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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패밀리가 말하는 사모의 행복조건 과연 성경적인가?

하이패밀리가 말하는 사모의 행복조건 과연 성경적인가?
 
하이패밀리는 매우 우려스럽게 행복 조건을 말하고 있습니다.
만일 목회자 사모를 심리학으로 바라보면 하루 속히 그만두는 것이 좋습니다.
'행복'을 기준으로 하는 사모라면 오늘이라고 그만두고 하이패밀리 직원으로 가는 것이 탁월한 선택입니다.
목회가 무엇인지 안다면 사모가 행복합니까 안합니까?의 기준으로 질문을 할 수가 없습니다.
사모님들께서 각자의 형편에 따라 행복에 대한 견해차가 있을 수는 있어도,
접근 자체를 행복이라는 기준으로 판단하는 것은 매우 비성경적인 접근입니다.
 
예를 들어 생각해 보십시오.
아브라함의 곁을 따라 같던 사라는 행복했습니까?
이런 것은 질문이 아닙니다.

삼위일체 하나님을 신앙고백하며 그 말씀에 순종하여 살아가는 자라면
행복이 그 삶을 가늠하는 척도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히브리서 11장은 다 무엇일까요?
아벨로부터 죽음을 맞이했으며 고난을 감내해 갔던 수 많은 믿음의 선조들은
행복을 기준으로 신앙생활을 하며 행복을 기준으로 형장의 이슬로 사라져 갔을까요?
그들 앞에서도 행복을 논하시겠습니까?
짐승의 이빨에 물려 뜯기는 순간에도, '행복하십니까?'라고 물으시겠습니까?
그것은 질문 자체가 그릇 된 것입니다.
 
성경에서는 무엇이라고 말합니까?
저희가 믿음으로 나라들을 이기기도 하며 의를 행하기도 하며 약속을 받기도 하며 사자들의 입을 막기도 하며
불의 세력을 멸하기도 하며 칼날을 피하기도 하며 연약한 가운데서 강하게 되기도 하며
전쟁에 용맹되어 이방 사람들의 진을 물 리치기도 하며 여자들은 자기의 죽은 자를 부활로 받기도 하며
또 어떤 이들은 더 좋은 부활을 얻고자 하여 악형을 받되 구차히 면하지 아니하 였으며
또 어떤 이들은 희롱과 채찍질 뿐 아니라 결박과 옥에 갇히는 시험도 받았으며
돌로 치는 것과 톱으로 켜는 것과 시험과 칼에 죽는 것을 당하고 양과 염소의 가죽을 입고 유리하여
궁핍과 환난과 학대를 받았으니 (이런 사람은 세상이 감당치 못하도다)
저희가 광야와 산중과 암혈과 토굴에 유리하였느니라
이 사람들이 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증거를 받았으나 약속을 받지 못하였으니
이는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여 더 좋은 것을 예비하셨은즉
우리가 아니면 저희로 온전함을 이루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니라(히 11:33-40)
 
왜 행복이 아니며,
왜 믿음이어야 하는지 더 설명이 필요할까요?
이런 고난 가운데 믿음을 지킨 신앙의 선조들에게 행복으로 말하지 않았습니다.

성경을 조금 더 볼까요?
너희가 참음은 징계를 받기 위함이라 하나님이 아들과 같이 너희를 대우하시나니
어찌 아비가 징계하지 않는 아들이 있으리요 징계는 다 받는 것이거늘
너희에게 없으면 사생자요 참 아들이 아니니라(히 12:7-8)
 
 
너희에게 고난이 없으면 믿음의 훈련이 없으면 가짜가 아닌가 생각해 보라는 말씀입니다.
'너희가 믿음을 지켜 가는데 행복하면 진짜다' 이렇게 말씀하지 않습니다.  
믿음을 지키기 위해 십자가를 지고 가는 삶은 휘바람 불며 가는 유랑길이 아닙니다.

하이패밀리가 말하는 행복의 요건은 무엇입니까?
장래의 비전입니까? 도대체 목회자와 사모님들에게 어떤 비전을 이루기를 원하십니까?
목회의 비전이란 도대체 무엇입니까?
그것이 행복해서 달려가는 비전이란 말입니까?
 
예수님은 행복해서 십자가를 지고 가셨습니까?
성경에는 무엇이라고 말하고 있을까요?
 
그는 육체에 계실 때에 자기를 죽음에서 능히 구원하실 이에게
심한 통곡과 눈물로 간구와 소원을 올렸고 그의 경외하심을 인하여 들으심을 얻었느니라
그가 아들이시라도 받으신 고난으로 순종함을 배워서 온전하게 되었은즉
자기를 순종하는 모든 자에게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시고
하나님께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은 대제사장이라 칭하심을 받았느니라(히 5:7-10)
 
여기에 무슨 행복이 있습니까?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고 가시는 그 걸음에, '예수님 행복하십니까?'라고 물으시겠습니까?
어림반푼어치도 안되는 소리입니다.
행복의 기준으로 예수님의 십자가를 바라볼 수 없듯이,
행복의 기준으로 목회자의 사모직을 평가할 수 없습니다.
만일 하이패밀리의 방식대로라면 예수님은 무슨 비전을 가지셨을까요?
십자가를 지고 가는 것이 예수님의 비전일까요?
그럴 수 없습니다!!!
 
목회는 사명으로 감당하는 것이지 행복으로 감당하는 것이 아닙니다.
목회는 교양으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믿음의 선배님들께서 주먹밥으로 그 고생을 하며,
그것도 없어서 배를 곯아가며 춥고 배고픔으로 눈물의 목회를 지내셨습니다.
그분들에게 비전을 말하고 행복을 말할 것인가요?
 
목회에 비전과 행복을 말하지 마십시오.
목회는 심심풀이 땅콩으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언필칭 기독교 가정사역이라면서
인본주의 심리학과 불교적인 성향을 가진 호오포노포노 힐링댄스로 가르치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을 목숨보다 귀하게 여기고 사는 성도들 앞에 부끄럽지도 않습니까?
그런 것으로 교회에는 사역하지 마십시오~
교회는 하나님의 말씀이 왕성하게 일어나야 합니다.
 
순전한 목회자 사모님들에게 비성경적인 행복조건을 말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믿지 않는 불신자들에게 호오포노포노 힐링댄스로 가르치던 말던 그 일에는 상관하지 않습니다.

러나 하나님의 말씀만이 살아 서야야 예수님의 몸된 교회에
업보개념으로 가르치면 교회는 무엇이 되겠습니까?
 
그런 불교적 힐링댄스를 가르치면 무슬림 댄스세라피는 어떨까요?
목회자 사모님이 불교적 힐링댄스를 하는데,
그 교회 성도가 무슬림 댄스세라피면 어떻고, 아프리칸 힐링댄스면 어떻겠습니까?
 
김향숙 원장은 매우 심각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외적 조건보다는 가정생활과 자아실현 욕구같은 사모 개인의 내적 태도가 결정한다"고 설명했다.
사모의 직분을 감당하는 것이 '자아실현'을 위한 것입니까?
'자아실현'이 하이패밀리 힐링댄스로 가능하다고 보십니까?
하이패밀리 원장은 자아실현을 위해 그 자리에서 세미나를 하시는가요?

자아실현 할 수 있는 직책은 얼마든지 있습니다.
그러나 사모라는 직분으로 자아실현이라는 망발을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오늘도 하루를 넘기기를 어려워하는 사모님들이 얼마나 많은지 알고 계십니까?
'성공이 아닌  행복을 목적으로 삼으라'?
 
그게 말이나 되는 소리입니까?
하이패밀리가 말하는 행복은 도대체 무엇입니까?
그것이 자아실현인지요?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마 16:24)
 
예수님은 자기를 부인하라고 가르치셨는데,
왜 하이패밀리는 자아를 실현하라고 가르치시는지요?
그것이 세상에서는 통할지는 몰라도 교회에서는 결코 용납될 수가 없는 이유가 바로 이 말씀에 있습니다.
사모님들에게 자아실현을 행복의 조건이라고 말씀하지 마십시오~
오늘도 성도들을 품고 기도하시는 수많은 사모님들에게 모욕을 주지 마십시오~
경제적 어려움에 눈물짓는 수많은 사모님들에게 비수를 꽂지 마십시오~
 
지금이라도 하이패밀리 힐링댄스를 중지하시고,
지금이라도 하나님의 말씀만으로 나아가는 하이패밀리가 되시길 간절히 당부드립니다.
 

RPTministries 정태홍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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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션라이프] 한국교회 목회자 사모는 얼마나 행복할까.

A사모는 교회 성도 수가 50명도 채 되지 않는 섬지역 교회에서 사역하고 있다. 열악한 환경이지만 그는 행복하다. 가정사역자로서의 꿈이 있고 무엇보다 목회자인 남편과 관계가 좋기 때문이다. 반면 작은 도시에서 개척교회를 섬기는 B사모는 우울증 약을 복용하고 있다. 남편과 성도들의 갈등을 중재하느라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기 때문이다. B사모는 “아내로, 사모로 설 자리가 없는 지금 행복은 요원한 일 같다”고 고백했다.

가정사역단체 하이패밀리 가정사역원(원장 김향숙)은 최근 전국 교회 사모 37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했다(표 참조). 설문 결과 자신이 행복하다고 응답한 사모는 8.7%인데 반해 자신이 불행하다는 응답은 18.2%였다. ‘불행한 사모’가 ‘행복한 사모’보다 두 배 이상 많은 것이다. 나머지 73.1%의 사모는 ‘보통’이라고 답했다.

자신이 행복하다고 응답한 사모들 중 결혼생활이 ‘매우 행복하다’고 응답한 사모는 87.6%였다. 반면 불행하다고 응답한 사모들 중 결혼생활이 ‘매우 행복하다’고 응답한 사람은 4.3%에 불과했다. ‘매우 불행하다’는 6.8%, ‘불행하다’는 19.3%를 각각 차지했다. 결혼생활의 행복 여부가 사모의 행복 여부로 이어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번 조사에서는 주목할만한 점은 사모들이 생각하는 행복의 요건이다. 정서적인 함양보다 장래 비전을 갖는 것이 사모의 행복 여부를 결정하는 핵심적인 요소로 떠올랐다. 행복점수를 높게 표시한 사모들은 ‘이루고 싶은 꿈이 있는가’란 질문에 ‘꼭 이루고 싶은 꿈을 가지고 싶다’(79.4%), ‘이루고 싶은 꿈을 가지고 있다’(20.6%)고 답했다. 김향숙 원장은 “여성의 사회진출이 늘어나고 학력이 높아지면서 사모의 행복 요건도 바뀌고 있는 것 같다”고 분석했다.

한편 교회의 크기와 성도 수는 사모의 행복에 영향을 미치는 결정적인 요인이 아니라는 것으로 나타났다. ‘나는 현재의 성도 수에 만족한다’는 문항에서는 행복하다고 응답한 사모들의 75%가 ‘매우 그렇다’ 또는 ‘그렇다’라고 답했다. 반면 행복지수가 낮은 집단의 80.6%가 ‘전혀 그렇지 않다’ ‘그렇지 않다’고 응답했다. ‘100명 미만’(36.4%)과 ‘100~300명 미만’(36.4%) 규모의 교회를 섬기는 사모들이 주로 행복지수가 높았다.

김 원장은 성공이 아닌 행복을 목적으로 삼을 것을 주문했다. 그러면서 그는 ‘사모행복처방’을 내놓았다. ‘사모이기 전에 아내가 될 것’, ‘한 영혼을 소중히 바라볼 것’, ‘꿈꾸는 사모가 될 것’ 등이다.

김 원장은 “이번 설문은 교인 수와 교회성장이 행복의 조건이라는 생각을 버리고 진정한 행복이 무엇인지를 생각해야 한다는 것을 보여준다”며 “외적조건보다는 가정생활과 자아실현 욕구 같은 사모 개인의 내적 태도가 행복을 결정한다”고 설명했다.

(기사이미지 자료출처
http://missionlife.kukinews.com/article/read.asp?page=1&gCode=all&arcid=0005262387&code=30401100)  

-------------- 현재까지 올라온 댓글입니다. -----------
 
술람미 2011-08-19 09:53:44
존경하는 이재철 목사님의 글을 인용함으로 답을 대신하겠습니다

좀 길지만, 꼭 읽어보시면 좋을 것 같아요





요 근래 기독교 일각에서 문화 운동이 활발해지기 시작하면서

소위 사탄 문화와 세속 문화, 그리고 기독교 문화를 나누는 이분법이 성행하고 있다.

그런데 그 기준이라고 하는 것이 참으로 모호하다.

같은 크리스천인데 한 쪽에서는 보라 하고 다른 쪽에서는 보면 안 된다고 한다.

심지어 하나님의 '하'자나 예수님의 '예'자가 들어가지 않는 것은

아무리 훌륭해도 다 사탄 문화라고 속단해 버리기도 한다.

역사적으로 교회가 사회와 문화 소위 크리스천이 말하는 세상에 대해 어떤 입장을 취해 왔는지를 살펴보면 해답을 얻을 수 있다.



본래 12월 25일은

로마인이 섬기던 태양신을 기념하는 축제일이었다.

태양신을 위한 축제일이었기에 그 날은 로마인들이 모두 쉬는 휴일이었다.

따라서 기독교가 로마의 국교가 되면서 따로 날짜를 정할 필요가 없이

그 때까지 그들이 섬겼던 태양신의 축제일이 성탄절로 자연스럽게 바뀌게 된 것이다.

이처럼 세속적인 축일을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일로 수용했을 뿐 아니라

그 관습까지 받아들이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십자가는 크리스천들이 가장 거룩하게 여기는 기독교 상징물이다.

그러나 이 십자가는 예수님 당시 성경의 유물이 아니었다.

아무리 성경을 읽어도 구약에서 십자가라는 단어를 단 한 번도 발견할 수 없는 것은

십자가라는 형틀이 본래 유대인들의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십자가는 로마인과 페르시아인이 쓰던 이방인의 형틀이었다.

그러나 교회는 예수님께서 이방인의 형틀 위에서 돌아가셨다고해서

그 형틀을 의미 없다고 배척하지 않았다.

오히려 이방인의 형틀을 구원의 상징으로 적극 수용하였다.



성경을 기록한 언어도 그렇다.

본래 유대인들이 쓰던 언어는 히브리어였지만,

구약성경의 일부가 이방 언어인 아람어로 기록되어 있다.

그렇다고 해서 그 부분을 구약이 아니라고 아무도 부정하지 않는다.

신약성경은 아예 처음부터 끝까지 그리스어로만 기록되어 있다.

그것 역시 유대인의 언어가 아닌 이방인의 언어에 지나지 않는다.

세속적언어를 도구로 삼아 성경이 기록된 것이다.

그러나 그리스어로 기록된 신약 역시 성경이다.

하나님을 위한 도구로 사용했을 때 곧 성경의 언어가 되었다.



악기도 마찬가지이다.

우리가 오늘날 예배를 드릴 때 사용하는 악기들은 그 어느 것도 성경 속의 악기는 아니다.

다 세속적인 악기이다. 그렇지만 그 악기가 하나님을 위해서 사용될 때 그것은 하나님을 위한 거룩한 악기가 된다.

기와집 형식으로 예배당을 지으면 은혜가 덜 되고

가야금으로 연주하면 은혜가 반감된다는 등의 생각이야말로 철저하게 비 성경적이다.



무엇이든지 중심으로 하나님을 위하여 사용하기만 하면

그 모든 것은 하나님을 위한 아름다운 도구가 된다는 것이다.

처음부터 기독교적인 것돠 세속적인 것이 구별되어 있는 것이 아니다.

무엇이든지 그 중심으로 하나님을 위해서 쓰면 그것은 하나님의 것이 된다.



아무리 하나님의 이름을 부른다 할지라도

인간의 영광을 위한 것이라면 그것은 절대로 신앙적이거나 기독교적인 문화가 될 수 없다.

그러나 하나님을 언급하지 않았다해도 그 중심이 하나님을 위한 것이라면

그것이야말로 가장 위대한 기독교적 유산이 아닐 수 없다.

우리는 형식을 떠나 정말 중심으로 모든 것을 하나님을 위해 사용할 수 있도록 진짜 실력을 갖춘 사람들이 되어야 한다.

정말 믿음의 영화를 만들려고 한다면 스필버그같은 진짜 감독이 되어야 한다.



어떤 사람들은 스필버그가 만든 영화는 모두 뉴에이지 영화라 보아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의 영화에는 언제나 성경의 뚜렷한 메시지가 있다.



'ET'에서는 사랑이다.

죽은 ET를 소년이 손으로 만지며 사랑한다고 고백할 때 ET가 살아난다.

사랑보다 더 큰 생명, 더 위대한 힘은 없다는 메세지이다.

'레이더스'나'쥬라기공원'같은 영화를 통해서는

인간은 어떤 경우에도 하나님의 영역을 침범해서는 안 된다는 단호한 메시지를 우리에게 보여준다

그 유명한 '쉰들러 리스트'에서 주인공 쉰들러는

단 한번도 하나님을 부르지 않지만 가장 결정적인 순간에 십자가를 만지는 장면을 연출하여

그 행위가 인본적인 동기가 아니라 하나님을 향한 믿음때문이라는 것을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이 세상의 모든 것을 하나님의 것으로 바꾸기 위해서는

이 세상의 모든 것을 하나님이 기뻐 사용하시는 하나님의 도구로 만들기 위해서는

자신의 전공이 무엇이든지 간에

진짜 실력을 갖추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하나님은 두 라인의 사람을 쓰신다.

한 라인은 진짜 행동파 사람이다.

베드로, 엘리야, 엘리사처럼 행동하는 척하는 것이 아니라 죽음을 무릅쓰고 행동하는 사람이다.

또 다른 라인은 진짜 실력파들이다.

모세 오경을 기록한 모세는 당시 세계 최대의 제국인 애굽 왕궁에서 왕립 교육을 받
았던 사람이다.

다니엘서를 기록한 다니엘 역시 이스라엘에서 가장 총명한 청년으로 뽑혀서, 바벨론 왕궁에서 바벨론 왕립 교육을 받았다.

예언서를 기록한 예레미야나 에스겔과 같은 제사장들 역시 모두 당대 최고의 엘리트들이었다.

신약을 삼분의 일이나 기록한 사도 바울은 가말리엘 문하생으로 당대 최고의 석학이었다.

진짜 행동파가 되든지 아니면 진짜 실력파가 되든지 선택해야 한다.

그리고 젊은 시절에 자신이 선택한 바를 위해 최선을 다해 자신을 가꾸어야 한다.

그리고 나서 이 세상의 어떤 것이든 자신의 중심으로 그것을 하나님을 위한 도구로 쓰고 가꿀 때, 세상은 정말 밝고 멋지고 아름다운 하나님의 세상으로 화할 것이다.

이와 같은 삶의 결과로 수반되는 것이 기독교 문화이다.

기독교 문화 그 자체가 우리의 목적인 것은 결코 아니다.

우리의 목적은 언제나 삼위일체 되신 하나님, 그 분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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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태홍 2011-08-19 13:12:14
술람미님~
저의 글은 문화운동을 말하고 있지 않습니다.
만일 님께서 말씀하시는대로 이분법을 해서는 안된다고 말하면,
교회 안에서 불교와 이슬람과 무속 신상의 제례 형태를 도입해서라도
하나님의 영광만 드러낸다면 그 사람이 진짜 실력자는 공식이 성립되게 됩니다.
앞의 글들에서도 분명히 말씀드렸듯이,
호오포노포노 치유는 ‘카르마’(업보)개념의 치유사역입니다.
그것은 기독교라는 이름으로는 절대로 수용불가능한 것입니다.
문화운동의 차원으로서가 아니라 진리문제의 차원으로 바라보아야 합니다.
이것이 술라미님과 저의 차이점입니다.
하이패밀리가 문화적 차원에서 호오포노포노 힐링댄스를 접근하고 있다면
그것은 더 더욱 명백한 오류에 빠져있다는 증거입니다.
목회자의 사모라는 직책 역시 행복론으로 접근하는 것은
목회가 무엇인지 전혀 모르고 있다는 것으로 그 소양이 현저히 부족하다는 것입니다.
현재 고신 교단 뿐만 아니라 많은 분들이 심리학에 대한 너무나도 관대하고
우호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기 때문에
그것이 성도들에게 어떤 죄악 된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
감지하지도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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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태홍 2011-08-19 13:17:57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부정하는 심리학을
강단에서 설교하는 목회자는 옹호하는 선구자 역할을 하고 있으니
얼마나 개탄스러운 일이겠습니까?
“이재철 목사가 말했다.” 그렇게 말씀하지 마시고,
“성경 몇 장 몇 절에 이렇게 나와 있다”라고 증거를 대셔야 합니다.
성경 외에 이재철 목사가 군림할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이것은 문화 문제가 아니라 진리문제이기 때문입니다.
성경으로부터 정당성을 확보하지 못하는 것이라면
그 어떤 치유사역도 폐지되어야만 합니다.
하이패밀리가 애니어그램을 사용하는 것도 문화의 문제일까요?
애니어그램은 수피들이 신인합일을 이루기 위하여 사용하는 것입니다.
애니어그램의 기본적인 사상은 인간이 신성을 이미 확보하고 있다는
전제 위에서 시작을 합니다.
인간이 신성을 가지고 있다는 애니어그램이 문화의 문제입니까?
그렇게 보고 계신다면 더 이상 기독교라고 볼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이런 문제를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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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태홍 2011-08-19 13:31:11
하나님의 말씀만을 가르쳐야할 강단에서
그 실체를 은근히 감춘채로 심리학과 온갖 세상의 사상들을
가르치는 것은 매우 비성경적인 자세입니다.

의사가 자기가 먹어서 낫지도 않는 약을
환자에게 먹으라고 하면 그 의사는 의사로써의 존재가치가 있을까요?
말씀을 가르치는 지도자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안 되면서
말씀의 가르침을 받는 성도들에게 하나님의 말씀만으로 가라고 하는 것은
자기 자신을 속일 뿐 아니라 성도들을 멸망의 길로 인도하는 것입니다.

목회자 자신은 성경과 심리학을 섞어서 가르치면서
성도들이 내일이 불안하여 점을 보러 다니면 죄인이라고 말하는 것은
지나가는 개도 웃을 일이 아닌가요?

지금의 심리학은 단순한 심리학이 아닙니다.
그것은 뉴에이지화 된 심리학입니다.
순전한 성도들을 죄의 늪으로 끌어들이고 있는
극악한 일들은 더 이상 한국의 교회에 시행되어서는 안 됩니다.

진리 문제를 문화문제 희석시키는 일은
하나님의 진리를 세상의 사상으로 짓밟는 폐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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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태홍 2011-08-19 13:41:45
불교적 원리를 가진 힐링댄스를 가르치는 것을
우리의 자녀들에게 당연하다고 가르치면
그 자녀들은 자라나서 개혁주의 교리를 붙들고 살아가게 될까요?
그들은 불교적 원리만이 아니라,
온갖 세상 종교들을 다 수용해서 가르치면서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하이패밀리가 이렇게 해도 된다고 가르쳤다.”고 말입니다.
“우리 목사님은 이렇게 해도 하나님께 영광이 된다고 했다.”고 말입니다.
염주를 돌리고 예배를 드려도, 목탁을 두드리며 예배를 드려도,
향을 피우고 예배를 드려도, 만트라를 하면서 예배를 드려도,
“이것은 문화의 문제이지, 진리의 문제가 아니야.”라고 말해도
그 누구도 반대를 하지 못할 것입니다.

하이패밀리가 말하는 행복은 무엇인가요?
만일 하이패밀리가 말하는 행복이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배부를 것임이요(마 5:6)
나를 인하여 너희를 욕하고 핍박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스려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마 5:11)
이런 것이라면 아무런 문제가 없습니다.

만일 그렇게 성경적인 복으로 간다면,
불교적 원리에 기초한 호오포노포노 힐링댄스를 할 필요가 없지 않겠습니까요?
만일 그렇게 성경적인 복으로 간다면,
사모 세미나에 참석한 모든 사모님들은 100% 복있는 사모님들이 아닌가요?
그런 비성경적인 힐링댄스를 안해도 말입니다.
왜냐하면 이 땅의 사모님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위하여 고난을 받고 있으니까 말입니다.
그러면 호오포노포노 힐링댄스는 그 복된 고난을
한낱 세상의 헛된 행복에 눈을 돌리게 하고
사모님들의 눈을 흐리게 하는 헬렐레~댄스가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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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태홍 2011-08-19 13:51:03
심리학이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내적치유가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저의 홈페이지와
내적치유의 허구성을 읽어 보십시오.
지금 가지고 계시는 지식으로만 판단하지 마시고
읽어 보십시오~
읽어 보시고 말씀하십시오~
괜히 엉뚱한 소리한다고 짱돌을 던지는 사람들처럼
개혁주의 교회를 세우고 싶어 하는 젊은 목회자에게
괜히 트집을 잡는다고 뭐라 하지 마시고,
책을 읽어 보십시오.
하이패밀리 아니라 우 하이패밀리라도
성경대로 안 가르치면 그만두어야 합니다.
하나님 보다 겁나는 것이 있으면
다 우상이지 않습니까~
말로만 하나님, 기독교, 십자가 그러지 마시고,
삶으로 살아가는 개혁주의 고신 교단이 되어야 합니다.
불교는 안 되고 불교적 원리에 기초한 호오포노포노 치유는 된다면
무당은 안 되고 무당적인 원리에 기초한 굿 치유는 된다는 것이요,
힌두교는 안 되고 힌두교적 원리에 기초한 요가와 명상은 된다는 것이니,
그럼 당장 내일 새벽기도부터 가부좌 틀고 만트라를 해 보면 어떨까요?
누구는 해도 되고 누구는 하면 안 되는 그런 엉터리가 어디에 있습니까?
목사 안수 받고 수 십 년 목회하시는 목사님도 된다는데,
왜 누구는 하면 안 되겠습니까?
제발 그만두십시오~
왜 고신이 이래야 합니까?
왜 고신이 더 그래야 합니까?
성도님들은 목회자들을 위하여 피눈물 흘려 기도하는데,
왜 목회자들은 말씀 외에 다른 것을 가르치려 합니까?
제발 그만 두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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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태홍 2011-08-19 13:57:44
시골 목사가 말하면 진리가 아니고,
도시 목사가 말하면 진리인가요?
무명한 목사가 말하면 진리가 아니고,
유명한 목사가 말하면 진리인가요?
성경이 아니라면 아닌 것이고,
성경이 맞다고 하면 맞는 것 아닌가요?
성경에 어디 불교적 원리에 기초한 무엇을 하라고 나오는가요?
심리학과 뉴 에이지와 불교적 원리에 기초한 것은
세상에서 가르치는 것은 뭐라고 안하겠습니다.
그러나 교회를 대상으로 가르치는 것은 중지하십시오.
교회는 교회다워야 합니다.
교회의 참된 표지에서 벗어나서는 안 됩니다.
고신교단이 바르게 가는 길은
심리학과 뉴에이지에 물든 더러운 것들을 버리고
오직 예수! 오직 십자가! 그것만 붙들고 가는 것 밖에는 없습니다.
예수 십자가로 안 되는 교회라면
예수 십자가로 안 되는 목회자라면
예수 십자가로 안 되는 성도라면
뭐 아쉬운게 있어서 예수님을 믿습니까?
순교자의 흘린 피가 우리의 심장에 살아 있어서
고신의 강단에서는 하나님의 말씀만이
예수 십자가만이 선포되어지고 성도들은 그 말씀에 순종하는
복된 교단이 되어지길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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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 의견 1

  • 나비 · 2011-09-16 12:12
    목사님의 귀한 말씀 큰 위로 됩니다. 더 말씀으로 다가가 하나님의 사랑 전하려 합니다. 목사님의 권면의 문자하나에도 치유함을 느낍니다. 더 이끌어 가십시요. 따라가는 순종이 복이닌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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