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대면_자기대면은 상담을 과연 성경적으로 하고 있는가?
자기대면_자기대면은 상담을 과연 성경적으로 하고 있는가?
자기대면은 상담을 과연 성경적으로 하고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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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관상기도를 방해하는 이성과 지력의 문제
자기대면은 상담을 과연 성경적으로 하고 있을까요?
아래 자료는 "안산 고잔지역 자기대면 세미나" 광고입니다.
고잔평강교회는 자기대면을 가르치는
한국성경적상담협회(KABC) 사무총장이 시무하는 교회입니다.
자기대면을 가르치는 협회의 사무총장이 시무하는 교회의 상황은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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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산 고잔지역 자기대면 세미나
제목 ; 성경적 상담 자기대면 세미나 (성경적 상담사 자격시험 인증과정)
일 시 ; 2012. 10. 10 (수) 오전 7시-오전9시 (매주 수요일 24주간)
장 소 ; 고잔평강교회
강 사 : 신현태 목사 (KABC 협회 사무총장/ 고잔 평강교회 담임)
회 비 ; 10만원 (교재 및 다과비)
선착순 ; 10명 전후 (목회자및 사모) 9. 27까지 모집 마감
연락처 ; 010-8733-0392 (신현태 목사) stevenk@hanmail.net
내 용 ; 일반 심리학적 상담 방법이 아니라 성경적 상담 방법으로 기존의 제자훈련을 포함한 탁월하게 검증된 성경적 상담 방법 목회자 및 사모가 훈련받은후 교회에서 구역장등 모든 성도들을 말씀으로 권면하고 치료하는 방법입니다.
기존의 일반 심리학및 목회 상담학을 을 전공한 분이나 내적치유등 사역자들이 다시 성경으로 돌아와서 말씀이 역동적으로 상담하고 치료하는 탁월한 방법입니다.
(본과정은 성경적 상담사 자격검증에 인증된 코스입니다.)
(자료출처 http://cafe425.daum.net/_c21_/bbs_search_read?grpid=1AePn&fldid=OEaK&contentval=0000Bzzzzzzzzzzzzzzzzzzzzzzzzz&nenc=&fenc=&q=&nil_profile=cafetop&nil_menu=sch_updw)
--------------- 인용 자료 끝 ----------------- 참고로 이 글이 올려진 년월일시는 2012.09.21. 19:31 입니다.
그리고,
고잔평강교회 카페에 가보면 다음과 같은 글 목록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자료출처 http://cafe.daum.net/kozanp/)
목록번호 131번 이전 것은 놔두고서라도,
"왜 심리적상담은 안되나?"가 2012년 2월 7일이니까,
그 이후의 글들 심리상담을 거부하고 성경적 상담을 한다는
자기대면을 한다하면서도 심리치료에 대한 글들이 올라와 있습니다.
고잔평강교회 카페의 메뉴 중에서 "상담내면치유방"에는
수많은 심리치료 관련자료들이 올라와 있습니다.
물론 참고자료로 올라와 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참고자료가 아닌 이유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참고자료가 아닌 이유가 있습니다.
(자료출처 http://cafe.daum.net/kozanp/)
"상담"이라는 하단메뉴에는 "심리검사"라는 항목이 있습니다.
또한 소위 성경적인 상담을 한다면, "상담내면치유방"이런 제목은 어울리지 않습니다.
눈길을 끄는 것은,
고잔평강교회가 자기대면을 하고 성경적인 상담을 한다고 하면서
교회 안에서 행하는 프로그램들입니다.

(자료출처 http://cafe.daum.net/kozanp/)
이렇게 고잔평강교회 카페 메뉴를 살펴보면,
"쉐마노벨상도전맨토링교육" "영성능력치료 대적기도", "뇌과학" "결혼예비학교" 들이 눈에 보입니다.
특히 이 카페의 전면에는 이런 안내가 있습니다.
(자료출처 http://cafe.daum.net/kozanp/)
자기대면으로 성경적 상담을 한다면서
비성경적인 쉐마인성교육도 하고 있습니다.
교회의 비전 중에, 노벨상 인재 양성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신현태 목사는 다음과 같이 자기대면을 만나 새로운 변화가 일어난 것을 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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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적 상담 세미나 초대합니다. - 신현태 목사
성경만이 문제 해결의 유일한 해답입니다. 미국과 한국의 극동방송 설립자인 존 브로거의 성경적 자기 대면 공개 세미나에 초대합니다.
저는 7년간 일반 상담심리 학부 4년. 대학원 3년을 졸업하고 전문 상담사로 활동중.. 마음에 갈급함으로 찾던중에 <성경적 상담> 과정을 발견하고 1차 2차 3차를 수료하고 놀라운 경험을 하였습니다.
NLP가 인간의 전인적 오감과 마음에 접근하는 방법이라면 성경적 상담은 성경만으로 놀라운 이 모든 것을 통전적으로 접근하는 유일한 방법입니다.
국내에서 기독교 상담을 가르치지만 사실은 인본주의에 입각한 원리를 절충식으로 통합식으로 성경외적 요소를 가르칩니다.
그러나 성경적 상담은 결코 그런것이 아닙니다.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주님의 말씀은 모든 것의 모든 것을 능가하고 포함하고 있지요!!
이번 성경적 세미나에 저도 일부 강의와 사례 발표를 할 예정입니다.
귀한 동역자들을 간절한 마음으로 초대하오니 꼭 오셔서 목회와 내면의 풍성한 도전과 은총이 있기를 기대합니다.
지금 한국교회는 무서운 성경 외적 요소들로 인해 심각한 진통을 겪고 있습니다. 성경으로 돌아가 성경 말씀으로
자기를 대면하고 성도들 제자화하는데 이 보다 더 대안적인 방법은 없을 것입니다.
어쩌면 방법이라기 보다는 우리기 신학교에서 배운 권면적 상담을 뛰어넘는 목회자와 성도들을 건강하게 세우는 유일한 길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저는 이 과정을 마치고 그동안 7년어간 많은 등록금을 지불하고 상담심리, 영성상담 전문 상담사 학위를 딴 것보다 더 큰 은혜와 도전을 받았습니다.
성경적 상담 전문가 1급 자격증을 소지하고 35년 목회중... 성경을 가장 체계있게 가르치고 성도들의 생각. 동기. 사상을 말씀으로 회복하고 회복된 경험으로 다른 성도를 말씀으로 인도할 수 있는 최고의 제자훈련 성경 공부 방법으로 이번에 공개강좌를 하는 < 성경적 자기 대면> 과정을 추천합니다.
저희교회에서는 26주간 항존직 교육을 < 성경적 상담 자기 대면 >으로 마치고 놀라운 경험을 하였습니다.
쉐마 + 품성 + 성경적 상담
이 모든 것의 최종 해답은 오직 성경에 있습니다.
참고로 저는 오는 8월 30일 장로회 신학대학에서 쉐마 아버지 신학을 강의하게 됩니다. 위해서 기도해 주시고.. 쉐마와 품성과 함께 이 큰 그림을 통전적인 성경적 사고와 삶으로 변화시키는 성경적 상담에 꼭 기회를 놓치지 말고 참여해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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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최종해답은 오직 성경에 있다고 말하는 신현태 목사는 과연 성경만을 답으로 생각하고 있을까요?
신현태 목사의 사역들은 최근에 소위 유명하다는
쉐마와 성품을 다 수용하고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놀라운 것은 메뉴"영성능력치료 대적기도" 목록에 있는
"관상기도와 관상치유 강의안 - 신현태 목사"라는 자료입니다.
강의자가 "신현태 목사"라고 공개되어 있습니다.
(관상기도 자료는 아래 인용자료를 참고 하시기 바랍니다)
관상기도강의 안을 보면,
"2007.7.23일(월), (시편 21;1-10) 말씀을 통해 주님과 일치가 되는 거룩한 독서 묵상 (실예)2)"
라는 부분이 나옵니다.
이것은 신현태 목사가 2007년부터 이미 관상기도를 해 왔다는 증거 자료가 됩니다.
2007년부터면 관상기도에 대해 어느 누구보다 앞서서 참여하고 가르치고 있었다는 것을 말해 줍니다.
관상기도는 반기독교적인 신비주의 영성에 속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자기대면을 가르치는 한국성경적상담협회(KABC) 협회 총무의 교회사역입니다.
과연 이런 것들이 성경적으로 가르친다는 것과 부합할 수 있을까요???
더 놀라운 사실은 이렇게 가르치고 있는 분이
"제10차 성경적상담사 리더스 세미나"의 강사 중에 한 분이라는 것입니다.
(자료출처 http://www.biblicallife.kr/)
"제10차 성경적상담사 리더스 세미나"에 참여하는 분들은
과연 무엇을 배운다는 것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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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 7. 24. 05;00 - 07;00 라파 전인치유 연구원 관상기도 특강및 관상기도 체험. 강의 ; 신현태 목사
http://nkvision.com stevenk@hanmail.net
1. 관상의 의미, 관상기도의 특성
관상(contemplation)은 ‘ 순수한 ( )과 사랑으로 하나님을 아는 것, 하나님과 ( )함 ’을 말한다.
6세기말 그레고리오는 ‘사랑으로 충만된 하나님에 대한 지식이며 말씀에 대한 깊은 묵상의 열매이며
묵상 끝에 하나님안에서 쉼의 상태로 들어 간다. ‘고 했다.
관상은 우리의 지식과 이성, 상상과 감각, 지각과 기타 인간의 모든 정신적 기능(mental faculty)들을 넘어서 우리 영의 가장 깊은 곳(inmost being)안에서 하나님과 쉬며 하나님을 만나고 주님의 강력한 빛안에 머물며 주님의 품안에 포근하게 ( ) 때 모든 병이 순식간에 ( )되며 하나님의 본질과 성품을 깊이 알게 되며 하나님과 일치를 이루는 것을 뜻한다.
즉 순수한 믿음과 순수한 사랑으로 우리의 정신적 활동과 의식이 미치지 못하는 곳(즉 영의 가장 깊은 심층)에서 우리의 전 인격(마음과 가슴과 영혼, mind, heart, soul)으로 하나님을 속삭이며 하나님을 알게 되는 것이다.
다른 차원에서 말하면 관상기도는 ( )의 과정이다.
즉 우리 안에서 하나님의 본성적 성품을 아는데 방해가 되는 우리의 잘못된 의식 구조와 태도, 습관, 이기적인 동기 행동등을 정화하며 우리의 정신과 가슴, 그리고 영을 순수하게 만들어 가는 과정이다. 이러한 과정을 변화(transformation)이라고 한다. 이러한 변화를 이루는 정화의 과정에는 두가지가 있다.
1. 자신의 노력으로 하는 능동적 정화 ( 적 관상)
2. 노력으로 하는 과정이 아니고 자신을 비우고 내어 드릴 때 하나님께서 해 주시는 수동적 정화( 적 관상)
대부분의 사람들은 정화를 자신의 힘으로 하는 능동적 정화(active purincation)를 통하여 관상 기도에 전념하였다. 여기에 잘못은 없다. 많은 사람이 이러한 능동적 정화를 통하여 하나님께 나아 갔다.
그러나 정화되어야 할 자신의 영적, 심리적 결함이나 어두운 면( dark side)은 사람들이 자기 스스로 올바르게 알고 있지 못하거나 완전하게 알 수 없기 때문에 자신의 힘으로 주님과 일치를 이루는 정화작업은 너무나 힘들 수 밖에 없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힘으로 관상기도를 해야 한다는 두려움속에 빠져서 관상기도를 시작하기를 두려워하고 어려운 것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참 는 하나님께서 직접 해 주시는 정화로써 우리는 하나님께서 해 주시는 정화(受動的 淨化, passive purification) 작업에 자신을 내어 드리기만 하면 되는 정화이다.
수동적 정화가 더 좋은 이유는 하나님께서 우리 자신보다 우리의 문제를 더 정확하고 완전하게 알고 계시기 때문이다.
관상기도는 선물이다. 관상기도는 가장 깊은 은혜속에 잠기는 것이다.
관상기도는 내가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해 주시는 것이며 우리는 다만 그 선물을 받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관상기도를 처음 시작할 때 어느 정도 우리의 노력을 필요로 하지만 우리의 마음과 가슴을 활짝 열어 드리면 내 안에 계신 성령님께서 기도를 이끌어 가신다.
그러므로 성령님의 자유로운 움직임을 방해하는 방법은 관상기도에 적절하지 않다.
즉 어느 단계를 설정한다든지 기도중에 어떤 체험, 느낌 그리고 바라 봄 같은 것을 구하려고 애쓴다면 내가 기도를 주도하려고 노력하는 것이기에 성령께서 이 기도를 이끌어 가는데 도움이 되지 않고 오히려 방해가 된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하나님께 대한 믿음과 사랑과 열망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나아가 자신을 하나님께 열어 드리기만 하면 하나님께서 이미 내 안에 계신 성령으로 나를 하나님과 일치하게 해 주신다. 하나님 앞에 그저 “ 주님 저 여기 있습니다. 주님 뜻대로 하십시오!” 하고 자신을 내어 드리기만 하면 된다.
하나님과 일치는 우리의 힘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해 주신다는 것이다.
관상기도는 하나님께서 누구에게나 주시는 이기에 믿는 사람 나 주어지는 것이다.
어린아이 같은 단순한 마음, 믿음으로 반응하는 것이기에 이미 신앙의 선입견을 가지고 굳어져 있는 기존 신자들에게는 오리려 답답하고 어려운 것이 될 수 있는 것은 자신을 비우기가 힘들기 때문이다.
관상기도의 방법으로 쉽게 소개된 대부분의 방법들이 어떤 단계들을 제시하거나 기도중에 하나님의 현존을 알아차림, 어떤 느낌, 바라봄, 현상, 환상, 음성, 여러 가지 은사들을 체험하도록 권장하고 있는데 사실은 하나님은 우리 에 내재하시지만 우리 밖에 만물 가운데 충만히 하시고 우리의 모든 기능을 초월해 계신 분이시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우리 그릇으로 다 담을 수 없는 광대하신 분이시며 우리의 감성과 이성의 기능으로 온전히 전부를 알아 볼 수 없으며 인간적인 모든 감성과 이성의 기능을 초월하며 우리도 알 수 없는 우리의 가장 심층에 계시기 때문에 우리의 모든 기능에서 떠나야 (초월해야) 한다. 관상기도를 할 때 우리의 느낌이나 감각이나 바라봄과 같이 우리의 기능으로 하나님을 만나려고 하는 것은 초월자이신 하나님과 만나는데 오히려 방해가 된다.
하나님과 만남이나 하나님에 대한 지식은 우리의 이성을 초월하는 것이기에 인간의 언어로는 도저히 표현되지 않는 ‘신비한 만남이며 지식’이다. 이러한 체험은 감성적 체험을 초월하는 가장 깊은 존재(inmost being)에서 얻는 영의 체험(이러한 체험은 사실상 우리의 감각과 이성의 기능으로는 체험했는지 조차 알 수 없는 체험이다.)이며 지식은 우리의 지적 능력을 초월하는 영적 지식이다.
토마스 키딩은 “ 은 첫 번째 언어이다. 그 나머지 언어는 잘못된 번역일 뿐이다.” 라고 말한다.
십자가의 성 요한은 ‘ 하나님께서는 영원으로부터 한 말씀을 하셨다. 하나님은 이 말씀을 침묵 속에서 하셨다. 그래서 우리는 침묵 속에서 이 말씀을 듣는다.“ 라고 했다.
에바그리우스 교부는 “ 기도는 생각을 떠나는 것이다. ” 라고 했다. 여기서 말하는 침묵은 그저 말을 하지 않는 것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내면에서 일어나는 모든 정신 활동에서 떠나 우리의 지력과 상상과 언어를 초월한 경지, 즉 인간의 정신적 활동이 정지된 상태의 침묵을 말하며 이 침묵 속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하나님을 만난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관상기도를 한다는 것은 하나님을 내면 깊은 곳에서 만나며 하나님과 존재가 일치를 이루기 위하여 침묵안으로(무지의 구름 속으로) 들어가고 ‘영혼의 어두운 밤’으로 들어 가는 것으로 표현한다.
즉 관상기도는 인간의 정신 능력을 초월하는 우리 인간 영혼의 가장 깊은 곳에서 이루어지는 기도이며 인간의 언어로는 도저히 표현되지 않는 기도이다. 이를 무형(無形)의 기도 (무형, Apophatic)라고 하며 침묵의 기도라고 한다. 이 무형의 기도로 얻어지는 하나님에 대한 지식을 성경은 영으로 아는 지식(gnosis), 마이스터 에크하르트는 무지의 지식(Unknowing Knowing)이라고 불렀다.
토마스 키딩은 관상기도를 “ 우리의 마음과 가슴(우리의 전 존재)을 우리의 사고와 언어와 정서를 넘어서(즉 정신적 기능을 초월하며) 하나님께 열어 드리는 것이다.” 라고 하며 또 관상기도를 내적으로 변형해 가는 과정이며 만일 우리가 믿음으로 관상기도를 추구하면 하나님께서 시작하셔서 거룩한 일치로 이끄시는 관계이다.“ 라고 말한다.
성도의 신앙의 궁극적 목적은 하나님과 일치에 있다.
하나님과 일치를 이루기 위해서 마음과 가슴을 하나님께 온전히 활짝 열어 드리면 하나님은 언어로 제한 받지 않으시기에 깊은 침묵 속에서 영혼의 가장 깊은 곳으로 우리를 이끄시어 그곳에서 뵙게 된다.
“ 너는 기도할 때에 네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은밀한 중에 계신 네 아버지께 기도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 ” (마6;6)
“ 여호와 앞에 잠잠하고 참고 기다리라.” (시37;7)
관상기도는 에 들어가 (세상사를 떠나서 고독속으로 들어가) 문을 닫고(나의 감성과 이성의 수준에서 일어나는 모든 활동들을 떠나 보내고) 보이지 않는 (나의 이성이 미치지 못하는 곳, 즉 가슴 깊은 곳에 계신) 하나님께 기도를 드리는 것이다. 그러면 보이지 않는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다 들어 주실 것이다.( 보이지 않는 비밀스러운 곳에서 루리를 감사 주시고 우리를 사랑해 주실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 말고 우리에게 더 필요한 것은 없다. 그래서 관상기도를 ‘ 가슴의 기도’ ‘단순성의 기도’ ‘ 믿음의 기도’ ‘하나님안에서 쉼’ ‘ 향심기도’ ‘ 기도’ 라고 부른다.
2. 관상기도의 조건
1) 내 안에 계신 하나님과 하려는 열망을 가져야 한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 하나님을 만나고 싶어하는 열망이 절대로 필요하다.
“ 나를 사랑하는 자는 내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요 나도 그를 사랑하여 그에게 나를 나타내리라.”
(요14;21) “ 사람이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키리니 내 아버지께서 저를 사랑하실 것이요 우리가 저에게 와서 거처를 저와 함께 하리라.” (요14;23) 하나님께 대한 사랑은 말씀을 깊이 오래동안 묵상할 때 깊어 지게 된다.
2) 하나님과 일치하는 관상기도를 하기 위해서는 그 을 치러야 한다.
그 값이란 다름아닌 시간을 할한다. 인간들이 서로 사랑하기 위해서도 시간을 내어야 하는 것처럼 우리에게 가장 소중한 을 내어 드려서 하나님께서 내 안에 현존하고 계심을 받아 들이고 내 안에서 나를 거룩하게 만들어 주시도록 내 자신을 하나님께 내어 드리는 시간이 필요하다. 관상을 통하여 받을 은총에 비하면 하나님께 내어 드리는 은 너무도 작은 값이다.
3. 관상기도의 기초
“ 그 날에는 내가 아버지 안에 내가 너희 안에 있는 것을 알리라.” (요14;20)
하나님은 인간을 창조하시며 하나님의 본성을 인간의 영혼 깊은 곳에 심어 주셨다. (시139;13)
성경은 오장육부를 말하지만 사실은 인간의 가장 깊은 존재의 심성을 말한다. 하나님은 성령님을 우리 안에 내주하게 하셨으며 거룩한 말씀과 성령으로 우리 안에 임재하고 계신다. 하나님은 우리의 존재의 가장 깊은 부분을 만들어 주셨으며 우리의 가장 깊은 존재 안에 계시고 우리의 가장 깊은 존재가 하나님의 형상이며 하나님의 신성이라고 토마스 키딩은 말한다. 어거스틴은 “ 하나님은 내 안에 계셨는데. 나는 하나님을 찾아 밖으로 헤메었나이다.” 라고 고백했다.
사람들은 우리 안에 계신 주님을 말아보지 못하고 저 밖에 멀리 계신 것처럼 불신으로 확신없이 기도한다. 그 이유는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기 때문이다. (롬3;23)
1) 하나님이 우리의 존재 가장 깊은 곳에 함께 계신다.
2) 우리가 하나님을 깊이 만나려면 본성을 가리우고 있는 죄(거짓 자아)에서 해방(정화) 되어야 한다.
3) 무한히 자비하시고 무한한 사랑으로 가득찬 하나님을 절대적으로 (신뢰) 자신을 맡겨야 한다.
기도가 잘 되지 않을 때 사람들은 하나님이 나를 버리셨거나 하나님이 원래 계시지 않거나 침묵만 하시거나 방관하시거나 자비하지 않다는 느낌을 갖는다. 그러나 하나님은 결코 나를 버리시거나 잊어버릴 수 없으시다. 사랑하는 부모처럼 자녀가 어려움을 당할 때 더욱 우리 곁을 지켜 주시는 분이시다. 다만 우리의 인간적인 지력이나 감각으로 그분의 돌보심과 동행하심을 보지 못할 뿐이다.
4. 관상기도를 방해하는 이성과 지력의 문제
지금은 인간의 이성과 지력을 극도로 숭배하는 세상이다.
12세기 경에 인간의 이성의 가치를 발견하고 깨우치기 시작한 이래 인간의 이성적 활동이 종교개혁이후 급격히 발달했다. 합리주의, 인본주의, 계몽주의, 실존주의, 과학주의, 실증주의 등 모든 것을 실증하고 분석하고 분류하는 과학적 태도가 생겨 났다.
문제는 과학적 태도의 문제 보다는 상대적으로 신비주의로 불리는 관상의 전통을 약화하거나 거세함으로 ..........을 잃어 버리고 치우쳐 버린 것이다. (롬3;4, 12)
“ 사람은 다 거짓되되 오직 하나님은 참되시다 할지어다... 다 치우쳐 무익하게 되고 .......” (롬3;4, 12) 따라서 16세기의 위대한 관상가 십자가의 성요한과 에빌라의 테레사의 글이 더로는 삭제되고 후에 출현한 이냐시오의 영성수련(상상과 지력과 의지를 동원하는 구조화된 묵상의 단계)이 이어져 올 뿐이다. 하나님을 알려고 하는 초기에는 이성과 지력과 상상이 어느정도 도움이 된다. 그러나 하나님과 깊이 일치하려고 할 때는 이성과 지력의 한계를 초월함으로 가능하다.
이성으로 하는 기도나 묵상이나 관상은 주부적 관상으로 이끌어 주는 발판이 되고 도움은 되지만 그것이 관상 기도의 끝은 아니다.
“ 우리가 이제는 거울(.........의 힘)로 보는 것 같이 희미하나 그 대에는 얼굴과 얼굴을 대하여(가슴과 가슴, 영과 영) 볼 것이요.. 이제는 내가 부분적으로 아니 그 때에는 주께서 나를 아신 것 같이 내가 온전히 알리라. ” (고전13;12)
5. 관상기도의 체험
기도중에 느껴지는 체험은 하나님이 꼭 안아 주신다는 느낌, 말할 수 없는 잔잔한 수면위의 평온,
하나님이 사랑으로 감싸 주신다는 느낌, 하나님이 현존하신다는 감각, 예수님의 모습으로 보는 환시, 영적인 위로등의 체험을 하기도 합니다.
어떤 관상기도는 하나님의 현존이나 느낌이나 영적인 바라봄을 ...........하도록 가르친다.
기도중에 어떤 느낌이나 현시나 감각을 추구하며 이러한 느낌을 갖지 못하면 기도가 실패한 것처럼 생각한다.
그러나 이러한 체험은 하나님께서 그를 ...........하기 위해서 주시는 선물이지만 모든 사람에게 다 언제나 주어지는 것은 아니다. 이러한 체험은 하나님과 일치를 이루는데 도움이 되지만 이 체험이 관상 기도의 목적지는 아니다.
인간은 약하기 때문에 이런 체험을 하면 이 체험을 계속하기를 원하고 추구한다.
그러나 우리의 목적은 이러한 체험을 얻으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일치를 추구하는 것이다.
느낌과 바라봄으로 하는 기도는 우리의 감성과 이성으로 하는 기도하며 자신의 노력으로 성취하려는 의도가 숨어 있다. 따라서 느낌과 바라봄 안에는 초월자이신 하나님에 대한 완전한 믿음과 신뢰가 결여 되어 있어서 이러한 것을 추구하면 진정한 관상기도를 하기 어렵다.
참다운 관상기도를 하려면 이 어떠한 체험에도 메달리지 말고 ......... 보내라고 한다.
그것을 분심(分心)이라고 한다. 이러한 체험을 하게 되면 하나님께 감사 드리면서 그 체험도 떠나 보내라. 이러한 체험이 없는 사람은 이것에 게의치 말고 꾸준히 기도에 정진할 뿐이다.
관상기도는 오직 순수한 믿음과 사랑과 신뢰의 기도라는 사실을 명심하라.
어떤 관상기도는 예수님을 바라 보거나 현존을 인식하라고 가르친다. 인간의 기능은 감각적 기능과 이성적 기능 외에 영적인 기능이 있다. 우리가 하나님의 현존을 인식하고 그리스도를 바라 보는 것은 감각과 이성의 바라봄이 아니라 영적인 바라봄이며 영적인 인식이다.
관상(觀相. 볼 관, 서로 상)이라 하여... 바라봄과 현존을 추구할 때 이것을 잘못 이해하고 감각과 이성의 기능으로 바라보려고 하면 관상 기도는 판판히 실패하게 된다.
즉 우리의 이성으로 알 수 없는 무지의 구름 안에서 아주 캄캄한 방에서 영으로 바라보고 체험하는 것이다. 영적인 바라봄과 체험은 차라리 우리의 감각과 이성의 바라봄과 체험을 온전히 포기할 때 이루어 진다.
분심과 졸음,잠듦, 집중에 대하여 너무 게의치 말라.
분심은 인간이 살아 있고 정신활동을 하고 있다는 ......... 있는 증거이다.
분심은 정신을 산만하게 하고 기도를 방해한다. 그러나 기도할 수 없는 이유는 분심에 마음을 빼앗기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분심에 얽매이기 때문이다. 분심이 떠 오르면 바라 보고 관심을 두지 않으면서 떠나 보내고 흘러 보내라. 관상기도 수련은 분심에 마음을 빼앗기지 않으면서 분심에서 해방되는 수련이며 얽매이지 않고 관심 두지 않으면서 떠나 보내는 수련이다.
또한 자신이 집착하고 있는 사고, 태도, 감정등의 분심에 대하여 초연한 태도를 기르는 것이며 이런 태도는 하루 아침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며 ...........하면서 늘 해야 하는 것이다.
집중이 되지 않아서 기도가 되지 않는다고 말한다.
이 말은 분심이 많다는 뜻이다. 집중은 나의 노력과 의지로 하는 것이다.
관상기도는 나의 노력과 의지라기 보다는 관상의 ..............을 은혜로 받는 .............적인 것이다.
주의 집중에 노력을 기울이지 말고 하나님이 주시는 관상의 선물을 받는 태도를 기르라.
관상기도는 주의 집중하는 기도 수련이 아니라.. 마음을 모으는 최면활동이 아니라 하나님의 현존과 활동에 자신을 열어 드리는 태도, 즉 수용적(受容的, Receptive)를 기르는 수련이다.
깊은 영적인 침묵 속에 들어 가면 마치 잠을 자는 것과 같은 상태에 이른다.
이러한 상태의 사람들은 기도를 하지 않고 잠을 잤기에 기도를 잘못했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침묵이 관상기도로 가는 과정이다. 코를 골지 않았으며 머리를 끄덕이지 않고 침묵속에 바른 자세로 침묵속에 머물러 있었다면 무시간.. 즉 영원한 시간속에 그분과 함께 머물렀던 것이다.
그러나 분심이 들고.. 잡념이 있고, 잠을 잤다고 해도 낙심하지 말고 꾸준히 기도하라. 하나님 안에서 좋은 휴식을 취한 것이니 감사하고 다시 마음을 주님께 드려서 기도를 시작하면 된다.
근본적으로 관상기도는 하나님 앞에서 쉼의 기도이며 안식의 기도이다. 시편 말씀처럼 “ 젖을 실컷 먹고 엄마 품에서 포근히 ............... 모습” 이 관상 기도의 모습이다.
6. 관상기도의 결과
관상기도는 기도 과정 보다는 기도 후에 나타나는 ..............의 변화와 인격적 변화가 열매이다.
마음의 정화, 영혼육의 깊은 전인치유, 의식의 재구성, 내 안에 주님이 사심, 나는 죽고 그리스도가 살아 계시는 변화, 완전한 그리스도인, 성화, 그리스도를 닮은 모습, 그리스도로 옷 입은 사람으로 변화된 그리스도인이 된다. (갈2;20, 갈3;27)
성령의 열매를 맺는 삶(갈5;22) 참 행복의 누림(마5;1-12), 마음과 생각이 새로워진 사람(엡4;22-24)
새사람(골2;9-11), 진리 안에서 자유를 누리는 사람(요8;32), 평범한 삶을 남다는 사랑으로 가득한 삶을 사는 삶, 일상적 삶에서 복음의 향기를 드러내는 삶이 된다.
즉.. 오랜 내적 상처, 깊은 ...........을 치유 받으며
정신과 의식속에 숨겨져 있고 눌려 있던 모든 쓰레기들이 정화되고 제거되어 자아가 변화된 삶이다.
7. 관상기도의 실재적인 방법
* 관상기도 준비단계 * ( 20분, 50분, 80분 등으로 기도한다. )
1) 정신을 집중할 수 있는 조용하고 편안한 .......를 선택한다.
2) 그리고 적당한 운동으로 굳은 몸을 ..............준다
그리고 편한 자세로 앉는다.
3) 어깨에 힘을 빼고 허리를 곧게 펴고 손은 가볍게 무릎위에 가볍게 올려 놓는다.
4) 대기 중의 공기를 하나님의 ..........으로 생각한다.
5) 그리고 호흡의 리듬을 느리게 조정한다.
숨을 들이마시고 내뿜는 비율을 약 1 : 2로 하는 것이 좋다.
6) 이렇게 하는 동안 내적으로는 마음의 자리에 초점을 맞춘다.
7) 이러한 자세에서 마음과 정신이 연결될 때 기도자는 예수의 이름을 부르기 시작한다.
" 주여 " 또는 "하나님의 아들 주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를 고요히 부른다.
8) 기도 노트를 .........한다. - 기도 시기를 기록한다.
- 나에게 특별히 부딪혀 온 단어나 말씀들이 무엇인지 기록한다.
- 무슨 느낌을 받았는지를 기록한다. 즉 충동, 평화, 사랑, 신뢰, 기쁨, 자유로움, 메마름, 고통,
걱정, 분노, 소외감,등의 내적인 움직임들을 찾아본다.
그리고 그 느낌들이 주는 의미가 무엇인지를 기록한다.
- 어느 부분에서 하나님의 임재와 부재가 있었는지를 기록한다.
- 다음 기도에서 다시 돌아가 반복하고 싶은 부분이 확인되면
그것이 무엇인지 기록한다.
9) 다음 기도를 할 때 이전의 노트에 기록된 것을 붙들고 기도로 들어 간다.
* 관상기도로 들어 가는 여러 가지 오솔길 *
1) 주 예수의 기도 ;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여 죄인인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2) 분심이나 잡념이나 졸음이 올 때 부르는 거룩한 단어 ; 예수님, 성령, 평화, 사랑... 을 부름
3) 성경 한 구절을 부름으로 주님께 집중함 ; 하나님은 나의 목자 부족함이 없어라.(시23;1)
1) 주 예수의 기도 ;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여 죄인인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2) 분심이나 잡념이나 졸음이 올 때 부르는 거룩한 단어 ; 예수님, 성령, 평화, 사랑... 을 부름
3) 성경 한 구절을 부름으로 주님께 집중함 ; 하나님은 나의 목자 부족함이 없어라.(시23;1)
좋기도 하여라 형제 자매 한자리에 모여 사는 삶(시133;1)
나외 왕, 나의 하나님! // 나의 주님! 나의 하나님! (시84;3, 요20;28)
4) 거룩한 독서 ( 렉티오 디비나 ) ; 4단계를 통한 관상 기도 묵상법
2007.7.23일(월), (시편 21;1-10) 말씀을 통해 주님과 일치가 되는 거룩한 독서 묵상 (실예)2)
* 거룩한 독서의 4단계 (렉티오 디비나 Lectio Divina) 성령이여 강림하사 나를 감화 하시고 ( 190장 )
말씀을 펼치기전 “ 오소서 성령님! 주님을 만나게 하소서!” 구한다. 전적인 성령의 도우심 간구..
지금 읽는 성경 말씀을 지금 나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사랑의 편지로 읽는다.
(1) 세밀하기 말씀 읽기 (lectio) ; 말씀을 천천히 읽는다. 우리를 구원하시는 하나님 말씀 앞에 우리
자신을 활짝 열어 드린다. 성령님이 내 안에 계심으로 친히 말씀을 이해하게 가르쳐 주시고 나에게 꼭 필요한 말씀으로 들려주신다. 천천히 소리 내어 반복해서 읽고 또 읽다가 한 줄이나 한 단어가 마음에 부딪혀 관심을 사로잡으면 거기 멈춰서 그 말씀에 머문다. 그 말씀을 반복해서 읽고 또 읽는다.
==> 반복해서 읽기 --> 나에게 개인적으로 주시는 말씀 찾기 --> 말씀 앞에 멈춰 서기 --> ??
(2) 묵상하기 (meditation) ; 그 말씀이 왜 나의 마음에 와 닿았는지(touch), 그 말씀은 내게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를 우리의 마음과 이성과 감정, 즉 우리의 전 인격을 동원하여 묵상한다. 여기서 묵 상은 말씀에 대해 지식으로 연구를 하는 것이 아니다. 묵상의 방법으로 오늘 내 마음에 와 닿는 단어나 구절을 반복하여 깊이 생각하고 마음에 새긴다. 소가 되새김질 하듯이 말씀을 곱씹어 마음과 영혼에 담는다. 묵상하여 마음과 영혼 깊은 곳에 삼킨 음식을 꺼내어 씹고 또 씹듯이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을 계속 되새김질한다, 주어진 말씀을 반복함으로써 말씀이 우리 마음속 깊이 뿌리를 내려서 말씀과 내가 하나가 된다. 내 마음 깊은 곳, 내 영혼 속에 은밀하게 고요하게 말씀하신 그 말씀을 직접 쓰기도 한다.
==> 마음에 와 닿은 말씀을 생각하고 떠 오르는 느낌과 생각 붙들기 --> 마음으로 곱씹기 --> ??
(3) 기도하기 (oritio) ; 주님이 내 마음속에 주신 말씀을 가지고 이제 하나님께 ‘말씀 드린다’, 즉 ‘기도한다’. 주어진 말씀과 그 말씀의 의미를 통해서 하나님이 오늘 나를 삶의 어떠한 부분으로 인도하시는지를 발견한다. 이 단계는 말씀이 내 존재의 가장 깊은 곳까지 들어갈 수 있도록 나를 더욱 말씀 앞에 열어 놓는 단계이며, 주신 말씀에 대하여 나의 생각, 뜻, 결심, 느낌을 동원해서 하나님께 응답하는 단계이다. “성서를 통해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우리는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께 말합니다.”
==> 왜 이 말씀을 주셨습니까? --> 주님이 주신것을 기쁘게 받겠습니다.--> 기도하기 --> ??
(4) 관상하기 (contemplatio) ; 관상은 말씀을 통해서 우리를 찾아오신 하나님의 임재(현존) 앞에 머무르는 단계이다. 지금 이곳에 계신 성령님이 나와 하나님과의 관계를 더욱 깊게 해 주시고 나를 말씀으로 인도하고 변화시킬 수 있도록 하나님의 품안에 들어가 안기는 것이다. 나를 감싸 안아 주시는 하나님의 깊은 사랑과 평화 속에 머물러 있는 상태이다. 우리가 거룩한 독서를 행하는 가운데 우리에게 영원 전부터 영원까지 임재하시는 하나님 앞에 머무르고 그 품에 안겨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이러한 일치의 경험은 전적으로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은혜의 선물이다. 말씀으로 찾아오신 주님과 하나가 된다. 나를 이렇게 사랑하시고 품으시며 하나가 되어 주시는 주님을 고요히 바라본다. 무엇을 내가
하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성령으로 와 계신 성령님이 친히 활동하도록 나를 전적으로 내어 드린다.
==> 걱정, 염려, 일등의 스위치를 꺼 두고 고요히 하나님 앞에 앉아 있기 -> 주님만 바라봄 -> ??
주님 품안에 깊이 안겨있는 아기처럼 쉼, 주님의 심장의 고동소리 느끼며 주님과 하나됨
주님을 바라봄으로 그 품안에 머뭄, 주님의 숨결로 다가와 주시는 모든 것을 받아 들임..
하나님과 하나됨........ 신비한 영적인 일치를 경험함
< 주님과 일치가 되는 묵상의 실예 > 상하고 깨어진 나의 자존감을 회복시켜주심 (시21;1-6)
1) 주께서 내게 주신 힘, 구원, 소원응답, 아름다운 복, 순금 관, 건강과 장수, 영원한 복을 주심
2) 누가 뭐래도, 환경이 어떠해도, 마음의 풍랑과 걱정과 염려가 사라지고 지극한 기쁨을 주심(6)
3) 나를 이토록 후대하시고 높혀주시는 주님만 전적으로 의지하며 온 마음으로 경배하며 찬양드림(7)
☞ 내 마음 깊은 곳에 상하고 무너져 있음을 아시며 최상으로, 최고로 높혀주시며 존귀하게 회복하심
주님이 무너진 내 마음을 이토록 잘 아시고 한없는 사랑과 지극한 은총을 주시니 감사! 찬미!!
(자료출처 http://cafe.daum.net/kozanp/BqMM/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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