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길원_하이패밀리_하나님도 거짓말을 하셨다고?
송길원_하이패밀리_하나님도 거짓말을 하셨다고?
송길원 목사는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
한 아이가 거짓말 한 게 끝내 들통이 났다.
아들이 거짓말을 했다는 사실을 안 어머니는 아들에게 훈계했다.
“어떤 키 크고 불같은 눈과 두 개의 뿔을 가진 험악한 사람이
거짓말을 한 꼬마들을 붙잡아 화성으로 데리고 가 일을 시킨단다.
이제 다시는 거짓말을 하지 않을 거지?” 아이가 답한다. “엄마가 더 큰 거짓말을 하시네요.”
사람은 누구나 무의식중에라도 거짓말을 할 수 있다.
심리학자들에 의하면 미국인들은 하루 평균 2백 번의 거짓말을 한다고 한다.
누구든 거짓말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다.
하나님도 예외가 아니었다. 그도 거짓말을 하셨다.
“사라가 속으로 웃고 이르되 내가 노쇠하였고 내 주인도 늙었으니 내게 어찌 낙이 있으리요.
여호와께서 아브라함에게 이르시되 사라가 왜 웃으며 이르기를
내가 늙었거늘 어떻게 아들을 낳으리요 하느냐.”(창 18:12-14)
천사들은 아브라함과 사라에게 찾아 와서 그들이 오랫동안 기다렸던 아이를 가지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한 천사가 아브라함에게만 은밀히 전했는데 사라가 엿들은 것이었다.
이에 사라는 자신과 아브라함이 이미 나이를 많이 먹었기 때문에-
‘사라는 여성들만이 하는 월경이 이미 중단된 지 오래였다’- 웃음을 터뜨리면서 이렇게 말했다.
“난 이미 늙었고 내 남편 또한 노쇠했는데 내가 어찌 그런 기쁨을 누릴 수 있으리오?”
이중적 절망이었다. 자신만 안 된다고 하면 되는데
굳이 아브라함의 형편까지 들먹거릴 이유가 뭐가 있었을까?
흥미로운 것은 이런 사라의 말과 달리 하나님은 중요한 말 한마디를 생략해 버린다.
“사라가 왜 웃으며 ‘내가 늙었거늘 어떻게 아들을 낳으리요’ 하느냐?”
하나님은 사라가 아브라함에 대해서 했던 말(“내 남편 또한 노쇠했는데”)은 언급하지 않았다.
이를 놓고 한 신학자는 하나님도 거짓말을 하셨다는 재미있는 표현을 했다.
하나님의 거짓말(?)은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는 것일까? 해답은 하나다.
하나님은 사라의 그 작은 한 마디에라도 아브라함이 상처받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한 목사가 암으로 투병생활을 하시다 운명하면서 아내에게
“만약 당신이 아니었더라면 내가 더 큰 목회를 하지 않았을까 종종 그런 생각을 하며
당신을 원망했다”는 이야기를 했다.
물론 목사의 입장에서는 떠나는 순간 자신을 포장하고 있던 모든 거짓의 굴레로부터 벗어나 자유하고 싶었다.
마지막 순간까지 모든 것을 다 정리하고픈 마음이었음을 짐작 못할 바 아니다.
하지만 그 말이 자신의 감정에는 충실한 결과가 되었을지 모르지만
남아 있는 자에게는 엄청난 상처가 되었음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결국 그 부인은 장례식장에서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았다고 한다.
결혼생활에서 가장 많은 갈등의 요인 가운데 하나가 대화부족이다.
그러나 진짜 문제는 대화부족이 아니라 지혜로운 대화의 부재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선한 말은 마음에 달고 뼈에 양약이 되느니라”(잠 16:24)
“경우에 합당한 말은 아로새긴 은 쟁반에 금사과니라”(잠25:11)
‘결혼생활에 있어서의 거짓말’ 그것의 옳고 그름의 신학적 논쟁을 떠나 ‘삶의 지혜’를 배워야 할 때다.
남에게 상처가 될 이야기라면 결코 옮겨 놓지 않았던
하나님의 작은 배려가 사랑의 의미를 또다시 깨우쳐 주고 있다.
송길원목사/ 가족생태학자, 행복발전소 하이패밀리대표
----------------------------------------------
이 글에 나오는 심리학자들의 말부터가 거짓말이다.
미국인들이 하루에 평균 2백 번의 거짓말을 한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소리다.
누가 이런 말에 수긍을 하고 찬사를 보내리라고 생각하는 것일까? 어림도 없는 소리다.
송길원 목사의 말 역시 거짓이다.
마음에 상처 주지 않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거짓말을 하셨다는 것으로,
마치 하나님께서는 때에 따라서는 거짓말을 하실 수도 있고
거짓말을 용인하실 수도 있다는 소리로 밖에 들리지 않으니 말이다.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말씀하신 것은
사라가 상처받지 않도록 하시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일을 반드시 이루시기 위함이다.
그것은 약속하신 것을 성취하시는 하나님의 의지의 표현이다.
왜 이런 어처구니 없는 해석을 하게 되는 것일까?
그것은 하나님 중심의 해석, 성경 본연의 해석이 아니라,
인본주의 심리학에 근거해서, 사람 중심으로 해석을 해 가기 때문이다.
언어의 비약으로 가도 어느 정도껏 가야 한다.
하나님의 본성 자체를 흔드는 말은 금해야 한다.
이는 하나님이 거짓말을 하실 수 없는 이 두 가지 변치 못할 사실을 인하여
앞에 있는 소망을 얻으려고 피하여 가는 우리로 큰 안위를 받게 하려 하심이라(히 6:18)
RPTministries 정태홍 목사
http://www.esesang91.com
http://twtkr.com/rptministries
http://www.facebook.com/RPTministries
송길원 목사는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
한 아이가 거짓말 한 게 끝내 들통이 났다.
아들이 거짓말을 했다는 사실을 안 어머니는 아들에게 훈계했다.
“어떤 키 크고 불같은 눈과 두 개의 뿔을 가진 험악한 사람이
거짓말을 한 꼬마들을 붙잡아 화성으로 데리고 가 일을 시킨단다.
이제 다시는 거짓말을 하지 않을 거지?” 아이가 답한다. “엄마가 더 큰 거짓말을 하시네요.”
사람은 누구나 무의식중에라도 거짓말을 할 수 있다.
심리학자들에 의하면 미국인들은 하루 평균 2백 번의 거짓말을 한다고 한다.
누구든 거짓말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다.
하나님도 예외가 아니었다. 그도 거짓말을 하셨다.
“사라가 속으로 웃고 이르되 내가 노쇠하였고 내 주인도 늙었으니 내게 어찌 낙이 있으리요.
여호와께서 아브라함에게 이르시되 사라가 왜 웃으며 이르기를
내가 늙었거늘 어떻게 아들을 낳으리요 하느냐.”(창 18:12-14)
천사들은 아브라함과 사라에게 찾아 와서 그들이 오랫동안 기다렸던 아이를 가지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한 천사가 아브라함에게만 은밀히 전했는데 사라가 엿들은 것이었다.
이에 사라는 자신과 아브라함이 이미 나이를 많이 먹었기 때문에-
‘사라는 여성들만이 하는 월경이 이미 중단된 지 오래였다’- 웃음을 터뜨리면서 이렇게 말했다.
“난 이미 늙었고 내 남편 또한 노쇠했는데 내가 어찌 그런 기쁨을 누릴 수 있으리오?”
이중적 절망이었다. 자신만 안 된다고 하면 되는데
굳이 아브라함의 형편까지 들먹거릴 이유가 뭐가 있었을까?
흥미로운 것은 이런 사라의 말과 달리 하나님은 중요한 말 한마디를 생략해 버린다.
“사라가 왜 웃으며 ‘내가 늙었거늘 어떻게 아들을 낳으리요’ 하느냐?”
하나님은 사라가 아브라함에 대해서 했던 말(“내 남편 또한 노쇠했는데”)은 언급하지 않았다.
이를 놓고 한 신학자는 하나님도 거짓말을 하셨다는 재미있는 표현을 했다.
하나님의 거짓말(?)은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는 것일까? 해답은 하나다.
하나님은 사라의 그 작은 한 마디에라도 아브라함이 상처받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한 목사가 암으로 투병생활을 하시다 운명하면서 아내에게
“만약 당신이 아니었더라면 내가 더 큰 목회를 하지 않았을까 종종 그런 생각을 하며
당신을 원망했다”는 이야기를 했다.
물론 목사의 입장에서는 떠나는 순간 자신을 포장하고 있던 모든 거짓의 굴레로부터 벗어나 자유하고 싶었다.
마지막 순간까지 모든 것을 다 정리하고픈 마음이었음을 짐작 못할 바 아니다.
하지만 그 말이 자신의 감정에는 충실한 결과가 되었을지 모르지만
남아 있는 자에게는 엄청난 상처가 되었음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결국 그 부인은 장례식장에서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았다고 한다.
결혼생활에서 가장 많은 갈등의 요인 가운데 하나가 대화부족이다.
그러나 진짜 문제는 대화부족이 아니라 지혜로운 대화의 부재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선한 말은 마음에 달고 뼈에 양약이 되느니라”(잠 16:24)
“경우에 합당한 말은 아로새긴 은 쟁반에 금사과니라”(잠25:11)
‘결혼생활에 있어서의 거짓말’ 그것의 옳고 그름의 신학적 논쟁을 떠나 ‘삶의 지혜’를 배워야 할 때다.
남에게 상처가 될 이야기라면 결코 옮겨 놓지 않았던
하나님의 작은 배려가 사랑의 의미를 또다시 깨우쳐 주고 있다.
송길원목사/ 가족생태학자, 행복발전소 하이패밀리대표
----------------------------------------------
이 글에 나오는 심리학자들의 말부터가 거짓말이다.
미국인들이 하루에 평균 2백 번의 거짓말을 한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소리다.
누가 이런 말에 수긍을 하고 찬사를 보내리라고 생각하는 것일까? 어림도 없는 소리다.
송길원 목사의 말 역시 거짓이다.
마음에 상처 주지 않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거짓말을 하셨다는 것으로,
마치 하나님께서는 때에 따라서는 거짓말을 하실 수도 있고
거짓말을 용인하실 수도 있다는 소리로 밖에 들리지 않으니 말이다.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말씀하신 것은
사라가 상처받지 않도록 하시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일을 반드시 이루시기 위함이다.
그것은 약속하신 것을 성취하시는 하나님의 의지의 표현이다.
왜 이런 어처구니 없는 해석을 하게 되는 것일까?
그것은 하나님 중심의 해석, 성경 본연의 해석이 아니라,
인본주의 심리학에 근거해서, 사람 중심으로 해석을 해 가기 때문이다.
언어의 비약으로 가도 어느 정도껏 가야 한다.
하나님의 본성 자체를 흔드는 말은 금해야 한다.
이는 하나님이 거짓말을 하실 수 없는 이 두 가지 변치 못할 사실을 인하여
앞에 있는 소망을 얻으려고 피하여 가는 우리로 큰 안위를 받게 하려 하심이라(히 6:18)
RPTministries 정태홍 목사
http://www.esesang91.com
http://twtkr.com/rptministries
http://www.facebook.com/RPTministries
독자 의견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