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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서택_내적치유_우울증을 통한 영적 성장

주서택_내적치유_우울증을 통한 영적 성장
http://cafe.naver.com/dedicare/38

 
아래 글은 주서택 목사로부터 직접적인 영향을 받은
우울증케어 클리닉의 김준한 목사의 글입니다.
이 글에서 김준한 목사는 우울증을 통해 영적인 성장이 있다는 것으로 말하면서,
십자가의 요한을 말하고 있습니다. 

-------------- 자료 인용 시작 ---------------------
1) 성경은 슬픔과 고통(시험)의 유익성에 대하여 많이 언급하고 있다.
[약] 1:2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당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벧전] 1 : 6 – 7 그러므로 너희가 이제 여러 가지 시험으로 말미암아 잠깐 근심하게 되지 않을 수 없으나 오히려 크게 기뻐하는도다. 너희 믿음의 확실함은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할 것이니라
 
2) 기독교인의 영적 성장에 가장 크게 기여하는 것은 고난과 어두움의 시기(times of hardship and darkness)을 긍정적으로 통과하였을 때이며 이 때 기독교인은 큰 영적 성장을 이룰 수 있다.
 
3)그러나 오늘날 우울증이 사람의 영적 성장에 기여한다는 것은 관계가 없는 것으로 들린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① St. John of the cross: '영혼의 어두운 밤‘(dark night of the soul)이라는 표현 을 통해 우울증을 영적 성장의 피할 수 없는 부분으로 쓰고 있다.
② Kenneth Leech : 어두운 밤의 개념을 일종의 단순한 어려움 들이나 감정적 고난 정도로 잘못 이해되고 있다고 지적했다.(따라서 깊은 우울증을 의미할 수 있다.)
 
4) 영혼의 어두움 이면(裏面)에는 하나님께 나아감과 기도를 통한 하나님의 인도를 받는 다는 의미도 있다.
 
5) 어두운 밤은 한 개인의 영혼이 다른 곳에서는 얻을 수 없는 믿음의 자리로 나아가 게 만들고, 하나님과 연합하게 한다.(우울증을 통해서 기독교인은 영적 성장의 자리에 나아갈 수 있다.)
-------------- 자료 인용 끝 ---------------------

케네스 리치(Kenneth Leech)가 누구일까요?
그는 영국 성공회 사제이자 영국 성공회 안에서 가톨릭 전통이 강한 앵글로 가톨릭(Anglo Catholic)의 영향을 많이 받은 사회 신학자입니다(자료출처 http://mall.godpeople.com/?G=9788988764282)
케네스 리치는 줄리안 노리치를 추종하며 신비주의 영성가입니다. 

김준한 목사는 왜 하필 이런 신비주의 영성가의 말을 인용해야 할까요?

십자가의 요한이 말하는 “영혼의 어우둔 밤”이란 무엇일까요?
다음의 자료를 참고해 보겠습니다. 

-------------- 자료 인용 시작 ---------------------
영혼의 4 가지 어두운 밤(The Dark Night of The Soul)

16세기 스페인의 신비가 “십자가의 성 요한”이 말한 저 유명한 “영혼의 네 가지 어두운 밤(The Dark Night of The Soul)” 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첫 번째 밤(감각의 능동적인 밤): 크리스천이 자신의 죄된 생활을 회개하고 세상에 물들지 않고 경건하게 살기 위하여 능동적으로 찬양+기도+말씀+영적 독서+신앙 수련에 힘씀으로 영적 만족과 마음의 평화를 누리는 시기입니다. 

두 번째 밤(감각의 수동적인 밤): 앞에 말한 그러한 신앙 수련에서 더 이상 아무런 느낌을 받을 수 없는 시기이며 오히려 메마름+영적 퇴보에 대한 두려움+기도도 되지 않는 답답한 심적 상태를 특징으로 합니다. 그러나 각자의 능동적 신앙 행동이 희미해짐으로 얼핏 메마르다고 느낄 수 있으나 실질적으로는 이 때야말로 하나님의 초자연적 은총에 의하여 그 영혼이 정화되는 시기입니다. 

세 번째 밤(영혼의 능동적인 밤): 마음의 감각으로 느낄 수 있는 영적 기쁨+만족+평화의 충만감 여부와 상관없이(즉, 이 눈에 아무 증거 아니 보이고 이 귀에 아무 소리 아니 들려도-찬송가 344장)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의 현존을 받아들이려고 노력하는 시기입니다. 이 단계의 크리스천은 하나님의 현존은 자기의 주관적 느낌이나 이성을 초월한다는 것을 感知(감지)하기 시작합니다. 

네 번째 밤(영혼의 어두운 밤): 이 단계에서 에고(거짓 자아=몸 나=반사적 의식)가 소멸하고 보다 깊고 미세한 영혼의 정화가 이루어집니다. 하나님의 현존을 더 이상 느낄 수 없게 되면서 하나님께 버림받았다는 느낌과 함께 각 사람의 내면에 있는 공허-無-비존재-어두움을 직면하는 시기입니다. 이 네 번째 밤을 지나 크리스천의 영혼은 하나님과의 참된 일치를 경험합니다.
(자료출처 http://77good.com/xe/10885) 
----------------- 자료 인용 끝 ---------------

글을 통해서 알 수 있듯이,
십자가의 요한이 지향하는 것은 영혼의 어두운 밤을 지나서 하나님과의 참된 일치를 경험하는 것입니다.
잘 아시다시피 십자가의 요한은 신비주의자입니다.
신비주의자라 하면 그냥 막연하게 들리실 것입니다. 

아래의 글을 읽어 보십시오.
----------------- 자료 인용 시작 ---------------
신비신학 5권 주입적 관상 4
제1절 고요의 일치 기도
일반적으로 고요의 일치 기도는, 영혼이 하느님 안에서 감미로움을 느끼기 전, 먼저 메마른 형태로 나타난다.

1. 메마른 고요의 기도 또는 감각의 밤
관상의 더 높은 단계로 영혼들을 준비시키고 정화하기 위해, 하느님께서 다양한 시련을 보내시는데, 이것을 수동적 시련이라 부른다.
십자가의 성 요한이 ‘어둔 밤’에서 기술한 것보다, 이 시련에 대하여 정확하게 표현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래서 성인은 영혼의 이 어두운 밤을 가리켜 시련의 밤이라 부른다.
성인은 영혼의 어두운 밤을 두 개의 밤으로 구분한다. 첫째 밤은, 특히 영혼으로 하여금 모든 감각적인 것으로부터 이탈하게 하는 데 관여한다. 그래서 이 밤을 감각적 밤이라 부른다. 그리고 둘째 밤은, 영혼을 이기적인 사랑과 영적인 위로에서 떼어 내게 한다.
 
우리는 여기에서 첫 번째 밤만을 다루기로 한다.
감성의 밤은 복잡한 영혼의 상태이며, 빛과 어두움, 하느님의 강한 사랑과 메마름이 예기치 않게 뒤섞이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무능력하다. 그래서 이 감성의 밤에서 영혼의 상태는 허울 좋은 자기모순에 빠지기 때문에 분석하기 매우 힘들다.

(1) 영적 밤의 구성 요소
영적 어두운 밤에서 가장 중요하고 첫째가는 것은, 하느님께서 영혼에게 부여하기 시작한 주입적 관상이다. 그러나 이 관상은 매우 비밀스럽고 어두운 방법으로 오기 때문에, 영혼은 이 관상을 잘 인식하지 못하고 고통과 괴로운 느낌만을 받는다.

  이와 같은 영혼의 상태를 더 잘 이해시키기 위해 성인은 다음과 같은 비유를 든다. “목재에 불이 불붙을 때에 맨 처음으로 하는 일은 말리기로, 습기를 밖으로 내뿜게 하고 목재에 배어 있는 수분이 우러나게 합니다. 다음에는 어둡고 검고 보기 흉한 색깔이 되면서 고약한 냄새까지 나기 마련인데, 차차 말라 들어가면서 불이 당겨지고 불과 상극인 모든 어둠과 더러움을 밖으로 몰아냅니다. 그러다가 마지막에는 나무를 태워 열을 올리고 변화시켜서 불 자체와 같이 아름답게 만듭니다.”

  이처럼 주입적 관상에 나타난 영혼에 대한 하느님의 불도 이와 같다고 할 수 있다. 이 불은 영혼을 당신께 동화시키기에 앞서 먼저 불과 상극이 되는 일체의 요소들을 없애 준다. 그래서 영혼으로 하여금 더러움을 내몰아 검고 어둡게 하여 평소보다 훨씬 더 추하고 지겹게 만들어 준다.
   영적 밤에서 위험스런 은밀한 관상은 영혼에게 큰 메마름을 가져다준다. 이 관상은 위로가 빼앗긴 감각적인 능력에서뿐만 아니라, 이전처럼 추리 형식으로 더 이상 묵상 할 수 없는 것을 통해 메마름을 준다.
   그러나 이 영적 밤에서 영혼의 정화를 위한 메마름은, 영혼의 미지근함과 부주의로 인해 야기된 메마름과는 구분이 되어야 한다. 십자가의 성  요한은 이 구분을 위해 다음 세 가지 징표를 든다.

  첫째, 영적 밤에서 영혼의 메마름은 하느님의 일에서 맛과 위로를 얻지 못하는 것처럼, 피조물에서도 아무런 낙을 얻지 못하는 것이 그 첫 번째 징표이다. 그러나 이와 반대로 영혼이 미지근하고 부주의한 경우에는, 하느님의 일이 아닌 다른 것에 마음이 끌리거나 맛을 들이려 한다.
  둘째, 영의 밤에서 영혼의 메마름은 하느님께 대한 불안과 걱정과 불편이 동반된 기억을 일상적으로 간직한다. 그러기 때문에 영혼은 하느님의 일에서 맛을 느끼지 못한다. 거기에 영혼은 스스로 하느님을 섬기지 않아서 영적으로 퇴보한 것이라 믿고, 행여 하느님을 잊을세라 애타게 찾는다.
  셋째, 영혼의 메마름에 대한 마지막 징표는 아무리 스스로 할 일을 다 해도 그전처럼 상상의 감각으로 추리를 통한 묵상을 도저히 할 수 없다는 것이다.    

 (2) 영적 밤에 동반되는 시련
(가) 영적 밤에 오래 지속되는 메마름 외에도, 영혼은 무서운 유혹을 고통을 당한다.
 1. 믿음에 대한 유혹 : 어두운 밤의 시련에 대해 영혼이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므로, 그는 스스로 아무것도 믿지 않는다고 상상하게 된다.
 2. 희망에 대한 유혹 : 어둔 밤의 시련에서 위로를 빼앗긴 영혼은 스스로 버려졌다고 믿고, 실망과 권태에 사로잡히게 된다.
 
 3. 정결에 대한 유혹 : 어두운 밤의 시련에서 영혼에게  “사탄의 악한 천사, 즉 간음의 신이 덮쳐서 지겹고 사나운 유혹으로 감각을 매질하고 더러운 생각과 아울러 상상을 통해 보이는 환상을 가지고 영혼을 못 견디게 하므로 때로는 죽기보다 더한 고통을 치르게 됩니다.”
 4. 인내에 대한 유혹 : 시련의 밤에서 영혼은 때로 자기 자신과 모든 원수들을 모독하면서  중얼거리는 성향이 생긴다. 그런데 이 모독의 생각이 어찌나 힘차게 상상력을 움직이는지 그 모독이 입 밖으로 튀어나오기까지 한다.
 
 5. 평화에 대한 유혹 : 밤의 시련에서 영혼은 세심과 의혹으로 꽉 채워져서, 그들의 판단이 헝클어질대로 헝클어져 아무것에도 만족할 수 없게 된다. 그 결과 영혼은 어떤 의견과 이성적 생각을 따를 수도 없게 된다. 이것이 바로 어두운 밤에서 영혼이 갖는 가장 큰 고통 가운데 하나이다.

(나) 영적 밤의 메마름에서 영혼은 많은 사람들로부터 시련을 받는다.
  1. 가끔 악한 사람들은 온갖 종류의 박해를 다른 영혼들에게 퍼붓는다.
  2. 또 영혼이 겪는 밤의 시련 상태를 잘 이해하지 못하는 장상이나 형제들은 오래 지속되는 메마름과 실패에 대하여 나쁜 인상을 받을 수 있다.
 
  3. 때로는 밤의 시련 상태를 영혼의 미지근함으로 혼동하거나, 이 어려움을 위로하기엔  무기력한 영적 지도자로 인해 시련이 더욱 커질 수 있다.

(다) 밤의 메마름에서 외적인 악은 가끔 내적 고통을 증가시키다. 
  1, 영혼은 때로 의사를 어리둥절하게 하는 희귀한 병의 희생자가 된다.
  2. 영혼이 처한 무능력 때문에, 또는 내적 고통 안에 집착되어 있기 때문에, 영혼은 이전처럼 밤의 시련에서 성공할 수 없다. 그 결과 영혼은 다른 사람이 눈치를 챌 만큼, 스스로 얼빠진 것을 느낀다.
 
  3. 밤의 메마름은 영혼이 불완전한 상황 속에 놓이는 것을 순간적으로 잃어버리게 한다. 한마디로 말해 하늘과 땅이 모두 공모하여 이 가련한 영혼에 대항한다는 것처럼 느끼게  한다.

(3) 영적 밤에 영혼이 정화되는 유익들
(1) 영적 밤의 메마름에서 영혼은 자신과 자기의 비참함을 바른 체험으로 인식한다.
(2) 영적 밤의 메마름을 통해 영혼은 하느님께 대한 인식이 더욱 순수해지고 참되게 된다. 그래서 영혼은 사랑의 감각적인 맛을 잃어버리게 된다. 그 결과 이제 영혼은 더 이상 인간적인 위로를 찾지 않는다. 이 관상의 영혼은 오직 하느님의 마음에만 들고 싶어한다.
(3) 영적 밤의 메마름은 영혼으로 하여금 정제된 방법을 통해 칠죄종을 치료하게 한다.
ㄱ) 그래서 이 어두운 밤의 메마름에서 영혼은 하느님과의 관계뿐만 아니라, 형제들과의 사랑에서도 겸손을 실천한다.
 ㄴ) 어두운 밤의 메마름에서 영혼은 영적 절제를 실천한다. 이 어두운 밤에서 영혼은 더 이상 감각적 위로로 양육될 수 없음을 알게 된다. 그로 인하여 영혼은 조금씩 위로와 창조된 모든 것에서 흥미를 잃고, 영원한 것에만 전념하게 된다. 이것을 두고 이제 영혼 안에 영적 평화가 시작된다고 말한다.
 ㄷ) 밤의 메마름은 영혼의 갈망, 성냄, 나태 등과 같은 악습에 반대되는 덕을 실천하게 함으로써 그 악에서 벗어나게 한다.

(4) 끝으로, 하느님께서는 이 수동적 관상에서 밤의 메마름 안에 약간의 영적 위로를 영혼 안에 섞으신다. 그리고 영혼이 영적 위로에서 벗어나게 되었을 때, 비로소 하느님께서는 순결한 사랑과 강렬한 지적 빛을 영혼에게 주신다. 이와 같은 하느님의 은혜에 대해 영혼은  처음에 영적 위로를 느끼지 못하지만, 점차로 이 은혜는 그 어느 때보다 더욱 풍요롭고 위로가 됨을 느낀다.

결   론  : 어두운 밤의 시련 동안 지녀야 할 자세
ㄱ) 영적 밤의 시련에서 마음에 새겨야할 주된 자세는 온전히 하느님께 내어 맡기는 것이다. 영혼은 이 밤의 시련이 매우 공로가 된다는 것을  인정하면서 그분께 순종한다.
ㄴ) 한편 어두운 밤의 메마름에도 불구하고, 영혼은 고통 가운데서도 기도를 그치지 않으셨던 예수님과 일치하면서, 꾸준히 기도해야 한다.
ㄷ) 어두운 밤의 시련에서 영혼이 묵상기도에 대한 무력함에 봉착했을 때, 되도록 추리 묵상으로 다시 되돌아가기를 원해서는 안 된다. 영혼은 자신이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고 생각될 때조차, 조용힌 휴식 안에 머물러야 한다. 그리고 영혼은 하느님께 차분하고 정감적인 시선을 주는 것만으로 만족해야 한다.
ㄹ) 어두운 밤의 시련에서 영혼은 지속적으로 덕을 가꾸어야 하는 것이 명백하다. 특히 영혼의 시련 상태에 알맞은 덕을 가꿔야 한다. 즉, 겸손과 초기, 인내와 이웃에 대한 사랑 등이다. 그리고 하느님의 뜻에 온순하게 일치하면서 신뢰 가득 찬 기도를 통해, 모든 것을 하느님께 맡겨야 한다.
 ㅁ) 하느님의 계획 속에서 어두운 밤의 시련을 겪는 기간은 영혼에게 매우 다양하다. 이 영혼의 시련은 하느님과의 일치의 단계에 따라, 또는 영의 불완전한 정도에 따라, 영혼을 정화하는 시련기가 정해진다. 일반적으로 영혼의 시련기는 대개 2년에서 15년까지 연장될 수 있다고 영성 저자들은 말한다.
(자료출처 http://www.koabbey.com/?document_srl=55434&mid=st_john)
----------------- 자료 인용 끝 ---------------

이런 글을 읽어보면,
십자가의 요한이 반기독교적인 사람인지 알 수가 있습니다. 
특히 글 시작부터 알 수 있듯이, 
“영적 어두운 밤에서 가장 중요하고 첫째가는 것은, 하느님께서 영혼에게 부여하기 시작한 주입적 관상이다.”이라는 말을 보면,
십자가의 요한이 하나님과의 일치로 가기 위해서 주입적 관상기도로 간다는 것을 분명하게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왜? 김준한 목사는 우울증케어클리닉에서 십자가의 요한이 말하는 “영혼의 어두운 밤”을 말할까요? 
주서택 목사는 반기독교적이며 뉴에이지적인 안셀름 그륀의 “아래로부터의 영성”을 내적치유에서 가르치고 있습니다. 
이런 것들을 보면, 그 선생의 그 제자라는 말이 저절로 나오게 됩니다. 
이런 신비주의 영성이 개입된 김준한 목사의 우울증케어클리닉은 우울증케어틀리닉입니다.

RPTministries 정태홍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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