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민_길벗교회_내적치유소개_개인간증 ➁
김영민_길벗교회_내적치유소개_개인간증 ➁
자료출처 http://www.gilbut.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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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간증 ➁
“6년이 넘도록 우울증으로 고통당하던 큰언니를 치료해 주셨습니다”
*** 선교사(만 49세)
《제16차 성경적 내적치유수련회》에 참석하기 위해 길벗교회에서 차를 타고 1시간 30분가량 지난 후 자동차가 멈추어 선 곳은 사방이 전나무 숲으로 쌓여 있는 고즈넉한 2층짜리 건물 앞이었습니다. 향긋한 풀냄새가 코끝을 자극해 오며 도심지의 공해에 쌓여 있던 피로가 한순간에 허물어지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1층에서 접수를 한 후 배정받은 방으로 짐을 옮기고, 방문 앞에 붙여진 조 편성표를 살펴보고 조원들을 만나고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다른 조에 들어간 지방에서 올라온 두 언니들을 챙기고 함께 온 둘째 아들 해웅이에게 짐을 나누어 주고 난 후, 작은 언니와 함께 숙소에서 조금 떨어진 식당이 있는 건물로 걸어가기 시작했습니다. 큰언니는 식당에 가는 것조차 거부한 채 숙소에 남아서 가지고온 ‘본죽’으로 저녁을 때울 작정이었습니다. 또 해웅이는 엉겁결에 엄마를 따라 오기는 왔으나 항상 같이 다니던 형도 없고 아는 친구하나 없는 곳에 자신을 데려왔다고 그 특유의 제스처와 언어로 나를 들볶았습니다. 마음이 편치 않았습니다. 이곳에 오는 순간까지 얼마나 가슴을 졸이며 지냈는지 모릅니다.
목사님의 전화를 받고 남편이 순순히 ‘내적치유수련회’에 참석하겠노라고 대답을 해주었기에 내가 남편을 설득할 수고가 줄어들어서 참 감사했습니다. 우리 부부와 큰 아들 지웅이, 둘째 아들 해웅이가 참석하기로 하고 유치원생인 막내딸 보라는 고모가 맡아주기로 했습니다. 나는 또 오랫동안 우울증으로 고생하고 있던 큰언니를 ‘내적치유수련회’에 참석토록 하기 위해서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고 있는 작은언니에게 도움을 청했습니다. 경북 봉화에 살고 있는 큰언니를 설득해서 모셔오는 일이 보통일이 아니었습니다. 여러 명의 가족들에게 수시로 전화통화를 하여 도움을 요청해서 일정에 차질이 없도록 세밀하게 준비를 했습니다. 그러는 와중에 큰아들 지웅이가 ‘뇌수막염’으로 병원에 입원을 하게 되었기에 갑자기 일정에 차질이 생겼습니다. 우리부부는 여러 가지 방법들을 생각해 보았으나 퇴원 후에도 간호가 필요한 지웅이를 위해 두 사람 중 한사람은 남아야 하기에 큰언니를 모시고 가는 이유 때문에 할 수 없이 제가 수련회에 해웅이를 데리고 참석하는 것으로 결론을 지었습니다.
작년 여름에 지웅이 대학입시 준비 문제로 선교지인 필리핀에서 잠깐 한국에 들어올 일이 있었습니다. 그때 길벗교회 주일예배에 참석해서 『상한 감정의 치유』라는 제목의 목사님의 설교를 듣고 도전을 받아 더 알고 싶은 충동 속에 사모님에게 내 심정을 얘기했더니 매 여름마다 ‘내적치유수련회’가 있는데 그 수련회 준비과정으로 목사님이 그런 설교를 하신다는 것이었습니다. 나는 출국시간이 가까워서 안타까운 마음으로 내년 안식년에 와서 꼭 참석하고 싶다고 했고, 목사님 내외분은 수련회를 마친 다음 ‘내적치유수련회’ 교재와 설교 테이프를 선교지로 보내주셨기에 나는 이미 혼자서 대충이나마 공부를 해놓고 있었습니다. 선교지에 있으면서 안식년에 귀국하면 ‘내적치유수련회’에 부부가 함께 참석하자고 여러 번 남편에게 권유했는데 때로는 희미한 대답으로, 때로는 “당신 혼자만 가!”라는 섭섭한 대답으로 응답했습니다.
그렇게 갈망하던 나에게 이번 ‘내적치유수련회’는 아주 귀한 기회였던 것입니다. 그러나 남편과 큰아들 지웅이가 참석할 수 없어서 아쉬웠지만 그들은 다음 기회로 미루고 하나님은 나에게 큰언니 문제를 떠맡기시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나는 수시로 가족들을 위해서 기도해왔는데 특별히 주님을 알지 못하고 사는 큰언니와 큰오빠를 위해서 많이 기도해왔습니다. 설거지하면서도 그들을 위해서 중보기도를 하는데 큰언니와 큰오빠를 생각하고 기도하고 나면 항상 그들이 불쌍해서 눈물이 나곤했습니다.
이번 여름 안식년으로 한국에 들어와서 가족들로부터 큰언니가 ‘우울증’으로 고생하고 있다는 얘기를 듣게 되었고, 그 증세가 범상치 않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나는 즉각 큰언니가 주님 앞에 나와야 됨을 직감하고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전화로 언니와 직접 통화를 하고, 믿음이 있는 언니의 딸들과 통화하면서 도움을 구했습니다. 그러나 큰언니 본인은 극구 반대하였고, 주위의 반응도 별로 호의적이지 못했습니다. 마음이 급해진 나는 내가 언니를 보고 싶다는 막내 근성을 사용해서 주위 사람들을 설득하고 움직이도록 했습니다. 지웅이의 뇌수막염 사실은 언니가 수련회를 마치는 순간까지도 극비에 붙이기로 하고, 언니를 우리 집까지 모셔오는데 드디어 성공을 했습니다. 중도에 여러 가지 방해 작용들이 나를 힘들게 할 때, 또 언니의 상황들이 답답하고 힘겹게 느껴질 때, 그 짐들을 피하고 싶은 마음이 들기도 했지만, 하나님께서 이번 안식년 기간 동안 나에게 맡기시는 일이 이것이 아닐까하는 생각으로 기쁜 마음으로 감당하기로 작정했습니다. 그렇게 힘들게 이 수련회 장소까지 왔는데 큰언니는 식당에 가는 것도 거부하고, “괜히 왔구나”라는 말로 내 마음을 긁고, 또 해웅이도 원치 않는 곳에 자신을 데려왔다고 나를 원망하고 있었습니다.
이런 힘든 상황 속에서 첫 번째 강의시간이 끝나고 《치유기도회》가 시작되었습니다. 나는 나 자신의 문제보다도 언니문제를 놓고 하나님께 매달렸습니다. 《조별모임》에서도 나는 계속적으로 언니 문제를 기도제목으로 내어놓았고, 우리 조장님이신 사모님과 조원들의 격려와 사랑 속에 이번 수련회가 은혜와 감격으로 수놓아질 것을 예감하며 진한 전나무 솔잎 냄새를 맡으며 깊은 잠에 빠져 들었습니다.둘째 날 아침에도 언니는 식당가는 것을 거부했습니다. 옷을 갈아입는 일에도, 몸을 씻는 일에도 전혀 관심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무거운 마음으로 하루가 시작되었습니다. 점심식사는 식당에서 하고, 오후강의와 《치유기도회》에 언니가 참석했습니다. 목사님의 안수기도 후에 언니를 돌아보니 언니가 눈물을 흘리고 있었습니다. 6년이 넘도록 울지도, 웃지도 못하고 살아오던 언니에게 드디어 눈물샘이 열린 것이었습니다. 작은언니와 나는 기뻐서 어쩔 줄을 몰랐습니다. 그 후로 언니는 계속해서 강의와 《치유기도회》에 참석해서 은혜를 받기 시작했습니다.
셋째 날 《치유기도회》 시간에 나 혼자 기도하고 있었는데 누군가 와서 내 발을 잡아끌기에 눈을 뜨고 보았더니 큰언니였습니다. 언니는 나를 안고 울기 시작했는데 꺼이꺼이 소리를 내며 울었습니다. 그 소리는 가슴 속 깊은 곳에서 울려나오고 있었습니다. 언니는 이때까지 오랜 세월 동안 닫아놓은 가슴을 열고 울고 있었습니다. 나는 언니를 안고 울었습니다. 감사의 눈물이었습니다. 숙소에 돌아와서 언니에게 물었습니다. 기도할 때 어떻게 기도 하냐고 했더니 그냥 “하나님 살려주세요!”라고 했답니다. 언니는 시간마다 이어지는 ‘죄의 고백 시간’과 ‘용서와 사죄(赦罪)의 확신시간’에 나의 도움을 받아 ‘소각식’에 참여하였고 예수님을 영접하는 시간에 주님을 영접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나는 언니 본인이 아니기에 언니 속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자세히는 모릅니다. 하지만 나는 언니가 이제 죄와 사망의 권세 아래에서 빛의 자녀의 권세로 자리를 옮긴 것을 압니다. 언니는 이제 주님을 자신의 구주와 주님으로 시인하여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입니다. 올해 71세의 언니는 19살에 결혼해서 50년이 넘는 결혼생활을 했고, 슬하에 6남매를 두었습니다. 내가 태어나기도 전에 출가(出嫁)했으니, 그의 인생에 쌓인 것들이 얼마나 많았을까요? 어려운 시집살이와 가난, 그리고 남편의 알코올중독에 시달리며 6남매를 반듯하게 키워낸 언니가 결국에는 노년에 자신의 한계에 부딪혀 우울증에 시달리다가 주님을 만난 것입니다. 며칠 전 어머니 생신 때 경북 영주에 내려가서 언니를 만났습니다. 그 전에 통화도 했는데 목소리가 아주 밝아지고 나를 반겨 주었습니다. 수련회 가기 전에는 “다시 전화하지 마라”가 대답이었는데, 이제는 아주 변화된 언니 모습에 모두가 행복해졌고, 조카들이 나에게 고맙다고 말했습니다. 언니는 또 다시 ‘내적치유수련회’에 참석하고 싶다고 얘기했습니다. 내 마음은 어떤 임무를 완성한 군인의 마음처럼 기쁘기 그지없었습니다.
언니 때문에 전혀 신경 쓰지 못하고 있던 작은아들 해웅이의 이야기를 또 빼놓을 수가 없습니다. 첫 번째 강의가 끝난 이후부터 나는 해웅이를 거의 만날 수 없었습니다. 늘 찰거머리처럼 엄마주위를 맴돌며 칭얼대거나 귀찮게 하고 괴롭게(?)하던 해웅이가 수련회 기간 동안 내 주위에 보이지가 않았습니다. 이상하다 싶었습니다. 나중에 목사님과 집사님들이 해웅이가 은혜를 많이 받고 있다고 해서 아들을 찾아보기 시작했습니다. 해웅이는 더 이상 자신을 못 올 곳에 데려왔다고 엄마를 원망하던 그 모습이 아니었습니다. 쉽지 않은 한국말 강의를 어떻게 소화했느냐고 물었더니 첫 번째 강의 이후 자신의 문제를 발견하게 되면서 자신이 치유 받고 살길을 찾기 위해 죽을힘을 다해 강의에 참석했노라고 대답했습니다.
원래 해웅이는 게으름과 핑계 덩어리였습니다. 그런데 어른들도 감당하기 힘든 강의시간과 《치유기도회》에 한 번도 빠지지 않고 사춘기 중3 학생이, 그것도 한국어가 서툰 선교사 자녀(MK)가 꼬박 꼬박 참석한 것은 내가 보기에는 그 자체가 기적이었습니다. 해웅이는 자신을 옭아매고 있는 두 가지의 악한 영들이 자신을 떠나는 것을 보았다고 나에게 말했습니다. 나는 부모를 떠나 ‘기숙학교(寄宿學校)’로 떠나야 하는 해웅이를 두고 마음이 무거웠는데 변화된 해웅이의 모습을 보고 얼마나 마음이 놓이는지 모릅니다. 다른 어떤 것보다도 아들이 날마다 주님을 갈망하며 사는 일만큼 감사한 일이 없기 때문입니다. 해웅이는 내년 여름에도 ‘내적치유수련회’에 참석하고 싶어 하는데 자신이 타국(他國)에 있는 관계로 그 일이 이루어지지 않을까 염려하고 있습니다.
체력이 항상 딸리는 나는 처음 강의안을 보면서 이 빡빡한 스케줄을 어떻게 따라 갈 수 있을까 염려했는데 예상외로 한 시간도 빠지지 않고 참석할 수 있었습니다. 목사님의 강의를 통해 공부를 하고 이해를 한 다음, 하나님 앞에 서는 기도회 시간도 좋았고, ‘조별모임’을 통해 서로를 알아가면서 마음을 열어가고 사랑하며 기도하는 과정도 빼놓을 수 없는 주옥같은 시간들이었습니다. 마지막 날 강의를 통해서 내가 얻은 비밀은 하나님과의 친밀한 관계를 통하여 늘 그분의 음성을 듣는 것이었습니다. 늘 바쁜 일상 속에서 살아가는 내가 염원(念願)하는 일이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내적치유수련회’ 기간 동안 나는 작은 천국 속에 내가 있는 기분이었습니다.
길벗교회 식구들은 ‘내적치유’를 해서 많이 열려있는 것 같아 아주 편안하고 행복한 시간들을 보냈습니다. 나도 이 사람들과 함께 살며 신앙생활을 하고 싶다는 강한 유혹(?)을 느껴봅니다. 이번 내적치유수련회를 통해서 나와 해웅이, 그리고 언니들에게 놀라운 은혜를 부어주신 하나님께 가슴 가득한 감사와 찬양을 올려드립니다. 주님, 큰 영광 받으소서!
-------------------------------- 기사 자료 끝 ----------------------------------
RPTministries 정태홍 목사
http://www.esesang91.com
http://twtkr.com/rptministries
http://www.facebook.com/RPTministries
자료출처 http://www.gilbut.or.kr/
길벗교회 관련한 글들에 대한 비판은
기독교교리와 반대되는 부분을 조금씩 분석해서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부교역자 목사님과 교회 지체라고 하시는 분들이 글을 내리도록 전화를 하고 계시지만
분석과 비판을 해서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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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간증 ➁
“6년이 넘도록 우울증으로 고통당하던 큰언니를 치료해 주셨습니다”
*** 선교사(만 49세)
《제16차 성경적 내적치유수련회》에 참석하기 위해 길벗교회에서 차를 타고 1시간 30분가량 지난 후 자동차가 멈추어 선 곳은 사방이 전나무 숲으로 쌓여 있는 고즈넉한 2층짜리 건물 앞이었습니다. 향긋한 풀냄새가 코끝을 자극해 오며 도심지의 공해에 쌓여 있던 피로가 한순간에 허물어지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1층에서 접수를 한 후 배정받은 방으로 짐을 옮기고, 방문 앞에 붙여진 조 편성표를 살펴보고 조원들을 만나고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다른 조에 들어간 지방에서 올라온 두 언니들을 챙기고 함께 온 둘째 아들 해웅이에게 짐을 나누어 주고 난 후, 작은 언니와 함께 숙소에서 조금 떨어진 식당이 있는 건물로 걸어가기 시작했습니다. 큰언니는 식당에 가는 것조차 거부한 채 숙소에 남아서 가지고온 ‘본죽’으로 저녁을 때울 작정이었습니다. 또 해웅이는 엉겁결에 엄마를 따라 오기는 왔으나 항상 같이 다니던 형도 없고 아는 친구하나 없는 곳에 자신을 데려왔다고 그 특유의 제스처와 언어로 나를 들볶았습니다. 마음이 편치 않았습니다. 이곳에 오는 순간까지 얼마나 가슴을 졸이며 지냈는지 모릅니다.
목사님의 전화를 받고 남편이 순순히 ‘내적치유수련회’에 참석하겠노라고 대답을 해주었기에 내가 남편을 설득할 수고가 줄어들어서 참 감사했습니다. 우리 부부와 큰 아들 지웅이, 둘째 아들 해웅이가 참석하기로 하고 유치원생인 막내딸 보라는 고모가 맡아주기로 했습니다. 나는 또 오랫동안 우울증으로 고생하고 있던 큰언니를 ‘내적치유수련회’에 참석토록 하기 위해서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고 있는 작은언니에게 도움을 청했습니다. 경북 봉화에 살고 있는 큰언니를 설득해서 모셔오는 일이 보통일이 아니었습니다. 여러 명의 가족들에게 수시로 전화통화를 하여 도움을 요청해서 일정에 차질이 없도록 세밀하게 준비를 했습니다. 그러는 와중에 큰아들 지웅이가 ‘뇌수막염’으로 병원에 입원을 하게 되었기에 갑자기 일정에 차질이 생겼습니다. 우리부부는 여러 가지 방법들을 생각해 보았으나 퇴원 후에도 간호가 필요한 지웅이를 위해 두 사람 중 한사람은 남아야 하기에 큰언니를 모시고 가는 이유 때문에 할 수 없이 제가 수련회에 해웅이를 데리고 참석하는 것으로 결론을 지었습니다.
작년 여름에 지웅이 대학입시 준비 문제로 선교지인 필리핀에서 잠깐 한국에 들어올 일이 있었습니다. 그때 길벗교회 주일예배에 참석해서 『상한 감정의 치유』라는 제목의 목사님의 설교를 듣고 도전을 받아 더 알고 싶은 충동 속에 사모님에게 내 심정을 얘기했더니 매 여름마다 ‘내적치유수련회’가 있는데 그 수련회 준비과정으로 목사님이 그런 설교를 하신다는 것이었습니다. 나는 출국시간이 가까워서 안타까운 마음으로 내년 안식년에 와서 꼭 참석하고 싶다고 했고, 목사님 내외분은 수련회를 마친 다음 ‘내적치유수련회’ 교재와 설교 테이프를 선교지로 보내주셨기에 나는 이미 혼자서 대충이나마 공부를 해놓고 있었습니다. 선교지에 있으면서 안식년에 귀국하면 ‘내적치유수련회’에 부부가 함께 참석하자고 여러 번 남편에게 권유했는데 때로는 희미한 대답으로, 때로는 “당신 혼자만 가!”라는 섭섭한 대답으로 응답했습니다.
그렇게 갈망하던 나에게 이번 ‘내적치유수련회’는 아주 귀한 기회였던 것입니다. 그러나 남편과 큰아들 지웅이가 참석할 수 없어서 아쉬웠지만 그들은 다음 기회로 미루고 하나님은 나에게 큰언니 문제를 떠맡기시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나는 수시로 가족들을 위해서 기도해왔는데 특별히 주님을 알지 못하고 사는 큰언니와 큰오빠를 위해서 많이 기도해왔습니다. 설거지하면서도 그들을 위해서 중보기도를 하는데 큰언니와 큰오빠를 생각하고 기도하고 나면 항상 그들이 불쌍해서 눈물이 나곤했습니다.
이번 여름 안식년으로 한국에 들어와서 가족들로부터 큰언니가 ‘우울증’으로 고생하고 있다는 얘기를 듣게 되었고, 그 증세가 범상치 않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나는 즉각 큰언니가 주님 앞에 나와야 됨을 직감하고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전화로 언니와 직접 통화를 하고, 믿음이 있는 언니의 딸들과 통화하면서 도움을 구했습니다. 그러나 큰언니 본인은 극구 반대하였고, 주위의 반응도 별로 호의적이지 못했습니다. 마음이 급해진 나는 내가 언니를 보고 싶다는 막내 근성을 사용해서 주위 사람들을 설득하고 움직이도록 했습니다. 지웅이의 뇌수막염 사실은 언니가 수련회를 마치는 순간까지도 극비에 붙이기로 하고, 언니를 우리 집까지 모셔오는데 드디어 성공을 했습니다. 중도에 여러 가지 방해 작용들이 나를 힘들게 할 때, 또 언니의 상황들이 답답하고 힘겹게 느껴질 때, 그 짐들을 피하고 싶은 마음이 들기도 했지만, 하나님께서 이번 안식년 기간 동안 나에게 맡기시는 일이 이것이 아닐까하는 생각으로 기쁜 마음으로 감당하기로 작정했습니다. 그렇게 힘들게 이 수련회 장소까지 왔는데 큰언니는 식당에 가는 것도 거부하고, “괜히 왔구나”라는 말로 내 마음을 긁고, 또 해웅이도 원치 않는 곳에 자신을 데려왔다고 나를 원망하고 있었습니다.
이런 힘든 상황 속에서 첫 번째 강의시간이 끝나고 《치유기도회》가 시작되었습니다. 나는 나 자신의 문제보다도 언니문제를 놓고 하나님께 매달렸습니다. 《조별모임》에서도 나는 계속적으로 언니 문제를 기도제목으로 내어놓았고, 우리 조장님이신 사모님과 조원들의 격려와 사랑 속에 이번 수련회가 은혜와 감격으로 수놓아질 것을 예감하며 진한 전나무 솔잎 냄새를 맡으며 깊은 잠에 빠져 들었습니다.둘째 날 아침에도 언니는 식당가는 것을 거부했습니다. 옷을 갈아입는 일에도, 몸을 씻는 일에도 전혀 관심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무거운 마음으로 하루가 시작되었습니다. 점심식사는 식당에서 하고, 오후강의와 《치유기도회》에 언니가 참석했습니다. 목사님의 안수기도 후에 언니를 돌아보니 언니가 눈물을 흘리고 있었습니다. 6년이 넘도록 울지도, 웃지도 못하고 살아오던 언니에게 드디어 눈물샘이 열린 것이었습니다. 작은언니와 나는 기뻐서 어쩔 줄을 몰랐습니다. 그 후로 언니는 계속해서 강의와 《치유기도회》에 참석해서 은혜를 받기 시작했습니다.
셋째 날 《치유기도회》 시간에 나 혼자 기도하고 있었는데 누군가 와서 내 발을 잡아끌기에 눈을 뜨고 보았더니 큰언니였습니다. 언니는 나를 안고 울기 시작했는데 꺼이꺼이 소리를 내며 울었습니다. 그 소리는 가슴 속 깊은 곳에서 울려나오고 있었습니다. 언니는 이때까지 오랜 세월 동안 닫아놓은 가슴을 열고 울고 있었습니다. 나는 언니를 안고 울었습니다. 감사의 눈물이었습니다. 숙소에 돌아와서 언니에게 물었습니다. 기도할 때 어떻게 기도 하냐고 했더니 그냥 “하나님 살려주세요!”라고 했답니다. 언니는 시간마다 이어지는 ‘죄의 고백 시간’과 ‘용서와 사죄(赦罪)의 확신시간’에 나의 도움을 받아 ‘소각식’에 참여하였고 예수님을 영접하는 시간에 주님을 영접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나는 언니 본인이 아니기에 언니 속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자세히는 모릅니다. 하지만 나는 언니가 이제 죄와 사망의 권세 아래에서 빛의 자녀의 권세로 자리를 옮긴 것을 압니다. 언니는 이제 주님을 자신의 구주와 주님으로 시인하여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입니다. 올해 71세의 언니는 19살에 결혼해서 50년이 넘는 결혼생활을 했고, 슬하에 6남매를 두었습니다. 내가 태어나기도 전에 출가(出嫁)했으니, 그의 인생에 쌓인 것들이 얼마나 많았을까요? 어려운 시집살이와 가난, 그리고 남편의 알코올중독에 시달리며 6남매를 반듯하게 키워낸 언니가 결국에는 노년에 자신의 한계에 부딪혀 우울증에 시달리다가 주님을 만난 것입니다. 며칠 전 어머니 생신 때 경북 영주에 내려가서 언니를 만났습니다. 그 전에 통화도 했는데 목소리가 아주 밝아지고 나를 반겨 주었습니다. 수련회 가기 전에는 “다시 전화하지 마라”가 대답이었는데, 이제는 아주 변화된 언니 모습에 모두가 행복해졌고, 조카들이 나에게 고맙다고 말했습니다. 언니는 또 다시 ‘내적치유수련회’에 참석하고 싶다고 얘기했습니다. 내 마음은 어떤 임무를 완성한 군인의 마음처럼 기쁘기 그지없었습니다.
언니 때문에 전혀 신경 쓰지 못하고 있던 작은아들 해웅이의 이야기를 또 빼놓을 수가 없습니다. 첫 번째 강의가 끝난 이후부터 나는 해웅이를 거의 만날 수 없었습니다. 늘 찰거머리처럼 엄마주위를 맴돌며 칭얼대거나 귀찮게 하고 괴롭게(?)하던 해웅이가 수련회 기간 동안 내 주위에 보이지가 않았습니다. 이상하다 싶었습니다. 나중에 목사님과 집사님들이 해웅이가 은혜를 많이 받고 있다고 해서 아들을 찾아보기 시작했습니다. 해웅이는 더 이상 자신을 못 올 곳에 데려왔다고 엄마를 원망하던 그 모습이 아니었습니다. 쉽지 않은 한국말 강의를 어떻게 소화했느냐고 물었더니 첫 번째 강의 이후 자신의 문제를 발견하게 되면서 자신이 치유 받고 살길을 찾기 위해 죽을힘을 다해 강의에 참석했노라고 대답했습니다.
원래 해웅이는 게으름과 핑계 덩어리였습니다. 그런데 어른들도 감당하기 힘든 강의시간과 《치유기도회》에 한 번도 빠지지 않고 사춘기 중3 학생이, 그것도 한국어가 서툰 선교사 자녀(MK)가 꼬박 꼬박 참석한 것은 내가 보기에는 그 자체가 기적이었습니다. 해웅이는 자신을 옭아매고 있는 두 가지의 악한 영들이 자신을 떠나는 것을 보았다고 나에게 말했습니다. 나는 부모를 떠나 ‘기숙학교(寄宿學校)’로 떠나야 하는 해웅이를 두고 마음이 무거웠는데 변화된 해웅이의 모습을 보고 얼마나 마음이 놓이는지 모릅니다. 다른 어떤 것보다도 아들이 날마다 주님을 갈망하며 사는 일만큼 감사한 일이 없기 때문입니다. 해웅이는 내년 여름에도 ‘내적치유수련회’에 참석하고 싶어 하는데 자신이 타국(他國)에 있는 관계로 그 일이 이루어지지 않을까 염려하고 있습니다.
체력이 항상 딸리는 나는 처음 강의안을 보면서 이 빡빡한 스케줄을 어떻게 따라 갈 수 있을까 염려했는데 예상외로 한 시간도 빠지지 않고 참석할 수 있었습니다. 목사님의 강의를 통해 공부를 하고 이해를 한 다음, 하나님 앞에 서는 기도회 시간도 좋았고, ‘조별모임’을 통해 서로를 알아가면서 마음을 열어가고 사랑하며 기도하는 과정도 빼놓을 수 없는 주옥같은 시간들이었습니다. 마지막 날 강의를 통해서 내가 얻은 비밀은 하나님과의 친밀한 관계를 통하여 늘 그분의 음성을 듣는 것이었습니다. 늘 바쁜 일상 속에서 살아가는 내가 염원(念願)하는 일이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내적치유수련회’ 기간 동안 나는 작은 천국 속에 내가 있는 기분이었습니다.
길벗교회 식구들은 ‘내적치유’를 해서 많이 열려있는 것 같아 아주 편안하고 행복한 시간들을 보냈습니다. 나도 이 사람들과 함께 살며 신앙생활을 하고 싶다는 강한 유혹(?)을 느껴봅니다. 이번 내적치유수련회를 통해서 나와 해웅이, 그리고 언니들에게 놀라운 은혜를 부어주신 하나님께 가슴 가득한 감사와 찬양을 올려드립니다. 주님, 큰 영광 받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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