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재성교수의 답변글”에 대하여
“하재성교수의 답변글”에 대하여
“하재성교수의 답변글”에 대하여하재성 교수님께바쁘신 가운데도 이렇게 답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교수님의 댓글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답변합니다.1. 공정성이 없다?저는 교수님의 글을 매도하지 않았습니다. 보고 싶은 색깔만을 덧칠해서 비판하지 않았습니다. 교수님의 논문을 읽고 예배를 다시 생각하며, 논문 전체가 잘못되었다는 것이 아니라 그 속에 있는 심리학적인 요소에 대하여 말했습니다.교수님께서는 공정성을 말씀하셨습니다. 교수님께서 말씀하시는 공정성의 기준은 무엇인지요? 교수님께서는 예배마저도 실존적인 접근을 말씀하시면서 왜 타인에게는 공정성 있게 접근하라 하시는지요? 그것은 교수님의 글을 긍정만 하라는 주관적 강요가 아닐런지요.교수님께서는 이 글을 “논문”이라 하셨습니다. 저는 일차적으로 교수님을 혼합주의자다 다원주의자다 그렇게 말하지 않았습니다. 저의 강조점은 교수님께서 쓰신 그 “논문”에 인용한 글의 저자들이 그런 성향을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2. 심리학이 “그렇게 대단한 영적인 세력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과연 그럴까요? 교수님께서는 칼빈을 말씀하십니다. 칼빈이 심리학에 대하여 무엇이라고 말했는지요? 그것을 구체적으로 말씀해 주십시오. 칼빈이 심리학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무엇이라고 말했는지 교수님은 저에게 분명하게 대답해 주실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제가 말하는 프로이트와 융이 반박할 가치가 없다고 하셨습니다. 과연 일부 추종자들만 그렇게 따르고 있을까요? 그러면 현대의 영성가들은 왜 그렇게 칼 융을 추종하고 있을까요? 그들의 책은 칼 융이 기본적으로 전제되어 있습니다. 그렇다면 누가 똑바로 보고 있는 것일까요?융과 심리학자들이 말하는 상징과 성경이 말하는 성례를 말하는 상징과 과연 그 의미가 같은지요? 프로이트와 칼 융이 그렇게 가치가 없다면 왜 상징에 대하여 논문에서 말씀하셨는지요? 교수님께서는 “그저 인간의 생각이나 행동을 더 깊이 이해하고 치료를 돕고자 하는 사람들의 연구 정도라고 생각합니다.”라고 말씀하셨는데도 왜 예배에서 상징을 말씀하셨는지요? 심리학이 다만 인간을 이해하는 정도라면 거기서 그쳐야 하는데 그렇지 않다는 것을 교수님께서는 교수님의 논문에서 스스로 말하고 있습니다.3. 영어를 인용하는 책을 다 읽고 말해라?교수님께서는 Hunter가 혼합주의가 아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Hunter는 분명하게 말하고 있습니다.(2) To integrate practice with theological and social scientific theory.이것이 혼합주의가 아니라면 무엇이 혼합주의라는 말인가요?교수님께서는 Ramshaw가 말하는 (4)을 완전히 반대로 해석했다고 했습니다. 그것 역시 매우 생각해 보아야할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Go beyond”가 교수님의 생각처럼 “뛰어 넘어야 한다”는 것일까요? 그 “뛰어넘는다”는 것이 성경적으로 가야 한다는 뜻일까요? 천만에요. 아닙니다. 그것은 편견에 사로 잡혀서 해석한 것도 아니고 왜곡한 것도 아닙니다. 왜냐하면 Ramshaw의 전체 의도가 혼합주의적이기 때문입니다.교수님께서는 Hunter나 Ramshaw와 같은 사람들에 대하여 호의적인 접근을 하고 계시기 때문에 이미 개념자체가 틀립니다. 이들은 세속심리치료와 다른 사회과학들을 목회상담이라는 이름으로 도입하려는 것입니다. 교수님과 저와의 근본적인 차이점은 심리학에 대한 근본적인 견해 차이가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심리학을 반기독교적이고 적그리스도적인 것이라고 보는 반면에 교수님은 심리학에 대하여 매우 호의적인 접근을 하고 계십니다.교수님이야말로 Hunter와 Ramshaw 책을 다 읽으셨다면, 앞의 글에서는 Ramshaw가 다원주의라고 인정하셨음에도 불구하고 여기서는 저보고 해석을 잘못했다고 하시면서 왜곡했다고 몰아붙이시는 것은 스스로 Ramshaw에 대하여 제대로 알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증거하시는 것이 아니신가요?겨우 아마존닷컴의 영문 서론으로 말한다는 식으로, 교수님으로서 그리 말씀하시니 참 난감합니다. 무엇보다도, 교수님께서 Ramshaw의 글을 인용하셨기 때문에 그 책을 확인할 수 있는 일차적인 자료를 가지고 말했다고 해서 제가 잘못한 것이 아닙니다. 책을 읽는 사람이나 책을 쓰는 사람이나 서문이란 그냥 서문이 아닙니다. 그 책의 전체 목적과 내용을 일목요연하게 말해주는 것이 서문입니다. 그 서문의 내용으로 말하는 것이 잘못은 아닙니다.4. 내가 말하는 사람들의 책을 다 읽고 말해라?저는 여태껏 이렇게 말씀하시는 교수님들을 본적이 없습니다. 오히려 이 사람은 이렇게 말하고 저 사람은 저렇게 말하고, 이건 이렇고 저건 저렇다고 하시면서 설명해 주시고 이해를 구하셨습니다. 자신의 논문에 대하여 문제점을 지적하였다고 해서 내가 말하는 사람들의 책을 다 읽고 말해라는 방식은 적절치 못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만일 제가 드린 글이 문제가 있다면 제가 올린 글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말씀하시면서 제가 이해할 수 있도록 말씀해 주시는 것이 더 좋은 방식이라 생각합니다.교수님께서는 여러 사람들의 책을 다 읽고 말하라고 하셨습니다.교수님께서 말씀하신 사람들이 누구인가요?로저스와 코헛, 멜라니 클라인과 해리 건트립, 페어베언과 위니캇,찰스 거킨, 토마스 오덴, 론 나이담과 폴 프로이저,이런 사람들 뭐 그리 대단한 사람입니까?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이 사람들 대부분은 심리학자들입니다.이 사람들이 무슨 성경에 대하여 주석을 썼습니까? 아니면 성경으로 설교를 했습니까? 그들은 심리학자들이고 심리학으로 밥 먹고 사는 사람들입니다.그들이 심리학자들이라는 것은 무슨 뜻일까요?그들은 심리학적으로 인간을 해석하고 심리학적으로 인간의 문제를 해결하려는 사람들입니다. 목사는 무엇을 하는 사람입니까? 성경적으로 인간을 해석하고 성경적으로 인간의 문제를 해결하려는 사람입니다. 통합주의자들은 무엇을 하는 사람들입니까? 성경과 심리학을 섞어서 인간의 문제를 해결하려는 사람들입니다. 중요한 것은 성경이 무엇을 말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성경은 목사에게 성도에게 어떤 길을 가라고 할까요? 무엇을 경계하라고 할까요?누가 철학과 헛된 속임수로 너희를 노략할까 주의하라 이것이 사람의 유전과 세상의 초등학문을 좇음이요 그리스도를 좇음이 아니니라(골 2:8)교수님께서는 제가 읽은 책을 다 읽으셨을 것이라고 생각하시는지요? 다른 사람이 읽은 책을 내가 못 읽었을 수 있고 다른 사람이 못 읽은 책을 내가 읽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면 무엇이 중요할까요? 그것은 방향성이 무엇이냐 하는 것입니다. 그 방향성을 끌고 가는 핵심 키워드가 무엇이냐? 하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수백 권의 책을 읽고 수백 권의 책을 썼느냐? 그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얼마나 성경적으로 가느냐? 그것이 관건이라고 생각합니다.저는 무엇보다도 성경과 심리학을 섞어서 가르치는 혼합주의 혹은 절충주의적인 구도로 가는 것을 매우 경계하고 있습니다.4. 교수를 신뢰하라?저는 신학대학교와 신학대학원의 교수님들을 매우 존경합니다.그러나 저는 심리학 분야에 대해서는 생각이 다릅니다.끝으로, 저는 심리학을 배제하고 오직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만으로 교회가 달려가야 한다고 믿습니다. 설교는 성경으로, 목회적 돌봄은 심리학으로 한다는 것은 분명한 혼합주의라고 생각합니다. 세상의 철학과 사상을 성경과 섞어서 가르치는 것은 결국에는 교회를 무너뜨리게 합니다. 미국의 보수교단들이 자유주의에 무너질 때 그 무너짐을 더욱 가세한 것이 바로 심리학입니다. 이 사실을 교회가 분명하게 알아야 합니다. 개혁주의 고신 교단이 오직 성경만으로 달려가는 참다운 개혁주의의 후예들이 되기를 소원합니다. 진리는 시퍼렇게 살아있으니까요.거창노회 가조제일교회 정태홍 목사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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