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서택_내적치유_내 자아에게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선포하라
내 자아에게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선포하라
http://cafe.naver.com/innerhealing119/172(2011.12.28 15:56)
작자모(backshin1) 순장
내적치유사역원의 카페에 꾸준하게 글을 올리고 계시는 작자모님의 글입니다.
다른 글에서도 말했지만, 작자모님은 로이드존스와 개혁주의 진영의 글을 올리면서도
내적치유사역에 긍정하고 추종한다는 것은
오늘날 현대의 성도들이 개혁주의 신학을 표방하면서도
얼마나 심리학에 오염되어 있는가를 여실히 증명하는 것입니다.
아래 인용한 작자모님의 글은 로이드존스의 글입니다.
먼저 글을 인용해 보겠습니다.
----------------------------- 인용글 시작 -----------------------
우리의 자아가 우리에게 말하도록 허용하기보다는
우리가 우리 자아를
향해 선포해야 한다고 말하고 싶다.
이것이 무슨 의미인지 이해하는가?
어떤 의미에서 영적 침체 속에 있을 때 가장 큰 어려움은
우리가 우리 자아를 향해 말하기 보다는
우리 자아가 우리에게 말하도록 허용하는 데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내가 말하는 것이 의도적인 역설처럼 들리는가?
당신의 삶 속에서 일어나는 대부분의 불행들은
당신이 당신 자신에게 말하기 보다는
당신의 자아가 당신을 향해 말하는 것에 귀를 기울인
사실 때문이었음을 알고 있었는가?
아침에 일어나는 순간에 떠오르는 생각들을 살펴보라.
당신은 그런 생각들을 일부러 떠올리지 않았으나,
그것들은 당신에게 말하기 시작하고
어제 일어났던 문제들을 다시금 상기 시킨다.
누군가는 말하고 있다.
그렇다면 누가 당신에게 말고 있는가?
당신의 자아가 당신에게 말하고 있다.
시편기자가 제시하는 해결책은 이것이다.
그는 자아가 자신에게 말하는 것을 허용하지 말고,
이제 자아를 향해 말하기 시작한다.
그는 묻는다.
"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망하느냐?"
그의 영혼은 오랫동안 그를 억압하고 눌러왔다.
그래서 그는담대히 일어서며 말하다.
"나의 자아야 , 잠시 내 말을 들어라 ,너 에게 할말이 있다.
어찌하여 네가 낙망하느냐?
도대체 무엇이 너로 하여금 불안하게 하느냐?"
이제 당신은 하나님 그분이 누구이신지 지속적으로 기억해야 한다
하나님이 어떤 분이시고 , 그분이 어떤일을 행하셨으며 ,
하나님께서 어떤일들을 하리라고 스스로 맹세 하셨는지 생각해 보아야 한다.
이런 일들을 모두 행한 후에는 다음과 같은 위대한 선포로 끝을 맺어야 한다.
" 네 자신과 다른 사람을 의지 하지 말라. 악한 세력과 세상 일에 얽매이지 말라.
영혼과 더불어 이렇게 선포하라 .
" 그가 나타나 도우심으로 말미암아 내가 여전히 찬송하리로다 ."
- 마틴 로이드 존스 -
----------------------------- 인용글 끝 -----------------------
작자모님의 인용글을 얼핏 읽으면,
'로이드존스도 심리학에 긍정하는가?'라고 의아해 할 것입니다.
그러나 로이드존스는 심리학에 대하여 매우 강하게 반대합니다.
다음의 두 가지 글을 참고 해 보겠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기독교는 단순히 "걱정하지도 말고 염려하지도 마.
모든 일일 금방 잘 될꺼야"라고 위로의 말을 해주는 종교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기독교가 아닙니다. 그런 것은 이단종교이며 심리학입니다.
-로이드존스-(http://lloydjones.org/zbxe/Lloydjones01/29542/page/20, 2009.01.21 05:59:10)
다음 글은 로이드존스의 사도행전 시리즈와 관련 된 글입니다.
긴급한 질문
로이드 존스는 사도행전 설교를 통하여 오늘날 기독교가 무엇인가라는 것보다 더 긴급한 질문이 없음을 전제하면서, 현대의 가장 큰 비극 중 한 가지는 복음이 무엇이며, 교회가 무엇이며, 그리스도인이 해야 할 일이 무엇인가에 관해 깊은 혼란 속에 빠져 있다고 지적합니다. 그리고 더욱 혼란스러운 사실은 이러한 혼란을 초래한 장본인이 바로 교회 그 자신이라는 사실을 지적합니다. 예를 들어 그는 ‘본질적으로’ 기독교가 이 시대의 정치적, 사회적 문제를 해결하거나 혹은 고상하고 긍정적인 삶에 도움을 준다거나 또는 행복해지거나 병 낫기 위해 믿는 어떤 것이 아님을 지적합니다. 또한 기독교는 단순히 정치에 적용해야 할 이념도, 도덕적인 행동도 아님을 지적합니다. 그는 만약 기독교가 단순히 철학이나 정치적 이념에 불과하다면 아무도 이를 믿을 의무가 없을 것임을 역설합니다. 그저 이 사람은 이것을 믿고 저 사람은 저것을 믿으면 그만이기 때문입니다
기독교는 유효한가
로이드 존스는 시대의 트렌드에 따라 기독교 복음을 사람들이 듣기 좋아하는 적극적 사고방식이나 도덕적 적용, 혹은 다른 사회운동이나 사람을 즐겁게 하는 종교 버라이어티 쇼와 같은 심리적 요소로 접근하는 것을 경계합니다. 그리고 그는 고대세계와 달리 과학과 의학, 교육의 진보와 또 다른 정치적 상황을 경험하고 있는 오늘날에도 케케묵어 보이는 기독교와 복음이 여전히 필요한가라는 물음에 관하여 다음과 같이 대응합니다.
첫째, 인간 자신이 변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곧 인간은 고대인과 달리 선진화된 지식과 고도로 발달된 과학문명을 자랑하지만 그러한 변화는 인간환경의 외적변화에 불과하며, 하나님 앞에 죄인 된 인간의 정황은 그대로이기 때문입니다.
곧 고대인이 시간당 4마일을 가고 현대인은 동일한 시간에 수십 배의 빠른 속도로 간다 할지라도 인간의 정황과 죄의 현실은 여전히 그대로라는 것입니다.
둘째, 하나님도 변하시지 않으셨다는 것입니다. 곧 심판과 구원의 하나님의 속성 또한 동일합니다. 로이드 존스는 인간의 궁극적인 문제는 인간 자신도 아니며 피상적 행복도 아니며, 궁극적으로 영원하신 하나님과의 관계임을 강조합니다.
셋째, 복음은 인간의 상황과 문제를 가장 잘 처리할 수 있는 이 세상의 유일한 해결책이기 때문입니다. 그는 특히 복음주의 교회가 사회문제에 대해 실패했다는 비난은 역사의 사실에 무지하거나 의도적으로 그런 사실을 간과하기 때문에 생긴 것임을 강조합니다. 곧 그는 지난 교회사를 통해 볼 때 하나님의 거룩한 부흥과 영적 각성이 있었던 시기가 음주, 도박, 부도덕, 이혼 등 죄로 인한 사회적 문제들이 그 어떤 사회 운동보다 가장 효과적으로 다루어졌던 시기임을 강조합니다.
로이드 존스는 교회의 우선적이며 고유한 임무는 사회와 인간의 병적 ‘증상’ 을 치료하는 것이 아니라 복음을 통하여 병의 ‘근원’ 을 치료하는 것임을 강조합니다. 곧 교회는 표면적인 ‘죄행’ 을 치료하는 것이 아니라 복음을 통하여 죄의 근원을 치료합니다. 만약 그가 복음 자체가 가지는 생명력에 대한 온전한 이해를 가진다면 기독교가 외치는 복음과 영혼구원은 비사회적이라기보다 어찌 보면 더욱 사회적이며, 더욱 근원적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복음은 반드시 삶의 전인적 변화를 가져오며 궁극적으로 사회의 근본적 변화를 가져오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견지에서 보면, 오늘날 교회가 이전보다 훨씬 더 강해지고 세력화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대사회적 영향력이 감소한 것은 세상에서의 교회의 파워나 정치적 세력이 약해서라기보다 복음이 가진 그 영광스러운 능력에 대한 피상적 이해와 교회의 순결성 결핍으로 인한 교회의 참된 권위의 상실 때문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http://kcm.kr/dic_view.php?nid=38237, 2006-06-01)
이 외에도 로이드존스의 어떤 글에도 심리학을 긍정하는 말은 없습니다.
저는 작자모님이 로이드존스의 책을 계속 읽어가시기를 바랍니다.
마틴 로이드존스의 책을
계속 읽어가게 되면 진정한 해결책은 심리학과 심리학에 기반한 내적치유가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말씀만이 그 해결책이라는 것을 알게 되실 겁니다.
로이드존스의 말처럼 그것은 유일한 해결책입니다.
내적치유의 우산에서 벗어나 복음이 주는 기쁨과 자유와 만족을 누리시기 바랍니다.
RPTministries 정태홍 목사
http://www.esesang91.com
http://twtkr.com/rptministries
http://www.facebook.com/RPTministries
http://cafe.naver.com/innerhealing119/172(2011.12.28 15:56)
작자모(backshin1) 순장
내적치유사역원의 카페에 꾸준하게 글을 올리고 계시는 작자모님의 글입니다.
다른 글에서도 말했지만, 작자모님은 로이드존스와 개혁주의 진영의 글을 올리면서도
내적치유사역에 긍정하고 추종한다는 것은
오늘날 현대의 성도들이 개혁주의 신학을 표방하면서도
얼마나 심리학에 오염되어 있는가를 여실히 증명하는 것입니다.
아래 인용한 작자모님의 글은 로이드존스의 글입니다.
먼저 글을 인용해 보겠습니다.
----------------------------- 인용글 시작 -----------------------
우리의 자아가 우리에게 말하도록 허용하기보다는
우리가 우리 자아를
향해 선포해야 한다고 말하고 싶다.
이것이 무슨 의미인지 이해하는가?
어떤 의미에서 영적 침체 속에 있을 때 가장 큰 어려움은
우리가 우리 자아를 향해 말하기 보다는
우리 자아가 우리에게 말하도록 허용하는 데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내가 말하는 것이 의도적인 역설처럼 들리는가?
당신의 삶 속에서 일어나는 대부분의 불행들은
당신이 당신 자신에게 말하기 보다는
당신의 자아가 당신을 향해 말하는 것에 귀를 기울인
사실 때문이었음을 알고 있었는가?
아침에 일어나는 순간에 떠오르는 생각들을 살펴보라.
당신은 그런 생각들을 일부러 떠올리지 않았으나,
그것들은 당신에게 말하기 시작하고
어제 일어났던 문제들을 다시금 상기 시킨다.
누군가는 말하고 있다.
그렇다면 누가 당신에게 말고 있는가?
당신의 자아가 당신에게 말하고 있다.
시편기자가 제시하는 해결책은 이것이다.
그는 자아가 자신에게 말하는 것을 허용하지 말고,
이제 자아를 향해 말하기 시작한다.
그는 묻는다.
"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망하느냐?"
그의 영혼은 오랫동안 그를 억압하고 눌러왔다.
그래서 그는담대히 일어서며 말하다.
"나의 자아야 , 잠시 내 말을 들어라 ,너 에게 할말이 있다.
어찌하여 네가 낙망하느냐?
도대체 무엇이 너로 하여금 불안하게 하느냐?"
이제 당신은 하나님 그분이 누구이신지 지속적으로 기억해야 한다
하나님이 어떤 분이시고 , 그분이 어떤일을 행하셨으며 ,
하나님께서 어떤일들을 하리라고 스스로 맹세 하셨는지 생각해 보아야 한다.
이런 일들을 모두 행한 후에는 다음과 같은 위대한 선포로 끝을 맺어야 한다.
" 네 자신과 다른 사람을 의지 하지 말라. 악한 세력과 세상 일에 얽매이지 말라.
영혼과 더불어 이렇게 선포하라 .
" 그가 나타나 도우심으로 말미암아 내가 여전히 찬송하리로다 ."
- 마틴 로이드 존스 -
----------------------------- 인용글 끝 -----------------------
작자모님의 인용글을 얼핏 읽으면,
'로이드존스도 심리학에 긍정하는가?'라고 의아해 할 것입니다.
그러나 로이드존스는 심리학에 대하여 매우 강하게 반대합니다.
다음의 두 가지 글을 참고 해 보겠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기독교는 단순히 "걱정하지도 말고 염려하지도 마.
모든 일일 금방 잘 될꺼야"라고 위로의 말을 해주는 종교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기독교가 아닙니다. 그런 것은 이단종교이며 심리학입니다.
-로이드존스-(http://lloydjones.org/zbxe/Lloydjones01/29542/page/20, 2009.01.21 05:59:10)
다음 글은 로이드존스의 사도행전 시리즈와 관련 된 글입니다.
긴급한 질문
로이드 존스는 사도행전 설교를 통하여 오늘날 기독교가 무엇인가라는 것보다 더 긴급한 질문이 없음을 전제하면서, 현대의 가장 큰 비극 중 한 가지는 복음이 무엇이며, 교회가 무엇이며, 그리스도인이 해야 할 일이 무엇인가에 관해 깊은 혼란 속에 빠져 있다고 지적합니다. 그리고 더욱 혼란스러운 사실은 이러한 혼란을 초래한 장본인이 바로 교회 그 자신이라는 사실을 지적합니다. 예를 들어 그는 ‘본질적으로’ 기독교가 이 시대의 정치적, 사회적 문제를 해결하거나 혹은 고상하고 긍정적인 삶에 도움을 준다거나 또는 행복해지거나 병 낫기 위해 믿는 어떤 것이 아님을 지적합니다. 또한 기독교는 단순히 정치에 적용해야 할 이념도, 도덕적인 행동도 아님을 지적합니다. 그는 만약 기독교가 단순히 철학이나 정치적 이념에 불과하다면 아무도 이를 믿을 의무가 없을 것임을 역설합니다. 그저 이 사람은 이것을 믿고 저 사람은 저것을 믿으면 그만이기 때문입니다
기독교는 유효한가
로이드 존스는 시대의 트렌드에 따라 기독교 복음을 사람들이 듣기 좋아하는 적극적 사고방식이나 도덕적 적용, 혹은 다른 사회운동이나 사람을 즐겁게 하는 종교 버라이어티 쇼와 같은 심리적 요소로 접근하는 것을 경계합니다. 그리고 그는 고대세계와 달리 과학과 의학, 교육의 진보와 또 다른 정치적 상황을 경험하고 있는 오늘날에도 케케묵어 보이는 기독교와 복음이 여전히 필요한가라는 물음에 관하여 다음과 같이 대응합니다.
첫째, 인간 자신이 변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곧 인간은 고대인과 달리 선진화된 지식과 고도로 발달된 과학문명을 자랑하지만 그러한 변화는 인간환경의 외적변화에 불과하며, 하나님 앞에 죄인 된 인간의 정황은 그대로이기 때문입니다.
곧 고대인이 시간당 4마일을 가고 현대인은 동일한 시간에 수십 배의 빠른 속도로 간다 할지라도 인간의 정황과 죄의 현실은 여전히 그대로라는 것입니다.
둘째, 하나님도 변하시지 않으셨다는 것입니다. 곧 심판과 구원의 하나님의 속성 또한 동일합니다. 로이드 존스는 인간의 궁극적인 문제는 인간 자신도 아니며 피상적 행복도 아니며, 궁극적으로 영원하신 하나님과의 관계임을 강조합니다.
셋째, 복음은 인간의 상황과 문제를 가장 잘 처리할 수 있는 이 세상의 유일한 해결책이기 때문입니다. 그는 특히 복음주의 교회가 사회문제에 대해 실패했다는 비난은 역사의 사실에 무지하거나 의도적으로 그런 사실을 간과하기 때문에 생긴 것임을 강조합니다. 곧 그는 지난 교회사를 통해 볼 때 하나님의 거룩한 부흥과 영적 각성이 있었던 시기가 음주, 도박, 부도덕, 이혼 등 죄로 인한 사회적 문제들이 그 어떤 사회 운동보다 가장 효과적으로 다루어졌던 시기임을 강조합니다.
로이드 존스는 교회의 우선적이며 고유한 임무는 사회와 인간의 병적 ‘증상’ 을 치료하는 것이 아니라 복음을 통하여 병의 ‘근원’ 을 치료하는 것임을 강조합니다. 곧 교회는 표면적인 ‘죄행’ 을 치료하는 것이 아니라 복음을 통하여 죄의 근원을 치료합니다. 만약 그가 복음 자체가 가지는 생명력에 대한 온전한 이해를 가진다면 기독교가 외치는 복음과 영혼구원은 비사회적이라기보다 어찌 보면 더욱 사회적이며, 더욱 근원적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복음은 반드시 삶의 전인적 변화를 가져오며 궁극적으로 사회의 근본적 변화를 가져오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견지에서 보면, 오늘날 교회가 이전보다 훨씬 더 강해지고 세력화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대사회적 영향력이 감소한 것은 세상에서의 교회의 파워나 정치적 세력이 약해서라기보다 복음이 가진 그 영광스러운 능력에 대한 피상적 이해와 교회의 순결성 결핍으로 인한 교회의 참된 권위의 상실 때문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http://kcm.kr/dic_view.php?nid=38237, 2006-06-01)
이 외에도 로이드존스의 어떤 글에도 심리학을 긍정하는 말은 없습니다.
저는 작자모님이 로이드존스의 책을 계속 읽어가시기를 바랍니다.
마틴 로이드존스의 책을
계속 읽어가게 되면 진정한 해결책은 심리학과 심리학에 기반한 내적치유가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말씀만이 그 해결책이라는 것을 알게 되실 겁니다.
로이드존스의 말처럼 그것은 유일한 해결책입니다.
내적치유의 우산에서 벗어나 복음이 주는 기쁨과 자유와 만족을 누리시기 바랍니다.
RPTministries 정태홍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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