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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주_양촌치유센터_쌍욕하며 토설하는 것을 성경적이라 하는 양촌치유센터2

김종주_양촌치유센터_쌍욕하며 토설하는 것을 성경적이라 하는 양촌치유센터2
 
앞의 글에 이어서 글을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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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욕을 하며 토설하는 것은 성경적인가? 2012/08/12 15:18
글: 이화영 목사(새마음교회 담임목사, 양촌치유센터 전인치유사역자) 
 
어떤 이들은 “토설을 할 때 쌍욕을 하는 것이 부당하다”,

“성경에 쌍욕을 하여 토설한 경우가 없다”고 주장하며 토설을 반대한다.
하지만 이것도 오해에서 비롯된 주장이다.
 
쌍욕은 부당하게 할 때 죄가 되지만 정당하게 할 때는 죄가 되지 않는다.

성경은 이 사실을 분명하게 가르친다.
 
하나님은 두 가지의 쌍욕을 죄로 여기지 않으신다.
 
첫째, 하나님은 악인에게 쌍욕을 할 때 죄로 여기지 않으신다.

악인은 쌍욕을 먹는 것이 당연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예수님이 악한 바리새인들과 헤롯 왕에게 쌍욕을 하신 것이고, 세례 요한과 바울이 악한 바리새인들에게 쌍욕을 한 것이다.
 
(마 23:33)뱀들아 독사의 새끼들아 너희가 어떻게 지옥의 판결을 피하겠느냐
 
(마 3:7)요한이 많은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이 세례 베푸는 데로 오는 것을 보고 이르되 독사의 자식들아 누가 너희를 가르쳐 임박한 진노를 피하라 하더냐
 
(빌 3:2)개들을 삼가고 행악하는 자들을 삼가고 몸을 상해하는 일을 삼가라
 
둘째, 하나님은 자신을 억울하게 만든 사람을 욕할 때 죄로 여기지 않으신다. 이 때문에 욥이 그를 모함한 친구들의 아버지에게 쌍욕을 한 것을 용납해 주신 것이다.
 
(욥 30:1)그러나 이제는 나보다 젊은 자들이 나를 비웃는구나 그들의 아비들은 내가 보기에 내 양 떼를 지키는 개 중에도 둘 만하지 못한 자들이니라
 
욥을 보라. 욥은 자기를 죄인 취급한 친구들의 아버지를 “개만도 못한 놈들”이라고 쌍욕을 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개를 매우 혐오하기 때문에 사람을 개로 비유하는 것만 해도 매우 큰 욕이 된다. 그런데도 욥은 자기를 모함하는 친구들의 아버지를 “개만도 못한 놈들”이라고 쌍욕을 했다. 그런데도 하나님은 “욥의 말이 정당했다”고 하셨다(욥 32:7). 욥이 그렇게 토설을 해야만 마음의 상처가 치유되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사람은 마음에 상처를 받으면 자기에게 상처를 준 사람에게 쌍욕을 하는 것은 물론 죽이고 싶은 생각까지 든다. 그런데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속에는 미운 마음이 부글부글 끓으면서도 겉으로는 태연한 척 한다.
마음에 상처를 받은 사람이 그 상처를 그냥 두면 우울증, 정신분열 같은 정신질환에 걸리거나, 자기에게 상처를 준 사람들을 계속 미워하거나, 다른 사람들에게 분노를 폭발시키게 된다. 이렇게 되지 않으려면 반드시 토설을 해야 한다. 욥처럼 쌍욕을 해서라도 토설을 해야 한다. 토설을 충분히 하면 마음의 상처가 낫기 때문에 상처를 준 사람을 이해하고 용서하게 된다.
실제로 우리가 치유사역을 해보면 내담자들 중에서 마음의 상처 때문에 마음속에 분노가 이글거리는 사람이 쌍욕을 하며 토설을 한 후에는 상처를 준 사람을 용서하고, 그들과 화해하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래서 양촌치유센터의 치유사역자들이 내담자들에게 토설을 시키는 것이고, 쌍욕을 하며 토설하는 내담자들에게 강력한 치유가 발생하는 것이다!
물론 쌍욕을 하지 않고 토설해서 마음의 상처를 치유할 수 있으면 그렇게 하면 된다. 그러므로 마음의 상처가 적은 사람은 쌍욕을 하며 토설할 필요가 없다. 하지만 마음의 상처가 많아서 분노가 부글부글 끓는 사람은 욥처럼 쌍욕을 해서 토설을 해야 상처가 빨리 치유된다.
 
쌍욕을 해서 토설하는 것은 성경의 분명한 가르침이다. 하나님은 쌍욕을 해서라도 토설을 해서 마음의 상처를 치유 받고, 상처를 준 사람을 용서하기 원하신다. 욥은 하나님의 뜻에 따라서 쌍욕을 해서 상처를 치유 받고 상처를 준 친구들을 용서할 수 있었고, 진심으로 그들을 축복해 줄 수 있었다. 그리하여 갑절의 복을 받을 수 있었다. 이처럼 놀라운 토설을 가르쳐 주신 하나님께 큰 찬양을 올리지 않을 수 없다!

(자료출처 http://blog.chosun.com/yespay/6554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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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화영목사는 양촌치유센터의 전인치유사역자입니다.

이제 두 번째 부분을 살펴보겠습니다.
 
2)하나님은 자신을 억울하게 만든 사람을 욕할 때 죄로 여기지 않으시는가?
이화영 목사는 이것을 증명하기 위하여 욥을 예를 듭니다.
 
(욥 30:1)그러나 이제는 나보다 젊은 자들이 나를 비웃는구나
그들의 아비들은 내가 보기에 내 양 떼를 지키는 개 중에도 둘 만하지 못한 자들이니라
 
이 본문도 주석을 참고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호크마 주석에서)------------------
그러나 이제는(*, 웨아타) - 본절에 이어 9절과 16절에서도 반복되고 있는 이 서두는 욥의 이전 상황과 현재의 상황을 아주 적절하게 대조시키는 말이다. 독자는 이 짧은 한마디가 주는 반전(反轉)으로 인해 본장에서 전개될 욥의 진술의 성격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게 된다. 즉, 전장(前章)에서 하나님의 관심과 보호 속에서 최고의 형통함을 누렸던 날들을 회상하며 공의를 베풀었던 지도자로서의 자신의 '의로움'을 주장했던 욥은, 이제 현재의 자신의 모습을 과거와 비교함으로써 '극적인 대조'를 연출시키고 있는 것이다(Anderson). 한편 욥이 3장에서는 '갑작스러운 고난'자체에 대해 격한 감정을 표출했던 것에 비해 여기에서는 그 고난의 비중을 사회적, 영적측면에서 심도있게 인식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Anderson). 한편 욥은 본장의 서두를 일부러 긴 탄식으로 시작하여 이후로 언급하고자 하는 비참한 현실 상황에 대비하여 깊은 숨을 내쉬게 한다(Lange).
젊은 자들이...기롱하는구나 - '기롱하다'의 '사하크'(*)는 '차하크'(*)와 함께 사용되는 단어로 '비웃다' '조롱하다'는 뜻이다. '젊은 자'는 문자적으로는 '나이 어린 자들'(KJV, NIV, RSV, younger than I)이나, 29:8에서 욥을 경외하여 '숨기도 했던' 사실과 더욱이 욥이 그들의 아버지들을 마치 양을 지키는 개들 만큼도 취급받지 못할, 천박하고 무용(無用)한 자들로 평가함을 볼 때 그 심정이 어떠했는가를 느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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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주석에서도,
욥이 "양을 지키는 개들"을 말한 것은
자신의 깊은 탄식과 비참한 현실 상황이 얼마나 심각한가를 드러내기 위한 비유적인 말입니다.
 
그런데, 이화영 목사는 성경 본문을 비약하여, "개만도 못한 놈들"이라고 하여
욥이 그들을 향하여 "쌍욕을 했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도 "욥의 말이 정당했다"고 말했다고 합니다.
과연 하나님께서 '쌍욕'을 하는 것을 정당하다고 하시는 분이실까요?
앞의 글에서도 말했듯이, '쌍욕'을 하는 것을 옳다하는 것은
하나님의 존재와 하나님의 성품에 일치하지 않는 것입니다.
'쌍욕'을 옳다 인정하는 것이 하나님이 하는 것은 하나님에 대한 모욕입니다.
 
더 나아가서, 이화영 목사는
"마음의 상처가 많아서 분노가 부글부글 끓는 사람은
욥처럼 쌍욕을 해서 토설을 해야 상처가 빨리 치유된다."고 말합니다.
 
욥기를 통해서 쌍욕하면서 토설하는 것을 가르친다면
교회는 어떻게 될까요?
성도들이 교회 안에서나 가정에서나
너나 할 것 없이 쌍욕을 하는 것이 덕을 세우고 치유가 될까요?
그런 공동체는 곧바로 무너지게 되어 있습니다.
말씀에 기초한 교양과 상식과 인격이 없는 공동체는 반드시 무너지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런 것을 원하시지 않는다는 것은 엄연한 사실입니다.
 
우리가 한 가지 짚고 가야할 것은,
왜 양촌치유센터를 갔다 온 사람들이 그렇게 쌍욕을 해도 치유가 안 되는 것일까요?
물론 치유가 되었다고 간증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그러면 치유가 안 되는 사람들은 왜 안 되는 것일까요?
 
이화영 목사님의 말대로라면, 다 치유가 되어야할텐데,
어떤 사람은 치유가 되고 어떤 사람은 치유가 안 될까요?
'쌍욕하며 토설을 해서 치유가 되면 되는 것이고,
안 되면 당신탓이다' 이런 것일까요?
양촌치유센터를 갔다온 어떤 분의 아버지는,
"양촌치유센터에 가서 배워 온 것은 욕만 배워온거 같더라"는 말을 했습니다.
 
실제로 양촌치유센타에서 쌍욕을 하라는 그 욕은
여기에 글을 올리기 거북할 정도로 천한 욕들입니다. 
 
이화영 목사의 말대로 하자면,
굳이 쌍스러운 욕만 할 필요가 있을까요?
치유만 된다면 무슨 말이든지 해도 된다는 이런 논리라면
'나무아비타불관세음보살'이라고 하는 거는 안 되는가요?
쌍욕을 하는 것이나 '나무아비타불관세음보살'이라고 하는거나 무슨 차이가 있을까요?
 
이화영 목사는 부글부글 끓는 마음의 상처가 있는 사람들은
쌍욕을 하며 토설해야 치유가 된다고 말합니다.
인생을 조금만 살아본 사람들은 다 압니다.
쌍욕을 하기 시작하면 그 수위는 조절이 안 됩니다.
사도 바울의 말대로 더러운 말은 입 밖에도 내지 말아야만 합니다.
더러운 죄와의 싸움을 지속적으로 이루어져야 합니다.
더러운 언행과의 싸움도 마찬가지로 지속적으로 이루어져야 합니다.
 
쌍욕을 하며 토설해야 치유가 된다는
양촌치유센타의 내적치유는 쌍스럽고 천하고 교양이 없는 내적치유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행하시는 치유 속에는 거룩함이 드러나게 됩니다.
하나님의 거룩한 속성이 드러나지 않는 치유는 잘못된 것입니다.
기독교의 교리는 하나님의 거룩함이 드러나는 교리이며
하나님의 교회는 하나님의 거룩함을 실현해가는 교회이어야 합니다.

RPTministries 정태홍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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