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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이 다녀 온 셋째하늘

바울이 다녀 온 셋째하늘
http://cafe.naver.com/anyquestion/21118
 
“내가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한 사람을 아노니 십 사년 전에 그가 세째 하늘에 이끌려 간 자라(그가 몸 안에 있었는지 몸 밖에 있었는지 나는 모르거니와 하나님은 아시느니라). 내가 이런 사람을 아노니(그가 몸 안에 있었는지 몸 밖에 있었는지 나는 모르거니와 하나님은 아시느니라) 그가 낙원으로 이끌려가서 말할 수 없는 말을 들었으니 사람이 가히 이르지 못할 말이로다. 내가 이런 사람을 위하여 자랑하겠으나 나를 위하여는 약한 것들 외에 자랑치 아니하리라. 내가 만일 자랑하고자 하여도 어리석은 자가 되지 아니할 것은 내가 참말을 함이라. 그러나 누가 나를 보는 바와 내게 듣는 바에 지나치게 생각할까 두려워하여 그만 두노라”(고후 12:2~6).
 
 
셋째 하늘, 소위 삼층천이라는 용어와 개념을 살펴보자. 이 용어 때문에 다양한 견해들이 있으며 심지어
천국을 구별하고 분리시키는 주장까지 나타나고 있다. 이러한 비성경적인 주장들이 개인적인 천국과 지옥의 간증과 체험까지 추가되어 이상한 주장을 만들게 된다.

먼저 주석적인 견해를 살펴보자
 
(메튜헨리주석)
1. 하나님께 그에게 보여 주신 은혜에 대한 이야기(1-6)
이는 의심할 바 없이 그 자신이 그가 말하는 그리스도 안의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는 '셋째 하늘에 이끌려 갔었다'(2절). 이 일이 있었던 때를 우리가 말할 수 없다면, 이 일이 어떤 '방법'으로 일어났었는지는 더욱 말할 수 없다 하겠다. 이 셋째 하늘은 낙원으로도 불리운다(4절). 사도는 자신이 셋째하늘, 혹은 낙원에서 무엇을 보았는지에 대해서는 언급하고 있지 않다. 그러나 그는 우리에게 자신이 말할 수 없는 말을 들었다고 말하고 있다. 그런데 그 말을 입에 담는 것은 적법한 것이 아니었다. 사도는 겸손한 태도로 이 문제를 언급하고 있다(1절). 겸손했기에 그는 '14년 동안'이나 이것을 언급하지 않았다. 자신을 내세우려는 것을 억제하는 데서 그의 겸손이 다시금 나타나고 있다(6절). 고도로 진보하는 중에서도 겸손한 마음을 가진다는 것은 훌륭한 일이다. 스스로 자신을 낮출 줄 아는 자들은 높아질 것이다.

 
(호크마주석)
세째 하늘 - 본문에 대해서는, 그 개념상의 특이성 때문에 여러 가지 견해가 제기된다. 먼저 '세째 하늘'이 유대인들의 하늘 개념에서 온 것이라는 견해가 있다(Salmond). 즉 유대인들은 하늘이 일곱으로 나뉘어져 있다고 보았다는 것이다(12족장의 유언). 그 중 세번째 하늘은 의롭게 죽은 자들이 머무는 처소라고 한다(에녹서 8:1-13;42:3). 그렇다면 바울은 바로 이 죽은 의인들의 처소에 다녀온 것이 된다. 이 경우 바울이 당시 묵시 문학의 영향을 받았다고 볼 수도 있다. 그러나 이 주장에 동의하는 학자들은 별로 없다. 오히려 본문은 공간적인 개념으로 보지말고 바울이 인간의 한계를 초월하는, 그래서 언어로는 정확히 묘사할 수 없는 곳 즉 하나님께서 계시는 곳에 가서 말할 수 없는 체험을 환상 중에 했다는 것으로 이해함이 무난할 것이다. 그렇다면 이 '세째 하늘'의 개념은 엡 4:10의 '모든 하늘 위에'란 표현과 일맥 상통한다. 혹자는 이것과 관련하여 본문의 표현이, 신자들이 마지막 날에 들어갈 하늘 혹은 천국의 선취(先取)를 의미한다고 본다(Barrett).

 
(아가페성경사전, 1679)
비록 후기 유대교는 하늘이 일곱층인 것으로 상상하였지만, 때때로 헬라어에서 복수형을 사용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하늘’(헬, 우라노이)이 히브리용어의 복수형과 ‘하늘들의 하늘’이라는 히브리식 표현은 단지 이 이름을 최상급으로 강조하여 표현한 것이다. 곧 우주적인 의미를 강조하는 표현이다

 
(톰슨주석)
셋째하늘: 이것은 공간적인 개념이라기 보다는 바울이 인간의 한계를 초월하는 곳, 즉 하나님이 거하시는 곳에 가서 말할 수 없는 체험을 환상 중에 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상징이다. 일부학자들은 첫째 하늘을 대기권으로, 둘째 하늘을 우주로, 셋째하늘을 하나님과 천사들이 거하는 천상이라고 주장한다.

 
(오픈2 주석성경)
셋째하늘: 어떤 이들은 하늘을 첫째 하늘은 구름이 있는 대기권, 둘째하늘은 별이 있는 궁창, 셋째하늘은 창조세계를 초월하시는 하나님이 계신 영적 하늘로 나누기도 하며, 고대랍비 문헌이나 조로아스터교에서는 7천층의 개념이 발견되기도 한다. 그러나 여기서 ‘3’이라는 숫자는 수적인 개념으로 쓰인 것이 아니라, 가장 높고 완전함을 상징적으로 이미한다. 바울은 하나님이 계신 지극히 높은 곳까지 이끌려 올라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계시를 받았다

 
결론적으로 셋째하늘은 어떤 의미를 갖는다기 보다는 하나의 관용구적인 단어로 사용된 것이며, 그 의미는 하나님이 계시는 곳, 낙원을 뜻한다고 보아야 한다는 해석이 가장 적합하다.
성경이 첫째하늘과 둘째하늘, 또한 넷째하늘 이상을 거론하지 않는 이상, 우리는 그것에 대해서 언급할 필요가 없다.
 
사람이 죽지 않고 천국과 지옥에 다녀올 수가 있을까? 한마디로 공상소설에서나 가능한 이야기들이 지금 기독교에서 대유행을 하고 있다. 너도 나도 천국과 지옥에 다녀왔다고 간증을 하기에 이르렀고, 기독교서점에까지 이러한 책들이 넘쳐나고 있다. 이러한 개인적인 간증과 체험이 셋째하늘을 임의대로 해석하여, 그들이 천국을 만들고 있다.
 
“내가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한 사람을 아노니 십 사년 전에 그가 세째 하늘에 이끌려 간 자라(그가 몸 안에 있었는지 몸 밖에 있었는지 나는 모르거니와 하나님은 아시느니라). 내가 이런 사람을 아노니(그가 몸 안에 있었는지 몸 밖에 있었는지 나는 모르거니와 하나님은 아시느니라) 그가 낙원으로 이끌려가서 말할 수 없는 말을 들었으니 사람이 가히 이르지 못할 말이로다. 내가 이런 사람을 위하여 자랑하겠으나 나를 위하여는 약한 것들 외에 자랑치 아니하리라. 내가 만일 자랑하고자 하여도 어리석은 자가 되지 아니할 것은 내가 참말을 함이라. 그러나 누가 나를 보는 바와 내게 듣는 바에 지나치게 생각할까 두려워하여 그만 두노라”(고후 12:2~6).
 
바울은 낙원에 다녀온 것을 자신의 체험이 아니라 제 삼자의 입장으로 말하고 있다. 물론 그 이유에 대해서는 6절에서 설명하고 있는데, 다른 사람이 지나치게 생각할 것이 두려웠기 때문이다. 갑자기 이 본문을 살펴보고 싶은 생각이 든 이유는 워낙 요즈음 천국과 지옥에 갔다 왔다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러한 사람들의 간증을 듣거나 그 책을 읽어보면 바울과 많은 차이점이 보인다. 게다가 대부분이 비성경적인 간증을 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첫째, 바울은 다른 사람들이 지나치게 생각할 것이 염려하여 제 삼자의 입장으로 글을 기록하는 반면에, 요즈음 천국과 지옥에 다녀왔다는 사람은 오히려 자랑스럽게 자기 자신의 체험을 말하고 있다. 가장 큰 문제점은 천국과 지옥을 다녀왔다는 간증을 하는 사람들의 거의 대부분이 비성경적이며 자의적인 주장을 하고 있다는 것이며, 그러한 간증마다 모두 다르다는 것이 문제이다.
 
둘째, 특수한 경우를 보편화하려고 한다. 예를 들어 에녹은 죽지 않고 하늘로 옮기워졌다(창6:24, 히11:5)는 구절을 인용한다. 이러한 특수한 경우가 다른 사람에게도 보편적으로 일어났는가? 예를 들면, 엘리야의 경우(왕하 2:11)와 같이 불수레와 불말을 타고 하늘로 승천한 경우가 다른 사람에게도 보편적으로 일어났는가? 특수한 경우를 보편화 한다면 예수님과 같이 물 위를 걸었던 사람이 있었는가?
 
셋째, 바울은 자신이 낙원을 간 것이 몸 안인지 몸 밖인지를 모르겠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천국간증을 하는 사람들을 보면, 영혼이 몸에서 이탈되어 영혼만이 갔다고 말한다. 사도바울은 자신이 몸 안에 있었는지 몸 밖에 있었는지 알 수 없었다고 하는데, 그들은 왜 몸 밖에서 유체이탈되었다고 단정하는가? 그렇다면 왜 바울은 몸 안인지 몸 밖인지 몰랐다고 말할까? 성경학자들은 이러한 바울의 체험을 그가 실제로 죽었다가 살아난 경우라고 해석하기도 한다. 고후11장23-25절에서 그는 거의 죽을 뻔했던 많은 체험들을 말하며, 행 14:19에서 바울은 돌에 맞아서 죽은 줄로 알고 성 밖으로 내친 적도 있었다. 그런데 요즈음 입신을 주장하는 사람 특히 큰믿음교회나 주님의교회, 혹은 천국간증에 대한 책을 쓴 토마스주남이라는 여인과 같이 수십번을 습관처럼 아주 쉽게 갔다 왔다는 사람도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특히 신사도운동을 하는 미국의 목사들이 그러한 주장을 자주하고 있다. 하루에도 몇 번씩 원하기만 한다면 천국과 지옥을 가서 예수를 만난다는 것이다. 그들의 간증의 공통점이 있는데, 자신이 매우 특별한 사명을 갖고 다시 돌아왔다는 것이다.
 
넷째, 바울은 그러한 체험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지 말도록 경고를 받았다고 말한다. 표준새번역, 현대인의 성경, 특히 KJV영어성경과 NIV영어성경이 모두 그러한 번역을 하고 있다. 바울은 왜 이야기를 하지 말도록 들었다고 하는데, 그들은 모두 성경의 내용과 달리 자유롭게 말을 하고 있을까?
 
[표준새번역] 이 사람은 낙원에 이끌려 올라가서, 말로 표현할 수도 없고 사람이 말해서도 안 되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현대인의성경] 나는 낙원으로 이끌려 가서 도저히 표현할 수도 없고 또 누구에게도 알려서는 안 되는 말을 들었습니다.
 
[KJV] How that he was caught up into paradise, and heard unspeakable words, which it is not lawful for a man to utter.
 
[NIV]was caught up to paradise. He heard inexpressible things, things that man is not permitted to tell.
 
다섯째, 물론 죽은 사람이 다시 살아났다는 경우가 지금도 간혹 있다. 기독교뿐 아니라 타종교, 혹은 무신론자도 그러한 체험을 하는 경우가 드물게 있다. 그러한 현상에 대해서 의학적인 견해는 죽은 지 얼마 되지 않은 사람의 경우에 대해서, 가사상태라고 말하기도 하며, 다시 살아날 수 있는 만일의 가능성을 위하여 죽은 사람을 곧 매장하거나 화장을 하지 않고, 삼일장을 하는 이유라고 말한다.
 
타종교와 불신자들도 죽었다가 다시 살아날 수 있다면 그러한 입신은 기독교만의 상황이 아니라고 말해야만 하지 않는가?심장이 멈춘 사람의 경우, 의학적으로는 죽음의 상태이지만, 인공호흡이나 심장에 전기적인 충격을 줌으로서 소생시키는 방법도 있다. 분명한 것은 죽은 지 오랜 시간이 경과한 후에 사람이 다시 살아난 경우는 한번도 없다. 어쨌든 죽었다가 살아난 사람들은 꿈을 꾸었다는 경험담을 말하기도 하는데, 그 체험이 모두 다르며, 특히 자신이 평소 갖고 있는 종교적인 관점에서 서로 다른 이야기를 하는 경우도 있으므로 객관적인 기준이 없다.
불교인도 죽었다가 살아난 체험을 말하고, 타종교인 심지어 이단교회도 죽었다가 살아난 체험을 말한다.
그러나 성경은 오히려 죽은 사람은 다시 돌아올 수가 없다고 말하고 있다.
 
“구름이 사라져 없어짐 같이 음부로 내려가는 자는 다시 올라오지 못할 것이오니 그는 다시 자기 집으로 돌아가지 못하겠고 자기 처소도 다시 그를 알지 못하리이다”(욥 7:9-10).
 
“그 집은 사망으로, 그 길은 음부로 기울어졌나니 누구든지 그에게로 가는 자는 돌아오지 못하며 또 생명 길을 얻지 못하느니라”(잠2:17-19).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히9:27)
 
여섯째, 영혼이 몸 밖으로 빠져나갔다는 것은 곧 죽음을 말한다.
성경은 “영혼없는 몸은 죽은 것”(약 2:26)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또 육신은 땅으로 돌아가지만, 신(spirit)은 육신과 분리되어 하나님에게로 돌아가게 된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다.
 
“흙은 여전히 땅으로 돌아가고 신은 그 주신 하나님께로 돌아가기 전에 기억하라”(전 12:7).
 
“나의 이 가죽, 이것이 썩은 후에 내가 육체 밖에서 하나님을 보리라”(욥 19:26).
 
또한 스데반은 죽임을 당하기 직전 “주 예수여 내 영혼을 받으시옵소서”(행 7:59)라고 부르짖었으며, 예수님 자신도 “아버지여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눅 23:46)라고 말씀하셨다. 이것은 모두 죽음의 상태가 영(spirit) 혹은 혼(soul)이 사후에 육체로부터 분리되어지는 것을 뜻한다. 야이로 회당장의 딸이 죽었을 때에 예수님이 “일어나라”고 하자 “그 영(sprit)이 돌아와 아이가 곧 일어 나거늘”(눅 8:55)이라고 기록되어 있으며, 아나니아와 그 아내가 사도들의 발 앞에 팔았던 밭의 값을 속이었을 때에도 "혼(soul)이 떠나갔다"(행5:5. 5:10)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다. 또한 부자의 죽음에 대해서 “네 영혼을 도로 찾는다”는 표현을 하고 있다(눅12:20).
다시 말하여 영혼이 몸을 빠져 나갔다고 하면 그 몸은 죽은 시체가 되며, 성경은 단 한번도 사람이 죽지 않고 영혼과 몸이 분리된 경우를 언급하지 않는다. 바울의 경우도 그가 몸 안에 있는지 몸 밖에 있는지 알지 못한다고 말하고 있을 뿐이다. 그러나 사도바울도 몸 밖으로 떠나는 것을 죽음이라고 분명히 기록하고 있다.
 
“우리가 담대하여 원하는 바는 차라리 몸을 떠나 주와 함께 거하는 그것이라 그런즉 우리는 거하든지 떠나든지 주를 기쁘시게 하는 자 되기를 힘쓰노라. 이는 우리가 다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드러나 각각 선악간에 그 몸으로 행한 것을 따라 받으려 함이라”(고후 5:8-10).
 
“그러나 만일 육신으로 사는 이것이 내 일의 열매일진대 무엇을 가릴는지 나는 알지 못하노라. 내가 그 두 사이에 끼였으니 떠나서 그리스도와 함께 있을 욕망을 가진 이것이 더욱 좋으나, 그러나 내가 육신에 거하는 것이 너희를 위하여 더 유익하리라”(빌 1:22~24).
 
요즈음 천국과 지옥에 대한 간증을 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특히 신사도운동과 관련된 목사들이 그러한 주장을 많이 하는데, ‘천국은 확실히 있다’는 책을 쓴 토마스 주남이 대표적으로 그러한 주장을 하고 있다. 특히 한때 시한부종말론을 주장했던 문제의 사람들이 다시 천국과 지옥 간증을 하는 경우도 있다. 그들은 자기들 임의대로 천국을 황당하게 묘사한다거나, 시한부종말론을 주장하거나, 전혀 성경적이지 않은 주장을 한다는 것이다. 그러한 체험이 어떤 목적을 가진 거짓말일 가능성도 충분히 있고, 만일 그러한 체험이 가사상태에서 느끼는 꿈과 같은 환상이라면 우리는 개인의 환상적인 이야기를 천국체험으로 받아들이는 셈이 된다는 것이다.
 
우리는 성경을 통하여 천국과 지옥이 있음을 믿는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어떤 개인의 비성경적이며 주관적인 간증을 통하여 천국과 지옥을 믿을 이유가 없다. 더욱이 무속적이고 미신적인 속설에 미혹되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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