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대면_이요나 목사는 "통합적인 태도"라 했다가 왜 다시 말을 바꾸었을까요?
자기대면_이요나 목사는 "통합적인 태도"라 했다가 왜 다시 말을 바꾸었을까요?

이요나 목사가 저의 글을 읽고 다음과 같이 말을 바꾸었습니다.
말을 바꾼 부분은 갈색처리된 부분입니다.
-------------- 이요나 목사의 원래의 글 -------------
"5)에서 제기된 Dr. Henry Brandt은
BCF의 존 불로거가 자기대면 메뉴얼(1991년)을 제작할 당시
제이 아담스와 함께 조언을 받은 사람 중에 하나입니다.
물론 Brandt는 일반심리학에 대하여도 관심을 갖고 통합적인 태도를 견지한 사람입니다.
그렇게 보면 제이 아담스를 비롯한 오늘날 성경적상담을 하는 모든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바우은 우리가 모두 이방인으로 허망된 세상철학을 따르던 사람들이라는 것을 전재합니다.
그렇다면 부모가 불교신자면 우리인생의 문제를 조안할 수 없는 것일까요?
우리 모두를 비롯한 사람의 변화는 진리의 영을 따라 가는 과정이며 그날이 곧 그리스도의 날이 될 것입니다."
(자료출처 http://www.biblicallife.kr/ipdemo5/customer/schedule.php?com_board_basic=read_form&com_board_idx=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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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용 자료 시작 ------------------------------------
5)에서 제기된 Dr. Henry Brandt는 BCF의 존 불로거가 자기대면 메뉴얼(1991년)을
제작할 당시 제이 아담스와 함께 조언을 받은 사람 중에 하나입니다.
물론 Brandt는 기독교심리학에 대해 우호적 입장을 견지한 사람입니다.
그러나 권면적상담을 일으킨 제이 아담스를 비롯하여 기독교상담을 하는
대부분의 사람들도 성경적진리를 깨닫기 전까지는 세상학문을 심취했던 사람들입니다.
바울은 우리가 모두 이방인으로 허망된 세상철학을 따르던 사람들이라고 증거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진리는 세상의 어둠을 밝히려 온 것이며,
우리는 모두 진리를 향하여 달려가는 과정이며
그 끝은 예수 그리스도의 날이 될 것입니다. | 119.192.xxx.xxx
(자료출처 http://www.biblicallife.kr/ipdemo5/customer/schedule.php?com_board_basic=read_form&com_board_idx=58)
------------------------------------ 인용 자료 끝 ------------------------------------
이요나는 목사는 왜 이렇게 말을 바꾸었을까요?
무엇이 두려워서 말을 바꾸었을까요?
이미 이요나 목사는 자신이
"통합적인 태도를 견지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드러내었습니다.
이미 뱉어낸 말을 주워담을 수는 없습니다.
이요나 목사가 말을 바꾼 부분들을 하나씩 살펴보겠습니다.
파란 색은 원래 했던 말이며, 갈색부분 말을 바꾼 것입니다.
1)
원래 말 ☞"물론 Brandt는 일반심리학에 대하여도 관심을 갖고 통합적인 태도를 견지한 사람입니다."
바꾼 말 ☞ "물론 Brandt는 기독교심리학에 대해 우호적 입장을 견지한 사람입니다."
이요나 목사는 먼저 쓴 글에서는
통합주의(절충주의)에 대해 인식이 부족한 면을 드러내었다면,
이 글에서는 "기독교심리학"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것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언필칭 "기독교심리학"이 얼마나 반기독교적인 인본주의 심리학인지를 모르고 있습니다.
이요나 목사가 말을 바꾸었지만, 이 문장에서는 사실상 같은 말입니다.
브랜트가 "일반심리학에 대하여도 관심을 갖고 통합적인 태도를 견지한 사람입니다."는 말이나,
"기독교심리학에 대해 우호적 입장을 견지한 사람입니다." 은 같은 말이나 다름이 없기 때문입니다.
이요나 목사는 일반심리학이나 기독교심리학이나
그 차이가 별 없다는 것을 모르기 때문에 이런 말을 하게 됩니다.
2)
원래 말 ☞ "그렇게 보면 제이 아담스를 비롯한 오늘날 성경적상담을 하는 모든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바꾼 말 ☞ "그러나 권면적상담을 일으킨 제이 아담스를 비롯하여 기독교상담을 하는
대부분의 사람들도 성경적진리를 깨닫기 전까지는 세상학문을 심취했던 사람들입니다. "
이요나 목사는 제이 아담스 역시 통합주의자로 함께 말해 놓고,
바꾼 말에서는, 제이 아담스를
"성경적진리를 깨닫기 전까지는 세상학문을 심취했던 사람"이라고 말했습니다.
이요나 목사는 왜 이런 말을 했을까요?
왜 이요나 목사는 제이 아담스 뿐만 아니라
기독교상담을 하는 대부분의 사람들까지 포함을 시킬까요?
이런 말은 기독교상담을 하는 이요나 목사까지도 포함된다는 의미인데,
왜 이런 말을 했을까요?
말을 잘 살펴 보면 놀라움을 금치 못합니다.
"성경적진리를 깨닫기 전까지는 세상학문을 심취했던 사람들입니다."
자, 그러면,
세상 학문에 심취했던 사람이 성경적 진리를 깨닫고 나서도
성경적 진리에 세상학문을 그대로 수용했다는 말이 됩니다.
이 문제는 제이 아담스만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자기대면의 저자인 존 블로거,
존 블로거가 자기대면을 출판하기 위해 조언을 받은 브랜트와 제이 아담스
그리고 자기대면과 같은 기독교상담가들까지 다 포함이 됩니다.
무엇에 포함이 된다는 말일까요?
그것은, 성경적 진리를 발견하고도 여전히 세상 학문을 수용해서 사용하고 있다는 의미입니다.
과연 이것이 성경적 진리를 발견한 사람의 자세일까요?
이 말은 이요나 목사의 다음과 같은 말에서 그 속내가 드러나게 됩니다.
3)
원래 말 ☞ "바우은 우리가 모두 이방인으로 허망된 세상철학을 따르던 사람들이라는 것을 전재합니다."
바꾼 말 ☞ "바울은 우리가 모두 이방인으로 허망된 세상철학을 따르던 사람들이라고 증거하였습니다."
이요나 목사는 바울의 예를 들어 자신의 말의 정당성을 입증하려고 합니다.
원래 말이나 바꾼 말이나 별 차이는 없는데, 왜 바꾸었을까요?
우선 바꾼 말이 나오는 성경구절을 찾아 읽어 보겠습니다.
그러므로 내가 이것을 말하며
주 안에서 증언하노니
이제부터 너희는 이방인이 그 마음의 허망한 것으로
행함 같이 행하지 말라(엡 4:17)
누가 철학과 헛된 속임수로 너희를 사로잡을까 주의하라
이것은 사람의 전통과 세상의 초등학문을 따름이요 그리스도를 따름이 아니니라(골 2:8)
호크마 주석을 참고해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
'허망'의 헬라어 '마타이오테티'(*)는
신약성경에서 때때로 우상 숭배와 관련된 단어로 사용된다(Bruce).
이것은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하나님의 생명으로부터 분리된 삶에서 비롯된 것으로
무책임한 처신에 이르게 하는 '쓸모 없는 생각'을 가리킨다(롬 1:21; 벧전 1:18, Wood).
바울은 이제 에베소 교인들이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으므로
하나님을 모르고 살았던 과거의 삶처럼 목적없이 헛된 것에 욕망을 기울여
무익하고 공허한 방향으로 나아가지 말 것을 권면한다.
----------------------------------
사도 바울이 "허망한 것"을 말할 때는,
이제는 그런 "무익하고 공허한 방향으로 가는 삶을 살지 마라"는 뜻입니다.
이제는 그런 세상의 초등학문을 따르지 말라고 강조했습니다.
그런데 이요나 목사는
"바울은 우리가 모두 이방인으로 허망된 세상철학을 따르던 사람들이라고 증거하였습니다."라고
말함으로써, 앞의 말과 연결해서 생각해 보면,
"허망된 세상철학"을 버리는 것이 아니라
그 "허망된 세상철학"과 함께 사용하라는 말로 밖에 들리지 않습니다.
그러면, 실제로 사도 바울은 어떻게 살았을까요?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빌 3:8)
사도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 외의 것들은 배설물로 여겼습니다.
왜냐하면,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입니다.
놀랍게도,
이것은 이요나 목사가 말하는 것과는 완전히 정반대 입니다.
4)
원래 말 ☞ "우리 모두를 비롯한 사람의 변화는 진리의 영을 따라 가는 과정이며
그날이 곧 그리스도의 날이 될 것입니다."
바꾼 말 ☞ "그러므로 진리는 세상의 어둠을 밝히려 온 것이며,
우리는 모두 진리를 향하여 달려가는 과정이며
그 끝은 예수 그리스도의 날이 될 것입니다."
이요나 목사의 이 말 속에 들어 있는 절충주의의 본색을 아시겠습니까?
"진리의 영을 따라 가는 과정이"라는 말이 가지는 의미는 바로 그런 것입니다.
"진리의 영을 따라 가는 과정"? 과연 이 말이 맞는 말일까요?
"예수 그리스도의 날"이 되기 전까지는
성경과 세상의 철학과 헛된 것을 통합하여 사용해도 된다는 말인데,
과연 그것이 성경적인 입장일까요?
이렇게 생각하게 되는 중요한 원인은
심리학을 하나의 학문으로 생각하는데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인본주의 심리학의 반기독교적이며 뉴에이지적인 위험성을
제대로 알지 못하기 때문에 생기는 현상입니다.
그 위험성을 신학교에서도 신대원에서도
아무도 가르쳐 주지 않습니다.
가르쳐 주는 사람들도 그렇게 배워왔고,
배우는 사람들도 그런 줄 알고 배우기 때문입니다.
기독교 성도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하나님의 나라를 기대하며 사는 것은
성경과 세상의 철학과 심리학을 섞어서 가르치고 배우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성경만으로" 가는 길입니다!!!
RPTministries 정태홍 목사
http://www.esesang91.com
http://twtkr.com/rptministries
http://www.facebook.com/RPTministries

이요나 목사가 저의 글을 읽고 다음과 같이 말을 바꾸었습니다.
말을 바꾼 부분은 갈색처리된 부분입니다.
-------------- 이요나 목사의 원래의 글 -------------
"5)에서 제기된 Dr. Henry Brandt은
BCF의 존 불로거가 자기대면 메뉴얼(1991년)을 제작할 당시
제이 아담스와 함께 조언을 받은 사람 중에 하나입니다.
물론 Brandt는 일반심리학에 대하여도 관심을 갖고 통합적인 태도를 견지한 사람입니다.
그렇게 보면 제이 아담스를 비롯한 오늘날 성경적상담을 하는 모든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바우은 우리가 모두 이방인으로 허망된 세상철학을 따르던 사람들이라는 것을 전재합니다.
그렇다면 부모가 불교신자면 우리인생의 문제를 조안할 수 없는 것일까요?
우리 모두를 비롯한 사람의 변화는 진리의 영을 따라 가는 과정이며 그날이 곧 그리스도의 날이 될 것입니다."
(자료출처 http://www.biblicallife.kr/ipdemo5/customer/schedule.php?com_board_basic=read_form&com_board_idx=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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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에서 제기된 Dr. Henry Brandt는 BCF의 존 불로거가 자기대면 메뉴얼(1991년)을
제작할 당시 제이 아담스와 함께 조언을 받은 사람 중에 하나입니다.
물론 Brandt는 기독교심리학에 대해 우호적 입장을 견지한 사람입니다.
그러나 권면적상담을 일으킨 제이 아담스를 비롯하여 기독교상담을 하는
대부분의 사람들도 성경적진리를 깨닫기 전까지는 세상학문을 심취했던 사람들입니다.
바울은 우리가 모두 이방인으로 허망된 세상철학을 따르던 사람들이라고 증거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진리는 세상의 어둠을 밝히려 온 것이며,
우리는 모두 진리를 향하여 달려가는 과정이며
그 끝은 예수 그리스도의 날이 될 것입니다. | 119.192.xxx.xxx
(자료출처 http://www.biblicallife.kr/ipdemo5/customer/schedule.php?com_board_basic=read_form&com_board_idx=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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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요나는 목사는 왜 이렇게 말을 바꾸었을까요?
무엇이 두려워서 말을 바꾸었을까요?
이미 이요나 목사는 자신이
"통합적인 태도를 견지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드러내었습니다.
이미 뱉어낸 말을 주워담을 수는 없습니다.
이요나 목사가 말을 바꾼 부분들을 하나씩 살펴보겠습니다.
파란 색은 원래 했던 말이며, 갈색부분 말을 바꾼 것입니다.
1)
원래 말 ☞"물론 Brandt는 일반심리학에 대하여도 관심을 갖고 통합적인 태도를 견지한 사람입니다."
바꾼 말 ☞ "물론 Brandt는 기독교심리학에 대해 우호적 입장을 견지한 사람입니다."
이요나 목사는 먼저 쓴 글에서는
통합주의(절충주의)에 대해 인식이 부족한 면을 드러내었다면,
이 글에서는 "기독교심리학"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것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언필칭 "기독교심리학"이 얼마나 반기독교적인 인본주의 심리학인지를 모르고 있습니다.
이요나 목사가 말을 바꾸었지만, 이 문장에서는 사실상 같은 말입니다.
브랜트가 "일반심리학에 대하여도 관심을 갖고 통합적인 태도를 견지한 사람입니다."는 말이나,
"기독교심리학에 대해 우호적 입장을 견지한 사람입니다." 은 같은 말이나 다름이 없기 때문입니다.
이요나 목사는 일반심리학이나 기독교심리학이나
그 차이가 별 없다는 것을 모르기 때문에 이런 말을 하게 됩니다.
2)
원래 말 ☞ "그렇게 보면 제이 아담스를 비롯한 오늘날 성경적상담을 하는 모든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바꾼 말 ☞ "그러나 권면적상담을 일으킨 제이 아담스를 비롯하여 기독교상담을 하는
대부분의 사람들도 성경적진리를 깨닫기 전까지는 세상학문을 심취했던 사람들입니다. "
이요나 목사는 제이 아담스 역시 통합주의자로 함께 말해 놓고,
바꾼 말에서는, 제이 아담스를
"성경적진리를 깨닫기 전까지는 세상학문을 심취했던 사람"이라고 말했습니다.
이요나 목사는 왜 이런 말을 했을까요?
왜 이요나 목사는 제이 아담스 뿐만 아니라
기독교상담을 하는 대부분의 사람들까지 포함을 시킬까요?
이런 말은 기독교상담을 하는 이요나 목사까지도 포함된다는 의미인데,
왜 이런 말을 했을까요?
말을 잘 살펴 보면 놀라움을 금치 못합니다.
"성경적진리를 깨닫기 전까지는 세상학문을 심취했던 사람들입니다."
자, 그러면,
세상 학문에 심취했던 사람이 성경적 진리를 깨닫고 나서도
성경적 진리에 세상학문을 그대로 수용했다는 말이 됩니다.
이 문제는 제이 아담스만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자기대면의 저자인 존 블로거,
존 블로거가 자기대면을 출판하기 위해 조언을 받은 브랜트와 제이 아담스
그리고 자기대면과 같은 기독교상담가들까지 다 포함이 됩니다.
무엇에 포함이 된다는 말일까요?
그것은, 성경적 진리를 발견하고도 여전히 세상 학문을 수용해서 사용하고 있다는 의미입니다.
과연 이것이 성경적 진리를 발견한 사람의 자세일까요?
이 말은 이요나 목사의 다음과 같은 말에서 그 속내가 드러나게 됩니다.
3)
원래 말 ☞ "바우은 우리가 모두 이방인으로 허망된 세상철학을 따르던 사람들이라는 것을 전재합니다."
바꾼 말 ☞ "바울은 우리가 모두 이방인으로 허망된 세상철학을 따르던 사람들이라고 증거하였습니다."
이요나 목사는 바울의 예를 들어 자신의 말의 정당성을 입증하려고 합니다.
원래 말이나 바꾼 말이나 별 차이는 없는데, 왜 바꾸었을까요?
우선 바꾼 말이 나오는 성경구절을 찾아 읽어 보겠습니다.
그러므로 내가 이것을 말하며
주 안에서 증언하노니
이제부터 너희는 이방인이 그 마음의 허망한 것으로
행함 같이 행하지 말라(엡 4:17)
누가 철학과 헛된 속임수로 너희를 사로잡을까 주의하라
이것은 사람의 전통과 세상의 초등학문을 따름이요 그리스도를 따름이 아니니라(골 2:8)
호크마 주석을 참고해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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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망'의 헬라어 '마타이오테티'(*)는
신약성경에서 때때로 우상 숭배와 관련된 단어로 사용된다(Bruce).
이것은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하나님의 생명으로부터 분리된 삶에서 비롯된 것으로
무책임한 처신에 이르게 하는 '쓸모 없는 생각'을 가리킨다(롬 1:21; 벧전 1:18, Wood).
바울은 이제 에베소 교인들이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으므로
하나님을 모르고 살았던 과거의 삶처럼 목적없이 헛된 것에 욕망을 기울여
무익하고 공허한 방향으로 나아가지 말 것을 권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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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 바울이 "허망한 것"을 말할 때는,
이제는 그런 "무익하고 공허한 방향으로 가는 삶을 살지 마라"는 뜻입니다.
이제는 그런 세상의 초등학문을 따르지 말라고 강조했습니다.
그런데 이요나 목사는
"바울은 우리가 모두 이방인으로 허망된 세상철학을 따르던 사람들이라고 증거하였습니다."라고
말함으로써, 앞의 말과 연결해서 생각해 보면,
"허망된 세상철학"을 버리는 것이 아니라
그 "허망된 세상철학"과 함께 사용하라는 말로 밖에 들리지 않습니다.
그러면, 실제로 사도 바울은 어떻게 살았을까요?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빌 3:8)
사도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 외의 것들은 배설물로 여겼습니다.
왜냐하면,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입니다.
놀랍게도,
이것은 이요나 목사가 말하는 것과는 완전히 정반대 입니다.
4)
원래 말 ☞ "우리 모두를 비롯한 사람의 변화는 진리의 영을 따라 가는 과정이며
그날이 곧 그리스도의 날이 될 것입니다."
바꾼 말 ☞ "그러므로 진리는 세상의 어둠을 밝히려 온 것이며,
우리는 모두 진리를 향하여 달려가는 과정이며
그 끝은 예수 그리스도의 날이 될 것입니다."
이요나 목사의 이 말 속에 들어 있는 절충주의의 본색을 아시겠습니까?
"진리의 영을 따라 가는 과정이"라는 말이 가지는 의미는 바로 그런 것입니다.
"진리의 영을 따라 가는 과정"? 과연 이 말이 맞는 말일까요?
"예수 그리스도의 날"이 되기 전까지는
성경과 세상의 철학과 헛된 것을 통합하여 사용해도 된다는 말인데,
과연 그것이 성경적인 입장일까요?
이렇게 생각하게 되는 중요한 원인은
심리학을 하나의 학문으로 생각하는데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인본주의 심리학의 반기독교적이며 뉴에이지적인 위험성을
제대로 알지 못하기 때문에 생기는 현상입니다.
그 위험성을 신학교에서도 신대원에서도
아무도 가르쳐 주지 않습니다.
가르쳐 주는 사람들도 그렇게 배워왔고,
배우는 사람들도 그런 줄 알고 배우기 때문입니다.
기독교 성도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하나님의 나라를 기대하며 사는 것은
성경과 세상의 철학과 심리학을 섞어서 가르치고 배우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성경만으로" 가는 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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