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왕국- 후천년설(Postmillennialism)
천년왕국- 후천년설(Postmillennialism)
http://revdavidsuh.com/bbs/view.php?id=Revelation&page=1&sn1=&divpage=1&sn=off&ss=on&sc=on&select_arrange=headnum&desc=asc&no=4
후천년설은 천년설 중에 가장 최근에 생긴 것이다. 이 설은 12세기 수도원장이었던 요아킴(Joachim)에 의해 생긴 것으로 후기 중세와 16세기에 어거스틴의 견해와 함께 쌍벽을 이루어 왔는데 개신교에 첫 영향력 있는 학자는 브라이트맨(Thomas Brightman 11562-11607)이었다. 이 설은 복음의 승리를 천년왕국으로 간주했기 때문에 개신교 학자들로 종교개혁의 성공을 보면서 복음의 발견이 교회를 위한 번영의 새로운 시대의 여명이라고 생각하게 하였다. 또 18세기에 와서는 선교 사역의 확장에서 그리고 19세기에 와서는 진보의 원리와 자유주의 신학의 출현으로 하나님의 나라를 도덕적이고 사회적인 진보로 보기도 했다. 그러나 19세기 후천년설 지지자 중에는 유명한 조직 신학자 하지(Charles Hodge), 스트롱(A.H. Strong), 브리그스(C.A. Briggs) 그리고 브라운(David Brown)등이 있다.1)
1. 후천년설의 옛 주장
어거스틴(Augustine)은 천년을 교회가 지상에서 다스리는 기간을 묘사하고 있다고 보았다. 이 견해에 따르면 성도의 천년간 다스림은 첫 부활이 주님의 부활에서 가지는 신자들의 영적인 나눔을 묘사하고 있다고 본다. 구파에서는 천년왕국을 과거의 일이라고 보는가 하면 어떤 이들은 그 축복이 아직 체험되고 있다고 보며 또 어떤 이들은 재림 직전에 있어서 아직 장래의 시간에 속했다고 본다. 말세에 교회는 성령의 능력 아래서 하나님의 사역이 크게 부흥되며 신자들이 능력을 얻어 악의 세력을 이기게 될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이 황금시대가 올 것이며 선과 악의 투쟁이나 배교가 있겠으나 그리스도의 오심으로 일반 부활과 마지막 심판이 있게 되리라 한다.
2. 후천년설의 근래의 주장
근래에 와서 이 설은 인본주의적이며 진화론적인 원리와 낙관적이며 세속적인 철학과 혼합되어 자유주의 신학자들의 입장을 크게 대변하게 되었다. 그러나 복음주의 신학 자중에 이 설을 성경적으로 변호하고 주장하는 이들도 많이 있다. 그러면 이제 후천년설의 정의부터 시작해서 이 설의 다른 천년설과의 관계 그리고 이 설의 주장과 이 설의 비판을 하기로 하자.
최근에 와서 후천년설은 하지(Charles Hodge)의 설을 크게 재생시킨 뵈트너(Loraine Boettner)의 책, The Millennium에서 자세하게 소개되었다.
그는 후천년설을 정의하기를 하나님의 나라를 파지하고 있는 말세의 사건에 대한 견해는 이제 복음의 전파와 개인의 심령 속에서 성령님의 구원사역을 통하여 세계로 확장되었으므로 이제 세계가 기독교화되며 그리스도의 재림이 일반적으로 천년왕국으로 불려지는 의와 평화의 긴 시대 끝에서 발생한다. 후천년설은 그리스도의 재림 후에 곧 일반 부활과 일반 심판과 그것들의 충만함에서 천국과 지옥이 따라온다.2)
그러므로 후천년설에 의하면 현시대는 복음의 전파로 세계 인구가 기독교로 개종하여 크게 증가되므로 천년왕국의 시대가 점차로 돌입되고 있다. 늘어나는 크리스천의 수는 유대인과 이방인을 포함할 것이다. 후천년설 지지자들은 로마서 11:25-26을 비록 유대의 정치적 왕국의 회복으로 생각하기는 않지만 유대 백성의 장차 큰 규모로 개종할 것을 가리켰다고 본다.
물론 말세에 죄가 제거되지는 않을 것이나 최소한도로 줄어들게 될 것이다. 사회, 경제, 정치 그리고 인간의 문화적인 생활이 크게 진전될 것이다. 세계의 번영이 있을 것이며 부가 더 크게 분배되어 공유되며 사막이 장미처럼 꽃이 피게 될 것이다. 국가들이 조화스럽게 공존하며 영적인 번영의 황금시대가 아마도 1,000년 이상 긴 기간 동안 지속될 것이다. 이것은 세상에 모든 사람이 크리스천이 된다거나 세상의 죄가 제거된다는 말은 아니다. 그러나 악이 점차 줄어지며 크리스천의 원리들이 시행되며 그리스도는 참으로 기독교화된 세상에 재림하실 것이다.
그러나 정말 말세에 이런 천년왕국과 같은 시대가 도래할 수 있는가? 말세에 대한 예수님의 감람 산 강화나 바울의 말씀은 어찌되는가?
뵈트너와 킥(J.M. Kik)은 마태복음 24장의 대환난과 데살로니가후서 2장에 배교에 대해서는 이미 지나간 과거라고 본다. 그러나 천년왕국을 이야기하는 요한계시록 20:7-10에서는 사단이 천년기 끝에 가서 잠시 놓일 것을 말하지 않았는가? 이에 대해 뵈트너는 그것은 그리스도의 재림 전 악의 제한된 시위라고 본다. 그 기간은 짧을 것이므로 교회를 결코 해치지 못하리라고 본다.3)
천년왕국에 대해서는 요한계시록 20:1-6에서만 나타나므로 이 구절의 해석에 대한 후천년설 지지자들의 해석을 살펴보는 것이 이 설을 이해하고 이들의 주장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월필드(B.B. Worfield)는 요한계시록 20:1-6은 현 교회 시대 동안에 사단의 결박을 묘사하며 현시대 동안에 하늘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죽은 성도의 영혼이 다스리는 것으로 보았다.4) 이 점에서 후천년설자들은 요한계시록 20:1-6절의 해석에서 무천년설과 일치한다.
킥(Kik)은 6절에 첫째 부활은 그들이 지상에 살아 있을 동안 신자들의 중생을 의미한다고 보며 4절의 보좌는 지금 지상에서 그와 함께 그리스도의 백성의 다스림으로 본다.5) 쉐퍼드(Norman Shepherd)는 사단의 결박은 미래에 있을 것이라고 보고 첫째 부활과 성도의 다스림은 킥이나 뵈트너와 동일하게 해석한다.
그러면 후천년설은 성경의 어느 구절이 지지하는가?
마태복음 28:18-20의 대위임을 뵈트너는 인용하면서 이 구절에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으란 말씀은 단지 복음이 전파될 것이라는 고시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재림 전에 완성될 온 백성의 효과적인 복음 전도라고 한다. 역시 마태복음 16:18에서 예수님은 지옥의 권세가 교회를 이기지 못하리라고 하셨는데 교회의 진전을 저항할 능력이 없으리라는 뜻이라고 하였다. 역시 쉐퍼드(N. Shepherd)는 시편과 선지서에서 메시아의 보편적이며 승리의 통치에 대해 말하고 있는 구절들을 들고 있다(민 14:21; 시 2:8; 22:27-29; 72편; 사 2:2-4; 11:6-9; 65장; 66장; 렘 31:31-34; 슥 9:9; 13:1; 14:9).
그는 황금시대는 아직 오지 않았으며 메시아의 재림 전에 온다고 하였다. 마태복음 13:33에 누룩의 비유에서 나라의 보편적 확장을 지적하며 로마서 11장은 유대인과 이방인의 장대한 개종에 대한 전망이며 이 모든 것이 그리스도의 구속의 목적이 세상인 사실을 지지한다고 보았다(요 3:16; 17장; 계 11:15).6)
이제 마지막으로 후천년설의 문제점을 지적하기로 한다. 후쿠마(A.A. Hoekema)는 다음과 같이 지적한다.
1. 구약의 예언들이 후천년설 지지자들에 의해 구속받은 공동체의 최종상태를 나타내는 미래 천년의 황금시대를 가리키는 것으로 해석되었다. 그러나
시편 2:8; 예레미야 31:34; 이사야 65:17-25 등은 사실상 천년왕국의 상태이기보다 최종 천국의 상태 즉 새 하늘과 새 땅을 가리킨다.
2. 마태복음 24장의 대환난과 데살로니가후서 2장의 배교에 대한 공통적인 후천년설자들의 해석은 정당화될 수 없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가 재림하시
기 이전 세상은 천년왕국의 의와 평화의 시기가 아니라 환난의 시기일 것이다. 이 구절들을 다만 과거의 지나간 사건으로 취급하는 것은 잘못이다.
3. 요한계시록 20:1-6은 후천년설의 입장을 지지하지 않는다. 이 구절은 현시대에 하늘에서 그리스도와 신자의 영혼들의 통치를 묘사하는 것이지 장래
황금시대에 대한 묘사가 아니다.
예컨대 킥(Kik)은 요한계시록 20:4은 그리스도와 지상에서 지금 다스리고 있는 살아 있는 신자를 서술하는 것으로 해석한다. 그러나 4절 마지막에
내가 목베임을 당한 자들의 영혼들을 본다고 하였다. 또 5절에 어떻게 살아있는 신자들이 그리스도와 천년을 다스릴 수 있는가? 정상적인 삶은 그
렇게 오래 살수가 없지 않은가?
4. 후천년설 지지자들은 그리스도의 재림 전에 장래의 황금시대를 기대하는 것은 하나님의 왕국과 악의 세력 사이에 있는 이 세상의 역사에서 지속되
는 긴장을 정당화 할 수 없다. 예컨대 아마겟돈 전쟁(16:13-16), 곡과 마곡의 전쟁(13:36-43), 역시 예수님은 추수 때까지 하나님의 구속받은 백성들
과 악한 백성이 공존할 것을 가르치셨다.7)
주
1. The New Dictionary of the Theology(IVP, 1988), p.429
2. L. Boetner, The Millennium(Banner,1 958), p.14
3. Ibid., pp.67-70
4. B. B. Warfield, The Millennium and the Apocalypse Biblical Doctrines(Oxford, 1929), pp.648-650
5. Kik, Revelation Twenty(Presbyterian and Reformed, 1955), pp.33-37
6. A.A. Hoekeman, The Bible and Feature(Eerdmans, 1979), pp.176-177
7. Ibid., pp.177-1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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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천년설은 천년설 중에 가장 최근에 생긴 것이다. 이 설은 12세기 수도원장이었던 요아킴(Joachim)에 의해 생긴 것으로 후기 중세와 16세기에 어거스틴의 견해와 함께 쌍벽을 이루어 왔는데 개신교에 첫 영향력 있는 학자는 브라이트맨(Thomas Brightman 11562-11607)이었다. 이 설은 복음의 승리를 천년왕국으로 간주했기 때문에 개신교 학자들로 종교개혁의 성공을 보면서 복음의 발견이 교회를 위한 번영의 새로운 시대의 여명이라고 생각하게 하였다. 또 18세기에 와서는 선교 사역의 확장에서 그리고 19세기에 와서는 진보의 원리와 자유주의 신학의 출현으로 하나님의 나라를 도덕적이고 사회적인 진보로 보기도 했다. 그러나 19세기 후천년설 지지자 중에는 유명한 조직 신학자 하지(Charles Hodge), 스트롱(A.H. Strong), 브리그스(C.A. Briggs) 그리고 브라운(David Brown)등이 있다.1)
1. 후천년설의 옛 주장
어거스틴(Augustine)은 천년을 교회가 지상에서 다스리는 기간을 묘사하고 있다고 보았다. 이 견해에 따르면 성도의 천년간 다스림은 첫 부활이 주님의 부활에서 가지는 신자들의 영적인 나눔을 묘사하고 있다고 본다. 구파에서는 천년왕국을 과거의 일이라고 보는가 하면 어떤 이들은 그 축복이 아직 체험되고 있다고 보며 또 어떤 이들은 재림 직전에 있어서 아직 장래의 시간에 속했다고 본다. 말세에 교회는 성령의 능력 아래서 하나님의 사역이 크게 부흥되며 신자들이 능력을 얻어 악의 세력을 이기게 될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이 황금시대가 올 것이며 선과 악의 투쟁이나 배교가 있겠으나 그리스도의 오심으로 일반 부활과 마지막 심판이 있게 되리라 한다.
2. 후천년설의 근래의 주장
근래에 와서 이 설은 인본주의적이며 진화론적인 원리와 낙관적이며 세속적인 철학과 혼합되어 자유주의 신학자들의 입장을 크게 대변하게 되었다. 그러나 복음주의 신학 자중에 이 설을 성경적으로 변호하고 주장하는 이들도 많이 있다. 그러면 이제 후천년설의 정의부터 시작해서 이 설의 다른 천년설과의 관계 그리고 이 설의 주장과 이 설의 비판을 하기로 하자.
최근에 와서 후천년설은 하지(Charles Hodge)의 설을 크게 재생시킨 뵈트너(Loraine Boettner)의 책, The Millennium에서 자세하게 소개되었다.
그는 후천년설을 정의하기를 하나님의 나라를 파지하고 있는 말세의 사건에 대한 견해는 이제 복음의 전파와 개인의 심령 속에서 성령님의 구원사역을 통하여 세계로 확장되었으므로 이제 세계가 기독교화되며 그리스도의 재림이 일반적으로 천년왕국으로 불려지는 의와 평화의 긴 시대 끝에서 발생한다. 후천년설은 그리스도의 재림 후에 곧 일반 부활과 일반 심판과 그것들의 충만함에서 천국과 지옥이 따라온다.2)
그러므로 후천년설에 의하면 현시대는 복음의 전파로 세계 인구가 기독교로 개종하여 크게 증가되므로 천년왕국의 시대가 점차로 돌입되고 있다. 늘어나는 크리스천의 수는 유대인과 이방인을 포함할 것이다. 후천년설 지지자들은 로마서 11:25-26을 비록 유대의 정치적 왕국의 회복으로 생각하기는 않지만 유대 백성의 장차 큰 규모로 개종할 것을 가리켰다고 본다.
물론 말세에 죄가 제거되지는 않을 것이나 최소한도로 줄어들게 될 것이다. 사회, 경제, 정치 그리고 인간의 문화적인 생활이 크게 진전될 것이다. 세계의 번영이 있을 것이며 부가 더 크게 분배되어 공유되며 사막이 장미처럼 꽃이 피게 될 것이다. 국가들이 조화스럽게 공존하며 영적인 번영의 황금시대가 아마도 1,000년 이상 긴 기간 동안 지속될 것이다. 이것은 세상에 모든 사람이 크리스천이 된다거나 세상의 죄가 제거된다는 말은 아니다. 그러나 악이 점차 줄어지며 크리스천의 원리들이 시행되며 그리스도는 참으로 기독교화된 세상에 재림하실 것이다.
그러나 정말 말세에 이런 천년왕국과 같은 시대가 도래할 수 있는가? 말세에 대한 예수님의 감람 산 강화나 바울의 말씀은 어찌되는가?
뵈트너와 킥(J.M. Kik)은 마태복음 24장의 대환난과 데살로니가후서 2장에 배교에 대해서는 이미 지나간 과거라고 본다. 그러나 천년왕국을 이야기하는 요한계시록 20:7-10에서는 사단이 천년기 끝에 가서 잠시 놓일 것을 말하지 않았는가? 이에 대해 뵈트너는 그것은 그리스도의 재림 전 악의 제한된 시위라고 본다. 그 기간은 짧을 것이므로 교회를 결코 해치지 못하리라고 본다.3)
천년왕국에 대해서는 요한계시록 20:1-6에서만 나타나므로 이 구절의 해석에 대한 후천년설 지지자들의 해석을 살펴보는 것이 이 설을 이해하고 이들의 주장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월필드(B.B. Worfield)는 요한계시록 20:1-6은 현 교회 시대 동안에 사단의 결박을 묘사하며 현시대 동안에 하늘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죽은 성도의 영혼이 다스리는 것으로 보았다.4) 이 점에서 후천년설자들은 요한계시록 20:1-6절의 해석에서 무천년설과 일치한다.
킥(Kik)은 6절에 첫째 부활은 그들이 지상에 살아 있을 동안 신자들의 중생을 의미한다고 보며 4절의 보좌는 지금 지상에서 그와 함께 그리스도의 백성의 다스림으로 본다.5) 쉐퍼드(Norman Shepherd)는 사단의 결박은 미래에 있을 것이라고 보고 첫째 부활과 성도의 다스림은 킥이나 뵈트너와 동일하게 해석한다.
그러면 후천년설은 성경의 어느 구절이 지지하는가?
마태복음 28:18-20의 대위임을 뵈트너는 인용하면서 이 구절에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으란 말씀은 단지 복음이 전파될 것이라는 고시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재림 전에 완성될 온 백성의 효과적인 복음 전도라고 한다. 역시 마태복음 16:18에서 예수님은 지옥의 권세가 교회를 이기지 못하리라고 하셨는데 교회의 진전을 저항할 능력이 없으리라는 뜻이라고 하였다. 역시 쉐퍼드(N. Shepherd)는 시편과 선지서에서 메시아의 보편적이며 승리의 통치에 대해 말하고 있는 구절들을 들고 있다(민 14:21; 시 2:8; 22:27-29; 72편; 사 2:2-4; 11:6-9; 65장; 66장; 렘 31:31-34; 슥 9:9; 13:1; 14:9).
그는 황금시대는 아직 오지 않았으며 메시아의 재림 전에 온다고 하였다. 마태복음 13:33에 누룩의 비유에서 나라의 보편적 확장을 지적하며 로마서 11장은 유대인과 이방인의 장대한 개종에 대한 전망이며 이 모든 것이 그리스도의 구속의 목적이 세상인 사실을 지지한다고 보았다(요 3:16; 17장; 계 11:15).6)
이제 마지막으로 후천년설의 문제점을 지적하기로 한다. 후쿠마(A.A. Hoekema)는 다음과 같이 지적한다.
1. 구약의 예언들이 후천년설 지지자들에 의해 구속받은 공동체의 최종상태를 나타내는 미래 천년의 황금시대를 가리키는 것으로 해석되었다. 그러나
시편 2:8; 예레미야 31:34; 이사야 65:17-25 등은 사실상 천년왕국의 상태이기보다 최종 천국의 상태 즉 새 하늘과 새 땅을 가리킨다.
2. 마태복음 24장의 대환난과 데살로니가후서 2장의 배교에 대한 공통적인 후천년설자들의 해석은 정당화될 수 없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가 재림하시
기 이전 세상은 천년왕국의 의와 평화의 시기가 아니라 환난의 시기일 것이다. 이 구절들을 다만 과거의 지나간 사건으로 취급하는 것은 잘못이다.
3. 요한계시록 20:1-6은 후천년설의 입장을 지지하지 않는다. 이 구절은 현시대에 하늘에서 그리스도와 신자의 영혼들의 통치를 묘사하는 것이지 장래
황금시대에 대한 묘사가 아니다.
예컨대 킥(Kik)은 요한계시록 20:4은 그리스도와 지상에서 지금 다스리고 있는 살아 있는 신자를 서술하는 것으로 해석한다. 그러나 4절 마지막에
내가 목베임을 당한 자들의 영혼들을 본다고 하였다. 또 5절에 어떻게 살아있는 신자들이 그리스도와 천년을 다스릴 수 있는가? 정상적인 삶은 그
렇게 오래 살수가 없지 않은가?
4. 후천년설 지지자들은 그리스도의 재림 전에 장래의 황금시대를 기대하는 것은 하나님의 왕국과 악의 세력 사이에 있는 이 세상의 역사에서 지속되
는 긴장을 정당화 할 수 없다. 예컨대 아마겟돈 전쟁(16:13-16), 곡과 마곡의 전쟁(13:36-43), 역시 예수님은 추수 때까지 하나님의 구속받은 백성들
과 악한 백성이 공존할 것을 가르치셨다.7)
주
1. The New Dictionary of the Theology(IVP, 1988), p.429
2. L. Boetner, The Millennium(Banner,1 958), p.14
3. Ibid., pp.67-70
4. B. B. Warfield, The Millennium and the Apocalypse Biblical Doctrines(Oxford, 1929), pp.648-650
5. Kik, Revelation Twenty(Presbyterian and Reformed, 1955), pp.33-37
6. A.A. Hoekeman, The Bible and Feature(Eerdmans, 1979), pp.176-177
7. Ibid., pp.177-1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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