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그리스도’에 대한 불신의 결과
| ‘예수=그리스도’에 대한 불신의 결과 | ||||||||||||
| 이단들에 의해 오용되는 성경구절 (12)- 롬 10:13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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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이단측 신도 한 사람과 대화를 한 적이 있다. 대화라기보다는 그의 포교 내용을 들어주는 시간이었다. 몇 차례의 사전 만남이 있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그들의 집회소까지 가서 만날 수 있었다. 그들의 이야기를 직접 들어보기 위해 필자(교회와신앙 www.amennews.com)도 조금은 적극성을 보여준 것이다. 이런저런 내용의 대화가 오가는 도중 필자가 그들만의 경전에 대해서 질문을 던졌다. 그러자 그 신도는 자랑스러운 표정으로 ‘신세계역’이라는 경전을 가져왔다. 그러면서 기존의 한국교회에서 사용하고 있는 성경(개역성경 또는 개역개정성경)에는 번역상 오류가 있다고 했다. 자신들의 경전이 그것을 바르게 해석한 듯 소개를 했다. 그 신도는 개역성경과 신세계역을 비교하면서 설명을 했다. 그가 먼저 지목한 성구는 로마서 10장 13절이다. 그가 하고 싶은 이야기가 그곳에 잘 나타난다고 본 모양이다. 먼저 그 성경구절을 살펴보자.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롬 10:13, 개역성경).
이유는 이렇다. 롬 10:13은 구약성경의 요엘 2:32을 인용한 것인데 그곳에는 ‘여호와의 이름’이라고 적혀있다는 것이다. 요엘서 성구를 인용해 오면서 단어가 바뀐 것이라 했다. 따라서 올바른 용어는 ‘여호와’라는 것이다. 요엘 2:32을 보자. “누구든지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니 이는 나 여호와의 말대로 시온산과 예루살렘에서 피할 자가 있을 것임이요 남은 자 중에 나 여호와의 부름을 받을 자가 있을 것임이니라”(욜 2:32). 두 성경구절을 단순히 비교하면 로마서의 저자가 요엘서를 인용하면서 실수(?)로 단어를 ‘여호와의 이름’에서 ‘주의 이름’으로 바꾸게 되었다고 보이게 된다. 그 신도는 그것을 말하고 싶어 했다. 그래서 오늘날에도 주의 이름이 아니라 여호와의 이름을 불러야 구원을 얻는다는 식이다. 과연 그럴까? 롬 10:13의 ‘주의 이름’은 오류의 흔적일까?
“주의 이름을 부르는 사람은 누구나 구원을 얻을 것입니다”(롬 10:13, 표준새번역). “그것은 ‘누구든지 주님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을 것’이기 때문입니다”(롬 10:13, 쉬운성경). “‘주님의 이름을 부르는 사람은 누구든지 구원을 얻으리라’는 말씀이 있지 않습니까?”(롬 10:13, 공동번역). 한국어 성경은 모두 ‘주의 이름’으로 번역을 해 놓고 있다. 다시 말해 ‘여호와’로 그대로 인용한 곳은 찾지 못했다. 영어 성경은 어떨까? 살펴보자. “For whosoever shall call upon the name of the Lord shall be saved.”(롬 10:13, KJV). “Everyone who calls on the name of the Lord will be saved.”(롬 10:13, NIV). 영어성경도 마찬가지다. ‘주님’에 해당되는 단어인 ‘the Lord’로 기록해 놓았다. 위에 언급된 성경들은 모두 롬 10:13을 ‘여호와’가 아닌 ‘주님’으로 표현하고 있다. 이는 무엇을 말해주는가? 시간과 장소를 넘어 그리스도인들은 요엘서의 인용문을 ‘주님’으로 이해하고 있다는 말이다. 이쯤되면 헬라어 원문성경이 궁금해진다. 어떻게 표현했을까? 살펴보자. “πας γαρ ος αν επικαλεσηται το ονομα κυριου σωθησεται”(롬 10:13, 헬라어성경). 원문도 역시 마찬가지다. 주님(밑줄 친 부분)으로 표현하고 있다. 다시 말해 요엘서의 ‘여호와’를 인용할 때 ‘주님’으로 말하고 있는 것이다. 로마서는 사도 바울이 기록했다. 그렇다면 사도 바울이 요엘서 인용과정에서 실수를 한 것일까? 그렇지 않다. 다른 곳에서도 똑같은 경우가 있다. 사도행전 2:21이 그렇다. 동일한 성구 요엘 2:32을 인용했다. 아래와 같다.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행 2:21, 개역성경). 놀라운 사실이 발견됐다. 로마서의 인용문이나 사도행전의 인용문이 동일하다. 특히 요엘서의 ‘여호와의 이름’를 ‘주의 이름’으로 기록한 것이 그렇다. 행 2:21은 사도 베드로가 설교를 하면서 요엘서를 인용한 부분이다. 그것을 누가가 기록한 것이다. 정리하면 사도 바울에 이어서 사도 베드로도 요엘서를 인용하면서 구원 얻을 이름을 ‘주의 이름’으로 이해한 것이다. 그 ‘주의 이름’은 당연히 ‘예수’를 가리킨다. 누가는 사도들의 증언을 계속해서 기록했다. 오직 한 이름만이 구원을 얻을 이름임을 지적하고 있다. “너희와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은 알라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고 하나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이 사람이 건강하게 되어 너희 앞에 섰느니라 이 예수는 너희 건축자들의 버린 돌로서 집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느니라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 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 하였더라”(행 4:10-12, 개역개정) 사도들과 제자들은 요엘서의 ‘여호와의 이름’이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이후에 ‘예수 이름’으로 적용된다는 것을 받아들이고 있었던 것이다. 그들이 구약의 이해가 부족했기 때문일까? 요엘은 포로기 전 선지자로써 이스라엘 백성의 죄악에 대한 경고와 회복에 관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였다. 욜 1:1-2:17까지는 죄에 빠진 백성에 대한 하나님의 경고와 심판에 관한 내용이 나오고, 2:18부터 끝까지는 하나님의 회복(구원)에 관한 내용이다(노르만 엘 카이슬러, <구약성경개론> 도서출판 엠마오, 1994, pp.328-329). 회복과 구원의 내용도 둘로 나눌 수 있다. 현재적인 것(2:18-27)과 미래적인 것(2:28-3:21)이다. 따라서 이 구분에 따르면 욜 2:32은 하나님의 구원과 회복의 말씀 중 미래에 해당되는 내용에 속하게 된다. 당시 사도들과 제자들은 이를 잘 이해했다. 요엘 선지자가 “그 후에”(욜 2:28)라고 표현한 것을 인용하면서 “말세에”(행 2:17)로 이해하여 기록한 것을 보아도 잘 알 수 있다. 사도 베드로는 요엘서(2:28-32)를 인용하면서 그것은 “오순절에 하나님이 그 성령을 부어주심과 성령의 강림에 이어 모든 민족에게 복음이 전파됨을 내다보는 큰 삽입구”로 이해한 것이다(제임스 몽고메리 보이스, <로마서 3> 줄과추, 1998, p.325). 다시 말해 ‘여호와의 이름’(욜 2:32)을 ‘주의 이름’(롬 10:13)으로 기록한 것은 번역의 문제가 아니라, 요엘서가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바가 무엇이라는 것을 말해주고자 한 것이다. 그것이 바로 예수의 이름이다. 그 이름이 구원의 이름이라는 것이다. ‘여호와의 이름’(욜 2:32)과 ‘주의 이름’(롬 10:13)의 인용상의 차이점을 발견했을 때, 그 이단측 신도는 ‘아! 당시 사도들과 제자들은 예수를 구원자로 이해했구나’가 아니라 ‘아! 당시 사도들과 제자들은 기본적으로 인용도 못하는구나’ 등으로 오해한 것이다. ‘예수=그리스도’에 대한 불신이 성경을 이해하는데 엄청난 오해를 낳게 한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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