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형상담으로 예수님과 바울이 전도했는가?
전도를 하는 것이 중요한 일이라는 것을 가벼이 여기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러나 전도를 어떻게 하느냐는 매우 중요한 문제입니다.
말은 "개혁주의 개혁주의"를 외치지만
실상 교회에서 개혁주의라는 이름으로 가르쳐 지는 것은 무엇입니까?
저의 글은 앞에서 도형상담에 글을 올리신 분께서
소위 "비난"하는 자로 언급을 하셨기 때문에 드리는 글입니다.
앞에 글에서 올리신 분이 이렇게 말씀을해 놓으셨습니다.
<
전도의 접촉도구로 사용하는 도형을 비난하는 분들은
“가르치는 사역이 아닌” 예수님과 사도 바울과 같이
전도 현장에서 한 영혼 구원을 위해 무슨 방도로 해야 하는지
가슴아파해 본적이 있는지요?
『그러면 무엇이냐 겉치레로 하나 참으로 하나
무슨 방도로 하든지 전파되는 것은 그리스도니
이로써 나는 기뻐하고 또한 기뻐하리라』
>
성경 어디를 살펴봐도
예수님과 바울이 점성술을 가르쳤다거나
점성술로 전도했다는 곳은 없습니다.
오히려 귀신들이 항복하고 떠나갔다는 말씀은 있어도,
점성술에 기초한 도형상담으로 가르쳤다는 말씀은 없습니다.
제가 문맥을 몰라서 하는 말이 아닙니다.
그런 비성경적인 방법으로 예수님이나 사도 바울이 전도한 예가 없습니다.
성경에 그런 곳이 있다면 어느 성경 몇 장 몇 절에 나와 있다고 말씀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무엇이냐 겉치레로 하나 참으로 하나
무슨 방도로 하든지 전파되는 것은 그리스도니
이로써 나는 기뻐하고 또한 기뻐하리라』>
라고
인용하신 본문은 사도 바울이 빌립보서 1장 18절의 말씀입니다.
제가 주석을 찾아보니 이렇게 나와 있네요~
외모로 하나 참으로 하나 무슨 방도로 하든지 전파되는 것은 그리스도니 -
'외모로 하나'는 15절의 '투기와 분쟁으로'와 상관되며 '참으로 하나'는 15절의 '착한 뜻으로'와 상관 된다.
순수하게 헌신하는 마음으로 복음을 전하는 자들의 전파나, 자기의 전파나,
자기의 유익을 위해서 전하는 사람들의 전파나 복음은 동일하게 전파되었다.
이것은 그리스도가 승리하는 것이라면 자신에게 향한 비난은 크게 문제가 되지 않으며
오직 그리스도만 전파되기를 바라는 바울의 소망을 암시한다(Kent).
저는 이 주석이 맞다고 봅니다.
사도 바울이 감옥에 갇히게 되자,
복음에 더 헌신되어 복음을 전파하는 무리가 있었고,
거기에 반하여 순수하지 못한 동기로 복음을 전하는 무리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오직 그리스도가 전파된다면 기뻐하리라 고 하는 말씀입니다.
여기에 어디 사도바울이 세상의 비성경적인 방법으로 전도를 했다는 기록이 있습니까?
있다면 무슨 근거인지를 말씀해 주십시오.
인터넷에 검색을 하면 금방이라도 점성술과 기질론의 연관된 글을 읽을 수 있습니다.
그렇게 쉽게 나오는 것을 아니라고 우겨도 소용이 없는 일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이미 다 알고 있는 것을
왜 굳이 도형상담을 하는 분들만 아니라고 하십니까?
그것도 목사라는 직분을 가지신 분들이 말입니다.
세상이 이미 도형상담 가질론 점성술 다 관련되어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데,
목사가 아니라고 하면 하루 아침에 아닌 걸로 바뀝니까?
길을 막고 물어 보십시오.
그런 것은 따질 문제도 아닙니다.
세상천지가 다 알고 있는 것을 왜 목사는 전도라는 이름하에
아니라고 우기고만 있으니 어처구니 없는 일이 아닙니까?
목사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사명자가 아닌가요?
만일 그것이 아니라면, 목사직을 내려놓아야 하는거 아닌가요?
전도라는 미명하에 온갖 세상의 더럽고 지저분한 쓰레기 이론과 사상을 끌어다가
하나님의 백성들의 영혼을 썩게 만들어간다면 과연 그것이 목회자가 할 일인가요?
세상 사람들이 언제 자기 기질을 몰라서 예수를 믿었던가요?
그들은 죄로 인한 형벌과 비참함을 모르는 것입니다.
혹여 그 일을 잘모르는 사람들이야 속아 넘어갈지는 몰라도,
요즘 평균학력이 대졸아닙니까?
그런 분들에게 들이밀고 말하는 것은
무식을 드러내는 행위거나
그중 잘 모르는 사람들을 부정당한 방법으로 사람을 홀리는 방법일겁니다.
그리고 시대적인 흐름을 보더라도
기질론은 소위 벌써 한물간 방법입니다.
아니 그런 것도 모르십니까?
그런 물건너간 방법을 목회자분들에게 언필칭 전도랍시고 가르치지 마십시오.
목회자를 그렇게 수준낮게 보아 넘기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 고신을 그렇게 얕잡아 보지 마시기 바랍니다.
고신의 목회자들이 아니 한국의 목회자들이
그렇게 우습게 보이십니까?
목사로의 부르심을 감당하려고 세상의 좋은 것을 다 뒤로하고 왔습니다.
세상에 먹고 살 일이 없어서 이 길로 온게 아닙니다.
오늘도 강단에서 말씀을 증거하면서,
"저 영혼들이 오직 하나님의 말씀으로 새 힘을 얻어
주님오실 때까지 이 믿음 지켜 가게 하리라"
그 마음으로 지사충성하고 삽니다.
그러기 위해 오늘도 이 말씀이 과연 무슨 말씀인가?
성령의 도우심을 구하며 기도하면서 연구하고 있습니다.
전도를 위해 우리는 유익한 말을 해줄 수 있습니다.
우리의 전도현장은 매우 어려운 것을 모두가 다 알고 있습니다.
발맛사지 전도지를 들고 나서기도 하고
미용으로 나가기도 합니다.
가서 불신자와 대화도 나누고, 밥도 해주고 애도 봐주고 그럽니다.
한 영혼 구원하기 위해 또 눈물로 기도합니다.
얼마나 애가 타고 얼마나 가슴아파 하는지 모릅니다.
저는 그런 목사님을 알고 있고 그런 성도들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전도현장이 어려워도
점성술에 기초한 도형상담으로는 가서는 안됩니다.
목사와 성도는 그래서는 안됩니다.
굳이 "된다" 그러면 목사 말고 성도 말고 다른 자리와 위치로 가서 하십시오.
목사 직분 떼놓으시고 다른 길로 가십시오.
그러면 저는 아무 소리 안합니다.
정말 가서 물어 보십시오.
정히 모르시겠거든
아무데나 가서 보십시오.
"나 목삽니다. 도형상담으로 전도하는데 이게 틀린가요 맞는가요?"
해도 해도 너무 하시고 가도 가도 너무 가십니다.
종교개혁주일이 내일 모렌데,
죽 쑤어 개주는 일은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목사는 오직 하나님의 말씀으로 가야 합니다.
점성술에 기초한 기질론은 반드시 중지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만으로 부족하다고 하면
목사 말고 다른 것을 찾아 보십시오~
그런 일은 세상에 얼마든지 있습니다.
그러나 목사는 목사의 길을 가야합니다.
성도는 성도의 길을 가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기도로 성령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열 두 사도의 다음의 말씀이 목사와 성도의 심장에 비수같이 꽂혀야 합니다.
『우리는 기도하는 것과 말씀 전하는 것을 전무하리라 하니』(행 6:4, 개역)
RPTministries 정태홍 목사
http://www.esesang91.com
http://twtkr.com/rptministries
http://www.facebook.com/RPTministries
그러나 전도를 어떻게 하느냐는 매우 중요한 문제입니다.
말은 "개혁주의 개혁주의"를 외치지만
실상 교회에서 개혁주의라는 이름으로 가르쳐 지는 것은 무엇입니까?
저의 글은 앞에서 도형상담에 글을 올리신 분께서
소위 "비난"하는 자로 언급을 하셨기 때문에 드리는 글입니다.
앞에 글에서 올리신 분이 이렇게 말씀을해 놓으셨습니다.
<
전도의 접촉도구로 사용하는 도형을 비난하는 분들은
“가르치는 사역이 아닌” 예수님과 사도 바울과 같이
전도 현장에서 한 영혼 구원을 위해 무슨 방도로 해야 하는지
가슴아파해 본적이 있는지요?
『그러면 무엇이냐 겉치레로 하나 참으로 하나
무슨 방도로 하든지 전파되는 것은 그리스도니
이로써 나는 기뻐하고 또한 기뻐하리라』
>
성경 어디를 살펴봐도
예수님과 바울이 점성술을 가르쳤다거나
점성술로 전도했다는 곳은 없습니다.
오히려 귀신들이 항복하고 떠나갔다는 말씀은 있어도,
점성술에 기초한 도형상담으로 가르쳤다는 말씀은 없습니다.
제가 문맥을 몰라서 하는 말이 아닙니다.
그런 비성경적인 방법으로 예수님이나 사도 바울이 전도한 예가 없습니다.
성경에 그런 곳이 있다면 어느 성경 몇 장 몇 절에 나와 있다고 말씀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무엇이냐 겉치레로 하나 참으로 하나
무슨 방도로 하든지 전파되는 것은 그리스도니
이로써 나는 기뻐하고 또한 기뻐하리라』>
라고
인용하신 본문은 사도 바울이 빌립보서 1장 18절의 말씀입니다.
제가 주석을 찾아보니 이렇게 나와 있네요~
외모로 하나 참으로 하나 무슨 방도로 하든지 전파되는 것은 그리스도니 -
'외모로 하나'는 15절의 '투기와 분쟁으로'와 상관되며 '참으로 하나'는 15절의 '착한 뜻으로'와 상관 된다.
순수하게 헌신하는 마음으로 복음을 전하는 자들의 전파나, 자기의 전파나,
자기의 유익을 위해서 전하는 사람들의 전파나 복음은 동일하게 전파되었다.
이것은 그리스도가 승리하는 것이라면 자신에게 향한 비난은 크게 문제가 되지 않으며
오직 그리스도만 전파되기를 바라는 바울의 소망을 암시한다(Kent).
저는 이 주석이 맞다고 봅니다.
사도 바울이 감옥에 갇히게 되자,
복음에 더 헌신되어 복음을 전파하는 무리가 있었고,
거기에 반하여 순수하지 못한 동기로 복음을 전하는 무리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오직 그리스도가 전파된다면 기뻐하리라 고 하는 말씀입니다.
여기에 어디 사도바울이 세상의 비성경적인 방법으로 전도를 했다는 기록이 있습니까?
있다면 무슨 근거인지를 말씀해 주십시오.
인터넷에 검색을 하면 금방이라도 점성술과 기질론의 연관된 글을 읽을 수 있습니다.
그렇게 쉽게 나오는 것을 아니라고 우겨도 소용이 없는 일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이미 다 알고 있는 것을
왜 굳이 도형상담을 하는 분들만 아니라고 하십니까?
그것도 목사라는 직분을 가지신 분들이 말입니다.
세상이 이미 도형상담 가질론 점성술 다 관련되어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데,
목사가 아니라고 하면 하루 아침에 아닌 걸로 바뀝니까?
길을 막고 물어 보십시오.
그런 것은 따질 문제도 아닙니다.
세상천지가 다 알고 있는 것을 왜 목사는 전도라는 이름하에
아니라고 우기고만 있으니 어처구니 없는 일이 아닙니까?
목사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사명자가 아닌가요?
만일 그것이 아니라면, 목사직을 내려놓아야 하는거 아닌가요?
전도라는 미명하에 온갖 세상의 더럽고 지저분한 쓰레기 이론과 사상을 끌어다가
하나님의 백성들의 영혼을 썩게 만들어간다면 과연 그것이 목회자가 할 일인가요?
세상 사람들이 언제 자기 기질을 몰라서 예수를 믿었던가요?
그들은 죄로 인한 형벌과 비참함을 모르는 것입니다.
혹여 그 일을 잘모르는 사람들이야 속아 넘어갈지는 몰라도,
요즘 평균학력이 대졸아닙니까?
그런 분들에게 들이밀고 말하는 것은
무식을 드러내는 행위거나
그중 잘 모르는 사람들을 부정당한 방법으로 사람을 홀리는 방법일겁니다.
그리고 시대적인 흐름을 보더라도
기질론은 소위 벌써 한물간 방법입니다.
아니 그런 것도 모르십니까?
그런 물건너간 방법을 목회자분들에게 언필칭 전도랍시고 가르치지 마십시오.
목회자를 그렇게 수준낮게 보아 넘기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 고신을 그렇게 얕잡아 보지 마시기 바랍니다.
고신의 목회자들이 아니 한국의 목회자들이
그렇게 우습게 보이십니까?
목사로의 부르심을 감당하려고 세상의 좋은 것을 다 뒤로하고 왔습니다.
세상에 먹고 살 일이 없어서 이 길로 온게 아닙니다.
오늘도 강단에서 말씀을 증거하면서,
"저 영혼들이 오직 하나님의 말씀으로 새 힘을 얻어
주님오실 때까지 이 믿음 지켜 가게 하리라"
그 마음으로 지사충성하고 삽니다.
그러기 위해 오늘도 이 말씀이 과연 무슨 말씀인가?
성령의 도우심을 구하며 기도하면서 연구하고 있습니다.
전도를 위해 우리는 유익한 말을 해줄 수 있습니다.
우리의 전도현장은 매우 어려운 것을 모두가 다 알고 있습니다.
발맛사지 전도지를 들고 나서기도 하고
미용으로 나가기도 합니다.
가서 불신자와 대화도 나누고, 밥도 해주고 애도 봐주고 그럽니다.
한 영혼 구원하기 위해 또 눈물로 기도합니다.
얼마나 애가 타고 얼마나 가슴아파 하는지 모릅니다.
저는 그런 목사님을 알고 있고 그런 성도들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전도현장이 어려워도
점성술에 기초한 도형상담으로는 가서는 안됩니다.
목사와 성도는 그래서는 안됩니다.
굳이 "된다" 그러면 목사 말고 성도 말고 다른 자리와 위치로 가서 하십시오.
목사 직분 떼놓으시고 다른 길로 가십시오.
그러면 저는 아무 소리 안합니다.
정말 가서 물어 보십시오.
정히 모르시겠거든
아무데나 가서 보십시오.
"나 목삽니다. 도형상담으로 전도하는데 이게 틀린가요 맞는가요?"
해도 해도 너무 하시고 가도 가도 너무 가십니다.
종교개혁주일이 내일 모렌데,
죽 쑤어 개주는 일은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목사는 오직 하나님의 말씀으로 가야 합니다.
점성술에 기초한 기질론은 반드시 중지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만으로 부족하다고 하면
목사 말고 다른 것을 찾아 보십시오~
그런 일은 세상에 얼마든지 있습니다.
그러나 목사는 목사의 길을 가야합니다.
성도는 성도의 길을 가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기도로 성령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열 두 사도의 다음의 말씀이 목사와 성도의 심장에 비수같이 꽂혀야 합니다.
『우리는 기도하는 것과 말씀 전하는 것을 전무하리라 하니』(행 6:4, 개역)
RPTministries 정태홍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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