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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일독학교2구약

개역개정 성경의 문제점2-고려신학대학원교수회 7

개역개정 성경의 문제점2-고려신학대학원교수회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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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대원 교수회 “개역개정판 성경 번역은 강단용으로 사용하기에는 부적합하다”는 의미있다.
김영수 장로
자료출처http://www.kscoramdeo.com/news/read.php?idxno=5636&rsec=MAIN&section=MAIN

III. 불필요하게 개정한 경우

성 경

단 어

개역판

개정판

(4판 기준)

개역대상 (고려신학대학원 교수회)



증거 -> 입증 (마태복음 8:4)

... 다만 가서 제사장에게 네 몸을 보이고 모세의 명한 예물을 드려 저희에게 증거하라 하시니라.

... 다만 가서 제사장에게 네 몸을 보이고 모세가 명한 예물을 드려 그들에게 입증하라 하시니라.

이 부분의 원문을 직역하면 “... 그들에게 증거로 모세가 명한 예물을 드리라.”이다여기서 ‘증거’로 번역된 말은 원어로 ‘마르튀리온’이다이것은 ‘증거(testimony, proof)’란 말이지 꼭 ‘입증’이란 말은 아니다‘입증’이란 번역은 좀 지나치고 부자연스럽다.



핍박 -> 박해 (마태복음5:10,12,44, 10:23, 13:21)

 

핍박을 -> 박해로 함

개정판 번역에서는 여러 곳에서 ‘핍박’이란 단어를 ‘박해’로 바꾸어 놓았다물론 ‘핍박’이나 ‘박해’나 사전적 의미는 동일할 수 있다그러나 ‘박해’란 단어는 일반적으로 집단적인 사건에 대해 많이 사용되고 ‘핍박’이란 단어는 개인적으로 당하는 신앙상의 일에 대해 많이 사용된다그리고 이미 기독교계에서 많이 사용되고 성도들 사이에 굳어진 ‘핍박’이란 단어를 굳이 ‘박해’로 바꾼 이유를 납득하기 어렵다지금도 교회 성도들은 열이면 아홉열은 ‘핍박한다’‘팝박받는다’라고 말하지 ‘박해한다’‘박해받는다’라고 말하지 않는다따라서 이미 기독교 안에서 굳어졌고 또 적절한 용어인 ‘핍박’을 ‘박해’로 바꾼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생각된다.



교제 -> 친교 ( 2:9)

“야고보와 게바와 요한도 나와 바나바에게 교제의 악수를 하였으니”

“야고보와 게바와 요한도 ... 나와 바나바에게 친교의 악수를 하였으니”

‘교제’나 ‘친교’는 큰 차이가 없다그러나 성경에서 ‘교제(코이노니아)’란 말은 원래 ‘함께 함나누어 가짐참여함동참함’의 의미를 가진 폭넓은 단어이다그런데 ‘친교’란 번역은 서로 사이좋게 어울려 논다는 의미로 제한되는 느낌이 든다본 구절에서는 게바와 요한이 바울과 바나바와 신앙과 사상에 있어서 상이점이 없음을 확인하고 주 안에서 하나됨을 확인하는 의미에서 악수를 나눈 것을 의미한다따라서 개역판대로 ‘교제의 악수’가 좋다고 생각된다.



구속 → 속량 ( 3:24)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이처럼 개정판은 개역판의 ‘구속(救贖)’이란 말을 ‘속량(贖良)’이란 말로 바꾸었다‘구속(救贖)’이란 말의 원어는 ‘아포뤼트로시스’(ajpoluvtrwsi")로서 종이나 노예를 ‘석방금’ 또는 ‘속전(贖錢),속량금(贖良金)(luvtron)을 주고 해방시키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그래서 이 단어는 죄에 빠져 죄의 종이 된 우리를 그리스도께서 자기 몸을 ‘속전’으로 지불하셔서 우리를 죄에서 해방시켜 주셨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그러나 ‘구속’이란 이 단어는 불신자들에겐 전혀 이해되지 않으며성도들에게도 분명하게 이해되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특히 이 단어는 ‘잡아 가두다’는 정반대의 뜻을 가진 ‘구속(拘束)’이란 단어와 혼동되면서(원래 救贖이란 단어에서 ‘구’자를 길게 발음해야 옳은데도 拘束 ‘구’자와 혼동되면서 두 단어의 발음이 같아지고 있는 실정이다), 그 의미가 더욱 불분명해지고 있다.

아마도 이런 점을 고려하여 개정판에서는 ‘속량’으로 바꾼 듯하다그러나 ‘속량(贖良)’이란 단어도 어렵기는 마찬가지며교회 바깥의 사람들에겐 여전히 이해되지 않는 말이다오히려 ‘속량’이란 단어가 더 어려우며 사용 빈도가 더 적은 듯하다그렇다면 개정판에서는 ‘어려운 단어’를 ‘더 어려운 단어’로 바꾸고 만 꼴이 되고 만다뿐만 아니라 ‘속량하다’는 말은 ‘종을 돈(속량금)을 주고 사서 끄집어내다’는 뜻을 가진 헬라어 단어 ‘엨사고라조’(ejxagoravzw)의 번역으로 사용하는 것이 더 좋을 듯하다.그렇다면 우리는 ‘구속’과 ‘속량’이라는 두 용어를 가지므로 그리스도의 죄사함의 은혜를 좀더 풍부한 표현을 가질 수 있다어차피 이 두 단어는 교회 밖에서는 사용례를 찾아보기 힘든 단어로서 불신자들에겐 이해되지 않는 단어이므로교회에서 잘 가르쳐서 이해시키는 것이 필요하다고 본다이런 면에서 ‘구속(救贖)’이란 단어는 이미 교회 안에서 정착되어 가고 있는 단어이므로 굳이 더 어려운 단어로 바꿀 필요가 없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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