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 만의 부활인가 ‘영육’ 부활인가?
| ‘영’ 만의 부활인가 ‘영육’ 부활인가? | ||||||||||||
| 이단들에 의해 오용되는 성경구절 (7) - 벧전 3:18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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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의 부활에 대해 ‘영으로만 부활했다’는 비성경적인 주장이 있다. 다시 말해 육체로는 부활하지 않고 영으로만 부활했다는 것이다. 적지 않은 이들이 그러한 주장을 펼치고 있다. 안상홍측(하나님의교회세계복음선교회)은 예수 부활에 대해 “(예수님께서) 다시 영체로 분리되어 부활의 아침까지 지내셨다”며, 좀더 구체적인 해설로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잠시 왔다가 육체의 몸을 가지고 가신다거나 변한 상태로 가셨다고 말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근본 진리를 이해치 못하는 것이다”라고 주장했다(안상홍, <천사세계에서 온 손님들>, 멜기세덱출판사, 1967, pp.83-84). 다시 말해 예수님의 부활은 ‘육체’는 아니고 ‘영’에만 해당이 된다는 것이다. 자칭 보혜사라 주장했던 김풍일 씨(새빛등대중앙교회)와 역시 자칭 재림예수 구인회 씨(천국복음전도회)에게서도 그러한 내용을 확인할 수 있다. JMS측(정명석, 기독교복음선교회)과 여호와의증인(왕국회관) 등에게서도 유사한 내용을 발견할 수 있다. 이렇듯 ‘육체 부활’을 부정하고 ‘영만 부활’을 주장하는 이들의 그 속내는 무엇일까? 크게 두 가지로 볼 수 있다. 성경을 성경의 의도대로 해석하지 못하는 것과 또 하나는 ‘재림주 놀음’을 하기 위한 것이다. 다시 말해 예수님이 영으로만 부활, 승천, 재림해야 ‘그 영이 나에게 임했다’, ‘그래서 내가 재림주다’는 논리를 만들어 낼 수 있기 때문이다. 육체부활을 인정한다면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행 1:11) 등의 성경말씀에 바로 걸리기 때문이다. ‘영만 부활’을 주장하는 이들이 즐겨 사용하는 성경구절 중 하나가 바로 베드로전서 3:18이다. 살펴보자. “그리스도께서도 한 번 죄를 위하여 죽으사 의인으로서 불의한 자를 대신하셨으니 이는 우리를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려 하심이라 육체로는 죽임을 당하시고 영으로는 살리심을 받으셨으니”(벧전 3:18, 개역성경). 암송 구절로도 많이 알려진 성구이다. ‘영만 부활’을 주장하는 이들의 목소리를 듣고 다시 한 번 읽어보면 또 그럴듯하게 보이기도 하는 이들도 있을 것 같다. 선입견이라는 게 작용되기 때문일 것이다. 이럴 때는 다른 번역성경을 읽는 것이 도움이 되기도 한다. 살펴보자. “그리스도께서는 여러분을 위해 죽으셨습니다. 그리고 그 한 번의 죽으심으로 여러분의 모든 죄를 담당하셨습니다. 죄가 없는 분이시지만 죄인을 대신하여 돌아가셨던 것입니다. 그것은 여러분 모두를 하나님께로 인도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육체는 죽었지만 성령 안에서 다시 살아나셔서”(벧전 3:18, 쉬운성경) “그리스도께서도 여러분의 죄 때문에 죽으셨습니다. 죄 없으신 분이 죄인을 위해서 죽으신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단 한 번 죽으심으로써 여러분의 죄를 용서해 주시고 하느님께로 인도해 주셨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몸으로는 죽으셨지만 영적으로는 다시 사셨습니다.”(벧전 3:18, 공동번역) “For Christ also suffered for sins once for all, the righteous for unrighteous, in order to bring you to God. He was put to death in the flesh, but made alive in the spirit”(벧전 3:18, NRSV)
“육체로는 죽임을 당하시고 영으로는 살리심을 받으셨으니”(개역성경)는 그 ‘대속’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으며 또 그 대속의 뜻을 좀더 잘 드러내 주는 내용이라 할 수 있다. 쉬운성경의 “육체는 죽었지만 성령 안에서 다시 살아나셔서”와 공동번역 성경의 “그리스도께서는 몸으로는 죽으셨지만 영적으로는 다시 사셨습니다” 그리고 NRSV의 “He was put to death in the flesh, but made alive in the spirit”가 모두 그러한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육체적인 어떤 면에서는 죽고, 영적인 어떤 면에서는 살아나셨다’는 방식이다. ‘육’과 ‘영’ 그 자체를 주어로 삼았다면 ‘His flesh was ... His spirit made ...’와 같은 식으로 기록을 해야 맞을 것이기 때문이다. 문맥을 통해서도 살펴볼 수 있다. 벧전 3:18 이전의 본문(벧전 3:13-17)은 ‘선하신 예수님께서 고난을 받으셨다’는 것을 말해준다. 이는 선하신 분이 단지 죄가 없는데 고난을 받으신 것만이 아니라 선하신 분이 자신의 죄 때문이 아니라 우리의 죄를 위해 대신 고난을 받으셨음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선을 행함으로 고난을 받으라’고 권면한다. 벧전 3:18은 ‘οτι’(호티, 왜냐하면)으로 시작한다(참고, ‘왜냐하면’으로는 보통 ‘γάρ’를 사용한다. ‘οτι’는 그보다 더 강한 의미다). 예수님께서 대신 죽으셨기 때문에 그리스도인들이 선을 행함으로 고난을 받고 이겨낼 수 있다는 것이다. 예수님의 고난 때문에 우리가 거듭나고, 회개하여 죄를 용서받고, 하나님의 자녀의 영광을 얻게 된다는 말이다. 이와 같이 예수님의 대속하심은 우리를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려는 데 그 목적이 있다(롬 5:1, 엡 2:18, 히 4:16). 또한 모든 고난과 죽음을 이기신 부활에 우리도 참여할 수 있음을 벧전 3:21에서는 보여주고 있다. 이제 “육체로는 죽임을 당하시고 영으로는 살리심을 받으셨으니”(벧전 3:18 하, 개역성경) 구절을 위의 문맥 흐름 안에서 좀더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오광만 교수(대한신학대학원대학교)는 위의 구절을 “육체의 관점에서는(with respect to the flesh) 죽임을 당하셨으나 영의 관점에서는(with respect to the spirit) 살리심을 받으셨다”고 이해해야 한다고 말한다(오광만, <베드로전서의 메시지>, 그리심, 2001, p.196). 이는 예수께서 인간으로 땅에 계시는 동안 ‘육체의 죽임을 당하셨다’는 것과 그 후 ‘하나님의 영의 활동으로 생명(부활)을 얻으셨다’는 대조적인 상황을 설명하는 것이다. 본문의 해석의 열쇠가 되는 ‘육’과 ‘영’은 헬라의 이원론적인 의미에서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존재 양식을 가리키기 위해서 사용되었음을 직시해야 한다. 즉, 예수님의 ‘육’과 ‘영’을 대조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적인 존재에 속하는 영역과 성령에 속하는 영역 등 두 존재 양식을 대조하고 있는 것이다. ‘육’이라는 신약에서 중생하지 못한 인간의 존재의 양식을 표현하는 육체의 관점에서 또는 그것과 관련해서 죽으신 것이다. 같은 방식으로 살리심을 받으셨다(made alive)는 것은 통상적으로 성부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죽음에서 살리시는 것을 표현하는 행동이라는 말이다. 오 교수는 따라서 “그리스도의 영 또는 혼이 죽었다가 영만 홀로 살아났다거나, 그리스도께서 육은 죽은 채 남겨두었다는 의미가 아니다”고 강조를 하기도 했다.
이 목사는, 벧전 3:18은 결국 그리스도를 부활시킨 하나님이 고난 중에 있는 모든 성도들을 다시 살리시리라는 확신으로 연결시킨다고 강조했다. 다시 말해 지금 그리스도인들은 비록 몸의 구속에 완전히 참여하는 것을 기다려야 하는 처지에 놓여있기는 하지만, 몸과 영혼 즉 전인격적으로 그리스도께서 가져다주신 부활에 참여할 수 있다는 것이다. 몸만 부활한다거나, 또는 영혼만 부활한다는 것이 아니다. 로마서 8:11이 그것을 잘 말해 준다. 육체 안에서 발생한 죽음이 정복되었고 이제 생명으로 전환되었음을 밝혀주는 것이다.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의 영이 너희 안에 거하시면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가 너희 안에 거하시는 그의 영으로 말미암아 너희 죽을 몸도 살리시리라”(롬 8:11).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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