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받은 것도 죄가 된다
상처받은 것도 죄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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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가 다른 분들과 다른 관점을 가지고 있어서 글을 올려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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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http://www.amen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9773
2009년 10월 18일 (일) 08:00:30 양봉식 sunyang@amennews.com
“나 상처 받았어.”
상대방의 말이나 행동으로 상처를 받았다는 말을 듣는 경우가 있다. 대개 이런 경우 상처를 준 사람은 문제가 있지만 상처를 받은 사람은 문제없는 것처럼 보인다. 그렇지만 상처를 준 사람도 문제가 있지만 상처를 받은 것 역시 문제가 있다.
아담이 범죄 했을 때 하나님은 그 책임을 아담에게 물었다. 아담은 곧 바로 여자에게 책임을 돌렸다. 여자는 뱀(사단)에게 책임을 돌렸다. 하나님은 책임의 경중을 따라 모두에게 책임을 물었다.
상처에 대한 문제도 똑같은 적용이 된다. 상처받은 것도 죄가 된다는 말이다. 상처를 주는 말이나 행동을 했을 때 상대방이 상처를 받기로 선택했다. 그래서 상처가 난 것이다. 상처를 받은 것도 죄가 되는 것이다.
이것은 죄의 상호작용을 엿볼 수 있게 한다. 죄는 결코 홀로 발생하지 않는다. 죄를 저지르게 하는 상황은 언제나 있다. 그러나 상황만이 문제가 아니라 상황에 반응하는 자의 태도가 문제다. 반응과 태도에서 죄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탓에 익숙해있다. 가령 자신에게 심각한 피해를 준 사람을 두고 어떤 태도를 하고 있는지 보면 알 수 있다. 어떤 사람은 자신에게 심각한 재산의 피해를 준 사람에 대해 비난과 분노를 표시한다. 그 사람이 자신에게 돈을 제 때 갚았으면 어려움을 당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한다. 빌려준 돈을 받지 않음으로 인해 대신 그 이자를 지불하고 갚아야 하는 일이 발생했다.
그래서 빌려간 사람에게 갖가지 험담과 비난을 한다. 약속을 지키지 않는 것에 대한 분노와 욕지거리가 입에서 나온다. 상황은 분명하게 발생했다. 상대방은 자신에게 돈을 통해 심각한 손해를 끼쳤다. 그런데 나는 재정적인 손해만 본 것이 아니라 상대방에 대해 분노와 정죄, 비난을 통해 마음까지 상했다. 문제 발생에 대해 재정적인 손실만 선택했다면 본인은 마음이 크게 다치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지만 상대방에 대한 악감정을 선택함으로 인해 마음을 다치게 하는 일을 발생시켰다.
사람들은 이런 사실에 대해 “그런 반응은 당연하지 않느냐”고 반문할 것이다. 하지만 돌이켜 깊이 생각할 필요가 있다. 비난한다고 해서 상대방이 빌려준 돈을 곧 바로 돌려주지 않는다. 상대방에 분노의 감정을 가진다고 해서 상황이 좋은 방향으로 바뀌는 것도 아니다.
빌려준 돈을 포기하라는 말이 아니다. 상황선택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자신의 삶이 건강해질 수 있느냐 그렇지 않느냐를 연출할 수 있다는 것이다. 사태가 일어났을 때, 사람들은 감당하기 어려우면 그 일에 대해 부정한다. 잊어버리고 싶기 때문이다. 하지만 잊어버릴 수 없다.
잊어버릴 수 없을 때 하는 일은 그 사태에 대해 원망, 분노, 좌절을 택한다. 부정적인 것을 택할수록 그 삶은 황폐해지고 파괴된다. 자신의 삶을 건강하게 유지하고 싶다면 부정적인 것을 선택하지 않으면 된다. 어떤 상황이든 자신의 태도가 그 상황을 변화시킬 수 없다. 문제는 일어난 현실을 객관적인 틀을 유지한 가운데 하나씩 처리해나가면 된다. 감정을 가진 존재이기 때문에 쉽지 않다. 그렇지만 자신의 감정이 문제 해결에 큰 도움을 주지 않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어떤 것을 선택해 자신의 존재까지 흔들리도록 방치해서는 안 된다.
상처를 받은 것도 죄다. 선택은 항상 우리에게 있다. 상처받기를 선택하면 그것은 우리에게 쓴뿌리를 낼 것이다. 쓴뿌리는 반드시 다른 사람에게 쓴물을 흘려보낸다. 삶을 건강하게 살고 싶다면 쓴뿌리를 내지 말아야 한다. 그것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을 선택할 때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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