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서택_내적치유_유일의 유산은 예수그리스도입니다?
주서택_내적치유_유일의 유산은 예수그리스도입니다
아래 글은 "유일의 유산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라는 제목으로
주서택 목사가 내적치유사역원 홈페이지 "칼럼"란에 올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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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유일의 유산은 예수그리스도입니다.
이름 주서택 작성일 2012.05.29
내 생애에 일어난 최대의 사건은 그리스도 사건입니다.
내 가슴 한 복판에 십자가를 세우고 예수님의 보혈로 불타는 사랑이 생겼습니다.
이 불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 불로 내 이웃을 사랑하며 더러워진 심령의 구석구석을 태울 것입니다.
나의 종교는 교리가 아닙니다. 나의 종교는 신학이 아니고 예배의식이 아닙니다.
내 가슴속에 타오르는 예수의 사랑의 불길입니다.
그런고로 내가 내 사랑하는 자녀에게 남기고 싶은 유일의 유산은 예수그리스도입니다.
예수님은 생기와 같고 거름과 같습니다.
정치의 나무, 도덕의 나무, 교육의 나무에 예수의 거름, 예수의 생기가 필요합니다.
절망속에 소망을, 미움속에 사랑을, 죽음에서 생명을
창조하는 예수의 생기를 목숨을 바쳐 드리고 싶습니다.
(자료출처 http://inner.or.kr/board/view.php?key=146&start=0&id=bbs_06&sn=&ss=on&sc=&keyword=&v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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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김준곤 목사의 "예수 칼럼" 중에 나오는 글입니다.
원래의 글은 다음과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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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가슴 한복판에 십자가를 세우고
속죄에의 불타는 사랑을 담자.
이 불로 하나님을 불같이 사랑하고
이 불로 사람을 불같이 사랑하자.
내 가슴에 타오르는 예수님을 사랑하는 불길로
이 더러워진 거리 구석구석을 태우리라.
이것이 나의 종교이다.
나의 종교는 교리가 아니다.
예배가 아니다.
가슴에 타오르는 예수의 사랑의 불길이다.
우리는 십자가의 사랑으로서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이지
교리나 의식으로 나아가는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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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불길"로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이 과연 기독교 신앙일까요?
이런 불꽃 신앙을 말하는 사람들이 누구일까요?
다음의 설교를 참고해 보면 이런 불꽃신앙이라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를 알 수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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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은 끝없이 타오르는 불꽃이었습니다. 홀로 어두운 방안에 앉아 촛불을 밝혀본 적이 있으십니까? 촛불이 있는 방은 아늑합니다. 때로는 매혹적이고 심지어는 성스러운 느낌이 들기도 합니다.
바슐라르라는 프랑스의 철학자는 촛불에 매료당해서 <<촛불의 미학>>이라는 책을 쓰기도 했습니다. 그 책에서 그는 촛불은 수직으로 상승하기 위해 혼자 탄다고 말합니다. 매우 미세한 바람이나 입김에도 불꽃이 흐트러지긴 하지만 촛불은 곧 바로 다시 일어납니다. 그는 촛불의 집요한 수직에의 본능은 차라리 거룩해 보인다고 말합니다. 촛불을 말할 때마다 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자기 몸을 태워 빛을 발하는 대목이지만, 어쩌면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일렁이면서도 기어코 몸을 바로 세우는 촛불의 수직성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예수님의 아름다우심은 하늘 아버지의 뜻을 이루기 위해 의식을 곧추세운 데서 비롯됩니다. 주님이 하신 말씀, 주님이 행하신 일들은 모두 하나님을 향한 발돋움이었습니다.
우리 속에도 촛불과도 같이 수직을 향한, 하늘을 향한 열망이 있다면 우리 삶은 한결 가벼워질 것입니다. 바울 사도는 성도들에게 쉬지 말고 기도하라고 일렀습니다. 특별한 장소에 머물며 어떤 말을 하는 것이 기도라면 이것은 불가능한 요구일 겁니다. 하지만 우리가 무엇을 하건 말없이 하나님과 소통하는 가운데 한다면 그것은 이미 기도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여전히 넘어지고 일어서기를 반복하는 약자들이지만 사랑이신 하나님의 현존을 느끼는 순간에는 그 사랑에 휩싸인 채 살아가게 됩니다. 사랑에 빠진 사람들을 보십시오. 그들은 일상의 모든 순간에 연인을 떠올리게 됩니다. 일상이 제아무리 분주해도 의식적으로 하나님을 우리 삶속으로 모시기 위해 노력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것은 마치 창문을 열어 시원한 공기를 받아들이는 것과 같습니다. 그런 노력을 통해 우리는 일상의 근심과 걱정으로부터 한 걸음 물러서서 현실을 바라보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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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설교의 위험성은 무엇일까요?
이런 설교는 "촛불과도 같이 수직을 향한, 하늘을 향항 열망"을 말합니다.
이것은 바슐라르라는 신비주의 철학자을 글을 인용하는데서 드러나듯이,
상승작용으로서의 영성을 의미합니다.
이것은 인간의 내면에 신성을 가지고 있다는 전제하에서 말하는 것이며,
그 신성이 발현되고 충만케 되어서 합일의 상태로 나아가는 것을 말합니다.
글의 내용을 봐서 알듯이,
주서택 목사는 김준곤 목사의 글을 인용하여 칼럼을 작성했습니다.
"나의 종교는 교리가 아닙니다.
나의 종교는 신학이 아니고 예배의식이 아닙니다.
내 가슴속에 타오르는 예수의 사랑의 불길입니다."
이런 말이 일면 아주 그럴듯해 보이지만,
실제로는 매우 위험스러운 글입니다.
물론 기독교는 교리가 아닙니다.
신학도 아니고 예배의식도 아닙니다.
그러나 기독교의 교리와 예수 그리스도와 다른 것일까요?
또한 기독교의 신학과 예배의식이 예수 그리스도와 다른 것일까요?
주서택 목사가 말하는 것처럼,
교리도 신학도 예배도 아니고
"내 가슴속에 타오르는 예수의 사랑의 불길"이라면,
굳이 기독교이어야할 필요가 있을까요?
여기서 놀라운 것은
"나의 종교는"이라고 표현한다는 사실입니다.
왜 하필 "나의 종교"라고 했을까요?
"종교적" 접근으로 나아가면
김준곤 목사와 주서택 목사의 말은 그대로 맞습니다.
종교의 차원으로 접근하면,
"나의 종교는 교리가 아닙니다.
나의 종교는 신학이 아니고 예배의식이 아닙니다.
내 가슴속에 타오르는 예수의 사랑의 불길입니다." 라는 말은 정말 멋진 말입니다.
종교의 차원으로 접근한다는 것은
인간 안에 신성한 내면아이로 접근한다는 것을 말합니다.
그것은 세상의 모든 종교들이 그렇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교리도 신학도 예배의식도 아니고,
오로지 마음에 불타오르는 그 사랑의 불길을 말합니다.
그 사랑이 부처의 사랑이든 예수의 사랑이든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
그저 자기 속에 있는 신성의 불길을 피워 올려 주면 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기독교 신앙은 신성한 내면아이로 접근하지 않습니다.
기독교 신앙은 내 안에 무엇이 있는 그것으로
하나님께 절대로 나아갈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인간은 죄인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피로써만 나아가게 됩니다.
그러니 예수님의 피로 죄 씻음을 받은 성도들에게만 허락됩니다.
주서택 목사의 칼럼을 잘 보십시오.
"나의 종교는 교리가 아닙니다. 나의 종교는 신학이 아니고 예배의식이 아닙니다.
내 가슴속에 타오르는 예수의 사랑의 불길입니다.
그런고로 내가 내 사랑하는 자녀에게 남기고 싶은 유일의 유산은 예수그리스도입니다.
예수님은 생기와 같고 거름과 같습니다.
정치의 나무, 도덕의 나무, 교육의 나무에 예수의 거름, 예수의 생기가 필요합니다.
절망속에 소망을, 미움속에 사랑을, 죽음에서 생명을 창조하는 예수의 생기를 목숨을 바쳐 드리고 싶습니다."
(자료출처 http://inner.or.kr/board/view.php?key=146&start=0&id=bbs_06&sn=&ss=on&sc=&keyword=&vn=)
이 글 역시 김준곤 목사의 글에서 인용된 것입니다.
결국 주서택 목사의 칼럼은 김준곤 목사의 글을 섞은 것에 불과합니다.
그러면서도 마치 자신의 칼럼인 것처럼 올려 놓았으니
최소한 김준목 목사의 글이라고 출처라도 밝혀야 하지 않을까요?
예수님은 "생기와 같고 거름과 같"다고 말합니다.
교리와 신학과 예배의식이 아닌 예수는 거름과 생기에 불과합니다.
김준곤 목사의 원래 글은 다음과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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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진리 생명
내 생애에 일어난 최대의 사건은
그리스도 사건이다.
그리스도는 나의 생명이요 사랑이요 소망이요
나의 평안이요 지혜요 모든 것의 모든 것이다.
그리스도의 절대가 다른 모든 것을 상대화시켰다.
내게 흠도 티도 없는 최후의 순수하고
진실한 것이 있다면 목숨이 열두 번 다한후에라도
더욱 사랑하고만 싶은 예수님 뿐이다.
골수 공산당은 피 속마저 빨갱이라고 들었는데,
나는 무의식과 꿈 속까지
예수 의식화가 된 예수쟁이고 싶다.
예수는 누구나 반드이 건너야 하는
인간 정신사의 강이며, 진리와 생명의 달이다.
그런고로 내가 내 사랑하는 자녀에게
남기고 싶은 유일한 유산은 예수 그리스도이다.
따라서 내 이웃에게, 사랑하는 내 동족에게
목숨을 바쳐 드리고 싶은 것도 예수이다.
먼저 예수를 구하라
그러면 다른 모든 것이 더해진다.
예수는 생기와 같고, 거름과 같다.
경제의 나무, 정치의 나무, 교육, 도덕
어떤 나무도 예수 거름, 예수 생기가 필요하다.
마음 속에 사랑을
절망 속에 소망을
죽음에서 생명을
창조하는 생기이기도 하다.
(자료출처 http://blog.naver.com/mingon1472/10107466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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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적으로, 김준곤 목사의 글에서
주서택 목사는 "경제의 나무"는 제외시켰다.
왜 "경제의 나무"를 제외시켰을까요???
원 저자는 "경제의 나무"를 말하고 있는데 말입니다.
중요한 것은 주서택 목사가
김준목 목사의 두 글을 조합한 그 저의가 무엇이냐? 하는 것입니다.
성경 어디에 예수님을 거름이라고 한 적이 있을까요?
성경 어디에 예수님을 생기라고 말한 적이 있을까요?
그런 적이 없습니다.
성경에서 예수님께서 한 알의 밀로 말씀하신 적은 있습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요 12:24정)
그런데 왜 예수님을 거름으로 생기로 말할까요?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사역과 관련이 없습니다.
그런 방식의 예수는 세상 종교에서 말하는 예수이지
성경이 말하고 있는 구원자 예수님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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