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적치유_주님의 몫 나의 몫
내적치유_주님의 몫 나의 몫 2011.11.17 10:44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이건 누구나 다가지고 있습니다) 나의 몫입니다
다( 남녀노소 차별 없이 인종 차별 없이 어느누구나 오라고 하신다)
다( 남녀노소 차별 없이 인종 차별 없이 어느누구나 오라고 하신다)
주님이 부르십니다 (주님의 몫입니다)
내게로 오라(나의 몫입니다 부르심에 순종하는것은)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순종하면 주어집니다 이건 주님의 몫입니다)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주님의 성품입니다 , 주님의 몫입니다)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나의 몫입니다)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내게로 오라(나의 몫입니다 부르심에 순종하는것은)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순종하면 주어집니다 이건 주님의 몫입니다)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주님의 성품입니다 , 주님의 몫입니다)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나의 몫입니다)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주님의 부르심의 순종하여 나오는자에게 주어지는 주님의 선물입니다 고로 주님의 몫입니다)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니라 ( 주님의 몫과 나의 몫이 동반합니다 )
마 11장 27~30절 말씀
내적치유는
주님의 몫과
나의 몫이 동반할때 이루어 집니다
주님이 나의 짐을 선뜻 지시겠다고 오라고 하십니다
무슨 짐을 가지고 있든지 말이지요 그러면 나는
믿음으로 내게 있는 모든 짐을 주님께 드리면 됩니다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니라 ( 주님의 몫과 나의 몫이 동반합니다 )
마 11장 27~30절 말씀
내적치유는
주님의 몫과
나의 몫이 동반할때 이루어 집니다
주님이 나의 짐을 선뜻 지시겠다고 오라고 하십니다
무슨 짐을 가지고 있든지 말이지요 그러면 나는
믿음으로 내게 있는 모든 짐을 주님께 드리면 됩니다
주님의 부르심에 나의 동의가 있을때 그때부터가 치유의 시작 입니다
그런데 내적치유의 근본 목적은 치유가 아니라고 이야기 합니다
내적치유의 치유는 시작을 알리는 종소리라고 하기도 하지요 땡땡땡
무엇을 위한 시작 일까요 ???
너희가 서로 짐을 지라 그리하여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하라 (갈 6장 2절)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하라"
" 복음을 성취하라 "
종으로 있을때에 부르심을 받은자는 주안에서 참된 자유자요 (첫번째 부르심 .... 치유의 시작)
자유자로 있을때 부르심을 받은자는 그리스도의 종이라 .(두번째 부르심..... 치유의 목적)
하나님 아버지의 영광을 위하여
--------------------------------퍼온 글 자료 끝 --------------
이 글에서는,
짐에 대한 이해와
짐에 대한 이해와
그 짐을 예수님께서 어떻게 하시는가에 대한 이해 부족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본문에서,
"주님이 나의 짐을 선뜻 지시겠다고 오라고 하십니다
무슨 짐을 가지고 있든지 말이지요 그러면 나는
믿음으로 내게 있는 모든 짐을 주님께 드리면 됩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우리의 짐을 예수님께 드리면 되는 것일까요?
무슨 짐을 가지고 있든지 말이지요 그러면 나는
믿음으로 내게 있는 모든 짐을 주님께 드리면 됩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우리의 짐을 예수님께 드리면 되는 것일까요?
호크마 주석을 참고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마11:30)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니라
내 멍에는 쉽고...가벼움이라 -
'쉽고'(크레스토스)란 '부드럽다', '좋다', '은혜스럽다', '안락하다', '친절하다'등의
다양한 뜻으로 해석된다.
실로 예수의 멍에는 이 다양한 의미를 모두 갖추고 있으면서도 가장 가벼운 것이다.
한편 이에 대해 어거스틴(Augustine)은 예수의 멍에를 새의 깃털에 비유하여
그 깃털이 창공을 자유롭게 날 수 있을 만큼 가볍다고 설교한 바 있다(F.R. Fay).
이와 같이 예수께서 제공하신 짐,
곧 그의 계명은 사랑의 계명(commandment of love)으로서
결코 무거운 것이 아니다(요일 5:3).
그러나 이는 결코 예수의 가르침이
세상의 도덕이나 율법보다 무가치하거나 경박(輕薄)해서가 아니다.
오히려 그 가르침보다 더 준엄하고 숭고(崇高)하며 엄정한 것이다(Clausner).
그러나 예수의 짐은 (1) 확실한 구원을 가져오는 것이기 때문에,
(2) 선하고, 바르고, 좋은 것이기 때문에,
(3) 항상 예수의 능력에 의존하는 신앙이 전제되기 때문에,
(4) 나 혼자가 아니라 예수와 함께 사랑으로 메기 때문에 가볍고,
또 영생을 동반한 쉼을 얻을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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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께서는 우리의 짐을 대신 져주시는 분으로 말씀하지 않으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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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께서는 우리의 짐을 대신 져주시는 분으로 말씀하지 않으십니다.
예수님은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무거운 짐으로 부여하는 그런 계명을 말씀하시지 않고,
사랑의 계명으로 감당해가도록 하십니다.
이것은 그 앞절의 말씀과 주석(호크마)을 참고해 보면 쉽게 알 수가 있습니다.
(마11:28)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수고하고 - 원어 '호이 코피온테스'는 현재 분사 능동형으로 명사적 용법으로 쓰이고 있다.
이는 스스로 많은 일들을 하여 계속해서 피곤에 지친 상태를 말한다.
무거운 짐진 자 - 원어 '페포르티스메노이'는 현재분사 수동형으로서
타인에 의해 무거운 짐을 진 채 계속해서 지쳐있는 자들을 가리킨다.
이는 죄와 염려의 고통이나 육체적 의무 외에 특별히 전통적으로 부과되고 있는
율법과 유전(遺傳)의 짐을 의미하기도 한다.
이런 관점에서 예수께서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모세의 자리에 앉아
사람들의 어깨에 무거운 짐을 지운다고 비난하신 적이 있다(2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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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 안에서 쉬는 것은
예수님께서 우리의 짐을 없애 주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처럼 사람들을 괴롭게 하는 짐을 주시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율법이 문제이겠습니까?
사도 바울은 율법은 선한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면 무엇이 문제가 될까요?
하나님께서 주신 율법을 잘못 가르쳐 사람들에게 고통을 준 것입니다.
율법은 몽학선생입니다.
율법은 인간의 비참함을 깨닫게 하고
예수 그리스도에게로 그의 십자가로 우리를 인도합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율법의 참된 의미를 알고
그 말씀에 순종하여 살아가는 것이 성도의 삶입니다.
진정한 내적치유란 나에게 주어진 짐을 예수님이 대신 져 주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각자에게 허락하신 삶을
하나님의 선명한 기준인 예수님의 계명을 따라 살아가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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