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화소장_내적치유_회상의 기도에 대해 알아봅니다.(2편)
김선화소장_내적치유_회상의 기도에 대해 알아봅니다.(2편)
내적치유사역원
2011.11.10 15:11고넬료(optimism11)카페매니저
자료출처 http://cafe.naver.com/innerhealing119/30
--------------- 퍼온 글 자료 시작 -----------------
“회상의 기도에 대해 알아봅니다.(2편) ”
지난 호에 이어 회상의 기도에 대해 이어서 알아봅니다.
지난 호에는 회상의 기도가 어떤 것인지 그리고 그런 시간을 필요로 하는 이유에 대해 알아보고 또한
태아기를 포함한 과거의 경험이 현재의 삶에 영향을 줄 수 있는 근거에 대해 의학 심리학적 근거와 성경적
근거를 들어 정리했습니다. 이번호에는 성령께서 과거의 기억을 치유하신다는 의미와 그 필요성에 대해
더 집중적으로 정리해보겠습니다.
1. 부정적 기억이 미치는 영향은 실로 큽니다.
인간이 기억한다는 것은 단순히 지식적인 기억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이것은 감정과 깊은 마음의 정서에
영향을 미치므로 기억이란 곧 그 사람이라고 말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만일 고통스런 기억이 마음 속 깊은 저장 창고에 있다면 그 사람의 성격과 대인관계는 그 기억이
만들어내는 결과물 이라고 말 할 수 있을 정도로 영향이 크다는 것입니다. 이에 대해 기독교 심리학자인
데이빗시멘즈 목사는 이렇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고통스런 기억은 단순히 우리의 가슴에 자리 잡고 있는 강렬한 고통이나 우리의 가슴을 뒤흔들어 놓는
과거의 충격만은 아니다. 그것은 그러한 고통이나 압박으로 인하여 우리가 처하는 현실에 대처해 가는
일에 있어서 혹은 사람들과의 관계를 맺어 가는데 있어서 잘못된 방법으로 가도록 길들여지는 때문이다.
그러는 동안에 우리의 성격양상의 근본까지도 그런 식으로 바뀌어져 가게 된다. 즉 우리의 생활 방식이
그런 태도를 취하게 되는 것이다.’
데이빗 씨맨즈의 치유는 신성한 내면아이와 뉴에이지 구상화에 기초한 내적치유입니다.
2. 어린 시절에 새겨진 기억들은 성격 전반에 영향력을 줍니다.
어린 시절은 자신이 스스로를 보호할 수 없는 매우 연약하고 돌봄이 필요한 시기이며 자아정체성이
확립되지 못한 시기이기에 이 시절에 미치는 모든 경험들은 나중에 갖게 되는 어떤 경험보다 더 뇌에
깊이 새겨지며 그러기에 더 치명적이고 파괴적입니다.
현대에 가장 문제가 되는 가족관계의 붕괴를 일으키는 주된 원인이 되는 성격의 차이라는 것도 결국
그 뿌리가 그 사람의 어린 시절이 담긴 원가족안에 들어 있기에 현대의 가족치유는 원가족에 대한 이해를
중요시하여 가족치료 학자들 뿐 아니라 성경상담학자들도 부정적인 영향을 주는 기억의 치유의 필요성을
강조합니다.
3. 회상의 기도는 기억에서 사라진 사건들에 대한 치유의 기회를 제공합니다.
헨리 나우엔은 말하기를 ‘잃어버린 기억은 치유의 기회를 놓친것이다.’ 라고 말했습니다.
인간의 의식 즉 기억하는 공간은 기억 전체의 용량에서 지극히 일부분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 삶의 대부분의 경험들이 망각이라는 현상 속에 의식의 영역에서 사라지고 내가 인식하고 기억 할 수 없는 영역 안에 자리를 잡아버립니다. 이렇게 성격의 씨앗 즉 출발이 되는 사건이 잠재의식이라는 현상으로 묻혀 버릴 때 우리는 자신의 심리적 정서적 반응에 대해 만들어진 뿌리를 알지 못한 채 다만 그 윗가지만을 볼 수밖에 없으며 그래서 모든 변화의 시도는 근원적인 부분의 공략 없이 내가 이성적으로 인식 할 수 있는 겉 가지만을 치는 행위에 그칩니다. 하지만 이런 방법은 변화를 일으키는데 효과가 매우 미미 하며 결국 변화의 한계가 있습니다.
또한 그리스도인의 변화와 성숙이 자신의 깊은 죄악을 깨닫는 것과 비례하는데 이렇듯 감정과 태도의 씨앗이 되는 깊은 씨앗이 잠재의식 속에 묻혀 버리기 때문에 성령께서는 변화되기 원하는 소원을 가진 열심 있는 영혼으로 하여금 죄에서 자유케 하고 정결케 하시기 위해 죄악 된 행위의 근본 원인이 드러나게 하십니다. 회상의 기도는 이런 기회가 됩니다.
이것은 예수님을 영접 했는데도 온전히 새롭게 되지 못했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예수님을 영접함으로 새로운 피조물이 된 것은 하나님의 시간 안에서 이미 완료된 사건입니다 . 하지만 오늘도 순간마다 성령은 내안에서 성화를 돕고 계십니다. 구속은 완료이면서 주님을 닮아가는 성숙은 진행입니다. 기억의 치유는 성숙 즉 성화의 측면입니다.
인간은 정신분석학자들이 말하듯 과거의 사건에 의해 모든 것이 결정된 결정론적 존재가 아닙니다. 새롭게 매일 창조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부정적 기억에 묶여 있다면 그 발걸음이 힘이 들 수밖에 없습니다.
이런 모든 설명들은 김선화 소장님께서 인과율에 기초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세상도 인과율로 다 설명이 안 되는 것을 이미 다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하고 있을까요?
잘 살펴 보십시오. 신비주의 관상기도가요 동성연애자요 천주교사제인 헨리나우웬을 인용하며
회상의 기도의 정당성을 주장하고 있습니다. 왜 회상의 기도가 뉴에이지 방법인지 이해가 가실겁니다.
심리학 사용 안 한다면서도 여전히 잠재의식, 기억치유를 말하고 있습니다.
4. 성령께서 과거의 기억을 치유하신 다는 의미는 무엇입니까?
과거의 기억을 치유하신 다는 의미는 단순히 과거의 고통을 기억나게 해서 울면서 감정을 정화하게 하고 위로를 느끼게 해준다거나 과거에 서울에서 살던 자를 미국에서 살던 자로 바꾸듯이 역사적 사실을 바꿔서 새롭게 구성하는 심리학적 기법이 아닙니다. 인위적으로 사건을 구상해서 새로운 과거를 만들어 낸다고 해서 마음의 치유가 일어나는 것은 아니다. 성령께서 과거를 치유하시고 새롭게 하신다는 의미는 과거의 부정적 사건이 원인이 되어 지금 현재의 삶에 부정적인 영향을 주는 어둠의 힘을 끊으셔서 감정을 정화하시고 위로를 하시며 더 나아가 과거의 사건을 부정적으로 해석하게 하는 그 사람의 깊은 죄악을 스스로 인식하게 함으로 궁극적으로는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죄악을 회개할 수 있도록 이끄시기 위함이다. 현재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는 것은 과거의 사건 자체가 아니라 그 사건을 둘러 싼 해석과 의미 등등의 것이며 사단이 이런 기억들을 자극하여 마음을 강팍하게 만들어 주님의 사랑을 신뢰하지 못하게 한다. 이것을 우리는 치유되지 못한 과거라고 표현한다. 치유되지 않은 과거는 매일 독을 뿜는 가스관과 같고 취약하여 죄의 온상이 된다.
그러나 고통스러운 과거의 사건이라해도 이것을 하나님의 관점으로 바르게 받아들인 자는 오히려 고통의 사건을 통해 큰 유익을 얻을 수 있다. 성경의 모든 인물들 그리고 인생의 위대한 스승들이 모두 그들의 삶속에 있는 고통들을 하나님의 관점에서 아름답게 승화시키고 바르게 해석함으로 오히려 진주로 만들었다. 하지만 이렇게 과거를 새로운 관점으로 보는 해석의 변화가 사람의 힘만으로 되기 어렵다. 마음을 평안하게 하기위해 긍정적 눈으로 해석을 하려해도 상해진 마음은 한계가 있어서 결국 주저앉으며 이해할 수 없는 고통의 사건을 받아 들이는데는 이성의 한계가 있다. 그러므로 성령께서 우리를 도우셔서 인생을 새로운 눈으로 볼 수 있는 은혜를 주신다. 이런 일들이 반드시 회상의 기도시간만을 통해서 되는 것이 아니다. 개인적으로 깊이 회상의 기도시간을 가질 수 있다.
기도 가운데 성령께서 과거의 사건을 새로운 눈으로 해석하게 하심으로 부정적 생각이 긍정적으로 바뀌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이것은 의도하여 행하는 긍정적 사고방식과 매우 다르다. 인간의 자아가 주관하는 긍정적 사고훈련은 심리적 차원이라면 성령께서 행하시는 기억의 치유는 속사람의 아픔을 치유하고 그 사건에 대해 하나님의 눈으로 바라보게 하는 것이다. 이것은 내 에고가 어떤 목적과 결과를 갖기 위해 훈련하는 것이 아니기에 그 효과가 대단히 커서 자신의 고통이 참으로 하나님의 은혜이며 삶의 모든 어둔 부분에 대해서도 하나님의 선하심을 믿고 신뢰할 수 있는 힘을 갖게 된다. 이런 신뢰의 힘은 고통을 진주로 만들고 남을 치유하는 성령의 열매로 나타난다.
김선화 소장(내적치유사역연구원 소장)
삼위하나님의 작정과 섭리 속에서 이루어진 것이 과거의 일입니다.
그것을 성령 하나님의 독단으로 다시 뜯어고치실까요?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뜻과 계획이 있으십니다.
그래서 성경은 우리에게 무엇을 말씀하실까요?
오묘한 일은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속하였거니와
나타난 일은 영구히 우리와 우리 자손에게 속하였나니
이는 우리로 이 율법의 모든 말씀을 행하게 하심이니라(신 29:29)
이 말씀에 대한 호크마 주석은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오묘한 일...나타난 일 - 여기서 '오묘한 일'이란 인간에게 계시(啓示)되지 않은 일로서,
오로지 하나님만이 알고 계시는 신적(神的) 계획이나 섭리 등을 가리킨다.
반면 '나타난 일'이란 말씀이나 예언, 기적 등과 같은 여러 가지 방편을 통하여
이미 인간에게 계시된 하나님의 뜻을 가리킨다.
즉 본절은 하나님의 주권과 계시(啓示)의 한계를 분명히 보여 준 구절로서,
'나타난 일'은 부지런히 연구하고 또한 후손들에게 가르칠 것이 요구되지만,
'오묘한 일'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주권하에 속해 있음을 가르쳐 준다(벧후 1:20, 21;3:16).
한편 이 점은 사도 바울 역시 유대인들의 배신과 회복을 논한
그의 강화 끝부분에서 고백하고 있는 바이기도 하다(롬 11:33-36).
따라서 성도는 '왜 전지(全知)하신 하나님께서 에덴 동산에 선악과를 놓아 두셨을까?'하는
문제에서부터 '왜 무소 불능하신 하나님께서 인간 구속을 위해
당신의 아들 예수를 반드시 죽게끔 하셨던가?'라는 문제에 이르기까지,
인간의 논리로는 도저히 풀 수 없는 성경의 제난제에 대하여서는
피조(被造)된 자의 한계를 분명히 깨닫고,
창조주 하나님의 절대주권(롬 9:19-21;사 29:16)을
겸손히 인정하는 지혜를 배워야 할 것이다.
이것이 성도의 삶의 자세요 지혜입니다.
회상의 기도는 뉴에이지 구상화(visualization) 방법입니다.
RPTministries 정태홍 목사
http://www.esesang91.com
http://twtkr.com/rptministries
http://www.facebook.com/RPTministries
내적치유사역원
2011.11.10 15:11고넬료(optimism11)카페매니저
자료출처 http://cafe.naver.com/innerhealing119/30
--------------- 퍼온 글 자료 시작 -----------------
“회상의 기도에 대해 알아봅니다.(2편) ”
지난 호에 이어 회상의 기도에 대해 이어서 알아봅니다.
지난 호에는 회상의 기도가 어떤 것인지 그리고 그런 시간을 필요로 하는 이유에 대해 알아보고 또한
태아기를 포함한 과거의 경험이 현재의 삶에 영향을 줄 수 있는 근거에 대해 의학 심리학적 근거와 성경적
근거를 들어 정리했습니다. 이번호에는 성령께서 과거의 기억을 치유하신다는 의미와 그 필요성에 대해
더 집중적으로 정리해보겠습니다.
1. 부정적 기억이 미치는 영향은 실로 큽니다.
인간이 기억한다는 것은 단순히 지식적인 기억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이것은 감정과 깊은 마음의 정서에
영향을 미치므로 기억이란 곧 그 사람이라고 말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만일 고통스런 기억이 마음 속 깊은 저장 창고에 있다면 그 사람의 성격과 대인관계는 그 기억이
만들어내는 결과물 이라고 말 할 수 있을 정도로 영향이 크다는 것입니다. 이에 대해 기독교 심리학자인
데이빗시멘즈 목사는 이렇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고통스런 기억은 단순히 우리의 가슴에 자리 잡고 있는 강렬한 고통이나 우리의 가슴을 뒤흔들어 놓는
과거의 충격만은 아니다. 그것은 그러한 고통이나 압박으로 인하여 우리가 처하는 현실에 대처해 가는
일에 있어서 혹은 사람들과의 관계를 맺어 가는데 있어서 잘못된 방법으로 가도록 길들여지는 때문이다.
그러는 동안에 우리의 성격양상의 근본까지도 그런 식으로 바뀌어져 가게 된다. 즉 우리의 생활 방식이
그런 태도를 취하게 되는 것이다.’
데이빗 씨맨즈의 치유는 신성한 내면아이와 뉴에이지 구상화에 기초한 내적치유입니다.2. 어린 시절에 새겨진 기억들은 성격 전반에 영향력을 줍니다.
어린 시절은 자신이 스스로를 보호할 수 없는 매우 연약하고 돌봄이 필요한 시기이며 자아정체성이
확립되지 못한 시기이기에 이 시절에 미치는 모든 경험들은 나중에 갖게 되는 어떤 경험보다 더 뇌에
깊이 새겨지며 그러기에 더 치명적이고 파괴적입니다.
현대에 가장 문제가 되는 가족관계의 붕괴를 일으키는 주된 원인이 되는 성격의 차이라는 것도 결국
그 뿌리가 그 사람의 어린 시절이 담긴 원가족안에 들어 있기에 현대의 가족치유는 원가족에 대한 이해를
중요시하여 가족치료 학자들 뿐 아니라 성경상담학자들도 부정적인 영향을 주는 기억의 치유의 필요성을
강조합니다.
3. 회상의 기도는 기억에서 사라진 사건들에 대한 치유의 기회를 제공합니다.
헨리 나우엔은 말하기를 ‘잃어버린 기억은 치유의 기회를 놓친것이다.’ 라고 말했습니다.
인간의 의식 즉 기억하는 공간은 기억 전체의 용량에서 지극히 일부분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 삶의 대부분의 경험들이 망각이라는 현상 속에 의식의 영역에서 사라지고 내가 인식하고 기억 할 수 없는 영역 안에 자리를 잡아버립니다. 이렇게 성격의 씨앗 즉 출발이 되는 사건이 잠재의식이라는 현상으로 묻혀 버릴 때 우리는 자신의 심리적 정서적 반응에 대해 만들어진 뿌리를 알지 못한 채 다만 그 윗가지만을 볼 수밖에 없으며 그래서 모든 변화의 시도는 근원적인 부분의 공략 없이 내가 이성적으로 인식 할 수 있는 겉 가지만을 치는 행위에 그칩니다. 하지만 이런 방법은 변화를 일으키는데 효과가 매우 미미 하며 결국 변화의 한계가 있습니다.
또한 그리스도인의 변화와 성숙이 자신의 깊은 죄악을 깨닫는 것과 비례하는데 이렇듯 감정과 태도의 씨앗이 되는 깊은 씨앗이 잠재의식 속에 묻혀 버리기 때문에 성령께서는 변화되기 원하는 소원을 가진 열심 있는 영혼으로 하여금 죄에서 자유케 하고 정결케 하시기 위해 죄악 된 행위의 근본 원인이 드러나게 하십니다. 회상의 기도는 이런 기회가 됩니다.
이것은 예수님을 영접 했는데도 온전히 새롭게 되지 못했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예수님을 영접함으로 새로운 피조물이 된 것은 하나님의 시간 안에서 이미 완료된 사건입니다 . 하지만 오늘도 순간마다 성령은 내안에서 성화를 돕고 계십니다. 구속은 완료이면서 주님을 닮아가는 성숙은 진행입니다. 기억의 치유는 성숙 즉 성화의 측면입니다.
인간은 정신분석학자들이 말하듯 과거의 사건에 의해 모든 것이 결정된 결정론적 존재가 아닙니다. 새롭게 매일 창조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부정적 기억에 묶여 있다면 그 발걸음이 힘이 들 수밖에 없습니다.
이런 모든 설명들은 김선화 소장님께서 인과율에 기초하고 있기 때문입니다.세상도 인과율로 다 설명이 안 되는 것을 이미 다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하고 있을까요?
잘 살펴 보십시오. 신비주의 관상기도가요 동성연애자요 천주교사제인 헨리나우웬을 인용하며 회상의 기도의 정당성을 주장하고 있습니다. 왜 회상의 기도가 뉴에이지 방법인지 이해가 가실겁니다.
심리학 사용 안 한다면서도 여전히 잠재의식, 기억치유를 말하고 있습니다. 4. 성령께서 과거의 기억을 치유하신 다는 의미는 무엇입니까?
과거의 기억을 치유하신 다는 의미는 단순히 과거의 고통을 기억나게 해서 울면서 감정을 정화하게 하고 위로를 느끼게 해준다거나 과거에 서울에서 살던 자를 미국에서 살던 자로 바꾸듯이 역사적 사실을 바꿔서 새롭게 구성하는 심리학적 기법이 아닙니다. 인위적으로 사건을 구상해서 새로운 과거를 만들어 낸다고 해서 마음의 치유가 일어나는 것은 아니다. 성령께서 과거를 치유하시고 새롭게 하신다는 의미는 과거의 부정적 사건이 원인이 되어 지금 현재의 삶에 부정적인 영향을 주는 어둠의 힘을 끊으셔서 감정을 정화하시고 위로를 하시며 더 나아가 과거의 사건을 부정적으로 해석하게 하는 그 사람의 깊은 죄악을 스스로 인식하게 함으로 궁극적으로는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죄악을 회개할 수 있도록 이끄시기 위함이다. 현재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는 것은 과거의 사건 자체가 아니라 그 사건을 둘러 싼 해석과 의미 등등의 것이며 사단이 이런 기억들을 자극하여 마음을 강팍하게 만들어 주님의 사랑을 신뢰하지 못하게 한다. 이것을 우리는 치유되지 못한 과거라고 표현한다. 치유되지 않은 과거는 매일 독을 뿜는 가스관과 같고 취약하여 죄의 온상이 된다.
그러나 고통스러운 과거의 사건이라해도 이것을 하나님의 관점으로 바르게 받아들인 자는 오히려 고통의 사건을 통해 큰 유익을 얻을 수 있다. 성경의 모든 인물들 그리고 인생의 위대한 스승들이 모두 그들의 삶속에 있는 고통들을 하나님의 관점에서 아름답게 승화시키고 바르게 해석함으로 오히려 진주로 만들었다. 하지만 이렇게 과거를 새로운 관점으로 보는 해석의 변화가 사람의 힘만으로 되기 어렵다. 마음을 평안하게 하기위해 긍정적 눈으로 해석을 하려해도 상해진 마음은 한계가 있어서 결국 주저앉으며 이해할 수 없는 고통의 사건을 받아 들이는데는 이성의 한계가 있다. 그러므로 성령께서 우리를 도우셔서 인생을 새로운 눈으로 볼 수 있는 은혜를 주신다. 이런 일들이 반드시 회상의 기도시간만을 통해서 되는 것이 아니다. 개인적으로 깊이 회상의 기도시간을 가질 수 있다.
기도 가운데 성령께서 과거의 사건을 새로운 눈으로 해석하게 하심으로 부정적 생각이 긍정적으로 바뀌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이것은 의도하여 행하는 긍정적 사고방식과 매우 다르다. 인간의 자아가 주관하는 긍정적 사고훈련은 심리적 차원이라면 성령께서 행하시는 기억의 치유는 속사람의 아픔을 치유하고 그 사건에 대해 하나님의 눈으로 바라보게 하는 것이다. 이것은 내 에고가 어떤 목적과 결과를 갖기 위해 훈련하는 것이 아니기에 그 효과가 대단히 커서 자신의 고통이 참으로 하나님의 은혜이며 삶의 모든 어둔 부분에 대해서도 하나님의 선하심을 믿고 신뢰할 수 있는 힘을 갖게 된다. 이런 신뢰의 힘은 고통을 진주로 만들고 남을 치유하는 성령의 열매로 나타난다.
김선화 소장(내적치유사역연구원 소장)
삼위하나님의 작정과 섭리 속에서 이루어진 것이 과거의 일입니다. 그것을 성령 하나님의 독단으로 다시 뜯어고치실까요?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뜻과 계획이 있으십니다.
그래서 성경은 우리에게 무엇을 말씀하실까요?
오묘한 일은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속하였거니와
나타난 일은 영구히 우리와 우리 자손에게 속하였나니
이는 우리로 이 율법의 모든 말씀을 행하게 하심이니라(신 29:29)
이 말씀에 대한 호크마 주석은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오묘한 일...나타난 일 - 여기서 '오묘한 일'이란 인간에게 계시(啓示)되지 않은 일로서,
오로지 하나님만이 알고 계시는 신적(神的) 계획이나 섭리 등을 가리킨다.
반면 '나타난 일'이란 말씀이나 예언, 기적 등과 같은 여러 가지 방편을 통하여
이미 인간에게 계시된 하나님의 뜻을 가리킨다.
즉 본절은 하나님의 주권과 계시(啓示)의 한계를 분명히 보여 준 구절로서,
'나타난 일'은 부지런히 연구하고 또한 후손들에게 가르칠 것이 요구되지만,
'오묘한 일'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주권하에 속해 있음을 가르쳐 준다(벧후 1:20, 21;3:16).
한편 이 점은 사도 바울 역시 유대인들의 배신과 회복을 논한
그의 강화 끝부분에서 고백하고 있는 바이기도 하다(롬 11:33-36).
따라서 성도는 '왜 전지(全知)하신 하나님께서 에덴 동산에 선악과를 놓아 두셨을까?'하는
문제에서부터 '왜 무소 불능하신 하나님께서 인간 구속을 위해
당신의 아들 예수를 반드시 죽게끔 하셨던가?'라는 문제에 이르기까지,
인간의 논리로는 도저히 풀 수 없는 성경의 제난제에 대하여서는
피조(被造)된 자의 한계를 분명히 깨닫고,
창조주 하나님의 절대주권(롬 9:19-21;사 29:16)을
겸손히 인정하는 지혜를 배워야 할 것이다.
이것이 성도의 삶의 자세요 지혜입니다.
회상의 기도는 뉴에이지 구상화(visualization) 방법입니다.
RPTministries 정태홍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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