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길원_흙과 같은 사람
송길원_흙과 같은 사람
자료출처http://wbctimes.com/sub_read.html?uid=17621§ion=sc130§ion2=
하루에도 수 통의 편지와 잡지들이 배달됩니다. 어떤 때는 거들떠 보지 않고 버릴 때도 있습니다. 혹 본다고 해도 제목만 대충 훑어 보고 말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제목부터 마지막 글까지 몇번이고 읽고 또 읽게 되는 작은 책자(?)가 하나 있습니다. <민들레 교회 이야기>입니다. 산을 좋아해 산 사람으로도 불리는 환경운동가, 최 완택목사님이 꾸미는 주보입니다.
복잡한 신학적 이론보다 짧은 생활 이야기들로 가득 차 있습니다. 그렇다고 결코 가볍지 않습니다. 비뚤비뚤 글시체는 최 완택 서체입니다. 본인이 10여페지가 넘는 글을 직접 쓰고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그의 땀냄새와 호흡이 느껴져 애인에게서 받아든 편지처럼 그리움이 묻어납니다. 그래서 몇 번이고 읽게 됩니다. 이번에 보내온 민들레 교회 이야기에 온유에 대한 글이 눈에 띄었습니다.
“우선 ‘온유(溫柔)’는 말 그대로라면 ‘따뜻하고 부드러움’이고 ‘온화하고 유순함’입니다. 이것은 무슨 말입니까? 말과 표정이 항상 부드럽고 어느 때든지 어디서든지 항상 두 손을 공손히 모으는 자세를 말합니까? 물론 외형으로 보면 그렇게 보이기도 하겠습니다만, 온유의 본뜻은 ‘흙’입니다.
흙(땅)은 본디 자기를 주장하지 않고 항상 그 자리에 그냥 있습니다. 흙은 본디 아무것도 움켜쥐지 않습니다. 흙은 본디 아무것도 배척하지 않고 무엇이나 받아들입니다. 흙이 받아들인 것이 생명이라면 언제든지 어느 때든지 마음껏 뛰어놀며 살게 하고 받아들인 것이 숨 끊어진 시체나 쓰레기라면 햇빛과 공기와 바람과 함께 과감하게 푹푹 썩혀서 다시 흙으로 돌려보냅니다.
보십시오. 이 땅에 온 모든 생명들이 흙으로 만들어져 흙을 밟고 마음껏 누리며 삽니다. 그리고 흙 위에서 생명을 키우며 살다가 죽어 버리면, 쓸모없게 되면 쓰레기가 되어 흙에 버립니다. 만물의 영장이라고 하는 사람의 생면도 흙에서 왔다가 흙에서 살다가 마침내 죽으면 쓰레기가 되어 다시 흙으로 돌아갑니다. 흙은 이 모든 쓰레기들을 받아들여 조용히 썩히고 변화시켜 새로운 흙으로 재창조합니다.
기름진 땅을 뜻하는 ‘humus'(腐葉土)라는 말은 이렇듯 흙에 떨어진 식물성, 동물성 쓰레기가 철저하게 썩혀져서 다시 기름진 흙이 된 것을 말하는데 ’온유∙겸손‘이라는 말도 이 말에서 나온 것이라고 합니다.
“온유한 사람은 행복하다. 그들은 땅을 차지할 것이다.”(마태복은 5장 5절)라는 주님의 말씀도 온유한 사람이 땅문서를 차지하게 된다는 말씀이 아니라 ‘흙과 같은 사람’에게 주신 복된 말씀입니다.”
최목사님이 왜 산을 좋아하는지 이제야 알 듯 했습니다.
늦은 오후, 곤지암의 반도농원(김정숙권사님)의 산 속을 거닐며 내내 나도 ‘흙과 같은 사람’이 되길 기도했습니다.
---------------------
이런 것이 온유라면 성경을 잘못 믿은 것입니다.
흙과 같은 사람이 되는 것이 온유일까요?
로이드존스가 산상설교에서 강조하듯이,
8복의 상태는 생래적인 것이 아닙니다.
또한 그것은 인간의 자기 훈련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성령하나님의 역사하심으로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그것이 아니라면, 기독교가 아닙니다.
RPTministries 정태홍 목사
http://www.esesang91.com
http://twtkr.com/rptministries
http://www.facebook.com/RPTministries
자료출처http://wbctimes.com/sub_read.html?uid=17621§ion=sc130§ion2=
하루에도 수 통의 편지와 잡지들이 배달됩니다. 어떤 때는 거들떠 보지 않고 버릴 때도 있습니다. 혹 본다고 해도 제목만 대충 훑어 보고 말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제목부터 마지막 글까지 몇번이고 읽고 또 읽게 되는 작은 책자(?)가 하나 있습니다. <민들레 교회 이야기>입니다. 산을 좋아해 산 사람으로도 불리는 환경운동가, 최 완택목사님이 꾸미는 주보입니다.
복잡한 신학적 이론보다 짧은 생활 이야기들로 가득 차 있습니다. 그렇다고 결코 가볍지 않습니다. 비뚤비뚤 글시체는 최 완택 서체입니다. 본인이 10여페지가 넘는 글을 직접 쓰고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그의 땀냄새와 호흡이 느껴져 애인에게서 받아든 편지처럼 그리움이 묻어납니다. 그래서 몇 번이고 읽게 됩니다. 이번에 보내온 민들레 교회 이야기에 온유에 대한 글이 눈에 띄었습니다.
“우선 ‘온유(溫柔)’는 말 그대로라면 ‘따뜻하고 부드러움’이고 ‘온화하고 유순함’입니다. 이것은 무슨 말입니까? 말과 표정이 항상 부드럽고 어느 때든지 어디서든지 항상 두 손을 공손히 모으는 자세를 말합니까? 물론 외형으로 보면 그렇게 보이기도 하겠습니다만, 온유의 본뜻은 ‘흙’입니다.
흙(땅)은 본디 자기를 주장하지 않고 항상 그 자리에 그냥 있습니다. 흙은 본디 아무것도 움켜쥐지 않습니다. 흙은 본디 아무것도 배척하지 않고 무엇이나 받아들입니다. 흙이 받아들인 것이 생명이라면 언제든지 어느 때든지 마음껏 뛰어놀며 살게 하고 받아들인 것이 숨 끊어진 시체나 쓰레기라면 햇빛과 공기와 바람과 함께 과감하게 푹푹 썩혀서 다시 흙으로 돌려보냅니다.
보십시오. 이 땅에 온 모든 생명들이 흙으로 만들어져 흙을 밟고 마음껏 누리며 삽니다. 그리고 흙 위에서 생명을 키우며 살다가 죽어 버리면, 쓸모없게 되면 쓰레기가 되어 흙에 버립니다. 만물의 영장이라고 하는 사람의 생면도 흙에서 왔다가 흙에서 살다가 마침내 죽으면 쓰레기가 되어 다시 흙으로 돌아갑니다. 흙은 이 모든 쓰레기들을 받아들여 조용히 썩히고 변화시켜 새로운 흙으로 재창조합니다.
기름진 땅을 뜻하는 ‘humus'(腐葉土)라는 말은 이렇듯 흙에 떨어진 식물성, 동물성 쓰레기가 철저하게 썩혀져서 다시 기름진 흙이 된 것을 말하는데 ’온유∙겸손‘이라는 말도 이 말에서 나온 것이라고 합니다.
“온유한 사람은 행복하다. 그들은 땅을 차지할 것이다.”(마태복은 5장 5절)라는 주님의 말씀도 온유한 사람이 땅문서를 차지하게 된다는 말씀이 아니라 ‘흙과 같은 사람’에게 주신 복된 말씀입니다.”
최목사님이 왜 산을 좋아하는지 이제야 알 듯 했습니다.
늦은 오후, 곤지암의 반도농원(김정숙권사님)의 산 속을 거닐며 내내 나도 ‘흙과 같은 사람’이 되길 기도했습니다.
---------------------
이런 것이 온유라면 성경을 잘못 믿은 것입니다.
흙과 같은 사람이 되는 것이 온유일까요?
로이드존스가 산상설교에서 강조하듯이,
8복의 상태는 생래적인 것이 아닙니다.
또한 그것은 인간의 자기 훈련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성령하나님의 역사하심으로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그것이 아니라면, 기독교가 아닙니다.
RPTministries 정태홍 목사
http://www.esesang91.com
http://twtkr.com/rptministries
http://www.facebook.com/RPTministries
독자 의견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