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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화산 사건과 의미

변화산 사건과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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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화산 사건
 
변화산 사건은 성육신과 부활, 승천 사건과 더불어 성경에서는 매우 중요한 사건으로 간주되어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변화산 사건은 많이 다루어지지 않는다.
변화산에서 예수가 빛과 같이 흰 색으로 변모하며, 모세와 엘리야를 만나 대화를 한 것은 장차 하나님나라에서 부활의 영광을 미리 보여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변화산 사건은 공관복음의 세복음서에 언급되는데, 그 사건 바로 전에 다음과 같이 예수님의 말씀이 있었다.
 
마태: 죽기 전에 예수님이 왕권을 가지고 오는 것을 볼 자가 있다.(마16:28)
마가: 죽기 전에 하나님 나라가 권능으로 임하는 것을 볼 자가 있다(막9:1)
누가: 죽기 전에 하나님 나라를 볼 자가 있다.(눅9:27)

공관복음에 공통적으로 기록된 위 구절은 무슨 뜻일까?
세 복음서에는 위 구절 다음에 어김없이 변화산 사건이 기록되어 있는데,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을 데리고 높은 산에 가셨는데, 제자들 앞에서 모습이 변형되며 하얀 빛이 났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다.
 
마 16:28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여기 섰는 사람 중에 죽기 전에 인자가 그 왕권을 가지고 오는 것을 볼 자들도 있느니라
마 17:1 엿새 후에 예수께서 베드로와 야고보와 그 형제 요한을 데리시고 따로 높은 산에 올라가셨더니
마 17:2 저희 앞에서 변형되사 그 얼굴이 해 같이 빛나며 옷이 빛과 같이 희어졌더라
 

막 9:1 또 저희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여기 섰는 사람 중에 죽기 전에 하나님의 나라가 권능으로 임하는 것을 볼 자들도 있느니라 하시니라
막 9:2 엿새 후에 예수께서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을 데리시고 따로 높은 산에 올라가셨더니 저희 앞에서 변형되사
 
눅 9:27 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여기 섰는 사람 중에 죽기 전에 하나님의 나라를 볼 자들도 있느니라
눅 9:28 이 말씀을 하신 후 팔일쯤 되어 예수께서 베드로와 요한과 야고보를 데리시고 기도하시러 산에 올라가사
눅 9:29 기도하실 때에 용모가 변화되고 그 옷이 희어져 광채가 나더라
 
위 세 복음서에는 몇가지의 공통점이 있는데 (1) 하나님나라, 혹은 왕국이며 (2) “죽기 전에” 볼 수 있다는 것이고, (3) 모든 제자들이 다 본다는 것이 아니라 “볼 자가 있다”는 것이며 (4) 그 구절 다음에 곧이어 변화산 사건이 기록되어 있는데, 마태복음과 마가복음은 “엿새 후에”, 누가복음은 “팔일쯤 되어”라고 기록되어 있다. 누가복음은 “쯤”(about)을 사용하였으므로 오류라고 말할 수 없다. 예수님의 말씀 후에 변화산 사건이 기록된 것은 문장의 연관성이 있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성경주석은 예수님의 말씀을 변화산 사건으로 해석하는데, 호크마주석은 조금 다르게 해석한다.
 
(트랙성경)
하나님의 나라의 임하심.
①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눅 17:21) ② 변화산상의 임하심(막 9:2-8) ③ 오순절에 임하심(행 2:1-3) ④ 주님의 재림(고전 15:51-52) 등등을 말할 수 있겠다.
그러나 주의 재림은 하나님의 장중에서 되어진 일(행 1:7)이니 너희의 알바 아니라 하심이요 ① 하나님 나라는 믿는 자의 마음에 있음은 각인의 체험이요 ②나 ③이 될 것인데 ②가 더 적중하게 생각된다. 죽기 전에 볼 사람이 있다하심과 “우리는 그의 크신 위엄을 친히 본 자라…… 저와 함께 거룩한 산에 있을 때에”(벧후 1:16-18) 말씀을 보아 베드로의 증거가 변화산상으로 보아 틀림없을 듯하다.
(마 16:21-28과 눅 9:22-28은 같은 고로 약한다.)
 
(오픈2 주석성경)
16:28 인자가...볼 자들도 있느니라 : 변화산의 영광을 세 제자가 본 것(17:1-13)을 의미한다
17:1 예수님의 변형은 그분의 부활과 재림때 갖게될 영광스러움을 미리 보여주신 것이다. 베드로는 나중에 이 때의 사건을 회상하여 말하기를 “우리주 예수그리스도의 능력과 강람하심”(벧후1:16)이라고 말했다.
 
(아가폐성경사전, 642쪽)
이 변형사건은 예수님의 참된 본성에 대하여 제자들에게 밝혀주신 하나님의 특별한 계시였다. 예수님의 눈 부신 모습은 그분이 받으실 미래의 영광을 제시해 주었다. 또한 모세와 엘리야의 출현은 예수님과 그 분의 사역이 율법(모세)과 선지자(엘리야)의 성취임을 증명해 준다. 변화산에서 예수가 변형하신 사건과 시내산에서 모세가 울법을 받은 사건 사이의 유사성은 변형된 모습(출34:29-35), 산 위의 구름(24:15-16), 그리고 엑소더스(출애굽, 떠남, 눅24:51)란 말의 사용, 예수께서 제2의 모세이며 새 언약의 중보자라는 기독론적인 주제를 설명해 주고 있다.
 
(IVP 성경주석, 1274쪽)
28절: ‘인자의 오심’의 의의에 대해서는 앞의 10:23의 주석을 보라. 이것은 다니엘 7:13-14의 이미지를 끌어온 것이다. 그것은 왕위 즉위식의 언어이며, 꼭 일반적인 재림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다.
17:1-13 여느 때와는 달리 시간이 정확하게 표시된 것(엿새후에)은 이 일화를 16:28의 예수님의 말씀과 밀접하게 연결시키려는 의도로 볼 수 있다. 여기서 잠시동안 예수님과 함께 한 자들 가운데 몇사람은 예수님의 왕으로서의 영광을 본 것이다. 전체 이야기는 우선적으로 예수님이 실제 누구인지에 대해 그들에게 주어진 계시로서 제자들의 관점에서 전달한다. 그리하여 이 사건은 16:21 이하의 낙심천만한 선언에 대한 중요한 균형추를 이룬다. 죽음 너머에는 영광이 있다. 그리고 벌써 세 제자는 잠시 일시적으로 걷힌 장막 너머를 볼 수 있는 특권을 누리고 있다. 세가지 요소는 단순히 인간적인 메시야를 훨씬 넘어서는 예수님에 대한 특별한 확증이다.
 
(호크마주석)
인자가 그 왕권을 가지고 - 본문은 인자, 곧 예수의 오심과 그분이 지닌 왕권의 실재성을 강조한 것으로(Wycliffe) 임박한 예수 자신의 수난과 또한 각 제자들의 수난의 현장에서도 결코 두려움 없이 제자의 길을 걸어가도록 권면하신 말씀이다. 그런데 본문은 상당히 난해한 구절로 여겨져 왔으며, 그런 만큼 그 해석이 다양하다. (1) 막 9:1과 연관시켜 하나님의 나라는 예수가 말할 때 이미 도래했었고, 제자들은 그것을 '보고'(깨닫고) 있었다는 것이다(C.H. Dodd). 그러나 이것은 '보다'는 말을 왜곡 해석함으로써 생겨난 견해이다. 더욱이 마태는 마가의 표현인 완료분사(엘레뤼뒤이안, '이미 왔다')와는 달리 현재분사(에르코메논)를 사용하고 있기 때문에 본문 해석으로는 적절치 못하다. (2) 부활 사건 또는 오순절 사건을 가리킨다는 견해이다(Calvin, Grotius). 이 해석이 설득력이 있기는 하나 '여기 섰는 자들' 중에 죽기 전에 설명하기에는 시간적으로나 문맥상으로 충분치 못하다. (3) A.D. 70년의 예루살렘 멸망으로 보기도 한다(Gaechter, Clarke, Westein). 그러나 바로 앞절(27절)이 예수의 졔림을 이야기 하고 있다는 점에서 조화를 이루지 못한다. (4) 예수의 재림을 가리킨다고 본다(Allen). 그러나 예수의 선교는 세상 끝날까지 계속 되어야 하는 것으로(마28:20), '여기 섰는 자들'이 죽기 전에 그 선교적 사역이 완수되기에는 시간이 너무 촉급하다. (5) 얼마 후에 있을 변화산 사건을 예고한 것이라 본다(Bengel, Chrysostom, Hilary). 그러나 이 사건이 불과 얼마 후에 일어날 것이라면 예수께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라는 진지한 언어를 사용하신 것이나 '여기 섰는 자들중 죽기 전에...'라는 말을 사용했다고 보기에는 너무 터무니 없다. 더욱이 변화산상에서의 3제자에게 함구령을 내리신 것과 본문의 공개적 가르침과는 문맥상 일치를 이룰 수 없다(17:9). 이상의 견해들 보다 (6) 본문을 좀더 일반적 언급으로 보는 것이 좋을 것 갈다. 즉 본문은 부활, 오순절 등의 특수한 사건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예수 부활 후 여러 방식으로 그리스도의 왕권이 나타날 것을 가리킨다고 보는 것이다. 그 예로 제자들의 급증과 이방인에게로 복음이 전파되는 것을 들 수 있다. 즉 '거기 섰던 자들'중 다수는 예수의 복음이 로마 제국 전역에 확산되는 것과 개종자들을 풍성히 거두어 들이는 수확의 현장을(9:37,38) 목격하였을 것이다. 특히 이러한 해석은 공관복음에서의 하나님 나라 개념의 유연성(flexibility. 3:2;10:23;12:28)과 본문의 문맥에 잘 어울린다.
 
호크마주석을 제외한 거의 모든 주석은 예수님의 말씀을 변화산 사건으로 본다.
 
마태: 죽기 전에 예수님이 왕권을 가지고 오는 것을 볼 자가 있다.(마16:28)
마가: 죽기 전에 하나님 나라가 권능으로 임하는 것을 볼 자가 있다(막9:1)
누가: 죽기 전에 하나님 나라를 볼 자가 있다.(눅9:27)
 
물론 위 예수님의 말씀은 변화산 사건만을 국한시켜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변화산 사건을 포함하여 그 이후에 일어날 사건들을 함께 지칭한다고 보는 것이 좋다. 그러나 일차적으로는 변화산 사건을 시작으로 거론한 것으로 보는 것이 좋다. 이 일이 있은 후 엿새 후에 변화산 사건이 있음을 성경은 세 복음서에서 공통적으로 기록하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모세와 엘리야는 이미 죽은 사람이며, 그들이 예수와 대화를 한 장면은 장차 부활과 천국의 영광을 미리 보여준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베드로는 그 장면을 목격하고 그곳에서 머물기를 원하였던 것이다. 용모가 변하고 눈이 부실 정도의 흰 옷으로 변화했다는 장면이 곧 장래 영광의 모습을 말하여 주고 있다.
더욱이 변화산 사건의 마지막 설명은 하늘로부터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옴으로서 그가 하나님의 아들임을 재확인시키고 있다.
 
장차 우리의 부활의 모습이 어떻게 될 것인가?
성경은 이렇게 말한다. 우리의 장차 부활체가 구체적으로 어떤 형태인지 성경은 언급하지 않지만, 기록된 내용으로 살피면 그 몸은 썩지 않을 몸, 영광스러운 몸, 강한 몸, 신령한 몸이 될 것이다. 부활의 첫열매가 되시는 예수님은 문을 잠근 공간에도 나타나셨다. 즉 공간에 제한되지 않는 몸이시다. 그러나 예수님은 제자들과 함께 물고기와 떡을 드셨으며, 무엇보다도 예수님은 “나를 만져보라, 영은 살과 뼈가 없되 너희 보는 바와 같이 나는 있느니라”(눅24:39)에서 말씀하셨다.
 
고전 15:42 죽은 자의 부활도 이와 같으니 썩을 것으로 심고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며
고전 15:43 욕된 것으로 심고 영광스러운 것으로 다시 살며 약한 것으로 심고 강한 것으로 다시 살며
고전 15:44 육의 몸으로 심고 신령한 몸으로 다시 사나니 육의 몸이 있은즉 또 신령한 몸이 있느니라
고전 15:45 기록된바 첫 사람 아담은 산 영이 되었다 함과 같이 마지막 아담은 살려 주는 영이 되었나니
고전 15:46 그러나 먼저는 신령한 자가 아니요 육 있는 자요 그 다음에 신령한 자니라
고전 15:47 첫 사람은 땅에서 났으니 흙에 속한 자이거니와 둘째 사람은 하늘에서 나셨느니라
고전 15:48 무릇 흙에 속한 자는 저 흙에 속한 자들과 같고 무릇 하늘에 속한 자는 저 하늘에 속한 자들과 같으니
고전 15:49 우리가 흙에 속한 자의 형상을 입은 것같이 또한 하늘에 속한 자의 형상을 입으리라
고전 15:50 형제들아 내가 이것을 말하노니 혈과 육은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을 수 없고 또한 썩은 것은 썩지 아니한 것을 유업으로 받지 못하느니라
고전 15:51 보라 내가 너희에게 비밀을 말하노니 우리가 다 잠잘 것이 아니요 마지막 나팔에 순식간에 홀연히 다 변화하리니
고전 15:52 나팔 소리가 나매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고 우리도 변화하리라
고전 15:53 이 썩을 것이 불가불 썩지 아니할 것을 입겠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으리로다
고전 15:54 이 썩을 것이 썩지 아니함을 입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을 때에는 사망이 이김의 삼킨바 되리라고 기록된 말씀이 응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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