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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헤이븐신학_오벌린 완전주의 토대는 계약사상

뉴헤이븐신학_오벌린 완전주의 토대는 계약사상


오벌린 완전주의 토대는 계약사상
2004년 02월 18일 (수) 00:00:00 교회와신앙  webmaster@amennews.com

목창균 교수 / 서울신대 신학전문대학원장

성결운동은 웨슬리안 전통에서 태동된 것이기는 하지만, 그 테두리 안에 국한된 현상은 아니었다. 특히 1840년부터 1870년까지 30년간 미국의 복음주의에서는 교파의 영역을 뛰어 넘어 성결에 대한 강조가 폭발적으로 일어났다. 칼빈주의 신앙 전통을 이어받은 부흥운동가들 가운데도 성결의 은혜를 체험하고 그것을 주창한 이들이 적지 않았다. 
개혁주의 전통에 속하는 성결운동으로는 오벌린 완전주의, 고상한 그리스도인 생활운동, 케직 사경회 등을 꼽을 수 있다.    

19세기 미국 개혁주의 전통에서 성결운동을 처음 시작한 것은 오벌린 완전주의자들이었다. 
오벌린 신학은 오하이오 주에 위치한 오벌린 대학 교수요 부흥사인 찰스 피니와 학장 마한의 주도로 부흥운동, 완전주의 및 개혁주의 전통에 근거하여 형성한 것이다. 
따라서 그것은 어느 특정 신학 노선에 충실한 것이라기보다 장로교, 감리교, 침례교, 형제교회 등 미국 교회가 공유하고 있는 강조점들을 많이 포함하고 있다.

한편, 오벌린 완전주의는 마한과 피니가 성결의 은혜를 체험하고 그것을 가르치기 시작한 온전한 성화의 교리를 말한다. 
오벌린 완전주의는 개혁주의 입장에서 웨슬리안적 성결 교리를 비판적으로 수용한 것이다. 웨슬리는 온전한 성화를 그리스도인의 완전이라 부르고, 그것은 이 세상에 사는 동안 성취될 수 있다고 확신했다. 그가 이 완전주의의 토대로 삼았던 것은 죄 개념이었다.

그는 죄의 개념을 제한하여 죄란 ‘알려진 하나님의 법을 자발적으로 어기는 것,’ 즉 의지의 자발적 행위를 말한다. 그 이외 다른 어떤 것도 죄로 정의할 수 없다. 
따라서 신자들은 하나님의 은혜의 도움으로 죄의 행위는 물론, 죄의 동기와 죄의 권능으로부터도 자유로울 수 있다고 보았다.

반면, 개혁주의와 청교도주의는 성결을 추구하면서도, 그것을 이 세상에서 완전히 획득될 수 있는 것으로 생각하지는 않았다. 왜냐하면 순례자로서 성도들의 삶 앞에는 장애물과 실패가 가로 놓여 있기 때문이다. 이 두 상반된 견해를 수정하여 하나로 종합한 것이 오벌린 완전주의다.
완전주의는 개혁주의 전통에 이질적 요소로 간주된다. 왜냐하면 정통 칼빈주의는 이 세상에서 그리스도인의 온전한 성화가 이루어질 수 있다는 것을 부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개혁주의 노선에 속했던 피니와 마한이 어떤 계기와 근거로 완전주의 입장을 취하게 되었던 것인가? 

피니와 마한이 온전한 성화에 관심을 갖게 되고 그것을 추구하게 된 계기는 두 측면에서 발견된다. 첫째, 예일 대학을 중심으로 새롭게 형성된 뉴 헤이븐 신학(New Haven Theology)의 영향이었다. 
이 새로운 신학 운동은 제2차 대각성 운동 기간에 형성되었으며 회중교인으로 예일대학 교수였던 나다니엘 테일러(Nathaniel W. Taylor, 1786~ 1858) 가 주도했다. 그는 전통적인 칼빈주의 교리를 19세기 부흥운동과 양립할 수 있도록 수정했으며 인간의 본성이 전적으로 부패했다고 보는 전적 타락 교리를 부정하고 자범 죄만 인정했다.

자유로운 의지의 행위가 아니라면, 그 어떤 것도 죄된 행위나 의로운 행위가 될 수 없으며, 모든 인간의 자발적 행위는 선택의 능력에 기초하고 있다는 것이다. 
뉴 헤이븐 신학은 상식철학에 근거하고 있다는 것과 의지의 역할을 강조한 것이 특징이었다. 피니가 인간의 전적인 부패성을 부인하고 죄를 인간의 자발적 행위로 간주한 것이나 인간은 그리스도와 거룩한 삶을 선택할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한 것 등은 뉴 헤이븐 신학의 영향으로 이해된다.

둘째, 오벌린 대학에서의 체험이었다. 그것은 한 학생이 마한에게 던진 성결에 관한 질문에서 비롯되었다. 
“우리는 성결의 은혜를 위해 그리스도께 기도할 때, 어느 정도의 성화를 기대할 수 있습니까, 우리는 온전히 성화될 것을 기대할 수 있습니까, 없습니까.” 
이 질문을 계기로 마한과 피니는 온전한 성화를 추구하여 그것을 체험했다. 
오벌린 신학은 그리스도인의 삶에 두 번째 단계요 보다 성숙한 단계가 있다고 주장한다.

그것은 온전한 성화, 성결, 그리스도의 완전, 성령 세례 등 여러 이름으로 불리고 있다. 이 영적 상태는 한 번의 극적인 제2의 축복보다는 점진적 성장을 통해 도달된다. 
피니는 웨슬리의 ‘그리스도인의 완전’에 대한 글을 접한 후, 온전한 성화에 대한 확신을 가졌으며, 그것에 도달하는 것이 모든 그리스도인의 특권이라고 주장했다.

오벌린 신학은 개혁주의의 계약 개념과 뉴 헤이븐 신학을 결합한 것으로 이해된다. 그것은 온전한 성화의 토대를 계약 사상에서 찾았다. 온전한 성화는 옛 계약 아래서는 불가능했으나 새 계약 아래서는 가능하다는 것이다. 새 계약의 핵심적 요소는 예수와 성령이다. 각 사람은 새 계약에 의해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그리고 성령의 역사로 그리스도인의 완전을 성취할 수 있다.

또한 오벌린 완전주의는 인간의 자유의지를 중시한다. 죄란 지유의지의 남용이며, 우리는 회개할 수 있는 무제한적 능력을 가지고 있다. 
하나님은 중생한 사람에게 역량을 초월하는 행위를 하라고 명령하지 않는다. 중생한 사람은 책임 있는 선택을 해야 할 때, 언제나 선을 택할 수 있는 능력이 반드시 구비되어 있으며, 또한 성령의 특별 사역이 있다. 이러한 특별한 사역이 있을 경우, 금생에서 완전한 성화가 획득될 수 있다.

오벌린 신학은 19세기 복음주의 신앙의 한 중요한 노선을 대변하며, 성결운동, 오순절운동, 고상한 생활운동, 케직운동과 같은 현대 복음주의 운동의 형성과 발전에 크게 공헌했다. 또한 구약의 율법시대와 신약의 성령 시대를 예리하게 구분한 것은 미국 교회가 세대주의 신학 체계를 수용할 수 있는 길을 예비한 것으로 평가된다.

반면, 보수적인 정통 칼빈주의자들은 오벌린 신학을 펠라기우스주의라고 비판하고 인간의 전적 부패와 하나님의 절대 주권 교리에 근거하여 오벌린 완전주의를 거부했다.
(자료출처 http://www.amennews.com/news/quickViewArticleView.html?idxno=4063)


esesang91.com 정태홍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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