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태홍 목사의 성경적 상담 연구소 RBD COUNSELING INSTITUTE
멘탈리티의 핵심 키워드 : 신성한 내면아이, 구상화, 의미와 통일성, 도약~
목록
교리교실

또 다른 보혜사’와 ‘진리의 성령’에 대한 황당한 해석

또 다른 보혜사’와 ‘진리의 성령’에 대한 황당한 해석
자료출처: 제17호 • 2009년 9월 7일 월요일 크리스쳔인사이드 
 
 오늘날 교계를 어지럽히는 'S'이단은 자기들을 이단으로 규정하는 기독교계를 향하여 정통이 무엇이냐고 반문한다. 그러면서 오늘날 기독교계가 사람의 생각으로 수많은 이단을 배출시켰다며 성경에 정통 또는 정통 교회라는 단어는 없다고 주장한다.
 그들은 기독교계를 폄하하면서 유독 칼빈을 물고 늘어진다. 그러면서 칼빈을 인간 사상을 가진 사람이라고 말하기도 하며, 오늘날 기독교계가 칼빈의 흉상을 세우는 등 우상화에 열을 올리고 있다고 하면서 십계명의 첫 번째 계명과 두 번째 계명을 어겼다고 이야기 한다. 그러나 그들이 명심해야 할 것은 기독교에는 칼빈주의만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들은 기독교인들 전부를 칼빈주의자들로 알고 있는데 기독교 내에는 웨슬리안도 있고, 루터주의자도 있다. 그리고 기독교 전체가 칼빈을 우상으로 섬기는 것이 아니다. 극히 일부 사람들이 칼빈의 흉상을 세운 것을 보고 마치 기독교 전체가 칼빈의 흉상 앞에 절이라도 하는 우상 숭배자들로 매도해서는 안 될 것이다. 물론 칼빈주의를 표방하는 개혁주의적 진영에서 “칼빈으로 돌아가자”는 구호를 외치기보다는 차라리 “바울로 돌아가자” “성경으로 돌아가자”는 구호를 외친다면 오히려 분열된 기독교계의 통합에 조금이라도 도움이라도 되지 않을까 하는 정도는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로이드 존스 목사가 “우리는 칼빈을 교황의 자리에 올리지 말아야 합니다.”라는 간곡한 권유를 겸허한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것도 필요하다고 본다.
 
 여하튼 'S'이단이 과연 위대한 개혁가 칼빈의 기독교 강요를 제대로 읽어보기나 했는지 반문하고 싶다. 그들이 만약 칼빈의 기독교 강요를 심사숙고하여 읽어보았다면 감히 칼빈을 향하여 인간 사상을 가진 사람이라고 말할 수 없을 것이며, 특히 칼빈의 기독교 강요에서 창조주 하나님과 그리스도에 관련된 부분을 제대로 읽어 보았다면 그들의 교주 ‘L'씨가 또 다른 보혜사의 직임을 가지고 진리의 성령인 대언의 영을 덧입은 대언자라는 막말을 할 수 없을 것이다.
 
 'S'이단은 요한복음 14:16-17에 기록된 “또 다른 보혜사”를 진리의 성령을 입은 교주 ‘L'씨의 직임이라고 주장을 한다. 그들은 말하기를 “보혜사는 은혜로 보호하고 가르치는 스승이라는 뜻과 대언자라는 뜻을 가지고 있는데 보혜사라는 말은 누구의 이름이 아니고 사명이고 직책이라고 하면서 이와 같은 사명을 가진 영은 보혜사 성령 또는 진리의 성령이 되며 그와 같은 사명을 가진 영이 함께 하는 사람을 보혜사라고 한다.”면서 교주 ‘L’씨를 ‘또 다른 보혜사’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사도행전 2:1-4에서 120여 문도에게 임한 성령은 하늘의 하나님의 보좌 앞에 있는 천천만만의 영(계 4:5-6; 5:6, 11) 가운데 하나인 천사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들은 전적으로 성부 하나님, 성자 하나님, 성령 하나님의 삼위일체 교리에 대해서 무지한 자들이다.
 
 주님께서는 요한복음 14:16-17에서 또 다른 보혜사를 우리에게 주사 영원토록 우리와 함께 있게 하시는 아버지를 “그”라고 지칭을 하신 후, 또 다른 보혜사인 진리의 영을 “저”라고 지칭하고 있다. 이처럼 주님께서 또 다른 보혜사인 진리의 영을 “저” 라는 인칭 대명사로 표현하고 있는 것은, 성부 하나님께서 비록 제자들의 눈으로 볼 수 없지만 아버지라는 인격으로 그들 가운데 계시되어 있고, 또한 예수 그리스도께서 잠시 후면 승천하시어 제자들의 눈으로는 볼 수 없게 되겠지만 아들이라는 인격이라는 계시되어 있는 반면 장차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모든 사람들에게 내주하실 성령 하나님은 그 당시 제자들에게 생소한 개념이었기 때문에 주님께서는 성령 하나님께서 비록 제자들의 눈으로는 볼 수 없지만 성령 하나님께서도 성부 하나님 성자 하나님과 마찬가지로 동일한 인격의 하나님이심을 제자들에게 주지시켜 주기 위함이었다.
 그러므로 성부 하나님이 인격이시고, 성자 하나님이 인격이시듯이 성령 하나님도 인격이시다. 인격이신 성령 하나님은 이미 2천 년 전 그 옛날 성부 하나님께서 시내 산에서 불에 옹위되어 강림하셨듯이(출 19:18) 오순절날 마가 다락방에 불의 혀같이 갈라지는 이적과 더불어 강림(행 2:1-4)하시어 지금까지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가 다시 오시는 날까지 신자들 가운데 내주하시며 하나님의 통치와 예수 그리스도의 통치를 구현해 가신다.
 
 이미 2천 년 전 강림하신 성령 하나님의 인격은 성부 하나님, 성자 하나님과 진정으로, 완전히, 그리고 같은 방식으로 하나님이시다. 그러므로 성령은 예배의 대상이다. 따라서 이미 2천 년 전부터 세례 의식과 축도 문에서 성령의 이름은 성부와 성자와 함께 동일한 반열에서 언급되었다.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마 28:19~20).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의 교통하심이 너희 무리와 함께 있을지어다”(고후 13:13).
 
 이처럼 성령 하나님은 이미 2천 년 전 초대교회 시대부터 성부 하나님, 성자 하나님, 성령 하나님과 동일한 하나님이시기에 성경은 성령께 하나님의 속성인 창조의 사역(창 1:1~2; 시 104:30). 편재의 속성(시 139:7~10), 전지의 속성(시 40:13~4; 고전 2:10~11), 전능의 속성(눅 1:35; 롬 8:11). 영원의 속성(히 9:14)의 영광을 돌리고 있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에게 있어서 성령의 내주하심은 곧 하나님의 내주하심이었다.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뇨 누구든지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면 하나님이 그 사람을 멸하시리라 하나님의 성전은 거룩하니 너희도 그러하니라”(고전 3:16~17).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의 것이 아니라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고전 6:19~20).
 
 또 다른 보혜사이신 성령을 진리의 성령이라고 하는 것은 성경에서 말하고 있는 성령의 많은 사역 중, 하나의 사역이 성령께서 우리를 진리로 인도하시는 것이기 때문이다.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자의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듣는 것을 말하시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요 16:13).
 성부 하나님도 볼 수 없고, 성자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우리 곁을 떠나 하나님 보좌 우편에 계시기에 볼 수 없다. 지금 성령 하나님께서도 보이지는 않지만 이미 2천 년 전부터 승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이 땅에 강림하셨던 그때로부터 신자 속에 내주하시어 우리 신자들에게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고 우리를 진리의 말씀으로 인도하며, 구원의 완성의 그 날 까지 성부 하나님과 성자 예수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우리를 견인하신다.
 
 성경은 성령을 비둘기(마 3:16), 바람(행 2:1-2), 불(눅 12:49; 행 2:1-4), 검(엡 6:14-17), 기름(요일 2:27), 인(고후 1:22; 엡 1:13) 등 여러 가지 명칭으로 상징화하고 있다. ‘진리’(요 14:17)와 ‘또 다른 보혜사’(요 14:16)도 이 성령을 상징하는 명칭의 하나이다. 이처럼 또 다른 보혜사이신 진리의 성령은 지금 이 땅에 계시지 않는 보혜사이셨던 성자 예수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우리를 하나님의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는 ‘또 다른 보혜사’이신 하나님이시다. 이 성령 하나님은 이미 2천 년 전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 인격적 삼위 하나님의 한 분으로 계시되셨고, 이미 2천 년 전 오순절날 마가 다락방에 강림하신 이후 모든 신자들에게 내주하시고 계신다.
 
 'S'이단이, 성경이 계시하고 있는 고결하고 심오한 삼위일체 교리를 이해하기 힘들다면 가까운 기독교 서점에 가서 수많은 저자들이 쉽게 조직적으로 설명한 성령에 관한 책을 단 한 권이라고 읽어 본다면 그와 같이 그들의 교주 ‘L'씨를 진리의 성령을 입은 또 다른 보혜사라는 무지한 주장을 할 수 는 없을 것이다.
 그들은 칼빈이 온갖 해설과 주석으로 신구약 65권의 주석을 했지만 계시록에 와서는 제대로 꿰맞추지도 못하고 붓을 꺾었다고 비아냥거린다. 그렇다면 그들은 계시록을 어떻게 해석하고 있는가? 그들은 계시록을 불과 몇 십 년도 안 되는 그들 종파의 발생과정으로부터 끼워 맞추어 해석하기 시작한다. 그러나 우리 교회는 계시록의 역사를 불과 몇 십 년의 내력을 가진 'S'이단 종파의 역사로 알기보다는 차라리 칼빈처럼 겸허히 계시록을 덮는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경외의 길을 택할 것이다. 왜냐하며 계시록은, 그들 종파의 생성역사에 아전인수식으로 끼어 맞추고, ‘이긴 자’가 교주 ‘L'씨이고, 그의 궤변의 인(印)을 맞게 될 14만 4천 명이 순교자의 영을 덧입고 영원히 산다는 웃지 못 할 황당한 주장을 하라고 기록된 책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 글 공유하기

독자 의견

댓글이 없습니다.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