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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출=성경적’으로 오용된 성구

‘가출=성경적’으로 오용된 성구
이단들에 의해 오용되는 성경구절 (4) - 눅 14:26
2010년 03월 02일 (화) 06:21:25 장운철 kofkings@amennews.com

모 이단 단체 이탈 신도들의 간증을 듣다보면 종종 충격에 빠진다. ‘가출해도 된다. 반대하는 부모를 버리고 이곳으로 와라. 그것이 성경적이다’는 교육을 받았고 또 그것에 따라 가출을 실행했다는 내용 때문이다.

여대생 A양은 세 번이나 가출을 했다. 부모님이 간신히 찾아와 집에 데려다 놓으면, 빈틈을 타 연속적으로 집을 나갔다. 회심을 한 후 A양은 ‘교주보다 가족을 더 사랑하는 것이 바로 죄’로 철저히 믿었다고 했다. 그렇게 극단적인 행동을 할 수 있었던 근본 원인 중 하나가 바로 잘못된 성경해석 때문이라고 했다.

이단자들은 바로 눅 14:26 등의 성경구절을 ‘가출=성경적’이라고 곡해한다. 자신의 교주의 뜻에 부모가 반대를 하면 가출해도 괜찮다고 한다. 그뿐 아니라 그것이 바로 성경의 본뜻이라고 잘못된 가르침을 하고 있는 것이다.

과연 눅 14:26이 ‘가출=성경적’임을 말하는 것일까? 살펴보자. 먼저 성경 본문이다.

“무릇 내게 오는 자가 자기 부모와 처자와 형제와 자매와 및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지 아니하면 능히 나의 제자가 되지 못하고”(눅 14:26, 개역성경).

“If anyone comes to me and does not hate his father and mother, his wife and children, his brothers and sisters - yes, even his own life - he cannot be may disciple”(눅 14:26, NIV).

“누구든지 내게로 오면서 자신의 아버지, 어머니, 아내, 자녀, 형제, 혹은 자매를 미워하지 않으면 그리고 더 나아가 자신의 목숨까지도 미워하지 않으면 내 제자가 될 수 없다”(눅 14:26, 쉬운성경).

   

여러 번역서를 참고해 보면 ‘누구든지’, ‘제자가 될 수 없다’는 등의 강조점 등을 제외하고는 큰 의미의 차이점은 발견되지 않는다. 쉬운성경에서는 ‘미워해야 한다’는 점에 무게를 좀더 많이 두고 있다.

언뜻 보면 ‘예수님의 제자가 되기 위해서는 가족들을 모두 미워해야 하는구나’로 이해되기 쉬운 성구다. 여기에 ‘예수님의 제자가 되기 위해서는 교주의 말을 따라야 한다’는 논리가 접목되면 ‘교주의 말에 거부하는 부모나 가족들은 버려도 된다’는 식의 해석이 나올 수도 있게 된다. 정말 끔찍한 말이다. 상상하기도 쉽지 않은 논리가 몇몇 이단 단체에서 현실로 그대로 벌어지고 있다니 놀라지 않을 수가 없다.

위의 눅 14:26과 함께 등장하는 성구들도 있다. 바로 눅 18:29-30과 마 10:37 등이다. 같이 살펴보자.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집이나 아내나 형제나 부모나 자녀를 버린 자는 금세에 있어 여러 배를 받고 내세에 영생을 받지 못할 자가 없느니라하시니라”(눅 18:29-30, 개역성경).

“아비나 어미를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는 내게 합당치 아니하고 아들이나 딸을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도 내게 합당치 아니하고”(마 10:37, 개역성경).

   
위 성구들도 오해의 눈으로 보면 그 정도가 한 발 더 나가게 된다. 가족을 미워하지 않으면 예수님의 제자가 되지 않을뿐더러 ‘영생’도 얻지 못하게 된다는 식이다. 마 10:37의 ‘합당치 않니하고’는 ‘무가치하게 된다’(NIV, 'is not worthy of me') 또는 ‘제자 될 자격이 없다’(쉬운성경) 등의 뜻으로 볼 수 있다.

이렇듯 위 성구들이 ‘가족을 미워함, 가출’ 등의 뜻을 담고 있다면 당장 십계명의 말씀과 정면으로 부딪히게 된다. 특히 ‘네 부모를 공경하라’는 5번째의 명령과 충돌된다. 어찌된 일인가? 둘 중에 하나는 잘못된 내용이 된다. 무엇일까? 십계명이 잘못된 것일까? 위 이단들의 주장이 옳다면 그들은 십계명의 5번째 명령을 ‘네 부모를 공격(?)하라’로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과연 그것이 맞나?

그렇다면 눅 14:26의 뜻은 무엇일까? 어떻게 해석을 해야 할까?

표현의 ‘과장법’이다. 눅 14:26의 ‘부모를 미워하라’는 ‘진정한 제자가 되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서 사용된 과장법의 표현이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교훈을 하실 때 여러 형식들을 취하셨다. 직유법, 은유법, 수수께끼, 패러독스(paradox) 그리고 과장법 등이다. 이는 당시 랍비(선생)들도 즐겨 사용하는 교수법이다. 물론 오늘날과도 크게 다르지 않다.

로버트 H. 스타인은 “예수님께서 청중들을 사로잡기 위하여 사용하신 하나의 방법”이 과장법이며 그것은 “셈족어의 특징”이라고 했다(로버트 H. 스타인, <예수님께서는 무엇을 어떻게 가르치셨는가>, 1992, p.42). 이러한 과정법의 사용을 통해서 예수님께서 말하고자 하는 바에 쉽게 도달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과장법의 예는 다음과 같다.

“얘들아,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기가 어떻게 어려운지 약대가 바늘귀로 나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쉬우니라”(막 10:24-25).

위 구절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게 쉽지 않음을 감각적으로 설명하고 있는 구절이다. 약대(낙타)가 바늘귀에 어떻게 들어가겠는가. 못 들어간다. 이는 누구나 다 아는 당연한 말이다. 그것처럼 부자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기가 결코 쉽지 않음을 말해주려고 과장법을 사용한 것이다.

따라서 눅 14:26의 본 뜻을 잘 알려면 과장법이라는 형식이 아닌 내용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위 성구의 ‘미워하다’라는 표현이 바로 과장법인 것이다.

눅 14:26은 예수님의 제자가 되기 위한 조건을 설명하는 구절이다. 예수님의 제자가 되는 것은 가족보다 더 귀한 가치가 있음을 가르치고 있다. 심지어 ‘자기 목숨’보다도 귀한 절대적인 가치가 있음을 거듭 강조하려고 한 것이다(홍창표, <하나님나라와 비유>, 합동신학대학원출판부, 2004, p.300). ‘미워하다’는 표현은 가족 간의 사랑과 목숨 그 자체에 대한 사랑이 예수님에 대한 그들의 사랑과 비교할 때 오히려 미움에 가까울 정도로 그 의미가 퇴색될 만큼 예수님에 대한 사랑이 완전하고 전인격적이라는 뜻이다(그랜트 오스본, LAB주석시리즈 <누가복음>, 2003, p.590). 한 마디로 가족보다 예수님을 더 사랑해야 한다는 말이다. 심지어 자기 목숨보다도 더 주님을 섬기고 사랑해야 한다는 의미다. 위의 마 10:37의 본문이 본 뜻을 그대로 잘 설명하고 있다. ‘가족보다 예수님을 더 사랑해야 한다’는 말이다. 그것이 진정한 제자의 자격인 것이다.

   
▲ 가출한 자녀가 부모에게 남긴 쪽지

이단자들이 계속해서 강짜를 부릴지도 모른다. ‘예수님을 더 사랑하기 위해서, 진정한 제자가 되기 위해서 가출해도 된다’며 말이다. 예수님 당시에도 가출한 예를 볼 수 있다고 말할 수도 있다. 지금의 가출과 예수님 당시의 가출은 차원이 다르다. 예수님 공생애 당시 예수님의 제자가 된다는 것은 ‘쫓겨남’을 각오해야 하는 적지 않은 사건이 된다. 예수님을 죽이려고 공모한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시인하는 자들을 ‘출교’하기로 결의하였기 때문이다(요 9:22). 당시의 출교는 ‘죽음’과도 같은 큰 고통을 뜻한다. 공동체에서 쫓겨남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이단 단체 앞에 부모들이 가출한 자녀를 찾는다며 1인 시위를 하는 경우를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가출한 자녀를 만나 무엇이 옳은 것인지 적극적으로 따져보겠다는 부모의 의지다. 그들의 가출이 성경에서 말하는 가출(출교)과 다른 것은 공동체(부모와 가족)가 찾고 있다는 것이다.

눅 14:26 등의 성경구절은 ‘가출하라’는 말이 아니다. 또는 그와 유사한 가족을 해하는 어떠한 뜻도 아니다. 그 본 뜻을 잘 살펴야 한다. 아직도 ‘가출=성경적’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낙타는 바늘귀에 들어갈 수 있다’고 억지를 부리는 것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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