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역개정 성경의 문제점2-고려신학대학원교수회3
김영수 장로
III. 불필요하게 개정한 경우
성 경 | 개역판 | 개정판 (제4판 기준) | 개역대상 (고려신학대학원 교수회) |
① 창세기 6:4 | “딸들을 취하여” | “딸들을 취하여” | 히브리어의 문자대로는 ‘들어와’가 맞다. 그러나 그렇게 직역하는 것이 의미를 잘 전달할지는 의문이다. |
② 창세기 13:14 | “동서남북을” | “북쪽과 남쪽 그리고 동쪽과 서쪽을” | 개역판의 ‘동서남북’도 널리 쓰이는 용어이므로 구태여 이렇게 풀어서 길게 번역할 필요가 없다. |
③ 창세기49:10(민수기24:17, 이사야 14:5) | “홀이 유다를 떠나지 아니하며 치리자의 지팡이가” | “규가 유다를 떠나지 아니하며 통치자의 지팡이가” | 개정판은 개역판의 ‘홀’을 ‘규’로 바꾸었다. 국어사전에는 ‘홀(笏)’이 조선시대에 왕이 쥐었던 막대기로 규정하고, ‘규(珪)’는 중국 천자의 옥으로 된 막대기로 말한다. 우리 말에서 ‘홀(笏)’이 왕의 통치권을 상징하는 지팡이로 이미 익숙한 단어인데, 굳이 중국이 사용한 글자로 바꿀 필요가 없다고 생각된다. |
④ 출애굽기 6:6 | “큰 재앙으로 너희를 구속하여” | “여러 큰 심판들로써 너희를속량하여” | 1) 히브리어 !yfip;v]bi은 ‘심판들로써’로 번역할 수도 있으며, 또는 심판의 결과로 내리는 징계도 가능하다. 따라서 양쪽 다 가능하다. 2) ‘구속’(la'g:)은 이미 전문화된 용어이다. 이것을 ‘속량’으로 바꾸는 데에 동의하기 힘들다. |
⑤ 오바댜 1:19 | “남방 사람은 에서의 산을 얻을 것이며 평지 사람은 블레셋을 얻을 것이요” | “그들이 네겝과 에서의 산과 평지와 블레셋을 얻을 것이요” | 개역판의 번역이 원어에 더 가깝다. |
⑥ 미가 6:16 | “너희가 오므리의 율례와 아합 집의 모든 행위를 지키고 그들의 꾀를 좇으니..” | “너희가 오므리의 율례와 아합 집의 모든 예법을 지키고 그들의 전통을 따르니 ...” | 개역판 번역이 원어에 더 가깝다. |
⑦ 하박국 2:7 | “너를 물 자들이 ...” | “너를 억누를 자들이 ...” | 개역판 번역이 원어에 더 가깝다. |
IV. 일관성 없이 번역한 경우
성 경 | 일관성 없는 번역 (고려신학대학원 교수회) |
① ‘의’와 ‘공의’ (창세기15:6과 신명기 6:25등) | 창세기 15:6에서 개역판이 ‘의’로 번역한 것을 개정판 초판에서는 ‘공의’로 번역했다가 4판에서는 다시 ‘의’로 바꾸었다. 신명기 6:25에서 개역판이 ‘의로움’으로 번역한 것을 개정판 초판에서는 ‘공의로움’으로 번역했다가 4판에서 다시 ‘의로움’으로 바꾸었다. 그러나 그 외에 구절들, 예를 들면 신명기 6:25, 9:5, 6 등에서는 개역판의 ‘의’를 개정판은 ‘공의’로 번역하였다. 그러나 ‘츠다카’(hq;d;x])는 ‘의’로 번역하는 것이 마땅하다. ‘공의’는 재판과 관련된 인상을 받게 한다. 올바른 재판을 시행함으로써 이루는 사회정의의 개념을 가진다. 그러나 성경에서 말하는 ‘의’는 하나님께서 특별하게 베풀어주시는 복으로서 중요한 신학적인 의미가 있는 단어이다. 그런데 hq;d;x]를 ‘공의’로 번역하는 것은 어떤 신학적인 복선이 있지 않을까 우려된다. 표준 새번역에서도 hq;d;x]를 ‘의’라는 단어 대신에 ‘공의’라는 단어를 많이 사용하고 있다. 하지만 개정판도 신약의 로마서 4:3에서 창세기 15:6을 인용할 때에는 ‘의’로 번역하고 있다. “만일 아브라함이 행위로써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면 자랑할 것이 있으려니와 … 성경이 무엇을 말하느냐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매 그것이 그에게 의로 여겨진 바 되었느니라.”(롬 4:2-3). 로마서의 이 부분을 ‘공의’로 번역하는 것이 합당치 않다는 것을 생각해 볼 때, 구약의 이 부분도 ‘의’로 번역하는 것이 좋다. |
② ‘공의’와 ‘정의’ (사1:21, 1:27, 32:1, 암5:24 등) | 개역판은 ‘미쉬파트’(fp'v]mi)i를 주로 ‘공의’로, 간혹 ‘공평’ 또는 ‘공법’으로 번역하고 있다. 그러나 개정판은 사 1:21, 1:27, 32:1, 암 5:24 등에서 ‘정의’로 번역하였다. ‘미쉬파트’는 주로 재판을 공정히 행하는 의를 의미한다. 따라서 ‘공의’로 번역하는 것이 가장 합당하다. 물론 경우에 따라서는 ‘정의’ 혹은 다른 말로도 번역할 수 있다. |
③ ‘가증한’과 ‘혐오할’(레위기 11:11, 12) | $q,v,를 개정판이 어떤 곳에서는 ‘가증하다’를 ‘혐오하다’로 바꾼 반면(레 11:12), 어떤 곳에서는 바꾸지 않고 그대로 두었다(레 11:11). |
④ ‘장구하리라’와 ‘길리라’ (신명기 5:33, 6:2) | 신명기 5:33에서는 ‘길리라’고 바꾸었으나, 6:2에서는 ‘장구하다’는 말이 그대로 사용되고 있다. |
⑤ ‘멸절’과 ‘멸망’ (신명기 2:14, 6:15) | 신명기 2:14에서는 ‘멸절’을 ‘멸망’으로 고쳤으나, 6:15 등에서는 ‘멸절’이라는 말을 계속 사용하고 있다. |
⑥ 음역 혹은 번역? (‘음부’와 ‘스올’ 등) | 개역판의 ‘음부’를 개정판에서는 ‘스올’로 음역(音譯)하였는가 하면, 창세기 6:14에서는 개역판의 ‘잣나무’를 개정판에서는 ‘고페르’로 음역하여 놓았다. 그러나 신명기 10:3에서는 반대로 음역된 ‘싯딤나무’를 ‘조각목’으로 바꾸어 놓았다. |
⑦ 이사야 3:19-20 | 여기서 개역판의 ‘면박’(veil)을 개정판이 ‘얼굴 가리개’라는 잘 사용하지 않는 우리말로 바꾸면서도 ‘화관’(headdress, 머리 장식)이나 ‘호신부’(charms, 부적?)는 한자어 그대로 두고 있어 일관성을 잃고 있다. |
⑧ 나훔 3:5 | <개역판> “만군의 여호와의 말씀에 내가 네 대적이 되어서” <개정판> “보라 내가 네게 말하노니 만군의 여호와의 말씀에 ...” 동일한 표현을 나훔 2:13에서 “만군의 여호와의 말씀에 내가 네 대적이 되어”로 번역해 놓고서 나훔 3:5에서는 다르게 번역하였다. 개역판 번역을 따르는 것이 낫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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