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태홍 목사의 성경적 상담 연구소 RBD COUNSELING INSTITU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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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민_길벗교회_내적치유소개_평신도 성경적 내적치유수련회 참석자 간증문1

김영민_길벗교회_내적치유소개_평신도 성경적 내적치유수련회 참석자 간증문1
자료출처 http://www.gilbut.or.kr/

길벗교회 관련한 글들에 대한 비판은 
기독교교리와 반대되는 부분을 조금씩 분석해서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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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 평신도 성경적 내적치유수련회 참석자 간증문
오는 내용들은 길벗교회 ‘성경적 내적치유수련회’에 참석하여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와 치유를 실제로 경험한 분들의 간증 내용입니다. ‘성경적 내적치유수련회’ 참석자들의 간증집인『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1집과 2집을 원하시는 분들은 길벗교회로 연락하시면 우송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1. 부부 간증
(1) *** 집사, *** 집사
(2) R 집사, S 집사

2. 개인 간증
(1) *** 장로
(2) *** 선교사

부부간증 ➀
“그래, 내려놓아라. 내려놓을 수 있겠느냐?”
*** 집사 (남편, 만59세)
나는 초등학교 때부터 교회를 다녔지만 주님을 만난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냥 단지 재미로 다녔기에 그 후에도 자주 넘어졌고, 여러 번 물질의 시험도 이기지 못하고 넘어졌습니다. 내 믿음은 하나님을 바라보고 그분을 믿는 믿음이 아니라 사람을 보고 믿는 믿음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실상 나의 삶은 나 자신만을 위해서 사는 삶이였지만, 다른 사람이 적당히 사는 것은 그냥 넘기지 못하는 참으로 모순된 삶이였습니다. 부모님은 불교의 부처를 열심히 믿으셨고, 나중에 우리 가정이 교회에 다니는 관계로 어머니는 가끔 교회에 나가시는 정도였습니다. 아버지께서는 시골에서 농사짓고 장사하시면서 주위 사람들이 좋다고 하면 그들에게 맞추어 사셨기에 항상 가정에는 무능하셨습니다. 술과 담배는 매일같이 달고 사셨고, 무능력한 삶으로 인해 어머니와의 관계가 좋을 수가 없으셨기에 두 분은 늘 다투며 사셨습니다. 나는 그렇게 사는 부모님이 싫었습니다. 우리 큰집과 우리 집은 술도가니 같은 집이었기에 사람들이 와서 술을 가지고 나가지는 못해도 마음껏 먹고 갈 수 있을 정도였습니다.
어릴 때 이런 환경 속에서 자랐기에 아버지처럼 적당히 사는 것, 적당주의로 사는 것은 나와 맞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이 아버지처럼 술에 취해서 잔소리하는 것을 아주 싫어했기에 그런 사람들을 대하면서 나 자신도 성격이 나빠졌고, 그들을 대적하고 미워했습니다. 그러면서 나 자신도 모르게 내가 실수하면 안 된다는 의식이 나에게 깊이 뿌리 박혀졌고, 이것은 가정에서도 그러했습니다. 교회를 다녔지만 이런 제 허물을 보지 못하며 살았기에 상대방을 이해하기는커녕 오히려 미워하며 대적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참으로 악한 삶이었고 탐심이 가득한 삶이었습니다. 길벗교회가 서울에 있을 때에 믿는다고는 했지만 신앙생활을 하면서 십일조 생활도 하지 않았고, 여전히 적당주의로 신앙생활하며 살았습니다. 그렇지만 가정에 별 문제가 없었고, 모든 것이 순적하게 잘 풀렸으며, 직장에도 아무 문제가 없이 잘 다녔습니다. 그리고 주위 사람도 항상 좋은 사람만 만났습니다.
그러면서 믿음생활을 열심히 하려고 할 때에 시험이 닥쳐왔습니다. 아내가 안 믿는 사람에게 돈을 빌려주었는데 받지 못하게 되었고, 그래서 너무나 화가 나고 속이 상하여 아내를 얼마나 힘들게 했는지 모릅니다. 모든 책임을 아내에게 떠넘겼고, 저 역시 너무나 힘들었습니다. 나중에 아내가 이야기해서 알았는데 자신이 너무 힘들어서 한강에 빠져 죽으려고도 했다고 하더군요. 아내의 이야기를 들으며 내가 얼마나 아내를 힘들게 하면서 구박하고 못되게 굴었으면 아내가 그랬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 당시에는 그것을 너무나 당연하게 생각했습니다. 얼마나 탐심이 많은 삶이였는지 십일조 생활도 하지 못하고, 또 꾸어준 돈을 받지 못하는 것이 창피하고 부끄러워서 교회를 다니지 않았습니다. 아니 다니기가 싫었습니다. 그러면서 가정은 엉망진창이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얼마나 우리 가정을 사랑하셨는지 아내는 그런 힘든 상황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교회를 계속 다녔고, 그런 아내를 저는 그 뒤로도 엄청나게 구박했고 못되게 굴었습니다. 그렇지만 때때로 마음 한 구석에 교회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었는데 아마도 목사님께서 전화주시고 관심을 가져주셨기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때마침 길벗교회가 서울에서 행신동으로 이사하게 되었고, 그때부터 다시 교회를 출석하게 되면서 열심히 믿음생활을 하게 되었습니다. 지금 뒤돌아보면 믿음생활은 하나님의 은혜 아니면 할 수 없다는 것을 깊이 깨닫게 됩니다. 가정교회 목장에 들어가 믿음생활을 이제는 열심히 잘해보려고 하는데 또 시험이 닥쳐왔습니다. 막내딸이 회사에서 신체검사를 했는데 재검사를 받아보라고 해서 처음에는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는데 재검사를 자주하기에 불안하고 초조했습니다. 그런데 그때는 믿음이 없었기에 하나님을 찾지도 않았고, 붙잡지도 못했으며, 내 자원과 노력으로 해결하려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하면 충분히 가능할 줄 알았습니다.
막내딸이 서울대학 병원에 다니면서 검사를 받고 치료를 받았는데 처음에는 병원에서도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고 괜찮다고 했습니다. 그렇지만 그 뒤로도 여러 번 뾰족한 방안이 없이 검사와 치료, 수술 등의 반복되는 결과로 인하여 결국 가정은 가정대로, 목장은 목장대로 너무나 힘든 시기를 맞이했고, 그래서 그때는 정말로 세상이 무너져서 없어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피할 수만 있었다면 요나처럼 먼 곳으로 떠나고 싶었고 도피하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피할 수 없는 엄연한 현실이었고, 나와 나의 가정에 임한 하나님의 큰 시험이었습니다. 그렇지만 그때에도 나는 믿음으로 하나님을 의지하며 그 시험을 이겨나가지 못했고, 이번에도 역시 하나님을 원망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왜 내가 열심히 믿음생활하려고 하는데 이런 힘든 시험을 주시는지, 정말 하나님이 계시기는 계신 지 정말 답답하고 막막했습니다. 그때 심정은 막내딸에게 아무 이상이 없다면 목탁이라도 치고 싶은 심정이었습니다.
그때는 하나님께 의지하며 살기보다는 항상 내 힘과 노력으로 모든 일을 하려고 했고, 어려운 문제들도 세상적이고 물질적이며 눈에 보이는 것만으로 해결해나가려고 했기에 함께 목장생활을 하던 저희 가정교회의 목자ㆍ목녀를 비롯한 여러 목원들을 많이 힘들게 했던 시기였습니다. 그렇지만 저희 목장의 목자ㆍ목녀는 변함없이 저희들을 사랑하면서 헌신적으로 저희들을 섬겼습니다. 그분들의 섬김이 없었다면 저는 또 넘어지지 않았을까 그런 생각이 듭니다. 그분들의 헌신적인 섬김을 받으면서 우리 역시 그분들을 본받으며 살려고 생각했습니다. 그렇지만 지금 저희 역시 목자ㆍ목녀로서 섬기지만 그것은 생각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되는 것임을 여러 번 체험했습니다. 하나님의 긍휼하심으로 인하여 지금은 딸아이의 건강이 회복되어 결혼하여 손녀딸을 낳고 정상적인 생활을 하는데 그런 모습을 볼 때마다 정말 하나님께 고맙고 감사할 뿐입니다.
그런데 그 뒤로 또 어려운 시련이 닥쳐왔습니다. 결혼한 둘째딸의 가정에 문제가 생겨서 같이 살지 못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꿈에도 생각지도 못한 일이었기에 나는 내가 왜 사는지, 내가 정말 살 필요조차 있는지 알지 못했습니다. 그만큼 저에게 있어서 가정과 자녀들은 우상이었고, 내 마음속의 무너져서는 안 되는 강한 진을 구축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사실 그렇게 그 아이의 가정이 곪아가는 있는지조차 나는 몰랐고, 또 크게 관심을 가지지도 못했습니다. 나는 그 일로 세상이 싫었고, 사람들 앞에 부끄러웠으며, 정말 힘든 시련의 연속이었습니다. 딸아이와 사위를 용서할 수 없었고, 증오했으며, 그런 마음이 심할 때에는 교통사고로 위장해 죽이고도 싶은 마음이 들기도 했었습니다. 너무나도 강한 배신감에 치를 떨었습니다. 하지만 그게 나의 시험의 끝이 아니었습니다. 그 와중에 어머니를 모시지 못하고, 또 어머니의 한을 풀어드리지도 못하고 돌아가시게 한 것이 제 마음에 커다란 한으로 자리 잡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나는 겉으로는 평안해 보였지만 속은 썩어가고 있었고, 악하고 추한 마음으로 가득했습니다. 위선적이고 가식적인 나의 삶이였습니다. 하나님을 믿는다고는 하지만 실제로 믿는 게 아니었고, 외식적인 삶으로만 가득했었습니다. 그러던 중에 ‘내적치유수련회’ 참석권고를 목사님과 주위 집사님들에게서 받게 되었습니다. 내적인 문제가 나에게 있다는 것과 내게 치유할 문제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것을 전혀 발견하지도 못했고, 느끼지도 못했으며, 아니 그럴 필요조차 느끼지 못했습니다. 교회생활만 열심히 하면 되지 무슨 아까운 시간을 그곳에 가서 따분하게 앉아서 힘들게 보내다 와야 하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직장에서 귀한 휴가를 내어 그곳에 가서 보내고 싶지도 않았고, 그래서 준비조차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목사님은 나의 내적인 문제를 보셨는지 너무나도 반복적으로 요청하셨습니다. 내 속에 문제가 얼마나 있다고 저러시는지, 내적인 문제가 없는 사람이 어디 있다고 저러시는 건지 화가 날 정도였습니다. 목사님은 계속 권고하셨고, 저는 마지못해 첫 번째로 2004년 8월에 ‘예수 마을’에서 있었던 《제6차 성경적 내적치유수련회》에 참석하게 되었습니다. 그렇지만 그때는 나의 내면을 보지 못했습니다. 제 안에 치유에 대한 갈급함도 없었고, 기도요청도 하지 않았던, 마지못해 참석했던 시간이었습니다.
두 번째 ‘내적치유수련회’에 참석한 것은 2005년 8월, 경기도 광주 ‘진새골 사랑의 집’에서 있었던 《제8차 성경적 내적치유수련회》였습니다. 그러나 목사님의 권고로 인하여 참석은 했지만 도저히 딸과 사위를 용서하지 못하고, 나의 견고한 벽을 허물지 못하고 돌아왔습니다. 그래서 다시는 ‘내적치유수련회’에 더 이상 참석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나는 나의 상처를 드러내기도 싫었고, 나의 약점이나 허점을 남들에게 보이기도 싫었습니다. 성격이 급하고 불같아서 싫은 소리를 듣는 것을 싫어하는 사람 중의 한사람이지만 나의 상처와 쓴 뿌리를 드러내지 못하는 것과 허물지 못하는 견고한 진을 보시고 계셨는지 우리 목사님은 2008년 8월에 있는 《제16차 성경적 내적치유수련회》에 참석하라고 다시 권고하셨고, 저는 봄에 했던 목사님과의 약속에 이끌려서 어쩔 수없이 다시 참석하게 되었습니다.
인간적으로 보면 며칠 동안 하는 일을 내려놓고 가야합니다. 그리고 갔다 오면 육체적으로 힘들뿐만 아니라 영적으로도 여전히 허전하고, 또 해결되지 않는 상처와 쓴 뿌리들로 인하여 더욱 힘들고 지쳐버렸습니다. 이렇게 항상 지친 상태가 되어버린 과거의 경험 때문에 수련회에 참석하는 결코 쉽지 않았습니다. 그렇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에는 나의 문제를 보고 싶었습니다. 오랫동안 기도해온 주위 분들과 아내 때문인지 제 안에서는 알 수없는 갈급함이 생겨났습니다. 수련회가 시작되고 첫째 날과 둘째 날은 너무나도 허전하고 불안했습니다. 그러나 영적으로 느껴지는 치유에 대한 갈급함 때문인지 《조별모임》에서 내 문제를 나누는 것보다는 기도부탁을 더 많이 했습니다. 염치없는 부탁이었지만 하나님을 만나고 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기 때문에 그렇게 하게 되었던 것 같습니다.
강의 시간에 목사님께서 용서에 대한 말씀을 하실 때, “그래, 이제는 용서해야지. 나도 힘들지만 나로 인해 상처받은 사람도 얼마나 힘들었을까!” 하는 마음이 들자 측은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의 견고한 진이 이것인가 하는 생각이 마음에 들었습니다. “하나하나 정리해보자. 왜 내가 지금까지 용서하지 못하고 붙잡고 있는가? 왜 생각의 짐을 내려놓지 못하고 나 혼자 짊어지고 힘들게 사는가?”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제야 하나님의 때가 찼음을 느끼며 가슴 속 깊은 곳에서부터 하나님의 다림줄에서 벗어난 나의 상한 마음을 보게 되었고, 용서의 마음 역시 가지게 되었으며, 아내에게 용서를 빌고 싶은 마음이 가득했습니다.
셋째 날 낮부터는 찬양의 가사 하나하나가 모두 나의 기도였고, 고백이었으며, 하나님께 드리는 진실한 마음이었고, 한없는 눈물의 찬양이었습니다. 그날 밤, ‘소각식’을 하면서 용서와 사죄(赦罪)의 모든 과정을 마치고 많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내가 짊어지고 가려고 했던 것들과 상처와 쓴 뿌리들이 이제야 여리고성처럼 무너져버렸구나! 하나님이 내 안에 요새와 같이 쌓인 진을 허무셨구나! 내가 회개하고 용서를 구하며, 또 용서한 내 마음을 기록하여 태워버린 이 한 장의 글들이 진실로 내 마음에서도 성령 안에서 태워질 수 있겠구나?”라는 것을 말입니다.
저녁 《치유기도회》 시간에는 내가 내려놓지 못하고 짊어지고 있는 어머니의 문제와 자녀들의 문제로 항상 힘들고 죄책감에 빠져있는 나 자신을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 의지하기보다는 나 혼자 해결하려고 했던 것들이 생각나 기도하게 되었습니다. “주님, 내가 왜 내려놓지 못합니까? 저 힘듭니다. 주님 도와주세요. 주님 평안을 주세요. 내가 모든 것을 내려놓을 수 있도록 은혜를 베풀어 주세요”라고 기도했습니다. 그때 “그래, 내려놓아라. 내려놓을 수 있겠느냐?” 하는 음성이 내 마음속 깊은 곳에서부터 들려왔습니다. 그 음성을 듣는 순간 “주님, 저도 모르겠습니다. 도와주세요!”라는 고백만이 터져 나왔습니다. 다른 기도는 생각나지도 않았습니다. 그 뒤로는 정신없이 저도 모르게 기도했고, 뭐라고 했는지조차 전혀 기억하지 못합니다. 나중에 목사님의 이야기를 들으니 뒤로 넘어져서 뒹굴면서 이렇게 계속 소리쳤다고 합니다. “주님, 난 못해요! 주님이 책임지세요! 주님, 난 못해요! 주님이 책임지세요!…” 그 시간은 오직 하나님과 나만의 시간이었습니다. 누구에게도 방해받으려고 하지 않았고, 누구도 방해할 수 없었습니다. 오로지 하나님의 손길만이 임하셨고, 인간적인 육체의 저항은 의미가 없는,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긴 상태가 되어버렸습니다. 오랜 시간이 흐르고 나중에 일어나보니 아내가 농담반 진담반 옆에 있는 사람들 보기가 창피하고 부끄러웠다고 하더군요.
마지막 날 기도회 시간에 기도하면서 항상 나와 함께하는 나의 반려자인 아내가 고맙고 정말 감사하고, 그러면서 용서의 눈물이 한없이 났습니다. 내가 힘들 때 모든 것을 아내에게 떠넘기면서 구박했던 것과 화풀이했던 생각들이 떠올라서 나 자신이 미웠습니다. 낮 시간에는 용서를 받고 또 용서를 빌고 싶은 마음에 아내에게 다가가서 내가 과거에 아내에게 잘못한 것들을 용서해 줄 것을 구했습니다. 그러면서 어찌나 그리 고마운지, 나보다도 훨씬 더 힘들고 어려운 삶을 살았을 아내가 그동안 참고 이기고 살아온 게 정말 고맙고 감사했습니다. 아내가 항상 나보다도 더 오래 나의 곁에 있어 주었으면 합니다.
정다운 말 한마디 할 줄 모르고 늘 무뚝뚝하게 상처 주는 말만 하는 것이 내 성격입니다. 그래서 이제까지 말 한마디 한마디를 살갑게 하지 못하고 늘 무뚝뚝하게 아내에게 상처를 주었고 핍박했고 무시했습니다. 그것은 내가 너무 힘들어서 어디에도 어떻게 할 수 없어서 그랬을 것입니다. 이제는 성격 탓으로 돌리기보다는 고치고 노력하며, 기도하고 살기로 결단했습니다. 그래도 나의 아내는 항상 나와 함께 있었고, 나에게는 가장 필요한 사람이었으며, 세상 끝까지 같이 할 사람인데 내가 아내를 사랑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표현을 잘하지 못하고 산 것을 생각하니 한없는 눈물과 용서의 눈물과 감사의 눈물이 났습니다. 지금까지 나의 곁에 있어 주어서 고맙고 감사하고 사랑한다고 고백합니다.
《제16차 성경적 내적치유수련회》를 통하여 저의 내면을 보게 해주셨고, 또 저를 친히 만져주시고 함께해주셔서 은혜의 눈물과 회개의 눈물과 감사의 눈물을 흘리게 해주신 우리 주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내적치유수련회’를 통하여 나를 다시 한 번 더 보면서 주님께 기도합니다. “주님, 사랑합니다. 저와 항상 같이 있어 주십시오. 주님만을 섬기며 살고 싶습니다. 주님, 정말 고맙고 감사합니다.” 이 글을 통하여 아내에게도 고맙고, 감사하고, 사랑한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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