기가 초래되었다. 교회의 통일을 위해서 정치적인 안정을 꾀하고자 했던 콘스탄틴황제는 이 논쟁을 해결하기 위해서 범 교회적인 종교회의를 소집했다. 황제가 모든 경비를 다 지불하였고, 동방과 서방에서 318명에 달하는 감독들이 회의에 참석했다. 이 회의가 유명한 “니케아 종교회의”로서 325년에 개최되어 그 후에 이어질 일곱 개의 범 교회적 종교회의의 출발점이 되었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이 회의에 참석한 감독들은 왜 그러한 종교회의가 열리게 되었는지, 그 주제가 무엇인지를 뚜렷이 알지 못한 채 회의에 참석한 것이었다.
아리우스가 먼저 기선을 잡고 자기들의 교리적인 입장을 진술했다. 그리고 나서 가이사랴의 감독이었던 유세비우스(Eusebius of Caesarea)가 자기 교회에서 사용하는 신앙고백서를 낭독했다. 가이사랴의 유세비우스는 앞에서 언급한 니코미디아의 유세비우스와는 다른 사람이므로 혼동하지 않도록 주의를 요한다. 가이사랴의 유세비우스는 감독이면서도 아울러 유명한 역사가로서 「교회사」라는 책을 저술한 인물이기도 하다. 가이사랴의 유세비우스는 종교회의의 핵심적 주제가 무엇인지도 인식하지 못하고, 자기 교회의 신앙고백서를 발표했던 것이었다. 회의에 참석한 감독들은 유세비우스의 신앙고백서를 듣고 나서 두가지 내용을 수정하는 것이 좋겠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하나는, 성자가 성부에 의해서 지음받은 것(made)이 아니라 독생하신 것(begotten)으로 수정해야 된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성자는 성부와 “같은 실체”(헬라어로 호모우시온)를 가진 존재라고 수정해야 된다는 견해였다. 수정안이 결국 채택되어 성자는 성부와 동일한 실체를 가진 분일 뿐아니라, 함께 영원하신 존재임이 선언되었다. “호모우시온”이라는 단어는 니케아 종교회의의 대표적인 용어가 되었다.
성부와 성자가 동일한 실체라는 진리가 선포되자 아리우스의 사상은 저절로 이단으로 선언된 것이었다. 감독들은 그 주제가 무엇인지도 깨닫지 못하고 회의에 참석했으나 성령께서 회의를 주도하시고 진리를 밝혀 놓으신 전형적인 예라고 할 수 있겠다.
결론적으로 니케아 종교회의는 성자 예수님이 완전한 신성을 가지신 하나님으로서 성부와 본질적인면에서 조금도 차이가 없는 분이심을 선언한 것이다. 아리우스는 로마제국에서 추방되었고, 콘스탄틴 황제가 추구하던 정치적, 교회적 통일은 일시적으로 달성될 수 있었다.
니케아신조를 옹호하는데 챔피온이된 인물은 “아다나시우스”(Athanasius)라는 알렉산드리아 감독이었다. 니케아종교회의가 개최된 지 3년 후인 328년에 감독이 되었는데, 「성육신에 관하여」 라는 책을 저술하였다. 이 책에서 아다나시우스는 예수님은 완전한 하나님이시며 완전한 인간이라는 사상을 확고히 강조하였다. 아리우스는 콘스탄틴 황제의 측근이자 자기의 친구인 니코미디아의 유세비우스에게 청탁하여 원래의 자리를 되찾고자 노력했고, 이를 거부하는 아다나시우스와 계속해서 갈등을 일으켰다. 아다나시우스는 니케아 신조를 옹호하다가 373년 사망할 때까지 적어도 다섯 번이나 감독직에서 추방되고 복구되는 일을 되풀이 했다. 진리는 이런 사람들의 고난을 통해서 보존 되어 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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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성서는 온갖 종류의 우상숭배를 배격하면서 하나님은 한 분 이시라는 사상을 명백히 선언하고 있다. 그러나 신약성서도 구속사업을 성취하신 예수님과 구속사업을 개개인에게 적용하시는 성령님에 대해서도 신성이 있음을 또한 의심의 여지없이 밝히고 있다. 피상적으로 보기에 모순되는 듯한 신구약 성서의 가르침을 조화시킨 교리가 삼위일체론이었다.
교회는 삼위일체를 고백함으로써 유일신론만을 고집하는 유대교와도 구별하게 되었고, 다신론을 신봉하는 이방종교와도 차이를 보이게 되었다. 마태복음 28장19절에 나타난 침례의 형식에도 성부 성자 성령의 이름이 동등한 위치에서 사용되었고, 고린도후서 13장 14절에 나타난 사도의 축도에도 성부 성자 성령의 이름이 나란히 나타나고 있다.
325년 이후 네 번에 걸친 종교회의에 의해서 삼위일체 교리는 완숙한 신학적 표현을 얻게 되었지만, 325년 니케아 종교회의 이전에도 교회는 교리문답이나 신앙고백서 등에 직접적으로 혹은 간접적으로 삼위일체 신앙을 고백해 왔다. 삼위일체 교리는 초대교회로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기독교회의 신성한 상징이요 기본적인 신앙이 되어온 것이다. 그러므로 삼위일체를 부인하는 자들은 논쟁할 필요없이 이단자로 간주되어도 무방한 것이다.
교회 역사 속에는 끊임없이 삼위일체를 부인하는 이단들이 존재해왔다. 우선 3세기부터 5세기 동안에 교회의 신앙을 어지럽힌 삼위일체 반대자들을 살펴보고자 한다.
군주신론자(Monarchianism)
군주신론자들은 한나라에는 하나의 군주만이 존재하듯이 하나님은 숫자적으로 한 분이심을 강조한 사람들이었다. 이들은 2세기 말부터 등장하기 시작하여 3세기에 많은 추종자들을 얻은 이단자들이었다. 일신론사상을 지나치게 강조하고 보존하려다가 하나님이 3위로 존재하신다는 사실을 무시하게 되었고, 필요에 따라서 그리스도의 본질을 변형시켰다. 그리스도의 신성이나 인성가운데 어느 한 면을 훼손함으로써 하나님의 단일성을 보존코자 한 것이었다.
군주신론은 두 가지 형태를 띠고 나타났는데 그리스도의 신성을 부인한 형태를 동태적 군주신론(Dynamic Monarchianism)이라 하고, 그리스도의 인성을 부인하는 형태를 양태적 군주신론(Modalistic Monarchianism)이라고 한다.
동태적 군주신론
동태적 군주신론이란 하나님은 한 분이시며, 신약에 나타난 그리스도는 하나님이 아니라 단지 착한 인간인데 하나님께서 신적인 능력을 부여 하셨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는 본질상 신성을 지난 존재가 아니라 단지 초인적인 힘을 가진 선한 사람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170년경에 소아시아 지방에서 일어난 “아로기파”(Alogi)는 그리스도가 요한복음에 나타난 로고스임을 부정하는 집단으로서 동태적군주신론의 선두주자가 되었다. “아”라는 접두어는 “아니다 혹은 없다”는 의미를 지닌 말이고 “로기”는 “로고스”를 뜻하는 말이니 두 말이 결합된 “아로기”는 “그리스도는 로고스가 아니다”라는 뜻을 지니게 된다. 요한복음에 나타난 로고스는 분명히 신성을 지닌 존재이기 때문에, 인간 예수를 그 로고스로 볼 수 없다는 것이다. “아로기파”는 아울러 요한복음의 저자가 사도요한이라는 사실도 부정하였다.
190년경에 로마에서 또 다른 동태적 군주신론자가 등장했는데 그의 이름은 “데오도투스”(Theodotus)였고, 직업은 가죽피장이었다. 그의 고향은 비잔티움이었는데 로마에 와서 활약했다. 역사가들은 그가 소아시아의 “아로기파”의 영향을 받았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데오도투스에 따르면 예수님은 보통 인간이었는데 침례를 받을 때에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양자로 선택하시고 신적인 능력을 부으셔서 그리스도를 삼으셨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데오도투스의 이론을 “양자기독론”(Adoptianism) 이라고 한다. 양자기독론은 본질적으로 그리스도의 신성을 부인하기 때문에 동태적 군주신론의 한 형태라고 할 수 있다.
데오도투스의 아들은 “환전상”을 직업으로 한 사람이었는데 그 아버지보다도 더 희한한 사상을 주장했다. 하나님이 양자 삼으셔서 그리스도가 된 예수는 하나님과 인간사이를 중보하는 일을 하지만, 멜기세덱은 하나님과 천사들 사이를 중보하는 일을 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멜기세덱이 예수 보다도 훨씬 높은 존재라는 것이다. 그래서 이러한 사상을 주장하고 따르는 사람들을 “멜기세덱파”라고 하였다.
로마교회의 감독들은 양자기독론자들이나 멜기세덱파 모두를 주저함 없이 이단으로 선언하고 교회에서 파문했다. 210년경에 로마에는 “아르테몬”(Artemon)이라는 사람이 또 나타나서 그리스도를 하나님이라고 말하는 교리는 인간이 만들어낸 사상이며 기독교를 이방 다신교로 전락시키는 가르침이라고 주장했다. 로마교회는 아르테몬도 이단이라고 정죄했다.
3세기 후반에 동태적 군주신론을 가지고 교회를 오염시킨 인물은 260년에 안디옥의 감독이 된 “사모사타의 폴”(Paul of Samosata)이었다. 폴에 의하면 예수는 보통 인간으로서 삶을 시작했지만 하나님의 능력이 예수안에 머물러 있게 됨으로 말미암아 예수는 점차 그리스도의 위치로 승격되어 갔는데 부활 후에는 하나님과 거의 비슷한 경지까지 올라감으로 인해서 예배의 대상이 되었다는 것이다.
폴은 감독의 직분을 이용해서 자기의 이단적 사상을 찬송가나 교회의식서 등에 도입하고자 했다. 268년경에 안디옥에서 열린 감독들의 회의는 폴의 사상을 이단으로 선언하고, 폴의 직분을 폐위시켰다. 폴이 폐위된 후에 동태적 군주신론은 한풀 꺾이게 되었지만 일부 잔존자들은 4세기 경에도 나타났다. 교회는 계속해서 이런 사상을 이단으로 선언했다.
양태적 군주신론
군주신론의 두 번째 형태는 양대적 군주신론 혹은 양태론이라고 불리는 사상이다. 하나님은 한 분이신데 하나님의 자유의지에 의해서 인간이 되셨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자는 다름아닌 육신을 입고 나타나신 성부라는 것이다. 이 사상을 처음으로 유포시킨 사람은 오아시아 출신의 “프랙시어스”(Praxeas)라는 사람이었다. 요한복음 10장 30절(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니라) 말씀과 요한복음 14장 9절(나를 본자는 아버지를 본 것이라)의 말씀을 들어서 성부가 성자로 오셔서 수난을 맏았다고 주장했다. “프랙시어스”를 반박한 터툴리안이라는 교부는 프랙시어스가 성부를 십자가에 못박았다고 비난했다. 터툴리안은 프랙시어스의 사상을 “성부 수난설”(Patripassionism)이라고 표현했다. 성부와 성자 사이의 구별을 무시해 버렸고, 성자의 신성만을 강조함으로써 인성적인 특징을 철저히 무시해 버린 이론이었다. 서머나 지방에서는 “노에투스”(Noetus) 라는 사람이 같은 사상을 발표했다.
양태론은 심지어 로마의 감독 조차도 오염시킨 이단사설이었다. 3세기 초의 오마 감독 “칼릭스투스 1세”(Calixtus Ⅰ)는 노에투스의 사상을 이어받았다. 성부께서 육신을 취하셨고, 성부와 성자는 한 하나님이 모습을 바꾸어 나타나신 것에 불과한 것이므로 성부와 성자가 두 분이 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성자의 육신안에는 성부가 계신 것이므로 성자가 수난 받은 것은 성부가 수난 받은 것이라는 사상이었다.
양태론의 주장자 가운데 가장 널리 알려진 인물은 “사벨리우스”(Sabellius)였다. 그는 215년경에 로마에서 가르쳤는데, 다른 양태론자들이 성부와 성자의 관계만을 언급했다면 사벨리우스는 성령까지도 포함하여 설명했다는 것이 두드러진 특징이었다. 하나님은 한 분이시지만 역사가 진행함에 따라서, 혹은 계시가 발전함에 따라서 포장을 달리하여 나타났다는 것이다. 구약시대에는 율법을 주시는 성부로 나타나셨고, 신약시대에는 성령으로 나타나셨다는 것이다.
사벨리우스는 양태론을 예화를 들어 설명했다. 성부를 태양에 비유한다면 성자는 태양빛으로 성령은 태양열로 각각 비유할 수 있다는 것이다. 또 성부를 인간의 몸으로 비유한다면, 성자는 혼으로, 성령은 인간의 영으로 각각 비유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두 가지 예화는 사벨리우스가 사용한 것인데 양태론의 전형적인 예화이므로 정통교회에서는 사용하기를 거부한 것이었다.
20세기에도 삼위일체 교리를 쉽게 설명하기 위해서 성경교사들이 사용하는 예화가운데는 양태론적인 것이 많이 있으므로 상당한 주의를 요한다. 예를 들어서 성부, 성자, 성령의 관계를 얼음과 물과 수증기의 관계로 설명하는 것은 전형적인 양태론이다. 한 사람이 집에서는 아버지요, 회사에서는 과장님이요, 교회에서는 집사님으로 장소에 따라 지위가 달라진다고 설명하는 것도 역시 양태론이다. 그러므로 삼위일체를 이해시키기 위해서 어설프게 현상적인 예를 드는 것은 삼가야 할 일이다. 성경에는 인간이 이해하고자 해도 인간의 차원에서 이해되지 않는 요소도 많은 것이다. 이성으로 이해되지 않는 것이기 때문에 마음의 믿음을 요구하는 것이다. 이성으로 이해되지 않는 것은 결코 믿을 수 없다는 태도는 결국 위대한 삼위일체 교리를 거부하는 이단을 낳게 된다.
사벨리우스는 성부, 성자, 성령의 구별은 영원한 구별이며 본질상의 구별이라는 점을 무시하고, 성부, 성자, 성령은 단지 한 하나님이 일시적으로 모습을 바꾸신 것에 불과 하다고 한 것이다. 이로 인해 사벨리우스는 260년경에 로마의 감독이나 알렉산드리아의 감독들에 의해서 이단자로 정제되었다. 성부, 성자, 성령의 관계는 한동안 그 뜨거운 논쟁이 식었지만 4세기 초에 알렉산드리아의 장로였던 아리우스에 의해서 다시 뜨거운 감자가 되었다.
아리우스주의(Arianism)
아리우스주의는 320년경에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에서 인기있는 장로이자 설교자였던 “아리우스”(Arius)의 이름을 따서 명명된 사상이었다. 아리우스의 사상은 세가지로 핵심내용을 요약할 수 있다. 첫째, 하나님은 시작이 없으신 분이시지만 하나님의 아들은 시작이 있는 존재라는 것이다. 둘째, 하나님은 어느 시점에 아들을 창조하셨기 때문에 아들은 존재치 않던 시기도 있었다는 것이다. 셋째, 따라서 아들은 하나님의 피조물일뿐 완전한 하나님은 아니라는 것이다. 아리우스의 가르침에 따르면 성자 예수님은 완전한 하나님도 못되고 그렇다고 해서 완전한 인간도 못 되는 중간적인 괴물에 불과했다.
아리우스가 이와 같은 이단적 사상을 전파하자 알렉산드리아의 감독은 지방종교회의를 개최하여 아리우스를 정죄하고 장로직분을 파면해 버렸다. 그렇게 되자 아리우스는 가까운 친구이자 황제의 측근인 “니코미디아의 유세비우스”(Eusebius of Nicomedia)에게 지원을 요청함으로써 이 논쟁은 확산되어 교회가 분열될 위기가 초래되었다. 교회의 통일을 위해서 정치적인 안정을 꾀하고자 했던 콘스탄틴황제는 이 논쟁을 해결하기 위해서 범 교회적인 종교회의를 소집했다. 황제가 모든 경비를 다 지불하였고, 동방과 서방에서 318명에 달하는 감독들이 회의에 참석했다. 이 회의가 유명한 “니케아 종교회의”로서 325년에 개최되어 그 후에 이어질 일곱 개의 범 교회적 종교회의의 출발점이 되었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이 회의에 참석한 감독들은 왜 그러한 종교회의가 열리게 되었는지, 그 주제가 무엇인지를 뚜렷이 알지 못한 채 회의에 참석한 것이었다.
아리우스가 먼저 기선을 잡고 자기들의 교리적인 입장을 진술했다. 그리고 나서 가이사랴의 감독이었던 유세비우스(Eusebius of Caesarea)가 자기 교회에서 사용하는 신앙고백서를 낭독했다. 가이사랴의 유세비우스는 앞에서 언급한 니코미디아의 유세비우스와는 다른 사람이므로 혼동하지 않도록 주의를 요한다. 가이사랴의 유세비우스는 감독이면서도 아울러 유명한 역사가로서 「교회사」라는 책을 저술한 인물이기도 하다. 가이사랴의 유세비우스는 종교회의의 핵심적 주제가 무엇인지도 인식하지 못하고, 자기 교회의 신앙고백서를 발표했던 것이었다. 회의에 참석한 감독들은 유세비우스의 신앙고백서를 듣고 나서 두가지 내용을 수정하는 것이 좋겠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하나는, 성자가 성부에 의해서 지음받은 것(made)이 아니라 독생하신 것(begotten)으로 수정해야 된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성자는 성부와 “같은 실체”(헬라어로 호모우시온)를 가진 존재라고 수정해야 된다는 견해였다. 수정안이 결국 채택되어 성자는 성부와 동일한 실체를 가진 분일 뿐아니라, 함께 영원하신 존재임이 선언되었다. “호모우시온”이라는 단어는 니케아 종교회의의 대표적인 용어가 되었다.
성부와 성자가 동일한 실체라는 진리가 선포되자 아리우스의 사상은 저절로 이단으로 선언된 것이었다. 감독들은 그 주제가 무엇인지도 깨닫지 못하고 회의에 참석했으나 성령께서 회의를 주도하시고 진리를 밝혀 놓으신 전형적인 예라고 할 수 있겠다.
결론적으로 니케아 종교회의는 성자 예수님이 완전한 신성을 가지신 하나님으로서 성부와 본질적인면에서 조금도 차이가 없는 분이심을 선언한 것이다. 아리우스는 로마제국에서 추방되었고, 콘스탄틴 황제가 추구하던 정치적, 교회적 통일은 일시적으로 달성될 수 있었다.
니케아신조를 옹호하는데 챔피온이된 인물은 “아다나시우스”(Athanasius)라는 알렉산드리아 감독이었다. 니케아종교회의가 개최된 지 3년 후인 328년에 감독이 되었는데, 「성육신에 관하여」 라는 책을 저술하였다. 이 책에서 아다나시우스는 예수님은 완전한 하나님이시며 완전한 인간이라는 사상을 확고히 강조하였다. 아리우스는 콘스탄틴 황제의 측근이자 자기의 친구인 니코미디아의 유세비우스에게 청탁하여 원래의 자리를 되찾고자 노력했고, 이를 거부하는 아다나시우스와 계속해서 갈등을 일으켰다. 아다나시우스는 니케아 신조를 옹호하다가 373년 사망할 때까지 적어도 다섯 번이나 감독직에서 추방되고 복구되는 일을 되풀이 했다. 진리는 이런 사람들의 고난을 통해서 보존 되어 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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