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고침(신유)에 대한 성경적 자세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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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고침(신유)에 대한 성경적 자세 2 -윤석준-
- 성경은 병고침에 대해 무엇이라 말하는가? (히2:4, 마8:17, 눅4:43, 요11:25) -
히2:4 하나님도 표적들과 기사들과 여러 가지 능력과 및 자기 뜻을 따라 성령의 나눠 주신 것으로써 저희와 함께 증거하셨느니라
마8:17 이는 선지자 이사야로 하신 말씀에 우리 연약한 것을 친히 담당하시고 병을 짊어지셨도다 함을 이루려 하심이더라
눅4:43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다른 동네에서도 하나님의 나라 복음을 전하여야 하리니 나는 이 일로 보내심을 입었노라 하시고
요11:25 예수께서 가라사대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우리는 바로 앞 글에서 오늘날의 병 고치는 일들이 성경의 그것과 전혀 같지 않다는 점을 다루었습니다. 이제 이 논증이 어떻게 성경해석과 일치하는지를 생각해 볼 차례입니다. 여기에서 살펴볼 내용은 “그렇다면 성경은 병 고침이 무엇이라고 말하고 있는가?”에 관한 것입니다. 즉, 만약 오늘날의 병 고침과 성경시대의 병 고침이 같은 것이 아니라면, 그것의 정체가 무엇인가라는 것입니다. 만약 둘이 같은 것이라면 오늘날 사람들이 “병 고침 자체를 신앙의 중요한 요소”라고 보는 것에는 문제가 없어집니다. 예수님께서 그토록 병을 많이 고치셨으니까 말입니다. 하지만 만약 성경이 병을 고치는 일에 대해 “병 고침 그 자체”에 강조점을 두는 것이 목적이 아니고, 그것을 통해서 다른 것을 말씀하는 데에 목적이 있다면, 오늘날 우리가 그저 껍데기를 따라 하는 것은 문제가 됩니다. 왜냐하면, 오늘날 병을 고치는 사람들은 “병 때문에 당하고 있는 고통 그것을 벗는 자체에 목적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만약 주님께서 “병을 고치는 것” 그 자체에 목적이 있지 않고, 다른 것을 보여주시기 위한 방편으로 그것을 단지 사용하신 것이라면 이는 오늘날 신유를 행하는 자들에게 중대한 문제가 발생하게 됩니다.
일단 먼저 상기하고 시작하여야 될 내용은, 앞글에서 말씀 드린 대로 성경은 예수님께서 활동하신 내용을 직접 기록하고 있는 복음서를 제외하고는 신유에 대해 거의 침묵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병을 고치는 일은 예수님의 활동에 있어서는 ‘중추’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을 만큼 큰 비중을 차지하는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왜 사도들과 이후의 교회들은 이것을 전혀 중요하게 여기지 않았을까요? 오늘날 한국교회에서 많은 사람들이 병 고침에 집착하고 있지만(특히 어떤 종류의 교회들은 더욱 그렇습니다), 왜 대다수의 초대교회들 즉, 고린도 교회, 갈라디아 교회, 에베소 교회, 빌립보 교회, 골로새 교회, 데살로니가 교회 등은 이런 일에 전혀 무관심할까요? 실제 이들 교회에 보낸 서신에는 병 고침에 대한 언급이 거의 없습니다. 왜 주님께서 그토록 강조하셨던 사역이 교회에는 하나도 전수되지 않은 것일까요? 이것은 우리가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하는 문제입니다.
이에 대한 의문은 병 고치는 주님의 사역과 관련되어 있는 성경본문들을 하나씩 연구해 갈 때 해소되게 됩니다. 먼저 포괄적 기적과 관련된 본문인 히브리서 2장의 말씀을 보도록 합시다.
1. 히브리서 2장 4절 말씀
“하나님도 표적들과 기사들과 여러 가지 능력과 및 자기 뜻을 따라 성령의 나눠 주신 것으로써 저희와 함께 증거하셨느니라” (히2:4)
히브리서 2장 4절의 말씀은 우리에게 이러한 종류의 기적이나 이적, 그리고 주님께서 보이신 각종 놀라운 능력들의 “본질적 의미”를 가르쳐 주는 중요한 말씀입니다. 여기에서 성경은 우리에게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무언가를 증거하시기 위하여 표적들과 기사들과 여러 가지 능력과 성령의 나눠 주신 것을 사용하셨다”는 점을 가르쳐 줍니다. 이 말을 달리 표현하자면, 성경에 나타나 있는 각양 기적과 병 고침의 능력 등이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것들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그 각양 기적과 은사들은 하나님께서 증거하시기를 원하시는 무언가를 나타내기 위한 ‘방편’입니다.
그렇다면 무엇을 나타내기 위한 방편입니까? 히브리서 2장 4절을, 배경을 구성하고 있는 본문들과 함께 읽으면 이렇게 됩니다.
1 그러므로 모든 들은 것을 우리가 더욱 간절히 삼갈지니 혹 흘러 떠내려 갈까 염려하노라
2 천사들로 하신 말씀이 견고하게 되어 모든 범죄함과 순종치 아니함이 공변된 보응을 받았거든
3 우리가 이같이 큰 구원을 등한히 여기면 어찌 피하리요 이 구원은 처음에 주로 말씀하신 바요 들은 자들이 우리에게 확증한 바니
4 하나님도 표적들과 기사들과 여러 가지 능력과 및 자기 뜻을 따라 성령의 나눠 주신 것으로써 저희와 함께 증거하셨느니라
이 말씀에서 하나님께서 표적들과 기사들과 여러 가지 능력과 성령의 나눠 주신 것으로 증거하기를 원하셨던 것은 바로 앞에서 언급하고 있는 “이같이 큰 구원”, “모든 들은 것”에 해당하는 내용입니다. 히브리서 저자는 천사들로 하신 말씀(율법)조차도 불순종할 때 큰 보응을 받았는데(2절), 이토록 놀라운 구원을 우리가 등한히 여기면 얼마나 더 큰 심판을 받겠느냐(3절)고 말합니다. 이 놀라운 구원은 바로 “처음에 주님이 말씀하신 것이며, 들은 자들이 히브리서 수신자들에게 확증한 내용”(3절)입니다. 그리고 1절에는 이것을 “모든 들은 것으로부터 떠내려 가지 않도록 주의하라”고 말합니다.
즉, 이것은 복음에 관한 것입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신 것이며, 그것이 사도들과 여러 사람들을 통하여 교회에 전파된 바로 그 복음을 말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4절의 말씀 곧, 표적들과 기사들과 능력들과 성령의 은사들이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가?”를 알게 됩니다. 다시 말하자면, “주님께서 행하신 여러 이적들”은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주님의 메시지” 곧 “하나님의 말씀”을 확증하기 위한 도구들로 사용된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이것이 히브리서 2장이 우리에게 설명해 주고 있는 “기적들의 목적”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 사실을 분명히 안다면, 우리는 주님께서 병을 고치신 것을 보고, “병 고침”에 매달려서는 안 됩니다. 병을 고치신 것은 예수 그리스도 그분의 말씀을 확증하기 위한 도구였지, 그것이 목표가 아닙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시선을 병 고침에 두지 말고, 주님의 말씀에다 두어야 합니다.
2. 마태복음 8장 17절 말씀
“이는 선지자 이사야로 하신 말씀에 우리 연약한 것을 친히 담당하시고 병을 짊어지셨도다 함을 이루려 하심이더라” (마8:17)
마태복음 8장 17절 말씀은, “예수님께서 왜 병을 고치셨는지”를 직접적으로 설명하고 있는 본문이기 때문에 매우 중요합니다. 이 구절에서 성경은 “예수님의 병 고침의 목적”을 분명하게 기술하고 있습니다. 16절 말씀에서 주님은 각양 사람들을 고쳐주십니다. “저물매 사람들이 귀신들린 자를 많이 데리고 예수께 오거늘 예수께서 말씀으로 귀신들을 쫓아내시고 병든 자를 다 고치시니”(16절)
그리고 난 후의 17절의 말씀은 바로 이 예수님의 축사와 신유의 행위에 대한 설명입니다. 즉, 왜 예수님께서는 귀신을 쫓아내시고 병을 고치셨는가에 관한 직접적 대답입니다. 마태복음 8장 17절은 무엇이라고 답하고 있습니까? 이는 “우리 연약한 것을 담당하시고 병을 짊어지셨도다”라고 하신 선지자 이사야의 말씀을 이루기 위함이다!
그렇습니다. 예수님께서 병을 고치신 것은 그분께서 “우리 연약한 것을 담당하시고, 병을 짊어지신 분이시라는 이사야의 말씀을 이루신 분”임을 보여주시는데 목적이 있습니다. 즉, 예수님께서 병을 고치셨을 때는, 그 병 자체를 고치는데 목적이 있지 않았습니다. 물론 우리 주님께서는 병자들을 측은히 여기셨고 그들의 고통을 슬퍼하셨습니다만, 주님의 신유의 일차적 목적은 “바로 자신이 연약한 것을 담당하시고 병을 짊어지는 자임을 보여주시는 것”에 있습니다. 이 말씀은 이사야 본문에서 “메시야”를 설명하기 위해 사용된 말씀입니다. 다시 말하자면, 주님의 치유의 목적은 “자신이 메시야이심을 사람들에게 알려 주는 것”에 있다는 것입니다.
이 말씀을 가져온 이사야 53장의 본문은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말씀입니다.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서 하나님에게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사53:4-5)
우리말 성경에는 “질고를 지고 슬픔을 당하였다”로 번역되어 있지만, ‘질고’라는 말이 헬라어로 ‘홀리’ 즉 “질병”이며, ‘슬픔’이라는 말이 ‘마크오브’ 곧 “연약함”이라는 뜻입니다(3절의 ‘간고’와 4절의 ‘슬픔’이 같은 단어이며, 3절의 ‘질고’가 4절의 ‘질고’와 같은 단어입니다. 왜 한글성경은 같은 단어를 다르게 번역하였는지, 그리고 왜 신약성경과 다른 단어를 사용했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므로 마태복음 8장의 말씀은 이사야 본문을 그대로 가져가 직역한 것입니다. “그는 우리의 병을 짊어지고, 우리의 연약함을 담당하셨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입니까? 주님께서 병을 고치신 이유는 “바로 이 분께서 이사야 53장이 노래한 ‘종의 노래’의 주인공이시다!”, “바로 이 분께서 메시야이시다!”, “바로 이 분께서 우리를 구원하실 구주이시다!” 그것을 말씀하는 데에 목적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병을 고치신 것은 자신이 병을 짊어지고, 연약함을 담당하시는 분이심을 천하 만방에 공표하는데 의의가 있습니다. 이것은 앞에서 살펴본 히브리서 2장의 내용과 그대로 상통하지 않습니까? 예수님께서 병을 고치신 목적은 항상! 자신이 세상의 구원자이심을, 자신이 메시야이심을, 자신이 백성의 고난 받는 종이심을 보여주는 데 목적이 있다는 것을 우리는 항상 염두에 두고 성경을 읽어야 합니다.
그렇다면 이 사실을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은 무슨 차이를 가져옵니까? 이 사실을 알게 되면, 주님의 병 고침을 보면서, “우리도 병을 고치자”고 할 수 없습니다. 이것이 바로 다른 신약성경에 병 고침이 많이 언급되어 있지 않은 이유입니다. 오히려 이 사실을 잘 알게 되면 병을 고치자는 것이 아니라, 메시야이시며 우리의 고난을 짊어지신 고난의 종 그리스도를 묵상하며 감사하게 되는 것입니다.
3. 누가복음 4장 43절 말씀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다른 동네에서도 하나님의 나라 복음을 전하여야 하리니 나는 이 일로 보내심을 입었노라 하시고” (눅4:43)
이 말씀은 이것 자체로만 보면 병 고치는 것과 상관이 없어 보이지만, 이 바로 앞 절들을 보면 연관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말씀을 읽어보시면, 이 바로 앞에 예수님께서는 더러운 귀신들린 사람에게서 귀신을 쫓아내셨고, 베드로의 장모에게서 열병을 쫓아내셨습니다(꾸짖었다...고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40절에 “해질 적에 각색 병으로 앓는 자 있는 사람들이 다 병인을 데리고 나아오매 예수께서 일일이 그 위에 손을 얹으사 고치시니 여러 사람에게서 귀신들이 나가며 소리 질러 가로되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이니이다”라고 하고 있습니다.
43절의 말씀은 이러한 일들 다음에 나타나 있는 말씀으로서, 예수님께서 “내가 하나님의 나라 복음을 전하여야 하리니 내가 이 일로 보내심을 받았다”고 하신 내용입니다. 즉! 예수님께서는 사람들에게서 귀신을 쫓아내시고 병을 고치신 다음에, 그것을 “내가 하나님 나라 복음을 전했다”고 하십니다. 그리고 “이것이 내가 하러 온 일이다”라고 하십니다. 어떻게 병 고치는 것이 하나님 나라 복음 전하는 일입니까?(흥미로운 사실은 이 절 앞의 내용에서는 예수님께서 복음을 직접 구두로 전하신 내용이 기술되어 있지 않습니다. 단지 귀신을 쫓아내고 병을 고치셨는데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전하였다”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바로 제가 앞에 설명했던 내용을 이해하지 않으면 알 수 없는 일입니다. 병 고치는 것을 목적으로 삼는다면 병 고침이 어떻게 하나님 나라가 오시는 일인지 설명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앞의 내용들을 충분히 이해하고 있다면, 왜 주님께서 병을 고쳐놓고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전했다고 말씀하시는지를 이해할 수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이 메시야이시며, 하나님 나라로서 이곳에 오셔서 병을 고치시고 쫓아내심으로서 자신의 사명을 나타내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주님의 의도를 전혀 읽지 않고, 병 고침만을 추구한다는 것은 참으로 성경말씀의 내용을 조금도 이해하지 못한 것이라고밖에 할 수 없습니다.
4. 요한복음 11장 25절 말씀
“예수께서 가라사대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요11:25)
이 말씀은 우리가 잘 아는바 대로 나사로가 죽었을 때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입니다. 이 말씀 역시 병 고침을 직접 언급하지 않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중요한 요소를 담고 있기 때문에 살펴볼 가치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나사로가 죽었을 때 마르다에게 “네 오라비가 다시 살리라”(23절)고 말씀하십니다. 마르다가 이에 대답하여 “마지막 날 부활에는 다시 살 줄을 아나이다”(24절)라고 대답하자, 주님께서는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않겠다”고 말씀을 하십니다. 예수님께서 나사로를 살리시는 이유가 바로 이 말씀 속에 들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왜 나사로를 살리셨습니까? 친한 지인이기 때문에 그랬습니까? 아니면 마리아, 마르다 두 자매가 너무 서러워하니까 불쌍해서 살리셨습니까? 이도 저도 아니면, 단지 사람들에게 한번 멋진 퍼포먼스를 보여주시기 위해서였습니까?
아닙니다. 주님께서 나사로를 살리신 이유는 앞에서 말씀하신 내용에 담겨 있습니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다” 즉, 주님께서는 사망을 초월하신 분이십니다. 주님께서는 나사로를 살리시는 일을 통해서 자신이 “죽음을 초월해 계시는 분” 곧 “부활의 권능을 가지신 분”이심을 보여주시려 하셨습니다. 죽은 사람을 살리는 것을 통해서 주님이 의도하신 것은 “죽은 자가 살아났다”고 하는 기적적 사실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죽음을 초월하신 그리스도이신 그 분”을 드러내 보여주는 데 목적이 있었던 것입니다. 이 역시 앞의 내용들과 일맥상통하는 내용입니다. 주님은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나사로처럼 다시 살 것이다”라는 점을 가르쳐 주시기 위해, 죽은 나사로를 일으키셨습니다.
위의 네 가지 중요한 성경본문들을 검토한 결과는 어떻습니까? 예수님께서 병을 고치신 것은 오늘날 우리도 그렇게 병을 고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시기 위함이었습니까? 저는 기독교인들이 TV를 보면서 아픈 곳에 손을 대고 안수를 하고, 어떤 분들은 소위 효험이 있다는 신유 능력자들을 찾아다니는 것을 보면 몹시 안쓰럽습니다. 주님께서 병자들을 낫게 하시면서 우리에게 알기를 원하셨던 것은 그런 것이 아니었습니다. 병은 고통스럽습니다. 병이 고통스럽지 않다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낫고 싶은 마음은 누구나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한 마음 역시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것이 아닙니다. 하지만, 중요한 사실은 우리 주님께서 복음서들에서 사람들의 병을 낫게 하셨을 때는 지금의 인간들이 겪고 있는 고충, 그것을 단지 덜어주기 위한 목적으로 그 말씀들을 주신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주님께서는 병을 고치시는 일을 통하여 “자신을 통해 나타나게 될 하나님의 나라”를 보여주시기를 원하셨고, 그분 스스로가 “우리를 대신해 인생의 모든 고난을 지신 메시야이심”을 보기를 원하십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런 주님의 의중과는 상관없이 자꾸 성경 속에서 내 병이 나을 방도만을 찾고, 또 목회자들이나 기도원장들은 그것들을 악용합니다.
하지만, 이 두 글을 통해서 우리가 분명히 알 수 있는 사실은 성경에 기록된 병 고침이란, 신유 자체가 목적도 아니요, 지금 그것이 똑같이 재현될 수도 없다는 사실입니다. 우리는 병 고침의 사건을 보면서 예수 그리스도를 발견하는 것으로 족해야 합니다. 이것을 자꾸 헛된 땅의 것으로 바꾸려 해서는 안됩니다. 왜 복음서를 제외한 다른 신약서신에서 병 고침이 거의 나오지 않는지, 그 이유를 정확하게 이해해야 합니다. 그래서 오늘날 한국교회의 이 기복적 신유문화가 하루빨리 뿌리 뽑혀야 할 것입니다. 실로 이것이 계속 존속되는 한, 한국교회는 복음에 뿌리박은 교회가 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삶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도구로서의 기독교라는 위상에 끊임없이 괴롭힘을 당하는, 어리석은 길에 처해있는 교회로 남을 것입니다. 그리고 성도님들과 목사님들이여! 제발 그리스도의 값진 보화인 복음을 땅의 하찮은 것들인 기복과 육신의 건강 따위와 바꾸는 어리석은 짓들을 그만 멈추도록 합시다.
(자료출처 http://blog.daum.net/sbchunew/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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