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주_내적치유_내적치유의 필요성과 원리가 성경적인가?
김종주_내적치유_내적치유의 필요성과 원리가 성경적인가?
김종주 장로는 다음과 같이 내적치유의 필요성과 원리에 대하여 말하고 있습니다.
그 내용을 잘 살펴 보면 "가계에 흐르는 저주"에 기초한 내적치유라는 것을 쉽게 알아볼 수가 있습니다.
자료 인용하면서 글을 달았습니다.
2. 내적치유의 필요성과 원리
1) 내적치유의 이유와 필요성
내적치유를 해야 할 이유
첫째, 예수님께서 오신 목적 중의 하나가 내적치유이기 때문이다.(눅 4:17-19, 사 61:1, 2)
김종주 장로가 증거구절로 채택한 성경구절은 내적치유를 증거하는 본문이 아닙니다.
선지자 이사야의 글을 드리거늘 책을 펴서 이렇게 기록된 데를 찾으시니 곧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눈 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고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였더라(눅 4:17-19)
주 여호와의 영이 내게 내리셨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내게 기름을 부으사 가난한 자에게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나를 보내사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며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갇힌 자에게 놓임을 선포하며 여호와의 은혜의 해와 우리 하나님의 보복의 날을 선포하여 모든 슬픈 자를 위로하되(사 61:1-2)
만일 이것이 내적치유를 위한 본문이라면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괜히 죽은 것입니다.
이 성경구절들은 무엇을 말하고 있을까요? 호크마 주석은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자유케 하고 - 예수께서 낭독하신 사 61:1, 2의 말씀은 예수의 두가지 사역 곧 선지자적 사역과 메시야적 사역을 증거하고 있다. 먼저 예수는 신 18:15, 18에 예언된 바로 '그 선지자'(the prophet)로서 심령이 가난한 자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자이심을 증거한다. 그리고 둘째는 예수께서 '하나님의 기름부음을 받은 자'곧 메시야로서(단 9:24) 영적으로 눈멀고 포로된 자들을 죄악에서 건져내어 자유케 하시기 위해오신 분임을 증거한다(6:20, 21;7:18-23).
본문의 '임하셨으니'에 해당하는 헬라어 '에크리세'(*)는 '기름붓다', '기름바르다'의 뜻을 나타낸다. 따라서 예수께 성령이 임했다는 것은 기름부음 받았다는 것과 맥을 같이하는 것으로서 제사장(출 28:41), 선지자(왕상 19:16), 왕(삼상 10:1)들이 기름부음을 받았듯이 예수께서도 기름부음 받으신 분으로서 이러한 직분을 모두 수행하실 것을 시사한다.
따라서 이사야 예언의 주인공이신 예수께서는 (1) 성령을 받은 자이며 (2) 복음의 선포자이며 (3) 눌린 자를 자유케 하는 메시야의 사명을 감당하는 분이신 것이다. 한편 '가난한 자'란 순수한 은혜와 자비만을 얻기 위하여 마음을 열어 놓은 자들을 가리키는 것으로 예수께서 '심령이 가난한 자'에게 하늘나라를 소유케 하실 것을 가리킨다(마 5:3).
그리고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이란 일차적으로 유대 백성이 바빌론에서 귀환(歸還)할 것을 가리켰지만 궁극적으로 메시야께서 온 인류를 죄와 사망의 그늘에서 해방시킬 것을 의미한다. 또한 '눈먼 자에게 다시보게'라는 표현은 예수께서 육체적으로나 영적으로 눈먼 자에게 시력을 회복시켜 주실 것을 가리킨다. 마지막으로 '눌린 자에게 자유를'이란 표현은 죄의 노예가 되어 세상의 근심과 걱정에 얽매이며 고통받는 자에게 예수께서 영혼의 평안과 자유를 주실 것을 가리킨다.(호크마 주석에서)
분명하게 알아야만 합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죄와 사망에서 구원하시기 위하여 오셨다는 것을 성경에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를 내적치유 시키기 위하여 오신 분이 아닙니다.
이렇게 내적치유를 정당화 시키기 위하여 성경을 오용하는 것이 매우 위험한 일입니다.
둘째, 예수님의 3가지 사역중 하나이다.(마 9:35) 예수님의 3가지 사역은 ①가르침, ②천국복음 전파, ③병과 약한 것을 고치심 이다.
예수님의 3대사역에 대하여 말하고 있지만, "병과 약한 것을 고치심"에 대한 이해가 틀립니다.
그 고치심이 내적치유일까요? 성경은 그렇게 말하지 않습니다.
셋째,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사용할 권세를 주셨다. (마 10:1, 요 14:12)
오늘날 내적치유에서 사용하는 축사사역은 칼 융의 심리학에 근거한 것이지
성경에서 말하는 것과는 차원이 틀립니다.
넷째, 우리는 우리 속의 쓴뿌리, 돌덩이, 가시떨기를 없애고 마음을 새롭게 회복시켜야 한다(히 12:15, 마 13:19, 롬 12:2)
이런 설명은 성경의 본문이 무슨 뜻인지도 모르는 엉뚱한 해석입니다.
이 비유는 우리보고 쓴뿌리 돌덩이 가시떨기를 뽑으라는 것이 아닙니다.
무엇보다 내적치유자들이 말하는 쓴뿌리 돌덩이 개념은 심리학에서 말하는 쓴뿌리이지
성경에서 말하는 쓴뿌리가 아닙니다.
다섯째, 예수님이 다시 오실 때에 우리의 영 ·혼·육이 흠(상처)없게 보전되기를 원하신다.(살전5:23). 그러므로 내적치유 사역이 이루어져야 한다.
내적치유사역자들은 거의 대부분이 이렇게 삼분설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모두 마음의 상처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없는 체하며 살아가고 있다. 마음의 깊은 상처를 ①잊고 ②누르고 ③없는 것처럼 살아가고 있다. 상처가 '없다면' 다른 사람이 나에게 상처를 주어도 '아픔'이 없다. 그러나 만약 손가락에 '가시'가 박혀 있다면 조금만 건드려도 아플 것이다.
현재 나의 모습은 조상들의 모습이다. 나는 조상들의 육체적, 정신적, 영적 합작품이다. 바로 복사판이다! 붕어빵이다! "우리 부부는 딱따구리 부부이다" 부부는 남편 아내 할 것 없이 똑같이 강도 만난 사람들이다. (그런데, 우습게도 서로 손가락질하며 왜 강도를 만났느냐고 따지며 살고 있다. 본인도 오랫동안 그렇게 살아왔다. )
내적치유자들은 "가계에 흐르는 저주론"으로 인생을 설명하려고 합니다.
"가계에 흐르는 저주"는 이미 교계에서 이단성 판정을 받은 것입니다.
가계도를 그려보면 삶의 열매나 불미스러운 일, 가정의 문제가 가계를 내려오면서 반복되는 것을 당장 알 수 있다.
흘러 내려오는 약점(육신적, 정신적, 영적)을 구체적인 예로 들어보면, 도박, 점치는 것, 주벽(酒癖), 육체적으로 유전적인 고질병 등이 있다. 이런 맥락에서, 내 아들딸의 현재 모습은 바로 나의모습이다. 그러므로 자녀 문제는 곧 나의 문제이고 우리 부부의 모습이다. 가계를 타고 흐르는 약점, 부정적인 영향력은 우리 세대에서 끊어서 더 이상 후손들에게 흐르지 않도록 해야 한다! 깊은 상처와 충격의 틈을 노리고, 죄를 발판으로 삼아 악한 영, 저주받은 영이 달라붙는다. 그러면 그 사람을 골통을 만들어 놓고 야단법석이다. 어느 집안이나 조상의 죄가 없는 집안은 없다.
본인이 사역하면서 얻은 임상적인 통계에 따르면, 내면의 상처는 조상의 유전으로부터 온 것이 50%, 임신과정(태아기 - 태아는 임신 6주 후부터 거의 다 알아듣는다고 한다)에서 20%,기타 성장 과정에서 비롯된 것이 30% 정도이다. 표면적인 문제는 깊은 내면의 문제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육체적 질병의 약 70-80%가 감정적인 문제01떠 비롯된다. 교회 내에서 깐깐하고, 잘 따지고, 잘 싸우고, 목사 애먹이는 사람들, 제직회 때마다 말썽부리는 말썽꾸러기, 골통 집사, 골통 장로 -이들은 모두 깊은 상처의 치유가 필요한 사람들이다. 말썽 많은 교회의 담임 목사들은 이런 골통집사, 장로들 때문에 제직회가 있는 전날 밤이면 긴장이 되어 잠을 제대로 못 자는 경우가 허다하다고 한다. 회의 때마다 사사건건 반대하는 그 사람은 "나는 환자입니다"라고 얘기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또, "나는 아픈 상처가 너무 깊습니다. 나를 좀 도와주세요. 치유해 주세요"라고 공개적으로 호소하고 있는 것이다. 이들의 호소를 알아차리고 치유해주기 위해, 내적치유 사역이 필요한 것이다. 이들이 일단 치유 받고 나면 주님의 충성스러운 일꾼으로 변화된다. 전인치유사역에는 걸어다니는 종합병원(음)들이 많이 들어온다. 14가지 질병을 가진 어느 권사님은 치유받는 과정에서 남편과 부부 맞짱을 뜨고서 모든 질병이 깨끗이 완재되었다. 그 이후 모든 면에서 좋아졌다. 17가지 병을 가진 전도사 사모는 다 치유받지 못했다.
(자료출처 김종주 지음, 나는 왜 그럴까?, 치유와 영성, 17-18페이지)



RPTministries 정태홍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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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내용을 잘 살펴 보면 "가계에 흐르는 저주"에 기초한 내적치유라는 것을 쉽게 알아볼 수가 있습니다.
자료 인용하면서 글을 달았습니다.
2. 내적치유의 필요성과 원리
1) 내적치유의 이유와 필요성
내적치유를 해야 할 이유
첫째, 예수님께서 오신 목적 중의 하나가 내적치유이기 때문이다.(눅 4:17-19, 사 61:1, 2)
김종주 장로가 증거구절로 채택한 성경구절은 내적치유를 증거하는 본문이 아닙니다.선지자 이사야의 글을 드리거늘 책을 펴서 이렇게 기록된 데를 찾으시니 곧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눈 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고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였더라(눅 4:17-19)
주 여호와의 영이 내게 내리셨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내게 기름을 부으사 가난한 자에게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나를 보내사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며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갇힌 자에게 놓임을 선포하며 여호와의 은혜의 해와 우리 하나님의 보복의 날을 선포하여 모든 슬픈 자를 위로하되(사 61:1-2)
만일 이것이 내적치유를 위한 본문이라면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괜히 죽은 것입니다.
이 성경구절들은 무엇을 말하고 있을까요? 호크마 주석은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자유케 하고 - 예수께서 낭독하신 사 61:1, 2의 말씀은 예수의 두가지 사역 곧 선지자적 사역과 메시야적 사역을 증거하고 있다. 먼저 예수는 신 18:15, 18에 예언된 바로 '그 선지자'(the prophet)로서 심령이 가난한 자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자이심을 증거한다. 그리고 둘째는 예수께서 '하나님의 기름부음을 받은 자'곧 메시야로서(단 9:24) 영적으로 눈멀고 포로된 자들을 죄악에서 건져내어 자유케 하시기 위해오신 분임을 증거한다(6:20, 21;7:18-23).
본문의 '임하셨으니'에 해당하는 헬라어 '에크리세'(*)는 '기름붓다', '기름바르다'의 뜻을 나타낸다. 따라서 예수께 성령이 임했다는 것은 기름부음 받았다는 것과 맥을 같이하는 것으로서 제사장(출 28:41), 선지자(왕상 19:16), 왕(삼상 10:1)들이 기름부음을 받았듯이 예수께서도 기름부음 받으신 분으로서 이러한 직분을 모두 수행하실 것을 시사한다.
따라서 이사야 예언의 주인공이신 예수께서는 (1) 성령을 받은 자이며 (2) 복음의 선포자이며 (3) 눌린 자를 자유케 하는 메시야의 사명을 감당하는 분이신 것이다. 한편 '가난한 자'란 순수한 은혜와 자비만을 얻기 위하여 마음을 열어 놓은 자들을 가리키는 것으로 예수께서 '심령이 가난한 자'에게 하늘나라를 소유케 하실 것을 가리킨다(마 5:3).
그리고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이란 일차적으로 유대 백성이 바빌론에서 귀환(歸還)할 것을 가리켰지만 궁극적으로 메시야께서 온 인류를 죄와 사망의 그늘에서 해방시킬 것을 의미한다. 또한 '눈먼 자에게 다시보게'라는 표현은 예수께서 육체적으로나 영적으로 눈먼 자에게 시력을 회복시켜 주실 것을 가리킨다. 마지막으로 '눌린 자에게 자유를'이란 표현은 죄의 노예가 되어 세상의 근심과 걱정에 얽매이며 고통받는 자에게 예수께서 영혼의 평안과 자유를 주실 것을 가리킨다.(호크마 주석에서)
분명하게 알아야만 합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죄와 사망에서 구원하시기 위하여 오셨다는 것을 성경에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를 내적치유 시키기 위하여 오신 분이 아닙니다.
이렇게 내적치유를 정당화 시키기 위하여 성경을 오용하는 것이 매우 위험한 일입니다.
둘째, 예수님의 3가지 사역중 하나이다.(마 9:35) 예수님의 3가지 사역은 ①가르침, ②천국복음 전파, ③병과 약한 것을 고치심 이다.
예수님의 3대사역에 대하여 말하고 있지만, "병과 약한 것을 고치심"에 대한 이해가 틀립니다.그 고치심이 내적치유일까요? 성경은 그렇게 말하지 않습니다.
셋째,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사용할 권세를 주셨다. (마 10:1, 요 14:12)
오늘날 내적치유에서 사용하는 축사사역은 칼 융의 심리학에 근거한 것이지성경에서 말하는 것과는 차원이 틀립니다.
넷째, 우리는 우리 속의 쓴뿌리, 돌덩이, 가시떨기를 없애고 마음을 새롭게 회복시켜야 한다(히 12:15, 마 13:19, 롬 12:2)
이런 설명은 성경의 본문이 무슨 뜻인지도 모르는 엉뚱한 해석입니다. 이 비유는 우리보고 쓴뿌리 돌덩이 가시떨기를 뽑으라는 것이 아닙니다.
무엇보다 내적치유자들이 말하는 쓴뿌리 돌덩이 개념은 심리학에서 말하는 쓴뿌리이지
성경에서 말하는 쓴뿌리가 아닙니다.
다섯째, 예수님이 다시 오실 때에 우리의 영 ·혼·육이 흠(상처)없게 보전되기를 원하신다.(살전5:23). 그러므로 내적치유 사역이 이루어져야 한다.
내적치유사역자들은 거의 대부분이 이렇게 삼분설을 가르치고 있습니다.그런데 우리는 모두 마음의 상처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없는 체하며 살아가고 있다. 마음의 깊은 상처를 ①잊고 ②누르고 ③없는 것처럼 살아가고 있다. 상처가 '없다면' 다른 사람이 나에게 상처를 주어도 '아픔'이 없다. 그러나 만약 손가락에 '가시'가 박혀 있다면 조금만 건드려도 아플 것이다.
현재 나의 모습은 조상들의 모습이다. 나는 조상들의 육체적, 정신적, 영적 합작품이다. 바로 복사판이다! 붕어빵이다! "우리 부부는 딱따구리 부부이다" 부부는 남편 아내 할 것 없이 똑같이 강도 만난 사람들이다. (그런데, 우습게도 서로 손가락질하며 왜 강도를 만났느냐고 따지며 살고 있다. 본인도 오랫동안 그렇게 살아왔다. )
내적치유자들은 "가계에 흐르는 저주론"으로 인생을 설명하려고 합니다."가계에 흐르는 저주"는 이미 교계에서 이단성 판정을 받은 것입니다.
가계도를 그려보면 삶의 열매나 불미스러운 일, 가정의 문제가 가계를 내려오면서 반복되는 것을 당장 알 수 있다.
흘러 내려오는 약점(육신적, 정신적, 영적)을 구체적인 예로 들어보면, 도박, 점치는 것, 주벽(酒癖), 육체적으로 유전적인 고질병 등이 있다. 이런 맥락에서, 내 아들딸의 현재 모습은 바로 나의모습이다. 그러므로 자녀 문제는 곧 나의 문제이고 우리 부부의 모습이다. 가계를 타고 흐르는 약점, 부정적인 영향력은 우리 세대에서 끊어서 더 이상 후손들에게 흐르지 않도록 해야 한다! 깊은 상처와 충격의 틈을 노리고, 죄를 발판으로 삼아 악한 영, 저주받은 영이 달라붙는다. 그러면 그 사람을 골통을 만들어 놓고 야단법석이다. 어느 집안이나 조상의 죄가 없는 집안은 없다.
본인이 사역하면서 얻은 임상적인 통계에 따르면, 내면의 상처는 조상의 유전으로부터 온 것이 50%, 임신과정(태아기 - 태아는 임신 6주 후부터 거의 다 알아듣는다고 한다)에서 20%,기타 성장 과정에서 비롯된 것이 30% 정도이다. 표면적인 문제는 깊은 내면의 문제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육체적 질병의 약 70-80%가 감정적인 문제01떠 비롯된다. 교회 내에서 깐깐하고, 잘 따지고, 잘 싸우고, 목사 애먹이는 사람들, 제직회 때마다 말썽부리는 말썽꾸러기, 골통 집사, 골통 장로 -이들은 모두 깊은 상처의 치유가 필요한 사람들이다. 말썽 많은 교회의 담임 목사들은 이런 골통집사, 장로들 때문에 제직회가 있는 전날 밤이면 긴장이 되어 잠을 제대로 못 자는 경우가 허다하다고 한다. 회의 때마다 사사건건 반대하는 그 사람은 "나는 환자입니다"라고 얘기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또, "나는 아픈 상처가 너무 깊습니다. 나를 좀 도와주세요. 치유해 주세요"라고 공개적으로 호소하고 있는 것이다. 이들의 호소를 알아차리고 치유해주기 위해, 내적치유 사역이 필요한 것이다. 이들이 일단 치유 받고 나면 주님의 충성스러운 일꾼으로 변화된다. 전인치유사역에는 걸어다니는 종합병원(음)들이 많이 들어온다. 14가지 질병을 가진 어느 권사님은 치유받는 과정에서 남편과 부부 맞짱을 뜨고서 모든 질병이 깨끗이 완재되었다. 그 이후 모든 면에서 좋아졌다. 17가지 병을 가진 전도사 사모는 다 치유받지 못했다.
(자료출처 김종주 지음, 나는 왜 그럴까?, 치유와 영성, 17-18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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