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숙-좋은나무성품학교-좋은관계를 맺어갈 수 있는 능력은 좋은 성품에서 나온다?
이영숙-좋은나무성품학교-좋은관계를 맺어갈 수 있는 능력은 좋은 성품에서 나온다?
이영숙 박사는 하바드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조사를 토대로 하여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 인용 자료 시작 ------------------------------------
자녀가 학업을 통해 지식을 쌓아 남들보다 좀 더 많이 알아서 살아가는 데 편할 수는 있다. 하지만 성품 좋은 사람들은 사람들과의 갈등을 해결하는 더 가치 있는 능력을 갖는다. 학업이 삶의 위기에서 나를 구해주는 일은 거의 없다. 갈등도 해결해주지 못한다. 인간관계를 성공적으로 만들어나가는 능력은 오로지 그 사람의 성품에서 나온다. 그러므로 관계맺기의 비밀을 아는 것만이 진정한 성공을 가져다 줄 수 있다. 내가 먼저 감사하고, 먼저 용서를 구하고, 잘 안 되는 것은 도움을 청하고, 그리고 내 마음을 표현해서 다른 사람들과 잘 소통하는 방법을 아는 것이 바로 그 비밀이다.
그리고 이런 관계맺기의 비법들은 가정에서부터 보고 배움으로써 완숙해진다. 가정에서 인간관계의 소통을 경험해본 이는 사회에서도 사람들과 잘 소통한다. 그런 사람은 어디서든 사람들과 만나는 일에서 관계를 잘 맺는 성품을 발현한다. 곧 잘 사는 삶의 공식을 실천하는 것이다. 부모는 성공하는 삶의 비밀이 다른 사람과 좋은 인간관계를 맺는 데 있다는 사실을 알고 일찍부터 자녀에게 좋은 성품을 가르치고 훈련시켜야 한다. 좋은 관계를 맺어갈 수 있는 능력은 좋은 성품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자료출처: 이영숙, 성품양육바이블, 도서출판 물푸레, 2011, pp.12-13)
------------------------------------ 인용 자료 끝 ------------------------------------
글을 읽으면서,
이 책이 "성품양육바이블"이라는 제목이라는 것을 다시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무엇을 위한 성품양육이냐?'는 것이지요.
이영숙 박사가 "바이블"이라는 말을 붙였다는 것 자체가 잘못된 것입니다.
성경을 믿는다는 분이 성경이 아닌
자신이 쓴 책에다 바이블이라는 제목을 덧붙였다는 것은
매우 불경스러운 것입니다.
제목대로라면, "성품양육성경"이라는 말이 되는데,
그녀가 말하는 "성경"이란 무엇을 위한 "성경"일까요?
그것은 순전히 '성공'을 위한 '성경'을 말합니다.
이 글에서도 이영숙 박사의 그런 '의지'가 드러납니다.
그녀는 성품을 강조하는 듯 하지만, 그녀가 의도하는 것은
"잘 사는 삶의 공식을 실천하는 것"입니다.
성경이 말하는 하나님 앞에서의 인간다움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좋은 성품이란 그저 '잘 살기 위한 공식'에 불과합니다.
성품이 안 좋아도 잘 사는 사람들은 세상에 얼마든지 있습니다.
이영숙 박사가 사례로 제시한 그 실패한 사람들만 있는 것이 아닙다.
실제로, 우리가 살아가는 주위를 둘러보아도
성품과는 전혀 상관이 없는 성공한 사람들이 너무나도 많습니다.
"잘 사는 삶의 공식을 실천하는 것"이라면 굳이 성품이어야할 필요는 없습니다.
이영숙 박사가,
"좋은 관계를 맺어갈 수 있는 능력은 좋은 성품에서 나오기 때문이다."라고 말하는 것도 같은 맥락입니다.
그녀가 말하는 "좋은 관계" 역시 잘 살기 위한, 성공을 위한 스펙에 불과합니다.
관계가 성공을 위한 스펙이라는 것은 다른 사람에 대한 모독입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하나의 인격체를 나의 성공을 위한 수단으로 이용하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그렇게 가르치지 않습니다.
성경은 한 사람을 대할 때,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음받은 존재로 대접하라고 합니다.
그것은 세상의 그 어떤 종교와 사상과 심리학에도 없습니다.
심리학와 세상의 성공이라는 사상에 오염된
이영숙 박사의 "좋은나무성품학교"에서 벗어나시기 바랍니다.
RPTministries 정태홍 목사
http://www.esesang91.com
http://twtkr.com/rptministries
http://www.facebook.com/RPTministries
이영숙 박사는 하바드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조사를 토대로 하여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 인용 자료 시작 ------------------------------------
자녀가 학업을 통해 지식을 쌓아 남들보다 좀 더 많이 알아서 살아가는 데 편할 수는 있다. 하지만 성품 좋은 사람들은 사람들과의 갈등을 해결하는 더 가치 있는 능력을 갖는다. 학업이 삶의 위기에서 나를 구해주는 일은 거의 없다. 갈등도 해결해주지 못한다. 인간관계를 성공적으로 만들어나가는 능력은 오로지 그 사람의 성품에서 나온다. 그러므로 관계맺기의 비밀을 아는 것만이 진정한 성공을 가져다 줄 수 있다. 내가 먼저 감사하고, 먼저 용서를 구하고, 잘 안 되는 것은 도움을 청하고, 그리고 내 마음을 표현해서 다른 사람들과 잘 소통하는 방법을 아는 것이 바로 그 비밀이다.
그리고 이런 관계맺기의 비법들은 가정에서부터 보고 배움으로써 완숙해진다. 가정에서 인간관계의 소통을 경험해본 이는 사회에서도 사람들과 잘 소통한다. 그런 사람은 어디서든 사람들과 만나는 일에서 관계를 잘 맺는 성품을 발현한다. 곧 잘 사는 삶의 공식을 실천하는 것이다. 부모는 성공하는 삶의 비밀이 다른 사람과 좋은 인간관계를 맺는 데 있다는 사실을 알고 일찍부터 자녀에게 좋은 성품을 가르치고 훈련시켜야 한다. 좋은 관계를 맺어갈 수 있는 능력은 좋은 성품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자료출처: 이영숙, 성품양육바이블, 도서출판 물푸레, 2011, pp.12-13)
------------------------------------ 인용 자료 끝 ------------------------------------
글을 읽으면서,
이 책이 "성품양육바이블"이라는 제목이라는 것을 다시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무엇을 위한 성품양육이냐?'는 것이지요.
이영숙 박사가 "바이블"이라는 말을 붙였다는 것 자체가 잘못된 것입니다.
성경을 믿는다는 분이 성경이 아닌
자신이 쓴 책에다 바이블이라는 제목을 덧붙였다는 것은
매우 불경스러운 것입니다.
제목대로라면, "성품양육성경"이라는 말이 되는데,
그녀가 말하는 "성경"이란 무엇을 위한 "성경"일까요?
그것은 순전히 '성공'을 위한 '성경'을 말합니다.
이 글에서도 이영숙 박사의 그런 '의지'가 드러납니다.
그녀는 성품을 강조하는 듯 하지만, 그녀가 의도하는 것은
"잘 사는 삶의 공식을 실천하는 것"입니다.
성경이 말하는 하나님 앞에서의 인간다움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좋은 성품이란 그저 '잘 살기 위한 공식'에 불과합니다.
성품이 안 좋아도 잘 사는 사람들은 세상에 얼마든지 있습니다.
이영숙 박사가 사례로 제시한 그 실패한 사람들만 있는 것이 아닙다.
실제로, 우리가 살아가는 주위를 둘러보아도
성품과는 전혀 상관이 없는 성공한 사람들이 너무나도 많습니다.
"잘 사는 삶의 공식을 실천하는 것"이라면 굳이 성품이어야할 필요는 없습니다.
이영숙 박사가,
"좋은 관계를 맺어갈 수 있는 능력은 좋은 성품에서 나오기 때문이다."라고 말하는 것도 같은 맥락입니다.
그녀가 말하는 "좋은 관계" 역시 잘 살기 위한, 성공을 위한 스펙에 불과합니다.
관계가 성공을 위한 스펙이라는 것은 다른 사람에 대한 모독입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하나의 인격체를 나의 성공을 위한 수단으로 이용하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그렇게 가르치지 않습니다.
성경은 한 사람을 대할 때,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음받은 존재로 대접하라고 합니다.
그것은 세상의 그 어떤 종교와 사상과 심리학에도 없습니다.
심리학와 세상의 성공이라는 사상에 오염된
이영숙 박사의 "좋은나무성품학교"에서 벗어나시기 바랍니다.
RPTministries 정태홍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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