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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년왕국-무천년설(Amillenialism)

천년왕국-무천년설(Amillenialism)
http://revdavidsuh.com/bbs/view.php?id=Revelation&no=3
 
무천년설은 그리스도의 재림 사건 후에 천년간 통치가 있을 것을 부인한다. 그러므로 무천년설은 지상에서의 그리스도의 실제적인 통치가 있을 것을 부인한다. 무천년설은 1,000년 기간의 문자적인 의미의 나라를 기대할 근거가 성경에 없다고 생각한다.
 
이 설은 역사적으로 보면 어거스틴(354-430)이 그의 하나님의 도성(The city of God- 본사역간)에서 최초로 그리스도의 재림 후에 있을 천년왕국을 부인하였다. 그리고 아프리카의 도나티스파였던 타이코니우스(Tyconius)가 처음으로 요한계시록의 해석에서 반복적 방법을 시도하였다. 그는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여러 가지 환상의 수는 그 책 전체를 통한 기본 주제를 반복하고 있다고 보았다. 어거스틴과  타이코니우스를 따르는 많은 가톨릭의 학자들은 요한계시록 20장에 천년은 문자적이 아니며 그 시간은 교회의 시대를 의미하며 그때는 그리스도의 초림과 재림 사이라고 보았다.  타이코니우스는 첫째 부활은 영적인 죽음에서 새로운 생명에로의 영의 부활로 보았고 둘째 부활은 역사의 끝에 가서 몸의 부활이라고 해석하였다.1)
 
그 후에 후로리스의 요아킴(Joachim of Floris, 1135-1202)은 요한계시록을 그리스도의 시대부터 종말까지 서구 역사의 사건들에 대한 예언으로 보았다. 그는 천년기가 그의 시대에서는 아직 미래에 있을 것이나 곧 시작되리라고 생각하였다. 그를 따랐던 푸랜시스파(Franciscans)에서는 바벨론을 로마 교회와 그리고 적그리스도를 교황과 동일시하였다. 개혁자들이 그 견해를 취했으며 근래에는 보수적인 신약의 학자 알포드(Henry Alford 1810-1871)가 이 견해를 채택하였다.
 
또 종교개혁 때 다른 형태의 해석이 발전하였다. 예수파 학자 리베라(Ribera 1537-1591)는 요한계시록의 모든 사건은 장래에 대한 것으로 로마나 교황 시대보다는 오히려 종말에 적용시켰다. 그는 천년기를 그리스도의 초림과 재림 사이에 기간으로 보는 어거스틴의 견해를 견지하였다. 그러나 어거스틴의 견해에서 중요한 요점을 변경시켰다. 천년기가 그리스도의 초림과 재림 사이에 지상에서 일어날 사건으로 보지 않고 하늘에서 일어날 사건으로 보았다. 역사의 어느 때에 성도들이 순교했을 때 그들은 죽지 않고 최종 부활 전 중간 상태에서 그리스도와 하늘에서 다스린다고 보았다. 이 견해에 의하면 요한계시록 20장에서 요한의 기본 메시지는 목회적이라는 것이다. 만일 크리스천들이 예수를 위해서 죽음에 직면한대도 그들은 용기를 가질 수 있었다. 왜냐하면 그들이 죽임을 당한다면 그들은 하늘에서 그와 함께 다스리러 가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이런 경향은 화란의 개혁주의 신학자 벌카우어(G.C. Berkouwer)와 프린스톤신학의 보수적인 학자 워필드(B.B. Warfield)의 영향인 것처럼 보인다.2)
 
무천년설에도 다양한 견해가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무천년설은 천년이라는 본문의 기간이 문자적인 기간이라고 보지 않는다. 렌스키는 1,000년을 성육신과 예수님의 승귀(계 12:5)에서부터 사단을 마지막으로 지옥에 던져 넣는(계 20:10) 즉 전 신약의 기간으로까지 확대된다고 보았다.3)
아브라함 카이퍼(Abraham Kuyper)도 요한계시록에서 1,000년은 결코 문자적으로 취해지지 않았으며 우리에게 온 하나님의 용어는 적용할 수 있는 해석의 요청에 따라서 해석되어져야 한다고 주장하였다.4)
 
근래 20세기의 무천년설 지지자들로는 벌코프(Louis Berkhof), 핸드릭슨(William Hendriksen), 알리스(Aswald Allis), 하밀톤(Floyd Hamilton), 보스(Gerhardus Vos) 그리고 많은 학자들이 있다. 이들은 천년설에 대한 어거스틴의 것을 수정 해석하고 있다. 어거스틴과 같이 무천년설 지지자들은 요한계시록의 반복적 해석을 지지한다. 그러나 어거스틴과 다르게 1,000년을 문자적으로 보지 않는다.  그들은 천년은 성도들이 그리스도와 함께 하늘에서 다스리는 것을 가리킨다고 본다. 천년은 그리스도의 죽음에서 그의 재림 사이에 일어난 사건으로 본다. 사단의 결박은 부분적으로 그가 시험을 이기심으로 사탄을 이기신 것과 후에 그리스도에게서 붙은 신자들의 승리로 이루어진다. 미리건( Milligan)은 물론 사탄이 잠깐 동안 풀려나게 될 것이나 사탄은 세상을 위해서 풀려 날 것이다. 성도에 관한 한 사탄은 완전히 묶여 있다. 그러나 그의 세력은 악자에게만 역사 될 것이라 하였다.5)  첫째 부활은 신자의 영혼이 그가 죽을 때 지상에서 하늘로 취해질 때 발생하며 둘째 부활은 만인의 부활과 관계가 있다고  본다. 그러므로 무천년설 지지자들은 요한계시록 20:4-6에 나오는 천년은 죽은 성도들이 하늘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현재 다스리고 있는 것을 묘사하는 것으로 본다. 사단의 결박은 그리스도의 초림과 재림 사이의  전 기간으로 그리스도의 재림 직전 끝에 있을 것이며 그리스도는 이 하늘의 천년 통치 후에 재림하실 것이라고 주장한다.
 
또 하나님의 나라는 이 세상에서 지금 현재 승리하신 그리스도가 그의 말씀과 성령으로 그의 백성과 다스리고 있는 것으로 주장한다. 물론 장래에 새 땅에서 있을 생명의 영광스럽고 완전한 나라를 기대한다. 그리스도가 비록 죄와 악을 이겨 승리하셨으나 악의 나라는 세상 끝날까지 하나님의 나라와 공존하게 될 것이다. 비록 우리는 이미 현재에 많은 종말적인 축복을 누리고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마지막 상태로 안내될 그리스도의 재림과 연관된 미래 사건의 절정적인 연속을 기대한다. 소위 시대의 징조가 그리스도 재림 직전에 있을 것이며 그리스도의 재림 전에 모든 민족에게 복음이 전파되어 이스라엘의 충만한 수가 개종하게 될 것을 믿는다. 그리고 재림 전에 적그리스도의 출현과 환난과 배교의 현상이 있을 것이다.
 
역시 무천년설 지지자들은 그리스도의 재림은 단 한번의 사건이므로 두 가지면 을 가진 사건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그리스도의 재림 때에 일반 부활 즉 신자와 불신자의 부활이 있을 것이다.  부활 후에 아직 살아 있는 신자들은 변화되고 영화될 것이다. 이 살아난 신자와 변화된 신자들이 공중에서 주님을 만나도록 들림 받게 될 것이다. 그 후에 재림하셔서 마지막 심판을 하실 것이요 그때 신자는 영원한 새 하늘과 새 땅의 축복을 영원히 누리는 반면에 불신자는 영원한 심판을 받게 될 것이다.6)  무천년설을 주장하는 이유에 대해 버이스(Harry Buis)는 다음과 같이 지적한다.
   1. 1,000년 기간을 언급하고 있는 성경의 다른 구절이 없다. 불분명한 구절은 보다 분명한 구절에 비추어 해석되어야 한다.
   2. 전 책이 상징으로 채워져 있다. 그러므로 문자적인 일천년 기간을 고집하여 세운 교리는 약한 기반위에 세운 건물과도 같다.
   3. 무천년설의 입장은 짐승에 대한 주된 적용이 로마 제국이었다는 해석과 가장 잘 부합된다.
   4. 사도신경과 같은 교회의 신조들이 이 시대와 영원한 천국 사이에 그런 문자적 기간 안에 대한 언급을 하고 있지 않다. 모든 시대에 위대한 성경학자
      들, 종교 개혁자들은 전천년설자들이 아니었다.7)
이제 여기서 무천년설의 문제점을 살펴보기로 한다. 무천년설의 문제점은 물론 1,000년이란 기간이 요한계시록에서만 나오는 것이 사실이요, 요한계시록이 상징으로 채워진 책인 것을 인정하지만 요한계시록에서 구원받을 자의 수가 각 지파에서 12,000명이라고 했을 때 그것도 똑같이 상징으로 해석해야 하는가의 문제점을 안고 있다.
  
   주
   1. A.F. Johnson, Revelation(E.B.C. Vol. 12),  p.578
   2. A.F. Johnson and R.E. Wesser, What Christian Believe(Zondervan, 1989), pp.459-460
   3. R.C.H. Lenski, The Interpretation of St. John's Revelation, pp.568-569
   4. A. Kuyper, The Revelation of St. John, p.277; J.F. Walvoord, The Revelation of Jesus Christ,  p.285)
   5. W.W. Milligan, The Book of Revelation, p.337
   6. A.A. Hoekema, The Bible and the Feature(Eerdmans, 1979), p.174
   7. Harry Buis, The Book of Revelation, pp.107-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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