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새골-임영수-임영수목사의 영성은 무엇을 말하는가?
모새골-임영수-임영수목사의 영성은 무엇을 말하는가?
아래의 글을 보시면, 임영수 목사는 이렇게 말합니다.
"기독교 영성은 무소유보다 ‘단순성(Simplicity)’입니다."
이런 말을 하는 사람이 누구일까요?
퀘이커 이단 영성가요 관상기도 전문가인 리차드 포스터가 하는 말입니다.
임영수 목사는 더 놀라운 말을 합니다.
"우리가 내면적인 그릇을 갖고 있다고 하면 종교성이라는 그릇을 다 갖고 있는데 동양 신비 종교 같은 데에서는 거기에 하나의 자연 정신으로 채우는 것이고 우리 기독교에서는 하나님을 아는, 하나님과 깊은 교제 속에서 하나님으로 채워 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종교성이라는 그릇에 어떤 유형의 영적인 요소가 담겼느냐에 따라 불교의 영성도 되고 힌두교의 영성도 되고 기독교의 영성도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종교성과 영성이 다르다고 말하면서 종교성의 그릇에 무엇을 담느냐에 따라
"불교의 영성도 되고 힌두교의 영성도 되고 기독교의 영성도 될 수 있다"고 말하는 사람이
바로 모새골의 임영수 목사입니다.
아래의 글을 보시면, 임영수 목사는 이렇게 말합니다.
"기독교 영성은 무소유보다 ‘단순성(Simplicity)’입니다."
이런 말을 하는 사람이 누구일까요?
퀘이커 이단 영성가요 관상기도 전문가인 리차드 포스터가 하는 말입니다.
임영수 목사는 더 놀라운 말을 합니다.
"우리가 내면적인 그릇을 갖고 있다고 하면 종교성이라는 그릇을 다 갖고 있는데 동양 신비 종교 같은 데에서는 거기에 하나의 자연 정신으로 채우는 것이고 우리 기독교에서는 하나님을 아는, 하나님과 깊은 교제 속에서 하나님으로 채워 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종교성이라는 그릇에 어떤 유형의 영적인 요소가 담겼느냐에 따라 불교의 영성도 되고 힌두교의 영성도 되고 기독교의 영성도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종교성과 영성이 다르다고 말하면서 종교성의 그릇에 무엇을 담느냐에 따라
"불교의 영성도 되고 힌두교의 영성도 되고 기독교의 영성도 될 수 있다"고 말하는 사람이
바로 모새골의 임영수 목사입니다.
- 인용 자료 시작 -
영성, 새로운 교회 모델제시 - 임영수 목사 | 기독교
억스 2012.11.09 11:37 http://blog.daum.net/kimuks/7534458
인터뷰 / 임영수 목사 모새골 공동체 대표
교회의 성장은 정체되어 있는데 커다란 예배당 건물을 짓기에 여념이 없는 것이 한국교회의 현주소이다. 크게 그리고 잘 보이게, 잘 모이도록 힘쓰기를 추구하는 실용주의와 물량주의를 추구하는 경향이 뚜렷한 현실이 한국 교회를 병들게 하다는 지적이 많다. 이런 가운데 큰 교회에서 목회를 하다가 산골에서 영성 운동을 전개하는 임영수 목사의 삶은 기독교인들에게 잔잔한 감동을 던져 주고 있다. 임 목사가 있는 ‘모새골’의 영성 운동이 한국 교회에 주는 메시지는 분명히 있을 것이다. 임 목사가 모새골에서 펼치고 있는 영성 운동에서 오늘날 한국 교회를 향해 말하는 분명한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을 것이다. 본지는 임 목사가 바라보는 한국 교회의 현주소와 개혁, 그리고 영성에 대해 들어보는 자리를 마련했다. -편집자 주-
-모새골 공동체에 대해서 소개해 주시지요
모새골은 ‘모두가 새로워지는 골짜기’를 줄인 말입니다. 모새골은 하나님이 창조하신 정원(세상)에서 삶의 궁극적인 가치를 추구하며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삶을 배우고 익히는 영적 훈련과 그리스도를 본받아 살아가는 영적 정원사들의 공동체입니다. 현대의 많은 사람들이 자기 자신을 상실하고, 인생의 의미와 목적을 상실한 채 방황하고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이 우리 모새골에 들어와서 자기를 재발견하고 ‘새롭게(renewal)’되는 것이지요. 삶의 본질을 되찾게 하고 자기의 길을 발견하면서 새로운 의미와 가치를 가지고 삶의 현장으로 나아가게 만드는 것입니다.
-큰 교회 담임 목사로 계시다가 골짜기로 들어가기가 쉽지 않았을 텐데요, 그런 결심을 하게 된 동기라도 있으신지요?
1975년 5월에 목사 안수를 받은 후 목사로서 평생 ‘하나님과 인간’을 탐구하는 구도자로서 살아갈 것을 결심하고 지금까지 구도자로서 나만의 길을 걸어오고 있습니다. 지금에 와서는 이 길이 평안, 자유, 기쁨의 길이 되었고, 나만이 갖는 유일한 삶의 방식이 되었습니다. 구도자의 길을 걸어오는 과정에서 어느 순간도 나 자신이 다 되었다고 생각해 본 적은 없었습니다.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계속 달려가고 있습니다.
나만의 유일한 길을 걸어오면서 목사로서 삶의 방식에는 몇 번의 변화가 있었습니다. 학교 교목, 대학생을 위한 목회, 신학교, 교회 목회입니다. 이러한 변화는 그리스도 안에서 나의 영적 변화와 함께 불가피한 것이었습니다. 그러한 과정에서 목사로서 내가 최종적으로 해야 할 일을 분명히 확인하게 되었습니다. 그 일은 작은 ‘영성 공동체’와 ‘영적치유’에 대한 사역입니다. 그 일을 하기 위해 일반 목회를 끝내고 이제 때가 되어 그 일을 시작하게 된 것입니다.
-두레교회 종교개혁 강연 중에 ‘오시고 계시는 하나님’을 강조하셨습니다. 오시는 하나님을 통해 참 자유를 얻는 길…그 길을 좀 더 자세하게 설명해 주시지요
대부분의 신학이 창세기 1장으로부터 시작하여 인간이 타락하고, 타락한 인간이 어떻게 살아가느냐 하는 것인데 모새골의 신학적인 컨셉은 거꾸로입니다. 성경 66권 가운데 가장 마지막 부분인 ‘보라 내가 만물을 새롭게 한다’ 는 하나님의 선언은 창조주 하나님께서 모든 창조의 역사 마감을 당신의 의도 속에서 마치시겠다는 것입니다. 계시록에 인간 세상이 소멸되고 하나님이 창조하신 세상이 다 의미 없는 비극으로 끝난다고 되어 있다면 아마 우리가 하고 있는 일들이 무의미하겠지요.
만물을 새롭게 하시는 하나님은 삶 속에 숨어 계시거나 마지막에 불쑥 나타나서 폭탄을 터트리거나 해서 역사를 중단시키는 하나님이 아닙니다. 그 하나님은 그리스도 십자가 사건을 통해서 새롭게 하시겠다는 것이 역사에서 어떤 의미가 있다는 것을 우리에게 보여 주셨습니다. 그리고 그 하나님은 오시는 분이면서도 현존해 계시고 현존하면서도 우리와 만나서 교제하고 현재 내가 그분을 경험하고 나면 여기 있지 않고 언제나 우리보다 앞서 계시는 하나님입니다.
오시는 하나님은, 영원의 시간 속에서 오시는 하나님인데 그 하나님을 내가 20세에 만났다고 하면 나에게는 과거지만 그 하나님에게 과거는 없는 것이고 영원 속에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현재입니다.
-모새골에 들어가신 것이 『무소유』의 주인공, 법정 스님을 떠올리게 합니다. 또한 법정 스님이 150년 전 월든 호숫가 오두막에서 혼자 살았던『월든』의 저자 헨리 데이빗 소로의 오두막을 여러 차례 방문하던 기사를 보면서 시대가 다르고 종교가 달라도 정신세계가 깊은 분들은 서로 통하는구나…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소로, 법정 스님, 그리고 임 목사님은 정신세계가 서로 통하는 것도 있고, 또 종교가 다른 만큼 차이점도 있을 텐데요, 이분들과 영성의 차이점은 무엇이라고 보시는지요.
보스턴에 가서 일부러 데이빗 소로의 오두막을 가 보았습니다. 거기에 침대도 놓여 있고 유품들도 놓여 있었습니다. 제가 소로의 책을 몇 권 읽어 보았습니다. 그의 기본 정신은 초자연주의입니다. 신의 개념 같은 것이 그에게는 없습니다. 그의 영성이란 일생을 계속 산속에서 걷는 거예요.
불교의 영성에 대해서는 깊이 연구한 적이 없습니다만 내가 알고 있는 지식으로는 동양의 신비 종교 영역에 속하는 것이 불교의 영성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동양 신비 종교의 영성은 일반적으로 얘기한다면 자연 정신과 일치시켜나가는 것입니다. 범아의 세계로 깊이 들어가는 것인데, 불교의 세계는 영성으로 깊이 들어가면 아이덴티티(정체성)가 없어집니다.
그런데 기독교 영성은 그런 것이 아니고 오시는 하나님과의 만남 속에서 그분에 대한 인식과 그분에 의한 깨어남 속에서, 그분과의 관계 속에서, 믿음 속에서 자꾸 내려놓는 것입니다. 내일을 위한 염려에서 해방되는 겁니다. 그래서 기독교 영성은 무소유보다 ‘단순성(Simplicity)’입니다. 단순한 삶이란 ‘내가 오늘 양식밖에 없지만 내일도 하나님이 주실 거다’하는 하나님에 대한 깊은 신뢰와 믿음 속에서 나옵니다. 오늘의 일용할 양식으로 자족하면서 내일의 염려에서 해방되는 것입니다.
인간들에게는 모두 다 종교성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 종교성이라는 것은 영성과는 다른 것입니다. 우리가 내면적인 그릇을 갖고 있다고 하면 종교성이라는 그릇을 다 갖고 있는데 동양 신비 종교 같은 데에서는 거기에 하나의 자연 정신으로 채우는 것이고 우리 기독교에서는 하나님을 아는, 하나님과 깊은 교제 속에서 하나님으로 채워 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종교성이라는 그릇에 어떤 유형의 영적인 요소가 담겼느냐에 따라 불교의 영성도 되고 힌두교의 영성도 되고 기독교의 영성도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 최근 한국에 뜨레스 디아스 같은 프로그램화된 영성 운동이 있습니다. 프로그램 중심의 운동으로 흘러간다는 생각입니다. 참다운 영성은 무엇이라고 보시는지요?
뜨레스 디아스 같은 것은 내용 자체는 큰 문제가 없다고 봅니다. 우리의 침체된 삶을 재창조시켜 가는, 영적으로 소생함을 주는 좋은 것이라고 보는데 문제는 그 운영에 있습니다. 왜냐하면 거기서 일단 교육을 받은 사람이면 그 교육을 시킨 그 관계 속에서 줄을 끊어야 돼요. 그런데 교육을 시켜 놓고 자기를 위해서 뒤에서 조종을 합니다. 거기에 오는 사람이 대부분 다른 교회에서 담임목사의 목회를 받는 양무리들입니다. 그들을 데려다 교육을 시켜서 자기의 울타리에 데려오는 것이 문제입니다.
-한국 기독교의 개혁은 어떤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보십니까?
요즘 목사들의 큰 병은 신선한 충격이라는 우상에 사로잡혀 자꾸 뜨려고 합니다. 사업이다 뭐다 하나씩 탁탁 던져서 빨리 이름을 내려고 하는 그 교회에 가 보면 내용은 거의 없어요. 기독교는 사업도 아니고 프로그램도 아니거든요. 목사가 사회 가치 속에서 광대 노릇을 하면 안 돼요. 광대 노릇을 하다 보면 허구와 무의미성에 빠지고 타락하게 되거든요. 사회에 잘 보이게 하고 신선한 충격을 주려고 하는 데서 벗어나 하나님 앞에 정직하고 신실하게 살아가는 것, 오시는 하나님으로서 현존해 계시는 하나님과 진실 되게 교제해 가는 법부터 목사들이 배워야 해요. 강단에서는 굉장히 신학적이고 긍정적인 메시지를 하지만 목사들 자체도 현존해 계시는 하나님을 만나지 못하고 교제가 없이 설교를 만들어 내는 제조기로 살잖아요. 사업을 만들어 내는 프로그래머로 살고 그러니까 내면이 항상 공허하거든요. 여기서부터 한국 교회의 개혁이 시작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신학교 교육이 중요할 것 같습니다.
신학교는 너무 설교 잘하는 법, 심방 잘하는 법, 교회 성장시키는 법을 가르치는 게 문젭니다. 그것은 모두 미국의 실용주의에서 온 것입니다. 우리 한국교회가 너무 미국의 실용주의에 빠져 있는 것 같아요. 한국 교회가 그런 우상에서 빨리 탈피해야 해요. 그리고 정말 살아 계신 하나님을 새롭고 바르게 섬기는 것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 목사님의 역사관을 소개해 주시고, 우리 민족은 지금 어떤 역사적 시점에 있다고 보십니까?
내 역사관은 성서적 역사관이지요. 만물을 새롭게 하겠노라 하는 하나님의 선언 속에 우리 민족의 미래가 있고 우리 국가 공동체의 미래가 있습니다. 지금 한국에서는 민주화 운동을 한 그룹과 하지 않은 그룹으로 양극화되어 있습니다. 민주화했다는 사람들이 지금은 주류를 이루어서 자기들이 진보적이라고 하는데, 내가 보기에는 진보적인 것이 아니라 역사의 낡은 틀에 묶여 있는 사람들인 것 같아요. 칼 마르크스적이고 주체사상 같은 것이 새로운 것은 아니거든요. 그들이 독재의 벽은 무너뜨릴 수 있었을지 모르지만 새로운 하나님의 미래 속에 있는 국가 공동체를 만들어 가는 것은 부족합니다.
보수 집단도 하나의 낡은 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유신 때부터 내려오는 경제, 사회 제도는 개신교 쪽에서 보았을 때는 한계점에 왔어요. 너무 많은 부패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사회 기강이 많이 무너졌다는 것입니다. 양쪽이 모두 낡은 틀입니다. 새로운 틀은 오시는 하나님 속에 있어요. 이 시대에는 진보의 낡은 틀과 보수의 낡은 틀을 극복할 사람이 나와야 합니다.
-현재 우리나라 실정에서 정치권에서 이런 영성 운동을 통해서 새로워진다는 것은 어려워 보입니다.
영성이라는 것은 집단과 사회구조를 상대하는 것이 아니고 한 개인을 상대로 하는 것입니다. 기독교 정당, 기독교적 기업이라는 것은 불가능해요. 한 개인으로서 어떤 생각과 의식을 가진 사람이 대통령이 되느냐, 회사의 사장이 되느냐, 교회의 목사가 되느냐에 따라 다릅니다. 다원화된 사회이지만 아직도 한 개인은 중요한 것입니다. 나는 그것에 희망을 겁니다. 15세, 18세 학생들을 데려다가 방학 때 영성 교육을 시켜서 당장 어떻게 되는 것이 아니지만 미래를 보는 것입니다. 우리가 조금만 정신 차려서 70년대생, 80년대생의 청년들에게 바르고 건전한 삶의 대안을 제시하면 희망을 줄 수 있잖아요. 이들이 그런 세대입니다. 우리 기독교 영성은 개인적인(personal) 것으로 보아야 합니다. 한꺼번에 교회를 개혁한다든지 사회를 개혁한다는 것이 아닙니다.
대담 : 김찬주 편집주간
-- 인용 자료 끝 --
RPTministries 정태홍 목사
http://www.esesang91.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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