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벗교회성경적내적치유수련회는 성경적인가?
"길벗교회성경적내적치유수련회"라고 나와 있어서 반가워서 인터넷에 들어가 보고, 참 안타까움을 금치 못했다.
왜냐하면 강사의 이력에 미국웨스터민스터 신학대학원 목회 상담학 박사 라고 소개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몇 년 전부터 느낀 일이지만 이제 웨스터민스터 상담학도
일반 목회상담학이나 별반차이가 없다는 것을 강하게 느끼고 있다.
아래 글을 읽어 보면 어쩌면 그렇게 심리학으로 내적치유를 하는 사람들과 꼭같은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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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는 길벗교회성경적 내적치유세미나 소개 글이다. 길벗교회 홈페이지에서 퍼왔다.
자료출처:http://www.gilbut.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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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들어가는 말
길벗교회에서 ‘성경적 내적치유수련회’를 개설하게 된 계기가 있습니다. 그것은 길벗교회를 담임하는 저(김영민 목사)의 개인적인 경험이 그 계기가 된 것입니다. 저는 이제까지 오십 년이 넘는 인생을 살아오면서 가장 축복된 두 가지 사건을 경험했습니다. 그것은 20대 초반에 죽을병에 걸려서 말할 수 없는 고통을 당하던 중에 예수 그리스도를 깊이 만난 사건과 또 1995년 11월에 있었던 예수전도단(YWAM)의 ‘목회자 제자훈련’(PDTS) 과정 중의 ‘다림줄과 하나님 아버지 사랑’를 통해서 제 안에 깊이 자리 잡고 있었던 상한 마음이 성령의 치유하심으로 치유된 사건입니다. 첫 번째 사건을 통해서는 제 인생이 완전히 전환되는 것을 경험하게 되었고, 두 번째 사건을 통해서는 제 안의 상처와 쓴 뿌리가 치유됨으로 인하여 부부관계가 회복되고, 또 사역에 있어서도 긍정적인 열매가 나타나게 되었습니다. 1995년 11월, 성령의 강력한 역사(役事)로 인하여 제 안에 깊이 자리 잡고 있었던 상처와 쓴 뿌리가 치유된 이래로 지금까지 하나님께서는 몇 번에 걸쳐서 놀라운 치유의 역사를 제게 베푸셨습니다.
☞ 예수전도단의 내적치유사역은 일반심리학과 섞어서 가르치는 것이다.
이렇게 저를 치유해주신 주님께서는 그 후 ‘성경적 내적치유수련회’를 길벗교회 안팎에서 가지게 하시면서 상처 입은 영혼들을 계속해서 치유해나가셨습니다. 처음에는 길벗교회 안에서 1년에 한차례씩 가졌던 ‘내적치유세미나’가 회(回)를 거듭하면서 확장되어 지금은 일 년에 세 차례에 걸쳐서 ‘성경적 내적치유수련회’를 갖고 있습니다. 1월 중순의 ‘청년부 성경적 내적치유수련회’와 2월 말과 8월 초의 ‘장년부 성경적 내적치유수련회’가 바로 그것입니다. 또한 시간이 지날수록 ‘내적치유수련회’ 가운데 성령의 강력한 치유의 역사가 강해지고 있고 깊어지고 있기에 수련회에서 놀라운 치유와 회복의 은혜를 경험한 분들의 실제적인 간증도 풍성해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2007년 10월에 ‘성경적 내적치유수련회’ 간증집인『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1집을 발간했고, 이어서 2008년 11월에 다시 2집을 발간케 되었습니다.
II. 내적치유 개관(槪觀)
이제 길벗교회에서 진행되고 있는 ‘성경적 내적치유수련회’를 잘 이해할 수 있도록 ‘내적치유’에 대한 개괄적인 내용을 소개하겠습니다.
1. 내적치유가 무엇입니까?(내적치유의 정의)
내적치유는 크게 두 가지 의미에서 살펴볼 수 있습니다. 첫째는 넓은 의미(廣義)의 내적치유로, 이것은 성령의 역사(役事) 속에서 그리스도인의 삶 전반을 통하여 하나님을 알아감으로 일어나는 거룩한 성화의 과정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모든 그리스도인은 구원받은 그 순간부터 성령의 역사로 인하여 내적 치유가 시작되었고, 계속적인 내적치유의 과정 속에 있는 것입니다. 둘째는 좁은 의미(狹義)의 내적치유로, 이것은 인간의 내적인 마음의 문제를 성경적인 관점에서 바라보고 성경적인 방법으로 해결해 나가는 것입니다. 전인(全人, whole person)의 치유를 목적으로 하며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의 능력을 통한 사역입니다. ‘성경적 내적치유수련회’에서 다루는 내적치유는 좁은 의미의 내적치유입니다.
내적치유에 대해 학자들은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습니다. 데이빗 씨맨즈(David A. Seamands)는 “내적치유란 특정한 형태의 감정적, 영적 문제들에 대한 성령의 치유 능력에 초점을 맞추는 사역으로 기독교 상담과 치유기도의 한 형태이다”라고 정의합니다. 베티 탭스콧(Betty Tapscott)는 “내적치유란 속사람의 치유이다. 그것은 마음, 감정, 고통스런 기억, 꿈 등의 치유를 포함한다. 그것은 기도를 통한 과정으로서 내적치유는 원한(망), 자기 거부(부정), 자기 연민, 우울, 죄책감, 두려움, 슬픔, 미움, 열등감, 정죄감, 무가치함 등의 감정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과정이다. 롬12:2에서 성경은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라고 되어 있다. 내적치유는 사람의 마음을 새롭게 하는 것이다”라고 말합니다. 미국 풀러신학대학원의 교수인 찰스 크래프트(Chares H. Kraft) 박사는 “내적치유란 전인(whole person)의 치유를 목적으로 하며 성령의 능력을 통한 사역이다. 인간의 질병은 대체로 감정적, 영적인 부분에 입은 상처와 연관이 있으므로, 내적치유는 그곳에 초점을 맞춘다. 내적치유 사역은 그러한 상처의 근원이 되는 부분에 그리스도의 능력을 적용하려고 한다. 흔히 도움을 받으러 온 사람들의 기억 속에는 이러한 근원적인 것들이 무의식적으로 담겨 있기 때문에 내적치유는 때로는 ‘기억의 치유’라고 불리는 것에 초점을 맞춘다”라고 정의하고 있습니다.
☞찰스 크래프트 교수는 하나님의 권세는 신용카드와 같아서 아버지가 아들에게 준 것처럼 예수님의 권세를 우리에게 주셨기 때문에 얼마든지 사용할 수 있다고 하면서, 가계에 대해서 이 권세를 사용하라고 한다.
(참고자료출처: http://kr.blog.yahoo.com/shleeyu/10878)
놀라운 것은 과거의 부모나 조상들이 사탄에게 헌신했을 때 예수 이름으로 명하여 취소하라고 한다.
이미 죽은 사람들에 대해서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다는 말인가?
2. 왜 내적치유가 필요합니까?(내적치유의 필요성)
(1) 나무의 모든 성장 과정을 보여주는 나이테
왜 우리에게 내적치유가 필요한가라고 질문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내적치유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나무의 나이테를 들어서 설명할 수 있습니다. 미국 서북쪽 지방에 있는 국립공원에 가면 오래된 아름드리 삼나무들을 많이 볼 수 있습니다. 그 큰 삼나무를 베어보면 나무의 나이와 그 성장 과정을 보여주는 수많은 나이테가 드러납니다. 그 나이테들은 나무가 이제까지 자라왔던 기나긴 역사와 세월들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 나이테의 모양은 아주 가물었을 때나 비가 너무 왔을 때, 그리고 병충해가 극성을 부리고 질병이 유행했을 때, 나무가 번개에 맞았을 때에 따라 각각 그 모양이 다르게 나타납니다. 그리고 그것은 나무가 정상적인 조건에서 자랐을 때의 나이테의 모양과 많이 다릅니다. 어느 날 한 방문객이 어떤 삼나무에 아주 특이한 형태의 나이테가 있어서 그 까닭을 식물학자에게 물었습니다. 그러자 그 식물학자는 그 이유를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이 이상한 모양의 나이테는 예전에 숲 속에 큰불이 났을 때 나무가 타서 거의 죽다시피 했던 당시에 생긴 나이테입니다.” 나무를 평생 다룬 장인(匠人)들은 나이테를 보고 나무가 어떻게 자랐는지, 어떤 고통을 겪었는지, 어떤 기후에 적응하려고 몸부림쳤는지 판독합니다. 나이테가 고르지 못하고 심하게 뒤틀린 것은 생존을 위협한 치명적인 고난이 있었음을 증명합니다. 벼락을 맞은 증거도, 가뭄 때 몸부림친 증거도, 공해가 위협한 증거도 나이테에 담겨 있습니다. 물론 평온하고 행복했던 시절도 나이테는 증명합니다. 이렇게 나무가 일생을 살면서 겪었던 모든 것이 나무의 심층부인 나이테에 깊이 박혀졌고, 나무의 성장 과정이 나이테에 새겨져서 그대로 남아 있는 것입니다. 나이테는 나무의 성장에 관한 모든 것을 보여주는 자서전입니다. 얼마나 진실한 자서전입니까?
☞ 여기서도 보면 무의식의 차원에서 다루는 것은 심리학과 섞여진 증거를 드러낸다.
(2) 우리의 마음 깊은 곳에 숨겨져 있는 인생의 나이테
이렇게 말 못하는 미물인 나무조차도 일생을 살아오면서 겪었던 자신의 모든 것을 자신의 심층부인 나이테에 깊이 새기고 산다면 하물며 하나님의 형상으로 신묘막측(神妙莫測)하게 창조된 우리 인간이 일생을 살면서 겪는 온갖 종류의 상처와 아픔과 고통과 감정과 생각과 기억들이 우리의 마음 깊은 곳에 남김없이 숨겨져 있지 않겠습니까? 가면을 쓴 것처럼 잘 감추어지고 숨겨진 우리의 외면적인 모습 이면에는 상처로 얼룩진 내면의 정직한 인생의 나이테가 숨겨져 있습니다.
우리는 인생을 살면서 온갖 종류의 상처와 아픔과 고통을 겪습니다. 이런 상처와 아픔은 시간이 지나감에 따라 우리의 생각과 의식 속에서는 사라집니다. 그러나 실제로 그것은 없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마음 깊은 곳에 남겨지게 되고 새겨지게 되어 쓴 뿌리를 남기게 됩니다. 연구 조사 결과에 따르면 인간의 뇌는 마치 컴퓨터와 같이 우리가 경험한 모든 사건들을 보관한다고 합니다. 시간이 지나면 그 모든 사건에 대한 기억은 우리의 의식 속에서 사라지지만 그것은 결코 그대로 없어져 버리는 것이 아닙니다. 잠재의식 속에 깊이 자리 잡게 됩니다. 그 때 인간의 뇌는 우리가 경험한 사건의 사실만을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그 사건을 경험했을 때 우리에게 있었던 감정도 함께 기억시킵니다. 따라서 과거에 우리 마음속에 깊은 상처를 주었던 어떤 일이 있었을 때 우리의 뇌는 그 일과 함께 고통스럽고 아픈 감정도 함께 기억합니다. 그래서 비록 의식 속에서는 그 일과 그 때 일어났던 감정을 기억하지 못한다 하더라도 잠재의식 속에는 깊이 보관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아무리 오랜 시간이 지나도 없어지지 않고 잡초뿌리와 같이 우리의 삶에 악영향을 미칩니다. 이 쓴 뿌리를 제거하지 않으면 겉으로는 변화되는 것처럼 보여도 진정한 변화가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기에 우리에게는 내적치유가 필요합니다. ‘내적치유’란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의 특별한 역사로 잡초뿌리와 같은 우리의 내적인 마음의 문제를 보게 하고 치유케 하여 진정한 변화가 이루어지도록 하는 것입니다.
☞ 무의식에 쌓인 것을 쓴뿌리라고 하면서 설명하는 것은 국내 내적치유자들이 하는 비성경적인 방법과 조금도 다를 것이 없다.
(3) 성령의 특별한 역사(役事)로 인한 내적치유
우리 마음속에 깊이 뿌리 박혀있는 상처와 아픔은 우리의 생각과 감정과 대인관계와 심지어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 직접적으로 잘못된 영향을 깊이 미치고 있습니다. 그 상처와 아픔이 치유되지 않고 쓴 뿌리로 마음 속 깊이 자리 잡고 있으면 나중에 여러 가지 모습으로 그 증세가 나타나게 됩니다. 즉, 병적 증세나 이상한 행동으로 나타나기도 하고 매우 불행한 결혼생활을 경험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많은 경우 자녀들의 마음속에도 깊은 상처를 주기에 그 상처가 대를 이어서 내려오게 됩니다. 우리 마음속에 깊이 뿌리 박혀 있는 상처와 아픔은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 거듭나거나, 또 은혜 받고 성령 충만할 때 어느 정도는 치유되지만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근본적으로 치유되는 것은 아닙니다. 열심히 성경 읽고, 열심히 기도하고, 강한 믿음을 가지고, 영적으로 충만하면 저절로 해결되는 것이 아닙니다. 마음속에 깊이 뿌리 박혀 있는 상처가 치료되고 쓴 뿌리가 뽑히기 위해서는 성령의 특별하신 치유의 역사(役事)가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이것을 분명히 기억해야 합니다. 그때 우리는 자신을 학대하지 않고 성령께서 특별한 방법으로 우리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시고 마음의 쓴 뿌리를 뽑으시도록 우리 자신을 성령께 맡길 수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이러한 문제를 이해할 때 다른 사람들의 잘못된 행동을 볼 때 그들을 비난하거나 정죄하지 않고 오히려 불쌍히 여기면서 그들의 상처가 치유되고 쓴 뿌리가 뽑히도록 간절히 기도할 수 있습니다.
3. 내적치유가 필요함을 나타내는 증상(症狀)들은 무엇입니까?
우리 마음 깊은 곳에 상처가 있고, 그 상처로 인하여 쓴 뿌리가 깊이 자리 잡고 있을 때 그 상처와 쓴 뿌리는 겉으로 드러나서 여러 가지 증상이 나타나게 됩니다. 우리는 그렇게 겉으로 드러난 증상들을 보면서 자신과 다른 사람들의 마음 깊은 곳에 자리 잡고 있는 상처와 쓴 뿌리를 볼 수 있습니다. 우리 마음속에 쓴 뿌리가 있을 때 그 쓴 뿌리의 상으로 다음과 같은 모습들이 겉으로 드러납니다.
☞ 이런 내용들은 사실상 일반상담가들이 하는 말과 조금도 다를 바가 없다.
(1) 낮은 자존감(自尊感)(Low Self-esteem)
낮은 자존감은 자신의 가치를 인정하지 못하고 자신을 낮게 평가하는 것입니다. 낮은 자존감을 가진 사람은 자기 자신에 대해서 자주 “나는 부족해. 나는 연약해. 나 같은 게 뭘 해”라는 생각을 합니다. 대부분 낮은 자존감을 가진 사람은 자라오면서 인정받지 못한 사람들입니다. 특별히 부모나 형제들, 선생님이나 친구들과 같이 가까운 사람들에게 인정받지 못하고 자라온 사람이 낮은 자존감을 가지고 있습니다. 낮은 자존감을 가진 사람은 신앙생활을 하면서도 자주 좌절감 속에 빠집니다. 생각으로는 하나님이 자신을 사랑하는 것을 믿고, 하나님의 용서를 받아들이면서 얼마 동안 마음속에 평안을 체험하게 됩니다. 그런데 어떤 일이 생기면 갑자기 마음속에 이런 생각이 들면서 좌절하게 됩니다. “너를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 네 근심을 들어줄 사람은 아무도 없어. 어떻게 하나님이 너 같은 사람을 사랑하고, 너 같은 사람을 용서하실 수가 있겠어? 하나님은 너 같은 사람의 기도를 들어주시지 않아.”
(2) 잘못된 우월의식(Wrong Superior)
관계에서 나타나는 것으로 자신이 우월하고 강한 사람인 것을 알리고 싶어 합니다. 우월감을 나타내는 것은 우리 안에 무엇인가 상처를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월감은 우리 마음 안에 은밀히 자리 잡고 있는 열등감과 불안정감에서 나옵니다. 보통 무의식 속에 억압되어 있는 고통스러운 열등감을 감추고 보상하려는 시도입니다. 어릴 때 부모나 형제들, 선생님으로부터의 부당한 대우, 과도한 징계나 학대, 또래집단의 괴롭힘으로 인해 자리 잡게 되었을 수 있습니다. 우월감이 있는 사람은 다른 사람과 의미 있는 관계들을 지속시키지 못합니다.
(3) 완벽(완전)주의적인 경향(Perfectionist Complex)
완벽주의자는 자기 주위의 사람들이나 또 주어진 상황에 대하여 만족하지 못하는 경향이 강하기에 감사할 줄 모르고 불평과 짜증과 잔소리가 많습니다. 그는 다른 사람들을 대할 때에도 그들의 장점을 보기보다는 약점을 보고 지적하고 비판하는 경향이 강합니다. 그는 늘 일을 찾아다니고 늘 애쓰지만 자주 죄의식을 느끼며 꼭 무엇을 해야 한다는 강박관념 속에 빠져 있습니다. 완벽주의자는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도 늘 부족함과 죄의식을 느끼고 삽니다. 이런 완벽주의적인 경향이 생기는 이유는 자랄 때 완벽주의자인 부모나 엄한 부모 밑에서 용납 받지 못하고 인정받지 못하고 자랐기 때문입니다. 어릴 때 아무리 노력해도 결코 부모님을 기쁘게 해드릴 수가 없었던 사람이 완벽주의자가 됩니다. 완벽주의와 낮은 자존감을 갖는 것은 서로 통합니다. 자기 자신이나 자기가 한 일에 대해서 만족하지 못하는 사람은 자기는 의식하지 못하지만 자기의 내면에서 항상 자신을 멸시하는 낮은 자존감에 사로잡힙니다. 이것은 종종 우월의식으로 나타나서 다른 사람들을 무시하고 공격하고 비난하는 모습을 띄게 됩니다. 그는 자기 자신의 조그만 실수나 잘못을 너그럽게 받아들이지 못하고, 다른 사람들에게도 역시 그렇게 대합니다. 그리스도인들 가운데도 완벽주의로 인하여 좌절감과 패배감 속에서 자주 낙망하고 절망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완벽주의적인 경향 때문에 하나님의 사랑을 깊이 체험하지 못하고 늘 부족함과 죄의식 속에서 고통을 당하면서 자신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까지 괴롭히고 힘들게 하고 있는 것입니다.
(4) 지나치게 예민한 감정(Supersensitivity)
지나치게 예민한 감정을 가진 사람은 자주 깊은 상처를 받고 삽니다. 그는 다른 사람들로부터 사랑을 받고 싶어 하고 인정을 받고 싶어 하지만 오히려 그렇지 못하기에 도리어 그의 마음속 깊은 곳에서는 더 깊은 상처를 받게 됩니다. 그는 종종 다른 사람이 보지 못하는 것들을 보고, 다른 사람이 느끼지 못하는 것들을 느낍니다. 그래서 자주 오해하고 곡해합니다. 오해할 일도 아닌데 오해합니다. 다른 사람의 말을 들을 때도 액면 그대로 듣지 못하고 곡해해서 듣습니다. 비정상적일 정도로 남으로부터 인정받고 싶어 합니다. 그러나 그 사람의 이러한 욕구는 여간해서는 채워지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마음 깊은 곳에서 다른 사람의 칭찬과 인정과 격려를 강하게 요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웬만큼 사랑을 주고 인정을 해주어도 만족스러워하지 않습니다. 그는 자신의 예민하고 약한 감정을 숨기기 위해서 겉으로는 강한 사람처럼 행동하기에 자아가 강하고, 자존심이 강합니다. 자신의 예민하고 민감한 성격을 거칠고 무뚝뚝한 모습으로 가장합니다. 그는 좀처럼 자신의 약점을 드러내지 않고 자신을 오픈하지 않습니다. 그는 다른 사람들을 자기 손에 넣고 지배하고 싶어 할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을 괴롭히고 상처를 입히려고 하기도 합니다. 지나치게 예민한 감정은 상처로 인해서 생깁니다. 상처를 많이 받고 살아온 사람들은 지나치게 예민한 감정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5) 잘못된 죄책감(죄의식)(Guilty)
하나님께 용서를 구했고, 머리로는 자신의 죄가 용서되었다고 믿지만 실제로는 죄책감(죄의식)이 늘 그를 사로잡아서 계속 괴롭히고 있고, 자신을 증오하면서 삽니다. 그리스도인들 가운데도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께서 이미 자신의 죄를 용서해 주시고 기억지도 아니하심에도 불구하고 의식적으로든지 무의식적으로든지 죄책감으로 인해 고통당하고 있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죄책감에 사로잡혀 있는 사람들은 자신에게 문제가 있어서 사고가 일어났고, 부모님이 이혼했으며, 가정에 우환이 생겼다고 생각하면서 스스로를 원망하는 거짓된 정죄감에 빠져 있습니다. 그래서 자신을 비난하고, 자기는 가치가 없는 사람이고, 자격이 없는 사람이고, 부족한 사람이기에 사랑 받을 수도 없는 사람이라는 생각과 느낌을 갖게 됩니다. 죄의식으로 갈등하는 사람들은 결벽증이나 강박증, 무력감, 수치심, 열등의식, 무가치함, 부적합함, 자기거부, 우울증 등에 빠져서 고통을 당하는 경우들이 많이 있습니다.
(6) 분노(Anger)
화낼 이유가 별로 없는 데도 빈번하게 화를 낸다든지, 이성을 잃을 정도로 과도하게 화를 내는 사람들의 마음속에는 분노의 쓴 뿌리가 깊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분노는 마음의 아픔과 상처로 인하여 생긴 잘못된 태도로부터 나오는 것입니다. 우리의 아픔을 분노로 나타내고, 우리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서 분노하는 것입니다. 분노하면서 상처를 없애려고 하고, 또 자기를 보호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분노를 속으로 억누르면 심한 정서(신)적인 병세가 나타나고, 밖으로 표현하면 사회적인 문제를 일으킵니다. 근본 문제는 분노가 아니라 그 내면에 있는 많은 상처와 아픔으로 인하여 생긴 잘못된 태도입니다. 어릴 때 술 먹고 들어온 아버지가 어머니를 구타하는 등, 아버지가 어머니를 비인격적으로 부당하게 대우할 때 그 모습을 본 자식의 마음속에 분노의 쓴 뿌리가 자리 잡게 됩니다. 또, 부모가 자신을 부당하게 대우하거나 모욕적인 태도로 비인격적으로 징계할 때 자식의 마음속에는 분노의 쓴 뿌리가 자리 잡게 됩니다. 부모의 무능함이나 완고함, 그리고 환경의 어려움 때문에 진학이나 진로나 결혼 등에 대한 자신의 간절한 꿈이 꺾일 때도 우리 안에는 분노의 쓴 뿌리가 자리 잡게 됩니다.
(7) 두려움(Fear)
모태에 잉태되는 순간부터 출생하고 자라면서 부모의 따뜻한 사랑과 보호를 받지 못하고 거절당한 사람들의 마음 속 깊은 곳에는 ‘거절감’에서 비롯된 두려움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두려움이 있는 사람은 소유․지배욕이 강해서 자신의 안전판이라고 생각하는 것을 소유하려는 강한 집착을 보입니다. 그는 많은 것에 대해 걱정하고 노심초사하며 수동적입니다. 좋은 일에도, 나쁜 일에도 강박적인 태도를 가집니다.
(8) 깊은 외로움(Deep Solitariness)
깊은 외로움이 있는 사람은 인생의 허무함 속에 사로잡혀서 삶의 의욕을 잃고 살며 심할 때는 인생을 포기하기도 합니다. 그는 때때로 뼛속 깊이 깊은 외로움을 느낍니다. 그리고 마음속에 깊이 자리 잡고 있는 그 외로움을 떨쳐버리기 위해서 돈이나 명예나 쾌락을 지나치게 추구하고 집착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일찍 부모를 여위었거나 부모가 이혼했거나 어릴 때부터 부모 곁을 떠나서 살았기에 부모의 따뜻한 사랑을 받고 자라지 못한 사람들의 마음속에는 깊은 외로움과 고독감의 쓴 뿌리가 자리 잡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9) 정욕(Lust)
사랑은 우리 삶의 가장 기본적인 요소와 욕구이기에 인간은 사랑이 없이는 결코 살 수 없습니다. 그러기에 사랑을 받지 못한 사람들은 사랑의 결핍을 거짓된 사랑인 정욕으로 메꾸어 삶의 균형을 유지하려고 애씁니다. 거짓된 사랑을 추구하는 정욕은 음란, 외설, 잘못된 성관계, 과도한 물질추구와 남용, 질투심, 소유욕 등으로 나타납니다.
(10) 우울증과 조울증(Melancholia or Manic-depress Psychosis)
자라오면서 받은 상처가 너무 큰데도 그 상처를 해결하지 못하고 속으로 계속 삭이고 억누르면서 살아왔을 때 그 상처들이 누적되어 복합적으로 엉키고 뒤엉켰을 때 생기는 것이 우울증(憂鬱症)과 조울증(躁鬱症)입니다. 우울증은 자주 우울한 마음에 사로잡히는 것이고, 조울증은 우울한 마음과 즐거운 마음의 감정의 기복이 아주 심한 것입니다. 우울증과 조울증은 낮은 자존감, 완전주의, 지나치게 예민한 감정, 두려움, 죄책감, 깊은 외로움 등의 복합적인 상처들로 인해서 생깁니다. 우울증과 조울증은 복합적인 요인으로 생기기에 내적치유가 가장 필요한 증상입니다.
(11) 각종 중독
알코올, 담배, 도박, 마약, 성, 돈, 쇼핑, 일중독 등의 각종 중독은 감정적인 상처 외에 감정적인 결핍인 정서적인 굶주림으로 생기는 것입니다.
4. 내적치유의 목표가 무엇입니까?
내적치유의 목표는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의 특별한 역사를 통해서 우리 마음의 상처가 치유되고 새로워져서 예수 그리스도의 성품을 닮게 되고 그리하여 우리 속에 하나님의 형상이 회복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의도하고 계신 인간의 구원은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닮아 우리 속에 하나님의 형상이 회복되고, 그리하여 결국 우리가 하나님의 성품에 참여하는 자가 되는 것입니다.(벧후1:4) 이것은 죄악으로 인하여 타락하고 부패한 우리 마음에 전반적인 변화가 있어야만 가능합니다.(롬12:2) 마음이 변화되기 위해서는 두 가지가 필요합니다. 그것은 치유와 성숙인데 성숙은 치유가 있어야만 가능합니다. 즉, 인간의 마음이 치유되어야만 성숙되고 그래서 참된 변화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성령은 우리 마음에 있는 상처를 치유하셔서 마음을 변화시키시고 그리하여 주님의 성품을 닮게 하십니다. 이처럼 치유가 있어야만 내적인 변화와 열매가 있습니다. 치유는 계속적으로 이루어져야 하는 과정으로 주님 재림하시는 날까지 계속되어야 하지만 내적치유 수련회를 통하여 우리의 내적인 문제가 드러나게 되고, 치유가 시작될 수 있도록 돕게 됩니다.
5. 내적치유가 필요한 사람은 누구입니까?
우리 모두는 내적치유가 다 필요하기에 그 누구도 예외일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신앙의 성숙은 상한 마음의 치유에서 비로소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다음과 같은 사람들은 내적치유가 더 많이 더 적극적으로 필요한 사람입니다. 마음의 상처가 많은 사람, 아픈 과거로 고통 받는 사람, 건전한 자아형성(자존감, 자아 정체성)을 원하는 사람, 행복한 결혼생활을 소원하는 사람, 올바른 자녀양육을 바라는 사람, 온전한 하나님의 사랑을 갈망하는 사람, 오랫동안 신앙생활을 했지만 변화되지 않는 사람, 예수를 잘 믿어보려고 애쓰지만 안 되는 사람, 신앙(생활)의 기복이 심한 사람, 원만한 인간관계를 갖고자 하는 사람, 목회 사역을 감당할 사람, 선교를 지망하는 사람, 상담 사역을 원하는 사람 등입니다. 특별히 목회나 선교나 상담 등의 사역을 하거나 준비하는 사람에게는 내적치유가 아주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내가 치유 받지 않고 사역을 하면 그 사역의 대상에게 반드시 상처를 주거나 실족케 하는 경우가 생기기 때문에 그 준비과정에서 내적치유는 필수적으로 포함되어야 합니다.
6. 내적치유의 결과가 무엇입니까?
우리 내면의 상한 마음의 치유는 일회적(一回的)이나 어떤 과정을 통해서 다 되는 것은 아니지만 ‘성경적 내적치유수련회’는 그 출발점이 됩니다. 경험으로 볼 때 많은 경우‘성경적 내적치유수련회’를 통해서 마음의 치유가 시작되고, 그 결과가 신앙적인 열매로 드러나는 것을 보게 됩니다. 마음의 상처와 쓴 뿌리의 치유는 모든 면에서 변화의 시작입니다. 다음과 같은 점에서 눈에 띄는 두드러진 진보와 성장이 있습니다. 지적인 측면에서 분별력이 생기고 총명해집니다. 정서적으로 안정되어서 요동치거나 흔들리지 않기에 견고한 신앙으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의지력도 건전하게 강화되어 죄의 유혹이나 부적절한 부탁, 강요 등에서 적절하게 거절이 가능합니다. 마음의 상태에서 비롯된 질병이 치료되고 건강해집니다. 영적으로 맑고 깨끗해지며 성숙해집니다. 신앙이 내면적으로 깊어지고, 삶과 가정이 변화됩니다. 주님과의 만남도 깊어지고, 외형적 신앙생활과 봉사가 더 내면적인 깊은 신앙생활과 봉사로 변화됩니다. 선교와 긍휼사역에 많은 열매를 보게 되고, 과거에 자신의 어떠한 신앙적 노력으로도 맺지 못한 성령의 열매를 자연스럽게 맺어가게 되는 것을 보게 됩니다. 특별히 ‘내적치유’는 어느 정도 인격적 성숙과 신앙적인 체험과 갈등을 경험한 사람들에게 가장 효과적입니다. 물론 ‘내적치유’를 해야만 이렇게 되는 것도 아니고 ‘내적치유’를 했다고 해서 반드시 이렇게 되는 것은 아니지만 성령께서 인도하시는 대로 바른 치유를 받으면 이러한 변화가 개인과 교회에 있게 됩니다.
7. 내적치유의 본질
그것은 복음이요, 구원입니다. 단지 그 복음과 구원을 외적 혹은 의식적 세계가 아닌 내적 세계, 즉 나의 깊은 영과 속사람, 무의식, 나의 전인격에 적용하여 그 속에 있는 세상을 좇는 것들을 치유하고 정복해서 내가 알지 못하는 나의 온 영혼까지 하나님을 알고 찬양하도록 하는, 하나님 나라의 확장 사역인 것입니다.
☞ 내적치유의 본질을 말하면서 무의식에 대해 계속 강조한다.
8. 내적치유 주관자와 원동력과 적용 사역
내적치유를 주관하시는 분은 우리 죄와 그 죄의 결과인 모든 상처와 고통과 쓴 뿌리와 형벌을 완전히 제거하고 도말하기 위해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고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십니다. 그리고 우리의 내면적인 상처의 치유를 주관하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사용하시는 내적치유의 원동력은 하나님의 말씀이며, 그리고 실제 사역 현장에서 내적치유를 우리에게 적용하시는 분은 성령이십니다.
☞ 더 자세하게 살피지 아니해도 참 안타깝기 그지없다.
이제는 정말 웨스터민스터도 다 끝났는가 싶어서 말이다.
그런데서 공부를 한 사람이나 여느 내적치유세미나강사들이나 어쩌면 그렇게 한결같이 같은 방향으로 가는가 말이다.
다 같은 길로 가는데...,
이런 일들 속에서
우리는 얼마나 더 기도하며 정신을 차리고
말씀으로 돌아가야 할지
더욱 마음이 간절해 진다.
RPTministries 정태홍목사
http://www.esesang91.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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