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사람은 천사를 가지고 있다?
내적치유와 안셀름 그륀의 '아래로부터의 영성'(3)
승인 2014.11.12 13:25:19
안셀름 그륀은 ‘마음속의 신’을 만나기 위해 무엇을 어떻게 할까? 그것은 ‘영적인 안내자’를 의미하는 ‘천사’를 통해서 이루어진다. 안셀름 그륀의 ‘아래로부터의 영성’은 다음과 같은 ‘에바그리우스 폰티쿠스’(Evagrius Ponticus)의 말로 정리한다.
"만약 네가 하나님을 알고 싶으면 먼저 너 자신에 대하여 알도록 해라."1)
에바그리우스(346년-399년)가 누구인가?2) 그는 지금의 터키 폰투스(Pontus)의 이보라(Ibora)에서 태어났다. 콘스탄티노플에서 세상 것을 즐기고 살다가 그의 영혼이 위험에 처했다는 경고의 꿈을 꾸게 된다. 예루살렘으로 가서 금욕주의를 추구하는 멜라니아 장로의 제자가 되었다. 그 이후로, 에바그리우스는 이집트의 사막에서 독거하며 수도사의 삶을 살았다. 그의 주된 핵심은 금욕주의와 명상을 통하여 하나님과 하나 되는 상태에 들어간다는 것이다.
에바그리우스의 삼부작이라 불리는 『프락티코스』, 『그노스티코스』, 『켈팔라이아 그노스티카』 중에서, 『그노스티코스』는 관상기도의 경지에 오른 수도승을 위한 실천적 조언이다. 에바그리우스의 영성은 두 가지 영역인, 프락티케(pratiké, 수행)와 그노스티케(gnostiké, 관상· 인식)으로 구분한다. 프락티케는 인간의 마음에 있는 불순한 욕망과 감정을 정화하는 영적 투쟁을 하는 수행(修行)이다. 그노스티케는 인간의 이성에 쌓인 무지를 걷어 내어 참된 지혜에 도달하는 영적 투쟁인 득도(得道), 깨달음이다. 수도자들은 프락티케를 완수하여 그노스티케로 나아간다.3) 프락티케의 목표는 무엇인가? 그것은 욕망의 부재인 아파테이아(apatheia)다.4) 아파테이아란 무념무상을 의미한다.
무념무상은 아무런 느낌도 생각도 상상도 없는 것을 말하지 않는다. 만물의 변화를 지각하나 집착하지 아니하고 묵묵히 바라보는 상태를 말한다. 그래서 영어로는 “freedom from all ideas and thoughts”라고 번역한다. 이것을 누가 말했을까? 관상기도의 대가인 토마스 머튼이다(말씀의 샘물 제3권, 고전예화 토마스 머튼의 기도 3단계, p. 124). 이런 말이 서양인들에게는 심오하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동양인들에게는 매우 익숙하다. 왜냐하면 (선)불교에서 하는 말이기 때문이다. 안셀름 그륀이 선불교 명상을 하게 되는 것은 그 근본적인 흐름이나 목표가 같기 때문이다.
▲ amazon.com에서 캡쳐
놀랍게도 이런 아파테이아의 상태, 무념무상의 상태에 도달하는 것이 수행으로 가능하다고 말한다. 수행으로 무념무상의 세계에 도달한다는 것은 인간이 이루어 낼 수 없다. 그것이 가능해지고 그 이상으로 나아가는 것은 ‘영적인 안내자’와의 만남, 곧 ‘접신’으로 가능하다.
이런 사실을 안셀름 그륀은 너무나도 잘 알고 있다. 그는 ‘영적인 안내자’라 하지 않고 ‘천사’(an angel)라고 말한다. 『Everybody Has an Angel』에서 모든 사람들은 영적인 협력자로서 천사를 소유하고 있다고 말한다.5) 또 다른 책 『Angels of Grace』에서는 50가지의 천사로 말한다. 아이러니 하게도 이 책을 소개하는 글에는 안셀름 그륀을 ‘영적인 안내자’로 묘사하고 있다.6)
▲ amazon.com에서 캡쳐
신비주의 영성에서는 ‘영적인 안내자’를 만나기 위해 만다라와 만트라를 한다. 만다라는 그림을 그리는 방식이고 만트라는 한 단어를 의미 없이 반복하는 것이다. 절에서 중이, ‘나무아비타불 관세음보살’을 반복하는 것이나, 교회에서 방언받기 위해서 ‘할렐루야’를 천 번하는 것이나 똑같은 방식이다.
오늘날 관상기도를 조장하는 사람들은 만트라와 향심기도는 다르다고 말하지만 그것은 매우 미혹적인 말이다. 왜냐하면 만트라를 하든지 향심기도를 하든지 그들이 지향하는 목표는 같기 때문이다. 무념무상의 세계에 이르기 위한 스타일만 다를 뿐이다. 스타일이 다르다 한들 무엇을 주저하며 무엇을 꺼리겠는가?
두 번째로 ‘마음속의 신’을 만나기 위해 자신이 처한 구체적인 상황으로 나아간다. 에바그리우스는 ‘하느님을 알고 싶다면 너 자신에 대해서 알아야 한다’ 고 말했으며, 안셀름 그륀은 “자신이 처해 있는 구체적인 현장을 아는 것, 더 나아가서 자신의 무의식 세계까지 살펴봄으로써 하느님께 나아갈 수 있다.”고 말했다.7)
자신이 처해 있는 구체적인 현장이란 무엇을 말하는가? 인생의 실패와 약한 부분들, 무능함과 죄조차도 하느님을 향한 마음의 문을 여는 역할을 한다고 말한다. 왜냐하면, 자신의 생각과 느낌, 자신의 고통와 질병들 안에서 하느님의 음성을 듣고, 그보다 더 나아가서 인간의 가능성의 한계에 부딪혔을 때, 바로 그곳에서 하느님과의 인격적인 관계를 위한 마음의 문을 열어 갈 수가 있다고 말한다. 안셀름 그륀은 그 예를 성경의 인물들로 말한다.
"바울로는 바리사이 출신으로서 위로부터의 영성을 추구한 전형적인 사람이다. …… 그러나 그는 다마스커스로 가는 길에서 완전히 땅에 쓰러져 주저앉게 되었으며, 그것과 함께 그가 그때까지 쌓아온 삶의 모든 것들도 무너져 내리고 말았다. 그는 무기력한 상태에 있었다. 그러한 상태에서 그는 그리스도께서 몸소 그에게 작용하시고 그를 변화시키는 것을 체험하게 되었다. 이 사실은 우리가 덕행과 금욕 또는 자기수련을 통해서는 하느님께 도달할 수 없고, 오직 자신의 무능을 인정함으로써 하느님께 도달할 수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있다. …… 그는 자신의 무능과 약함에 의해 자신의 힘으로 하느님께 도달하려는 유혹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그는 하느님 품에 자신을 내맡겨 하느님의 은총으로 올바르게 자신을 지탱해 나갈 수 있었다."8)
기독교인들이 이런 글을 읽으면, ‘도대체 이런 글이 왜 기독교적이지 않다는 말인가?’하고 반문을 하고, 지극히 기독교적이라고 생각하면서 안셀름 그륀과 같은 현대영성가들의 말에 넘어가버린다. 그러나, 속지 말기 바란다. 안셀름 그륀은 오늘날 하나님을 경험하기 위해서 ‘감각(zintuigen, sense)을 열어라’고 말한다.9)
감각을 열어라는 말이 무슨 의미인가? 안셀름 그륀은 모든 사람 속에 하나님이 거한다고 말한다. 모든 사람 속에 신성한 씨앗(een goddelijke kern)이 있다고 말하는 것은, 칼빈의 종교적 씨앗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내면에 신성이 있다는 뜻이다. 이것이 바로 안셀름 그륀의 ‘신성한 내면아이’다. “자신의 무의식 세계까지 살펴봄으로써 하느님께 나아갈 수 있다.”는 것은 인간의 내면에 있는 신성을 의미한다. 안셀름 그륀이 감각을 열어라는 것은 인간의 내면에 있는 ‘신성의 열림’을 말한다. 그러기에 안셀름 그륀의 영성은 신자나 불신자에도 통하는 영성이며, 예수 그리스도가 없어도 되는 보편적인 영성이다.10) 안셀름 그륀의 다음과 같은 말을 읽어보라.
"초대교회 교부들은 영혼의 어두운 곳으로 그리스도가 들어가는 것을 구원의 행위로 보았다. 우리 영혼의 깊은 곳에 빛이 비치고, 억압되어 있던 모든 것들에 그리스도의 손길이 닿아 생명으로 일깨워진다. 아래로 내려가는 것과 위로 올라오는 것은 모든 종교에서 인간이 하느님에 의해 변화되는 것을 서술하는 표상들이다."11)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시고 장사되는 것이 구원으로 말한 사람은 오리겐과 대 마카리우스의 영향이라고 안셀름 그륀은 말한다. 이것은 인간이 직면하는 연약함과 실패와 죄악들을 그것 자체로 구원에 이르는 과정으로 보는 것이다. 그리스도가 낮아지셨듯이 우리도 그렇게 낮아짐으로 구원에 이르게 한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치명적인 오류가 발생하게 된다. 그리스도의 낮아짐과 우리의 낮아짐이 동등하게 되어 버리기 때문이다.
현대 영성에 오염되어, 그리스도를 겸손의 모범으로 내세우는 것은 그리스도의 겸손과 동일시되어 인간 내면의 신성을 체험하는 방향성으로 나아가게 된다. 오늘날 ‘일상의 영성’은 이런 영성에 기초하고 있다. ‘일상의 영성’은 일상에서 신성을 체험하는 영성을 말한다. 안셀름 그륀의 영성이 내적치유에 도입이 된다는 것은 인간의 내면에 신성이 있다는 것을 받아들이고 신성의 체험으로 가는 겸손으로 나아가게 된다.
참된 기독교냐? 아니냐?는 ‘신성한 내면아이’가 있느냐? 없느냐?로 결정된다. 내적치유라는 이름으로 안셀름 그륀의 영성에 오염이 되면 결국은 그 신성의 체험으로 가게 된다. 오늘날 현대 영성가들과 치유자들은 인간의 삶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영성’으로 접근하고 있다. 그러나 그들의 영성은 ‘신성한 내면아이’에 기초한 비성경적인 영성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 하나님께만 신성이 있고 우리는 신성이 없다. 신성이 하나님께도 있고 인간에게도 있다고 하면 기독교는 완전히 무너져 버린다. 그러나, 현대 영성은 모든 인간의 내면에 신성이 있다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시어, 이런 멘탈리티를 거부하고 일어서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더 많이 일어나기를 기도한다.
<각주>
1) 안셀름 그륀, 아래로부터의 영성, 전헌호 역(서울, 분도출판사, 2011), 7.
2) 관상기도의 여명기에 속하는 사람을 말할 때, 성 안토니우스(St. Anthonitus) (251-356), 에바그리우스 폰티쿠스(Evagrius Ponticus) (346-399), 존 카시안(John Cassian) (360-435) 이 세 사람을 말한다. 에바그리우스는 553년 회의에서 오리겐과 디디무스와 함께 이단으로 정죄를 되었다.
3) 자세하게 알기를 원하면,
http://evagriusponticus.net/corpus.htm와 http://desertfathers.blogspot.kr/2011/05/evagrius-ponticus-345-399.html을 참고하라.
4) http://www.catholic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8086 고진석 신부, 에바그리우스 폰티쿠스에게 배우는 수행의 지혜
5) http://www.amazon.co.uk/Everybody-Has-Angel-Anselm-Gruen/dp/0824518616 Review: In Everybody Has An Angel, Benedictine monk Anselm Gruen (Abbey of Muensterschwarzach, Germany) presents the angels of the bible as spiritual helpers quite accessible to Christians today. There is the Accompanying Angel; the Healing Angel; the Angel who 'Shares My Joy'; and many, many more showcasing and mirroring the gentleness and compassion of God. Enthusiastically recommended for the non-specialist general reader with an interest in religion, spirituality, and the phenomena of angelic beings, Everybody Has An Angel underscores that we as humans are held safe in a very special way, that we do not have the responsibility for everything that happens to us. --Internet Book Watch
6) http://www.bookdepository.com/Angels-Grace-Anselm-Gruen/9780860122838 “Anselm Gruen is a Benedictine monk, noted retreat-giver, and spiritual guide.” http://www.amazon.com/Angels-Grace-Continuum-Icons-Anselm/dp/0860122832 Angels of Grace “Angels are images of the deep-seated, constant longing for help and healing, which does not come from ourselves. …… Angels are spiritual travelling companions. They bring us into touch with a desire that each of us has deep down. They are a source of inspiration. They breahe another, large life into us, that goes with this lognging in our hears." (p. 8) "They are messengers of hope that we do not live to no purpose, that we can reach the goal of our life.(p. 9)
7) 안셀름 그륀, 아래로부터의 영성, 전헌호 역(서울, 분도출판사, 2011), 7.
8) 같은 책, 23.
9) http://www.vergadering.nu/boekgrun-god-ervaren.htm Anselm Grün의 『God ervaren』소개글에서, Hoe kunnen wij vandaag God ervaren? Op die vraag antwoordt Anselm Grün: 'Wil je God ervaren, open dan je zintuigen'. Wie zijn zintuigen scherpt voor wat om hem heen gebeurt - voor zijn medemensen, voor de natuur, maar vooral ook voor zijn eigen innerlijk - die ervaart God: 'God toont zich aan ons en spreekt tot ons; hij laat zich betasten, smaken en ruiken.'
10) http://www.stichting-promise.nl/english-articles Algemene spiritualiteit: Grüns spiritualiteit is er voor christenen en niet-christenen. Het kan ook zonder Jezus. Volgens Grün woont God in ieder mens, daar moeten we ons alleen van bewust worden. “Jezus toont aan degenen die God zoeken dat het rijk Gods al in hen is, dat er in hen al een goddelijke kern is, dat zij in God zijn en dat zij slechts in God hun ware wezen vinden” (p. 17).
11) 안셀름 그륀, 아래로부터의 영성, 전헌호 역(서울, 분도출판사, 2011), 30.
http://www.good-faith.net/news/articleView.html?idxno=1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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