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담학은 사모의 필수과정인가?
상담학은 사모의 필수과정인가?
오늘날 목회 현장에 심리학은 점점 교회를 장악해 가고 있는 실정이다.
성도들의 고민과 아픔에 대해서 무엇을 어떻게 답을 해 주어야 하는지
그 해답을 찾기 위해서 결국 가는 곳은 상담학이라는 성(城)이다.
그 상담학이라는 것은 심리학을 배우는 곳이다.
아래는 아세아연합신학대학교 평생교육원에서 하는 전문과 과정 중에
가정사역 전문 지도자 과정에서 말하고 있는 내용이다(http://life.acts.ac.kr/course/pro_12.asp).
물론 사모상담 전문가도 별로 차이가 없는 것으로 여겨진다.
-------------
매주 월요일 오전 10:30부터-오후 4:00, 12주
1) 교과과정
가정사역이론, 성경적 상담의 원리, 성경적 상담의 역동성, 기독교 상담의 역사, 성경적 상담과 다양한 심리이론, 일상생활 상담, 피스메이커원리, 가정폭력상담, 성폭력상담, 이혼상담, 성경적 자녀상담, 인터넷중독상담, 성경적 상담과 고통의 문제, 가정사역의 실제, 가족치료, 상담실습, TA교류분석, 에니어그램, 심리검사이론, 이상심리 등
2) 세미나과정
군상담 이론, 성경적 자녀교육, 행동유형에 따른 자녀학습법, 부부대화법, 가정사역을 통한 교회성장, 이혼상담 세미나 등
3) 가정사역 프로그램
부부성장학교, 아버지학교, 어머니학교, 결혼예비학교, 남편사랑학교, 갈등조정학교, 성경적 대화학교, 부모교육학교, 천국준비학교, 기대관리학교, 중독치료학교
4) 방학 중 집중 교육과정
(1) 여성가족부 인정 “가정폭력상담사”(2주, 100시간)?“성폭력상담사”(1주, 64시간)
(2) 인터넷중독전문상담사(5일, 한국정보문화진흥원 지원)
(3) TA(교류분석) 강사양성 과정(4일, 산업발전연구원 이명노 교수 지원)
(4) 에니어그램 자격증 과정(3일)
(5) 가정사역 프로그램 강사자격 집중 교육(3일)
-----------
결국 가르치는 내용을 잘 살펴보면 소위 “기독교 상담”이라는 미명하에 심리학을 가르쳐 주는 것임을 쉽게 알 수가 있다.
참고로 한 가지를 더 살펴보면, 아래는 도은미 사모가 말한 내용이다.
(http://cafe.daum.net/youngjooch/650H/731?docid=1444p|650H|731|20070201135038&q=%BB%E7%B8%F0%B0%A1%20%BB%F3%B4%E3%C7%D0%C0%BB%20%B0%F8%BA%CE%C7%D8%BE%DF%20%C7%CF%B3%AA&srchid=CCB1444p|650H|731|20070201135038)
<바로 이때 앞서 밝힌 A장로가 한국을 다녀오면서 그에게 책을 한 권 선물로 주었다. 양은순 사모의[사랑과 행복에의 초대]라는 책이었다. 가정에 대한 수십 권 의 책을 번역한 양은순 사모가 그동안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 이론과 사례가 풍부 한 책이었다. 이 책 한권이 그에게 필생의 연구과제를 줄 줄이야!
“기도의 응답으로 받아들였어요. 장로님이 주신 책을 통해 가정도 연구하고, 공부해야 한다는 개념을 잡았어요. 그 때부터 가정을 공부하고 싶었는데 그것을 가르쳐주는데가 없었어요. 그래서 상담학이나 심리학을 공부해서 연결시켜 보려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녀가 공부한 곳은 “풀러신학교”에서 “부모의 수치시스템”을 전공하여 박사학위를 받았다.
쉽게 말해서, 똑같이 심리학을 배워서 그것을 교회에다 접목을 시켰다는 말이다.
그러면, 문제는 무엇인가?
“과연 심리학이 성경의 원리와 같아질 수가 있는가?”이다.
“심리학을 배워서 교회의 성도들에게 사용할 수가 있는가?”
많은 사람들이 “예”라고 대답을 한다. 너무나 쉽게 그렇게 말한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 우선 인간론부터 틀리다.
성경은 인간은 죄인이라고 말한다. 심리학은 무한한 가능성을 지닌 인간으로 본다.
심리학에서 죄라는 말을 도입하시 시작하면 논리가 성립하지 않는다.
스스로 무너지기 때문이다.
거기에는 오직 인간을 위한 인간의 무의식의 심연이 있을 뿐이다.
박사학위를 마친 한 목사님으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사모님과 자주 논란이 일어나는 부분에 대해서 솔직하게 말씀해 주셨다.
“목사님, 목사님은 목사님이 아니십니까? 왜 성경을 읽어놓고서 심리학을 가르칩니까?”
그래서 자주 언쟁이 일어난다는 것이다. 바꾸고 싶은데 어떻게 하면 좋겠냐는 것이다.
교회는 심리학의 적용대상이 아니다. 교회에 대하여 성경이 무엇이라고 하시는가?
『너희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우심을 입은 자라 그리스도 예수께서 친히 모퉁이 돌이 되셨느니라』(엡 2:20, 개역)
터가 다르다. 거기에는 오직 성경의 원리에 의해서만 움직여진다.
그것 외에 다른 것을 가르치는 것은 교회로서의 가야할 길이 아니다.
성도들을 자식같이 돌보아야할 사모가 심리학을 배워서 가르치겠다는 것은 말이 안된다.
강단에서 “오직 말씀으로!!!”가 안되니까, 온갖 수단과 방법을 동원할려고 한다.
심리학을 배울 시간에 기도와 말씀으로 무장이 되면 안되는가?
솔직히 묻고 싶다.
성경에서 말씀하는 믿음의 기본적인 도리에 대해서 물어보았을 때 얼마나 제대로 알고 있을까?
우리가 다 지식에 부족함이 있으나,
그래도 믿는 도리에 대해서는 확신이 있어야 하고 답을 할 줄은 알아야 한다.
그것이 지도자의 자리에 있는 사모라면 말이다.
그런데 그런 일에는 등한히 하면서 심리학을 배우러 다닌다고 그 많은 돈 그 많은 시간을 투자해 가면서 열심(?)을 부리고 있다. 다 휴지조각같이 없어질 것을 그렇게 열심히 배우고 다닌다.
아래의 질문에 답을 할 수 있는지 묻고 싶다.
예수님께서 우리의 의가 되신다는 것은 무엇일까?
그 나라와 그 의를 구한다는 것이 무엇일까?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한다는 것은 무엇일까?
자기 부인과 자기 십자가를 지고 간다는 것은 무엇일까?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는 것은 무엇일까?
말씀을 바르게 알면 세상의 심리학을 배우러 갈 필요가 없다.
성경을 뒤로하고 심리학을 배우러 가는 사모님들에게 다음의 말씀을 읽혀 주고 싶다.
『[2] 아하시야가 사마리아에 있는 그 다락 난간에서 떨어져 병들매 사자를 보내며 저희더러 이르되 가서 에그론의 신 바알세붑에게 이병이 낫겠나 물어 보라 하니라 [3] 여호와의 사자가 디셉 사람 엘리야에게 이르시되 너는 일어나 올라가서 사마리아 왕의 사자를 만나서 저에게 이르기를 이스라엘에 하나님이 없어서 너희가 에그론의 신 바알세붑에게 물으러 가느냐』(왕하 1:2-3, 개역)
참고로 아래는 옥성호씨에게 질문하고 답을 한 내용이다(http://bin729.egloos.com/460422).
<▲현대 심리학의 이론을 마치 과학인양 최종적인 분석과 결론의 권위를 부여하여 무분별하게 수용하는 교회의 오류를 공감합니다. 그러나 심리학의 무의식의 존재에 대해선 모두가 공감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심리학이 문제 자체를 해결하는 최종적 능력은 없지만 문제의 원인분석에는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견해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저는 무의식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오래된 기억, 잊혀진 기억은 있겠지만 그것을 무의식이라는 무슨 거대한 빙산이 의식 아래 있다는 식의 이론을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심리학이 인간 중심적 학문에서 출발했기 때문에 사용해서는 안된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렇다면 조직신학은 인간 중심적 학문인 철학을 끌어들여 성경을 해석하는 방법인데, 철학은 문제가 없나요. 역사학을 토대로 한 성서고고학 또는 역사신학은 어떤가요. 또한 기독교교육과 기독교사회복지 등은.
“저는 심리학을 부정하는 것이 아닙니다. 제가 책에서‘심리학’이라는 용어로 시작했지만 사실 제가 전면 부정하는 것은‘정신 분석‘입니다. 물론 심리학이 과학이다라는 주장에는 전면 부정하지만요. 심리학 역시 활용 가능한 하나의 영역이다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심리학은 철학 또는 고고학 등의 다른 학문과는 달리 성경을 대체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가 경계해야 합니다. 성경의 진리를 더 명확히 드러내기 위해서 보조적으로 사용되는 다른 학문들과는 달리 심리학은 성경의 진리 자체를 재편성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심리학의 이론에 맞추어 인간을 재정의하고 그에 따라 다른 성경의 모든 진리들도 왜곡되고 있지요.”
▲인간 중심적 심리학이 아닌 성경을 근거한 기독교심리학이 가능한지요. 왜 가능하지 않은지, 또는 왜 가능한지 설명해 주신다면.
“기독교 심리학이라고 굳이 용어를 붙인다면 그것은 성경이 말하는 인간론을 말하는 것이겠지요. 만약 성경이 정의하는 인간의 본질에 근거한 내용들을 가지고 굳이 기독교 심리학이라는 용어를 쓰겠다면 쓰지 못할 이유도 없다고 봅니다.”
▲기독교상담학은 가능한 것인지요. 성경적인 기독교 상담가들의 공헌을 인정해야 하지 않을까요. 기독교 상담의 공헌 가능성에 대해 견해를 밝힌다면.
“성경 속의 많은 가르침은 개인 상담을 통해서 이루어졌습니다. 오늘 교회 속에 가장 필요한 한 영역이 성경적 상담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성경적 바른 상담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명목상의 기독교 심리학이라는 사실상의 세속적 심리학이 교회 속에서 먼저 사라져야 합니다. 세속적 심리학에 맞추어 성경을 재해석하고 왜곡하는 대신 성경 말씀을 바로 보고 순종하도록 하는 성경적 상담이 절실합니다.”>
위의 말은 목사가 한 말도 아니다. 집사가 한 말이다.
집사도 저 정도는 안다. 왜 집사의 눈에 보이는 것이 목회자의 눈에, 사모의 눈에는 안보일까?
유명한 사람의 말이면 그것이 다 옳은 것인가?
이제는 베뢰아의 사람들 같은 자세가 필요하다.
『베뢰아 사람은 데살로니가에 있는 사람보다 더 신사적이어서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고 이것이 그러한가 하여 날마다 성경을 상고하므로』(행 17:11, 개역)
NIV에서는 뒷 부분을 이렇게 번역했다.
“examined the Scriptures every day to see if what Paul said was true.”
바울이 말한 것이 참인지 아닌지 그들은 날마다 성경으로 점검하고 검사를 한 것이다.
그 유명하시다는 분들의 심리학이 맞는지 안맞는지 성경으로 점검하고 확인해야 한다.
사모는 기도의 자리고 말씀의 자리로 돌아가야 한다.
그럴 때에 교회는 진정한 부흥이 일어난다.
그것 외에 다른 방법으로 일어나는 부흥은 심리학에 “부응”한 것일 뿐이다.
성도들은 말씀으로 응답받기를 원하고 말씀으로 채워지기를 기도하고 있다.
자기를 부인하고 십자가를 지고 가는 길이 너무나도 힘들기에 사모가 함께 기도해 주기를 원하고 있다.
심리학을 들고 와서,
“집사님 기질은 이런 거야, MBTI로 보면 이런거야, 애니어그램으로 보면 이런 타입이야~”
이런 것을 원하지 않는다. 그런 것은 다 해 본 것들이다.
그런 것은 사모보다 더 잘 안다. “그런거는 아무리 해도 안되더라”를 알고 있다.
하나님의 말씀만이 답인 것을 성도들은 알고 있다.
왜 그리로 가면 안되는가?
세상 것은 답이 없기 때문이다.
세상 것으로는 우리의 영혼을 채울 수가 없기 때문이다.
만일 세상 것으로 채울 수가 있었다면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셔야할 이유가 없다.
세상은 죄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
죄의 문제를 해결하려다가 오히려 자가당착에 빠져서 죽고 만다.
길을 막고 물어보라.
“누가 이 죄의 문제를 해결해 줄 것이 있습니까?”
아무도 답하지 못한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만이 해결할 수 있다.
사모는 어디로 가야 하는가?
사모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사모로서, 성도와 단 둘이 앉아서 하나님의 말씀을 나눌 자신이 있는가?
사모로서, 그 말씀으로 성도의 삶에 진정한 자유와 평안을 줄 수 있는가?
사모로서, 그 말씀을 붙들고 성도의 아픔을 치유할 수 있는가?
사모로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만이 답입니다 라고 말할 수 없는가?
다시 한 번 묻고 싶다.
“왜 사모가 상담학을 배우러 가야 하는가?”
그리고 한 가지를 더 묻고 싶다.
“오직 하나님의 말씀만으로 만족이 안되는가?”
오직 말씀으로 돌아가자!!!
우리보다 더 위대한 신앙의 선배들이 물려준 아름다운 유산들이 우리에게는 너무나도 많다.
그 좋은 신앙의 유산과 책들은 평생 읽어도 모자란다.
그 좋은 것을 내버려두고 다른 길로 가지 말자.
이제는 상담학이 아니라,
말씀으로 기도로 성도를 가슴에 품고 하나님 아버지께 눈물로 나아가자!!!
RPTministries
정태홍 목사
http://www.esesang91.com
오늘날 목회 현장에 심리학은 점점 교회를 장악해 가고 있는 실정이다.
성도들의 고민과 아픔에 대해서 무엇을 어떻게 답을 해 주어야 하는지
그 해답을 찾기 위해서 결국 가는 곳은 상담학이라는 성(城)이다.
그 상담학이라는 것은 심리학을 배우는 곳이다.
아래는 아세아연합신학대학교 평생교육원에서 하는 전문과 과정 중에
가정사역 전문 지도자 과정에서 말하고 있는 내용이다(http://life.acts.ac.kr/course/pro_12.asp).
물론 사모상담 전문가도 별로 차이가 없는 것으로 여겨진다.
-------------
매주 월요일 오전 10:30부터-오후 4:00, 12주
1) 교과과정
가정사역이론, 성경적 상담의 원리, 성경적 상담의 역동성, 기독교 상담의 역사, 성경적 상담과 다양한 심리이론, 일상생활 상담, 피스메이커원리, 가정폭력상담, 성폭력상담, 이혼상담, 성경적 자녀상담, 인터넷중독상담, 성경적 상담과 고통의 문제, 가정사역의 실제, 가족치료, 상담실습, TA교류분석, 에니어그램, 심리검사이론, 이상심리 등
2) 세미나과정
군상담 이론, 성경적 자녀교육, 행동유형에 따른 자녀학습법, 부부대화법, 가정사역을 통한 교회성장, 이혼상담 세미나 등
3) 가정사역 프로그램
부부성장학교, 아버지학교, 어머니학교, 결혼예비학교, 남편사랑학교, 갈등조정학교, 성경적 대화학교, 부모교육학교, 천국준비학교, 기대관리학교, 중독치료학교
4) 방학 중 집중 교육과정
(1) 여성가족부 인정 “가정폭력상담사”(2주, 100시간)?“성폭력상담사”(1주, 64시간)
(2) 인터넷중독전문상담사(5일, 한국정보문화진흥원 지원)
(3) TA(교류분석) 강사양성 과정(4일, 산업발전연구원 이명노 교수 지원)
(4) 에니어그램 자격증 과정(3일)
(5) 가정사역 프로그램 강사자격 집중 교육(3일)
-----------
결국 가르치는 내용을 잘 살펴보면 소위 “기독교 상담”이라는 미명하에 심리학을 가르쳐 주는 것임을 쉽게 알 수가 있다.
참고로 한 가지를 더 살펴보면, 아래는 도은미 사모가 말한 내용이다.
(http://cafe.daum.net/youngjooch/650H/731?docid=1444p|650H|731|20070201135038&q=%BB%E7%B8%F0%B0%A1%20%BB%F3%B4%E3%C7%D0%C0%BB%20%B0%F8%BA%CE%C7%D8%BE%DF%20%C7%CF%B3%AA&srchid=CCB1444p|650H|731|20070201135038)
<바로 이때 앞서 밝힌 A장로가 한국을 다녀오면서 그에게 책을 한 권 선물로 주었다. 양은순 사모의[사랑과 행복에의 초대]라는 책이었다. 가정에 대한 수십 권 의 책을 번역한 양은순 사모가 그동안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 이론과 사례가 풍부 한 책이었다. 이 책 한권이 그에게 필생의 연구과제를 줄 줄이야!
“기도의 응답으로 받아들였어요. 장로님이 주신 책을 통해 가정도 연구하고, 공부해야 한다는 개념을 잡았어요. 그 때부터 가정을 공부하고 싶었는데 그것을 가르쳐주는데가 없었어요. 그래서 상담학이나 심리학을 공부해서 연결시켜 보려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녀가 공부한 곳은 “풀러신학교”에서 “부모의 수치시스템”을 전공하여 박사학위를 받았다.
쉽게 말해서, 똑같이 심리학을 배워서 그것을 교회에다 접목을 시켰다는 말이다.
그러면, 문제는 무엇인가?
“과연 심리학이 성경의 원리와 같아질 수가 있는가?”이다.
“심리학을 배워서 교회의 성도들에게 사용할 수가 있는가?”
많은 사람들이 “예”라고 대답을 한다. 너무나 쉽게 그렇게 말한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 우선 인간론부터 틀리다.
성경은 인간은 죄인이라고 말한다. 심리학은 무한한 가능성을 지닌 인간으로 본다.
심리학에서 죄라는 말을 도입하시 시작하면 논리가 성립하지 않는다.
스스로 무너지기 때문이다.
거기에는 오직 인간을 위한 인간의 무의식의 심연이 있을 뿐이다.
박사학위를 마친 한 목사님으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사모님과 자주 논란이 일어나는 부분에 대해서 솔직하게 말씀해 주셨다.
“목사님, 목사님은 목사님이 아니십니까? 왜 성경을 읽어놓고서 심리학을 가르칩니까?”
그래서 자주 언쟁이 일어난다는 것이다. 바꾸고 싶은데 어떻게 하면 좋겠냐는 것이다.
교회는 심리학의 적용대상이 아니다. 교회에 대하여 성경이 무엇이라고 하시는가?
『너희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우심을 입은 자라 그리스도 예수께서 친히 모퉁이 돌이 되셨느니라』(엡 2:20, 개역)
터가 다르다. 거기에는 오직 성경의 원리에 의해서만 움직여진다.
그것 외에 다른 것을 가르치는 것은 교회로서의 가야할 길이 아니다.
성도들을 자식같이 돌보아야할 사모가 심리학을 배워서 가르치겠다는 것은 말이 안된다.
강단에서 “오직 말씀으로!!!”가 안되니까, 온갖 수단과 방법을 동원할려고 한다.
심리학을 배울 시간에 기도와 말씀으로 무장이 되면 안되는가?
솔직히 묻고 싶다.
성경에서 말씀하는 믿음의 기본적인 도리에 대해서 물어보았을 때 얼마나 제대로 알고 있을까?
우리가 다 지식에 부족함이 있으나,
그래도 믿는 도리에 대해서는 확신이 있어야 하고 답을 할 줄은 알아야 한다.
그것이 지도자의 자리에 있는 사모라면 말이다.
그런데 그런 일에는 등한히 하면서 심리학을 배우러 다닌다고 그 많은 돈 그 많은 시간을 투자해 가면서 열심(?)을 부리고 있다. 다 휴지조각같이 없어질 것을 그렇게 열심히 배우고 다닌다.
아래의 질문에 답을 할 수 있는지 묻고 싶다.
예수님께서 우리의 의가 되신다는 것은 무엇일까?
그 나라와 그 의를 구한다는 것이 무엇일까?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한다는 것은 무엇일까?
자기 부인과 자기 십자가를 지고 간다는 것은 무엇일까?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는 것은 무엇일까?
말씀을 바르게 알면 세상의 심리학을 배우러 갈 필요가 없다.
성경을 뒤로하고 심리학을 배우러 가는 사모님들에게 다음의 말씀을 읽혀 주고 싶다.
『[2] 아하시야가 사마리아에 있는 그 다락 난간에서 떨어져 병들매 사자를 보내며 저희더러 이르되 가서 에그론의 신 바알세붑에게 이병이 낫겠나 물어 보라 하니라 [3] 여호와의 사자가 디셉 사람 엘리야에게 이르시되 너는 일어나 올라가서 사마리아 왕의 사자를 만나서 저에게 이르기를 이스라엘에 하나님이 없어서 너희가 에그론의 신 바알세붑에게 물으러 가느냐』(왕하 1:2-3, 개역)
참고로 아래는 옥성호씨에게 질문하고 답을 한 내용이다(http://bin729.egloos.com/460422).
<▲현대 심리학의 이론을 마치 과학인양 최종적인 분석과 결론의 권위를 부여하여 무분별하게 수용하는 교회의 오류를 공감합니다. 그러나 심리학의 무의식의 존재에 대해선 모두가 공감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심리학이 문제 자체를 해결하는 최종적 능력은 없지만 문제의 원인분석에는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견해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저는 무의식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오래된 기억, 잊혀진 기억은 있겠지만 그것을 무의식이라는 무슨 거대한 빙산이 의식 아래 있다는 식의 이론을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심리학이 인간 중심적 학문에서 출발했기 때문에 사용해서는 안된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렇다면 조직신학은 인간 중심적 학문인 철학을 끌어들여 성경을 해석하는 방법인데, 철학은 문제가 없나요. 역사학을 토대로 한 성서고고학 또는 역사신학은 어떤가요. 또한 기독교교육과 기독교사회복지 등은.
“저는 심리학을 부정하는 것이 아닙니다. 제가 책에서‘심리학’이라는 용어로 시작했지만 사실 제가 전면 부정하는 것은‘정신 분석‘입니다. 물론 심리학이 과학이다라는 주장에는 전면 부정하지만요. 심리학 역시 활용 가능한 하나의 영역이다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심리학은 철학 또는 고고학 등의 다른 학문과는 달리 성경을 대체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가 경계해야 합니다. 성경의 진리를 더 명확히 드러내기 위해서 보조적으로 사용되는 다른 학문들과는 달리 심리학은 성경의 진리 자체를 재편성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심리학의 이론에 맞추어 인간을 재정의하고 그에 따라 다른 성경의 모든 진리들도 왜곡되고 있지요.”
▲인간 중심적 심리학이 아닌 성경을 근거한 기독교심리학이 가능한지요. 왜 가능하지 않은지, 또는 왜 가능한지 설명해 주신다면.
“기독교 심리학이라고 굳이 용어를 붙인다면 그것은 성경이 말하는 인간론을 말하는 것이겠지요. 만약 성경이 정의하는 인간의 본질에 근거한 내용들을 가지고 굳이 기독교 심리학이라는 용어를 쓰겠다면 쓰지 못할 이유도 없다고 봅니다.”
▲기독교상담학은 가능한 것인지요. 성경적인 기독교 상담가들의 공헌을 인정해야 하지 않을까요. 기독교 상담의 공헌 가능성에 대해 견해를 밝힌다면.
“성경 속의 많은 가르침은 개인 상담을 통해서 이루어졌습니다. 오늘 교회 속에 가장 필요한 한 영역이 성경적 상담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성경적 바른 상담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명목상의 기독교 심리학이라는 사실상의 세속적 심리학이 교회 속에서 먼저 사라져야 합니다. 세속적 심리학에 맞추어 성경을 재해석하고 왜곡하는 대신 성경 말씀을 바로 보고 순종하도록 하는 성경적 상담이 절실합니다.”>
위의 말은 목사가 한 말도 아니다. 집사가 한 말이다.
집사도 저 정도는 안다. 왜 집사의 눈에 보이는 것이 목회자의 눈에, 사모의 눈에는 안보일까?
유명한 사람의 말이면 그것이 다 옳은 것인가?
이제는 베뢰아의 사람들 같은 자세가 필요하다.
『베뢰아 사람은 데살로니가에 있는 사람보다 더 신사적이어서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고 이것이 그러한가 하여 날마다 성경을 상고하므로』(행 17:11, 개역)
NIV에서는 뒷 부분을 이렇게 번역했다.
“examined the Scriptures every day to see if what Paul said was true.”
바울이 말한 것이 참인지 아닌지 그들은 날마다 성경으로 점검하고 검사를 한 것이다.
그 유명하시다는 분들의 심리학이 맞는지 안맞는지 성경으로 점검하고 확인해야 한다.
사모는 기도의 자리고 말씀의 자리로 돌아가야 한다.
그럴 때에 교회는 진정한 부흥이 일어난다.
그것 외에 다른 방법으로 일어나는 부흥은 심리학에 “부응”한 것일 뿐이다.
성도들은 말씀으로 응답받기를 원하고 말씀으로 채워지기를 기도하고 있다.
자기를 부인하고 십자가를 지고 가는 길이 너무나도 힘들기에 사모가 함께 기도해 주기를 원하고 있다.
심리학을 들고 와서,
“집사님 기질은 이런 거야, MBTI로 보면 이런거야, 애니어그램으로 보면 이런 타입이야~”
이런 것을 원하지 않는다. 그런 것은 다 해 본 것들이다.
그런 것은 사모보다 더 잘 안다. “그런거는 아무리 해도 안되더라”를 알고 있다.
하나님의 말씀만이 답인 것을 성도들은 알고 있다.
왜 그리로 가면 안되는가?
세상 것은 답이 없기 때문이다.
세상 것으로는 우리의 영혼을 채울 수가 없기 때문이다.
만일 세상 것으로 채울 수가 있었다면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셔야할 이유가 없다.
세상은 죄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
죄의 문제를 해결하려다가 오히려 자가당착에 빠져서 죽고 만다.
길을 막고 물어보라.
“누가 이 죄의 문제를 해결해 줄 것이 있습니까?”
아무도 답하지 못한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만이 해결할 수 있다.
사모는 어디로 가야 하는가?
사모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사모로서, 성도와 단 둘이 앉아서 하나님의 말씀을 나눌 자신이 있는가?
사모로서, 그 말씀으로 성도의 삶에 진정한 자유와 평안을 줄 수 있는가?
사모로서, 그 말씀을 붙들고 성도의 아픔을 치유할 수 있는가?
사모로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만이 답입니다 라고 말할 수 없는가?
다시 한 번 묻고 싶다.
“왜 사모가 상담학을 배우러 가야 하는가?”
그리고 한 가지를 더 묻고 싶다.
“오직 하나님의 말씀만으로 만족이 안되는가?”
오직 말씀으로 돌아가자!!!
우리보다 더 위대한 신앙의 선배들이 물려준 아름다운 유산들이 우리에게는 너무나도 많다.
그 좋은 신앙의 유산과 책들은 평생 읽어도 모자란다.
그 좋은 것을 내버려두고 다른 길로 가지 말자.
이제는 상담학이 아니라,
말씀으로 기도로 성도를 가슴에 품고 하나님 아버지께 눈물로 나아가자!!!
RPTministries
정태홍 목사
http://www.esesang91.com
독자 의견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