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자민 오 목사의 파워 메세지_"이것이 신앙생활의 전부이다"?
페이스북에서 아래와 같은 글을 보았다.
과연 이 말이 맞을까?
김성수 목사의 오류에서 보여지듯이,
"누가 끝까지 회개하여 주님 앞에 흰옷 입은 신부로 설수 있는가.....
이것이 신앙생활의 전부이다."라고 말하면,
자기 죄에 대한 강렬한 인식과 회개로 가게 된다.
-----------------------------------
3분26초만 시간 내서 들어보셔요 ....
벤자민 오 목사님 파워 메세지입니다.
****************
예수님은 '네 이름이 생명책에 기록 된것으로 기뻐하라'고 하셨다.
이 세상의 최고의 기쁨은 회개하고 죄사함을 받았을때의 기쁨이다.
이 기쁨이 내이름이 생명책에 기록 되었다는 것을 아는 기쁨이다.
흰옷=생명책
흰옷을 입는 것은 회개이다.
매일 흰옷을 빨아야한다.
흰옷을 입은 것도 중요하지만
그 흰옷을 더럽히지 않고 끝까지 흰옷으로 유지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이 시대를 분별한다면 지금은 매일 흰옷을 빨아 입고 있어야 할 때이다.
주님앞에 섰을때 옷이 더러워져 있다면 다시는 기회가 없는 끝이다.
"누가 끝까지 회개하여 주님 앞에 흰옷 입은 신부로 설수 있는가.....
이것이 신앙생활의 전부이다."
(페이스북 주소는 기억이 안 납니다)
---------------------------------------
요한계시록에는 '흰 옷'을 입은 자들에 대하여 말한다.
(요한계시록의 뜻을 알기 위해 이필찬 교수의 요한계시록 주해인 "내가 속히 오리라"를 참고했다.)
먼저 3장 4-5절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4 그러나 사데에 그 옷을 더럽히지 아니한 자 몇 명이 네게 있어 흰 옷을 입고 나와 함께 다니리니 그들은 합당한 자인 연고라 5 이기는 자는 이와 같이 흰 옷을 입을 것이요 내가 그 이름을 생명책에서 반드시 흐리지 아니하고 그 이름을 내 아버지 앞과 그 천사들 앞에서 시인하리라(계 3:4-5)
먼저 4절의 뜻을 이필찬 교수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4a의 '옷을 더럽히지 아니하다'와 '흰옷을 입다'는 2-3절에서 말하는 회개해야 하는 대상에서제외된 자들을 표현한 것이다.사데 교회의 대부분의 성도들은 죽은 이름을 가지게 되었지만 그중에 몇 명만이 그러한 상태에 빠지지 않게 되었다.여기에서 '몇 몇'은 소수의 무리를 가리키며 더럽히지 않은 '흰 옷'을 입고 있다.이러한 자들은 두아디라 교회의 경우에서 이세벨의 교훈을 받지 않고 소위 사단의 깊은 것을 알지 못하는 자들과 동일하다.4a에서 그들의 흰옷을 더럽히지 않았다는 것과 4c에서 그들이 합당하다는 것은 서로 동일한 정황을 두고 한 말이다.왜냐하면 예수님과 동행하는 것은 그들이 더럽히지 않은 흰옷을 입은 까닭이다.곧, 그들은 하나님의 자녀로 세상과 타협하지 않고 하나님에 대한 신실함을 잃지 않았다는 것이다.자료출처 이필찬, 내가 속히 오리라(서울, 이레서원, 2008), 189.
또 5절의 뜻을 다음과 같이 말했다.
..., 5a에서 주어지는 '흰옷을 입을 것이다'라는 종말적 약속은 4절에서 보여 주는 것처럼이미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자녀로서 신실한 삶을 살아갈 때 체험될 수 있는 것이다.또한 그것은 마지막 날에 이긴 자들은 하나님의 자녀로서 하나님께 순결하고 신실한 모습으로온전하게 되어 나타나게 된다.
자료출처 이필찬, 내가 속히 오리라(서울, 이레서원, 2008), 190.
이런 해석을 통해 볼 때,
흰옷을 입은 자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구원받은 자들이며,
또한, 교회 안에 들어온 비성경적인 것들에 미혹되지 아니하고
세상 것에 타협하지 아니하며 오직 하나님께 신실한 자들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흰옷은 다시 3장 18절에 나온다.
이 말씀에서는 "흰 옷을 사"라고 말씀하신다.
내가 너를 권하노니 내게서 불로 연단한 금을 사서 부요하게 하고 흰 옷을 사서 입어 벌거벗은 수치를 보이지 않게 하고 안약을사서 눈에 발라 보게 하라(계 3:18)
이필찬 교수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두 번째로, 18c에서 "흰옷을 사서 벌거벗은 수치를 보이지 않게 하라"는 것은교회 공동체의 정체성을 회복하라는 의미를 갖는다.이것은 3:4-5에서 사데 교회의 성도들에게 "옷을 더럽히지 아니한 자 몇 명이 네게 있어흰 옷을 입고 나와 함께 다니리니"라고 한 것과 유사하다.여기서 '옷을 더럽히지 않았다'라는 것은 우상숭배에 동참하지 않았다는 것과 동일한 의미를 가지며,'흰옷을 입고 나와 함께 다니리라'는 것은 좀 더 적극적인 의미로 예수님과의 정상적인 관계 성립을 의미한다.그러한 삶은 결국 핍박과 고난을 가져오게 되지만 그들은 영적으로 부요한 자들이다.....결국 이러한 죄를 드러내고 다시는 죄를 짓지 말라고 하는 것은우상숭배로 말미암아 상실했던 하나님의 백성의 참된 모습을 회복하라는 경고성 권면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자료출처 이필찬, 내가 속히 오리라(서울, 이레서원, 2008), 215.
이 해석에서 보여지듯이,
흰옷을 사서 입는다는 은 우상숭배의 죄악을 버리고 참된 교회로 회복되어야 한다는 뜻이다.
요한계시록 7장 9절에는 다시 흰 옷을 입은 자들이 나온다.
이 일 후에 내가 보니 각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언에서 아무라도 능히 셀 수 없는 큰 무리가 흰 옷을 입고 손에 종려 가지를 들고 보좌 앞과 어린 양 앞에 서서(계 7:9)
이필찬 교수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더 나아가서 9f에 의하면 이 큰 무리는 '흰 옷'을 입고 '종려나무 가지'를 들고 있다.이 두 개의 표현은 전쟁 모티브와 관련되어 사용된다.먼저 흰옷은 승리의 축하를 위한 축제 복장이며(마카비 2서 11:8)종교가지들은 시몬 마카비의 군대가 예루살렘 성의 재탈환을 축하하며 흔들었던 것과 비교할 수 있다(마카비 1서 13:51)(Bauckham, 1993b, 225).여기에 덧붙여서 '큰 무리'는 '큰 군대'라는 말로 달리 번역할 수도 있다.그렇다면 흰 옷 입은 큰 무리는 전쟁을 치루고 난 후 승리를 축하하는 군대와도 같은 이미지를 보여준다.반면에 여기에서 '흰 옷'이란 6:9-11에서 순교자들이 입고 있는 흰 옷과 동일하고4:4에서 이십사 장로들이 입고 있는 흰옷과 동일하며 3:4-5에서 사데교회 성도들에게 약속된 '흰 옷'과 동일하다.여기에서 '흰 옷'의 일관된 의미는 하나님의 신실하고 참된 백성들에게 주어지는 표지로 승리의 상징이다.
이 해석에서도 드러나듯이,
흰 옷은 영적인 전쟁에서 승리한 표지로 주어지는 상징이다.
요한계시록 7장 13-14절에는 다음과 같이 다시 흰 옷을 언급한다.
13 장로 중 하나가 응답하여 나에게 이르되 이 흰 옷 입은 자들이 누구며 또 어디서 왔느냐
14 내가 말하기를 내 주여 당신이 아시나이다 하니 그가 나에게 이르되
이는 큰 환난에서 나오는 자들인데 어린 양의 피에 그 옷을 씻어 희게 하였느니라(계 7:13-14)
14c에서 '큰 무리가' '어린 양의 피에 그 옷을 씻어 희게 하였다'고 기록한다.9c에서 '흰옷'이 승리를 축하하는 축제를 위한 복장이라고 하였는데그것을 어린양의 피로 씻어 희게 하였다고 한 것은 이들의 승리에는 어린양의 희생제사의 피로말미암은 구속의 사건이 결정적으로 작용했다는 것을 의미한다.이것은 9절에서 이 승리한 큰 무리가 하나님과 어린양의 구원하신 사역을 찬양한 것과도 밀접하게 관련된다.그렇다면 '큰 무리'의 승리에는 어린양으로서 십자가에 죽임을 당함으로써쟁취하신 그리스도의 승리의 형식이 적용될 수 있다(5:6).특별히 '옷을 씻었다'라고 한 행위는 성전(聖戰)에서 승리의 표현과 자연스럽게 조화를 이룬다.왜냐하면 '웃을 씻는 것'은 피를 흘리고 난 이후와 예배에 참예하기 전에요구되는 제의적 정결 예식의 한 부분이기 때문이다(민 13:19-20, 24; 참조, 민 19:19; 1QM 14:2-3)(Bauckham, 1993b, 226).자료출처 이필찬, 내가 속히 오리라(서울, 이레서원, 2008), 375.
이 해석을 통해 볼 때에,
흰 옷을 입은 자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피로 구속을 입은 자들이며,
그들은 이 세상에 존재함으로써 그리스도 안에서 겪게 되는 환란을 싸워 가는 자들이다.
그것은 벤자민 오 목사가 말하는 것처럼 단순히 회개하는 정도로 말하지 않는다.
성도는 이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워가야 하는 자들이다.
'흰 옷'은 "하나님의 신실하고 참된 백성들에게 주어지는 표지로 승리의 상징이다"(이필찬, 369).
이제 마지막으로,
요한계시록 22장 14절에서는 "그 두루마기를 빠는 자들"에 대하여 말한다.
그 두루마기를 빠는 자들은 복이 있으니 이는 저희가 생명나무에 나아가며
문들을 통하여 성에 들어갈 권세를 얻으려 함이로다(계 22:14)
....그렇다면 두루마기를 빠는 자들이란 비유적 표현으로 자신을 거룩하게 하는 자들을 가리킨다.또한 이러한 표현은 '흰 옷을 입은 자들'을 연상하게 한다.요한계시록에서 '흰 옷'은 그리스도인의 표지로 사용된다(3:4, 5, 18; 4:4; 7:9, 13; 19:14).자료출처 이필찬, 내가 속히 오리라(서울, 이레서원, 2008), 958.
흰 옷이 그리스도인의 표지라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피로 구원을 받은 자들이
그 당면한 영적인 전투에서 싸우는 자들이며 또 싸워 승리하는 자들이라는 뜻이다.
그것이 성도의 거룩이며, 그것이 두루마기를 빠는 자들이다.
회개는 그 싸움의 일부로 말할 수 있어도 전체적인 의미는 아니다.
회개만 하고 있을 것이 아니라,
교회 안에 들어오는 니골라 당의 행위와 자칭 선지자라 하는 이세벨의 음행과 술수를 분별하고
교회를 참된 말씀으로 세워가는 것이 두루마기를 빠는 것이다.
그것은 교회 안에 들어오는 비성경적인 영성을 비롯한 혼합주의를 배격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사도 요한의 경고를 명심해야 한다.
사랑하는 자들아 영을 다 믿지 말고 오직 영들이 하나님께 속하였나 분별하라
많은 거짓 선지자가 세상에 나왔음이라(요일 4:1)
RPTministries 정태홍 목사
http://www.esesang91.com
독자 의견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