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서택 내적치유_생각의 길을 새롭게 하라!
주서택 내적치유_생각의 길을 새롭게 하라!
내적치유 사역원의 주서택 목사가 성경을 적용하는 것을 보면
얼마나 성경에 대한 해석과 적용이 도대체 어떤 근거를 두고 있는지 궁금하기 그지없다.
"생각의 길을 새롭게 하라!"는 글을 한 번 읽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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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사람의 일생을 보면 결국은 생각이 만들어 놓은 작품이다. 생각은 행동을 만들고 행동은 습관을 만들며 습관은 우리의 일생이 되고 인생이 된다. 또한 생각은 이렇게 행동을 만들고 습관을 만들어 결국은 인격을 만든다. 그러므로 삶이 변화되고 인생이 변화되고 인격이 변화되려면 반드시 가장 깊은 부분, 곧 생각이 변화되어야 한다.
그런데 이 생각이란 것은 그냥 생각나고 떠오르고 우연히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사람들이 자주 다니면 그 부분이 패여서 길이 되듯이 그리고 그 길은 한 번 만들어지면 수십 년을 아니 수백 년을 오가듯이 생각에도 길이 있다. 물이 흘러가는 길이 있듯이, 비행기가 다니는 길이 있듯이 생각도 길이 있다. 그래서 그 길이 잘못 만들어져 있으면 항상 잘못된 생각을 하게 된다. 그래서 성령님은 우리 안에서 이 생각의 길을 새롭게 만들기를 원하시고 당신의 협조를 요구하시는 것이다.
생각이란 처음에는 하늘에 새가 날아다니듯이 당신에게 들어온다. 수없이 많은 생각들이 당신의 눈을 통해서, 귀를 통해서, 오감을 통해서 들어온다. 이 들어오는 생각들 중에서 어떤 생각들은 그냥 흘러가지만 또 어떤 생각들은 당신 안에 자리를 잡게 된다. 그 선택을 바로 당신 스스로 하는 것이다. 자리를 잡은 생각은 비슷한 생각들을 끌어 모으고 그래서 당신의 마음 한쪽에 길을 만든다. 이제 생각의 길이 만들어지면 어떤 일과 사건에 부딪힐 때 당신은 그 생각이라는 안경을 통해서 그 사건과 상대방을 해석하게 된다. 그리고 이 해석의 여하에 따라 감정이 만들어지고 행동이 만들어진다.
어린시절에 6.25를 겪은 사람이 있다고 치자. 방에서 잠을 자는데 갑자기 총소리가 들리고 마당에 계신 부모님이 피를 흘리고 죽은 모습을 보았다면, 후에 어른이 되어서 잠을 자는데 갑자기 밖에서 총소리 같은 소리가 들리면 그는 일순간 공포에 질릴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소리가 밖에서 불꽃놀이하는 소리인 것을 알면 그의 감정은 즉시 달라질 것이다. 똑같은 사건이지만 그가 사건을 해석하기에 따라 어떤 것은 공포의 감정을, 어떤 해석은 즐거움의 감정을 만들어 내고 그에 따른 행동을 만들어 낸다. 그러므로 어떤 사건을 어떤 식으로 해석하느냐가 곧 그 사람의 인격이며 삶이 되고 인생이 된다.
정신병을 앓는 사람은 사건과 상황을 비정상적으로 해석하는 것이다. 똑같이 지하철에 앉아 있는데 괜히 자기 말을 하는 것 같고 자기에게 금방이라도 합심해서 달려들어 몰매를 때릴 것 같이 해석된다면 그는 안절부절한 모습이 될 것이고 식은땀을 흘리며 그 자리에서도망치려고 할 것이다. 사람들은 전혀 그럴 마음이 없는데도 그가 그렇게 해석하는 것이다. 이런 해석을 만드는 것이 바로 자신이 만들어 놓은 생각의 길 때문이다. 잘못된 생각의 길은 당신이 만들어 놓은 것이다. 당신이 거짓된 생각 바르지 못한 생각을 붙잡으면 당신 안에는 잘못된 생각의 길이 만들어지게 된다. 바르지 못한 생각이란 도덕적이나 윤리적으로 나쁜 생각이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 주어지지 않은 생각을 말한다.
성령께서 당신을 치유하시는 목적은 당신이 바른 생각을 붙잡도록 하기 위해서이다. 마음의 상처란 거짓되고 악한 생각을 만드는 원흉이다. 잘못된 생각의 길은 사람의 깊은 마음판에 새겨지게 된다. 그래서 아무리 좋은 말씀을 들어도 그 사람은 궁극적으로 자기의 마음판에 새겨진 생각의 길대로 움직인다. 에스겔서의 말씀은 바로 이마음판에 새롭게 성령께서 하나님의 도를 새기시겠다는 약속이다. 이스라엘 백성에게 하나님께서는 처음에 돌판에 십계명을 새겨 주셨다. 인간이 새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직접 새겨 주신 신령한 돌판이며 계명들이다. 하지만 모든 사람은 그 계명들을 지키지 않았고 그 계명대로 따르지 않았다. 그들의 마음판에는 이미 잘못된 것들이 새겨져 있었기에 아무리 하나님의 손으로 새긴 돌판의 계명이지만 마음판에 그들이 새겨 놓은 생각의 힘을 이기지 못했다. 인간들은 나중에야 이것을 깨달았다. 자신이 우발적으로 행위적인 죄만 지은 죄인이 아니라 마음판 안에 이미 죄된 결심과 생각이 새겨진 존재임을 깨달은 것이다. 성령님은 이제 직접 당신의 마음판 안에 하나님의 법을 새기시기를 원하고 있다. 인간은 자기의 마음판에 새겨진 것들에 따라 행동한다. 그러므로 한번 바른 진리가 당신의 마음판에 새겨지면 당신에게서는 성령의 지속적인 변화들이 나타나지 않을 수가 없다. 강력하고 절대적인 힘이 마음판에 새겨진 생각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자료출처 http://blog.daum.net/fafaju/154166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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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님께서 치유하시는 목적이 바른 생각을 붙잡도록 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그러면서 에스겔서의 말씀을 인용한다.
성령님께서 내적치유에서 하시는 일과
에스겔서에서 말씀하시는 내용과 같은 것일까?
그럴 수 없다!
에스겔서의 말씀이란 (이스라엘의)구원이 인간의 능력에 있음이 아니라,
하나님의 성령님께서 역사하시지 않으면 안된다는 구속사적인 말씀이다.
내적치유에서 성령을 언급한다고 해서 과연 구속사적인 일이 일어날까?
어림반푼어치도 안되는 소리다.
뉴에이지적인 개념인 신성한 내면아이와 구상화에 기초한 내적치유가
사람에게 구원의 역사를 일으키게 할 수 있겠는가?
그렇다면 내적치유사역이 성령님의 역사를 대신하는 것인가?
문제는, 왜 이런 성경 해석이 생겨나게 될까? 하는 것이다.
그것은 심리학과 성경을 혼합하기 때문이다.
심리학과 성경을 섞어서 가르치기 시작하면,
심리학에 성경을 끼워 맞추어 해석하는 어처구니 없는 일이 발생한다.
24 내가 너희를 열국 중에서 취하여 내고 열국 중에서 모아 데리고 고토에 들어가서
25 맑은 물로 너희에게 뿌려서 너희로 정결케 하되 곧 너희 모든 더러운 것에서와
모든 우상을 섬김에서 너희를 정결케 할 것이며
26 또 새 영을 너희 속에 두고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되
너희 육신에서 굳은 마음을 제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줄 것이며
27 또 내 신을 너희 속에 두어 너희로 내 율례를 행하게 하리니 너희가 내 규례를 지켜 행할지라
28 내가 너희 열조에게 준 땅에 너희가 거하여 내 백성이 되고 나는 너희 하나님이 되리라(겔 36:24-28)
여기에 대한 주석(호크마)을 보자.
(겔36:26) 또 새 영을 너희 속에 두고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되 너희 육신에서 굳은 마음을 제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줄 것이며
회복 내용의 점진적 전개로 고토 귀환, 죄의 정결에 이어 이스라엘의 내적 갱신이 기술된다. 곧 하나님의 이스라엘 회복 사역은 단순히 귀환과 죄사함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영적 갱신까지 이르는 완전한 것임을 시사한다.
새 영...새 마음 - 성경의 용례상 '영'(*, 루아흐)은 인간의 이성적 사고와 행위를 제어하는 내적 본질로(살전 5:23), '마음'(*, 레브)은 인간의 지, 정, 의를 포괄하는 인성의 좌소로 쓰여졌다는 점에서 이 두 단어는 인간의 전인격을 총괄적으로 지칭하는 것이다. 따라서 이 두 단어 앞에 '새'라는 형용사가 첨가된 것은 궁극적으로 이스라엘의 온전한 영적 갱신을 예고하는 것으로 이를 통해 이스라엘은 새 언약 백성의 반열에 들게 될 것임을 암시한다(렘 31:31).
(겔36:27) 또 내 신을 너희 속에 두어 너희로 내 율례를 행하게 하리니 너희가 내 규례를 지켜 행할지라
내 신을 너희 속에 두어 - '내 신'은 하나님의 성령을 가리킨다. 이러한 표현은 구약의 용례상 메시야 시대의 도래를 예고하는 것이란 점에서(사 42:1;44:3;59:21;욜 2:28) 본 구절 또한 이스라엘의 회복이 메시야 시대의 시작임을 보여준다(37:14;39:29).
(겔36:28) 내가 너희 열조에게 준 땅에 너희가 거하여 내 백성이 되고 나는 너희 하나님이 되리라
내 백성이...되리라 - 성경을 통해서 일관되게 제시되어온 하나님과 그에게 속한 백성 사이의 언약 체결의 주제가 다시금 반복된다.
이스라엘의 온전한 영적 갱신이 성령하나님의 역사로 말미암아 일어나게 될 것이라는 말씀이다.
메튜헨리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우리는 의롭다고 인정받기 위해 그리스도의 공로를 필요로 하듯
거룩하게 되기 위해서는 성령의 역사를 필요로 한다.
"하나님은 여기서 그들 속에 선한 역사를 일으키시겠다고 약속하신다.
하나님이 의도하신 것은 그들에게서 선한 역사를 불러 일으키려는 것이었고,
여기서는 그들의 선한 역사를 할 수 있도록 자격을 부여하시겠다고 약속하신다(25-27절)....,"
주서택 목사의 결론 부분을 다시 읽어보자.
"성령님은 이제 직접 당신의 마음판 안에 하나님의 법을 새기시기를 원하고 있다.
인간은 자기의 마음판에 새겨진 것들에 따라 행동한다.
그러므로 한번 바른 진리가 당신의 마음판에 새겨지면
당신에게서는 성령의 지속적인 변화들이 나타나지 않을 수가 없다.
강력하고 절대적인 힘이 마음판에 새겨진 생각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말씀에 대한 오해에 관한 중요한 핵심은 이것이다.
'성도가 되었다는 것은 무엇인가?'를 잘못 이해하고 있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다는 것은,
성령하나님의 역사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언약의 말씀을 자원하여 기쁨으로 지켜가는 백성으로
그 근본마음을 이미 바꾸어 놓으셨다는 것이다!
성경에서는 지금 그 말씀을 하고 있다.
그런데 주서택 목사는 무엇이라고 하는가?
이미 예수님을 믿는 성도이지만
성령님께서 내적치유에서 생각을 바로잡게 하신다는 것이다.
서두에서 주서택 목사가 한 말을 다시 살펴보자.
"성령께서 당신을 치유하시는 목적은
당신이 바른 생각을 붙잡도록 하기 위해서이다.
마음의 상처란 거짓되고 악한 생각을 만드는 원흉이다.
잘못된 생각의 길은 사람의 깊은 마음판에 새겨지게 된다.
그래서 아무리 좋은 말씀을 들어도
그 사람은 궁극적으로 자기의 마음판에 새겨진 생각의 길대로 움직인다."
이 말에 대한 증거 성경으로 에스겔서의 성령의 역사를 언급했다.
그 차이를 알겠는가?
신약의 성도란 이미 주의 언약을 지켜 행하도록 그 마음판이 새롭게 된 사람이다.
성령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영접하게 하실 때에 이미 그 마음판이 새롭게 되었다.
그런 일은 두 번 다시 일어나지 않는다.
그런데 왜 내적치유 세미나에 가서 또 그걸 한다는 말인가?
내적치유는 그럴 자격이 없다!
마치 내적치유세미나가 중생 덜 된 사람을 다시 완전하게 중생시키는 그런 곳이 아니라는 말이다.
그러니 내적치유 갈 필요가 없다.
오히려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가 무엇을 말하는지 성경을 똑바르게 가르치고 기도할 일이지,
내적치유에 가서 울고 불고 할 필요가 없다.
RPTministries 정태홍 목사
http://www.esesang91.com
내적치유 사역원의 주서택 목사가 성경을 적용하는 것을 보면
얼마나 성경에 대한 해석과 적용이 도대체 어떤 근거를 두고 있는지 궁금하기 그지없다.
"생각의 길을 새롭게 하라!"는 글을 한 번 읽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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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사람의 일생을 보면 결국은 생각이 만들어 놓은 작품이다. 생각은 행동을 만들고 행동은 습관을 만들며 습관은 우리의 일생이 되고 인생이 된다. 또한 생각은 이렇게 행동을 만들고 습관을 만들어 결국은 인격을 만든다. 그러므로 삶이 변화되고 인생이 변화되고 인격이 변화되려면 반드시 가장 깊은 부분, 곧 생각이 변화되어야 한다.
그런데 이 생각이란 것은 그냥 생각나고 떠오르고 우연히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사람들이 자주 다니면 그 부분이 패여서 길이 되듯이 그리고 그 길은 한 번 만들어지면 수십 년을 아니 수백 년을 오가듯이 생각에도 길이 있다. 물이 흘러가는 길이 있듯이, 비행기가 다니는 길이 있듯이 생각도 길이 있다. 그래서 그 길이 잘못 만들어져 있으면 항상 잘못된 생각을 하게 된다. 그래서 성령님은 우리 안에서 이 생각의 길을 새롭게 만들기를 원하시고 당신의 협조를 요구하시는 것이다.
생각이란 처음에는 하늘에 새가 날아다니듯이 당신에게 들어온다. 수없이 많은 생각들이 당신의 눈을 통해서, 귀를 통해서, 오감을 통해서 들어온다. 이 들어오는 생각들 중에서 어떤 생각들은 그냥 흘러가지만 또 어떤 생각들은 당신 안에 자리를 잡게 된다. 그 선택을 바로 당신 스스로 하는 것이다. 자리를 잡은 생각은 비슷한 생각들을 끌어 모으고 그래서 당신의 마음 한쪽에 길을 만든다. 이제 생각의 길이 만들어지면 어떤 일과 사건에 부딪힐 때 당신은 그 생각이라는 안경을 통해서 그 사건과 상대방을 해석하게 된다. 그리고 이 해석의 여하에 따라 감정이 만들어지고 행동이 만들어진다.
어린시절에 6.25를 겪은 사람이 있다고 치자. 방에서 잠을 자는데 갑자기 총소리가 들리고 마당에 계신 부모님이 피를 흘리고 죽은 모습을 보았다면, 후에 어른이 되어서 잠을 자는데 갑자기 밖에서 총소리 같은 소리가 들리면 그는 일순간 공포에 질릴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소리가 밖에서 불꽃놀이하는 소리인 것을 알면 그의 감정은 즉시 달라질 것이다. 똑같은 사건이지만 그가 사건을 해석하기에 따라 어떤 것은 공포의 감정을, 어떤 해석은 즐거움의 감정을 만들어 내고 그에 따른 행동을 만들어 낸다. 그러므로 어떤 사건을 어떤 식으로 해석하느냐가 곧 그 사람의 인격이며 삶이 되고 인생이 된다.
정신병을 앓는 사람은 사건과 상황을 비정상적으로 해석하는 것이다. 똑같이 지하철에 앉아 있는데 괜히 자기 말을 하는 것 같고 자기에게 금방이라도 합심해서 달려들어 몰매를 때릴 것 같이 해석된다면 그는 안절부절한 모습이 될 것이고 식은땀을 흘리며 그 자리에서도망치려고 할 것이다. 사람들은 전혀 그럴 마음이 없는데도 그가 그렇게 해석하는 것이다. 이런 해석을 만드는 것이 바로 자신이 만들어 놓은 생각의 길 때문이다. 잘못된 생각의 길은 당신이 만들어 놓은 것이다. 당신이 거짓된 생각 바르지 못한 생각을 붙잡으면 당신 안에는 잘못된 생각의 길이 만들어지게 된다. 바르지 못한 생각이란 도덕적이나 윤리적으로 나쁜 생각이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 주어지지 않은 생각을 말한다.
성령께서 당신을 치유하시는 목적은 당신이 바른 생각을 붙잡도록 하기 위해서이다. 마음의 상처란 거짓되고 악한 생각을 만드는 원흉이다. 잘못된 생각의 길은 사람의 깊은 마음판에 새겨지게 된다. 그래서 아무리 좋은 말씀을 들어도 그 사람은 궁극적으로 자기의 마음판에 새겨진 생각의 길대로 움직인다. 에스겔서의 말씀은 바로 이마음판에 새롭게 성령께서 하나님의 도를 새기시겠다는 약속이다. 이스라엘 백성에게 하나님께서는 처음에 돌판에 십계명을 새겨 주셨다. 인간이 새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직접 새겨 주신 신령한 돌판이며 계명들이다. 하지만 모든 사람은 그 계명들을 지키지 않았고 그 계명대로 따르지 않았다. 그들의 마음판에는 이미 잘못된 것들이 새겨져 있었기에 아무리 하나님의 손으로 새긴 돌판의 계명이지만 마음판에 그들이 새겨 놓은 생각의 힘을 이기지 못했다. 인간들은 나중에야 이것을 깨달았다. 자신이 우발적으로 행위적인 죄만 지은 죄인이 아니라 마음판 안에 이미 죄된 결심과 생각이 새겨진 존재임을 깨달은 것이다. 성령님은 이제 직접 당신의 마음판 안에 하나님의 법을 새기시기를 원하고 있다. 인간은 자기의 마음판에 새겨진 것들에 따라 행동한다. 그러므로 한번 바른 진리가 당신의 마음판에 새겨지면 당신에게서는 성령의 지속적인 변화들이 나타나지 않을 수가 없다. 강력하고 절대적인 힘이 마음판에 새겨진 생각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자료출처 http://blog.daum.net/fafaju/154166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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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님께서 치유하시는 목적이 바른 생각을 붙잡도록 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그러면서 에스겔서의 말씀을 인용한다.
성령님께서 내적치유에서 하시는 일과
에스겔서에서 말씀하시는 내용과 같은 것일까?
그럴 수 없다!
에스겔서의 말씀이란 (이스라엘의)구원이 인간의 능력에 있음이 아니라,
하나님의 성령님께서 역사하시지 않으면 안된다는 구속사적인 말씀이다.
내적치유에서 성령을 언급한다고 해서 과연 구속사적인 일이 일어날까?
어림반푼어치도 안되는 소리다.
뉴에이지적인 개념인 신성한 내면아이와 구상화에 기초한 내적치유가
사람에게 구원의 역사를 일으키게 할 수 있겠는가?
그렇다면 내적치유사역이 성령님의 역사를 대신하는 것인가?
문제는, 왜 이런 성경 해석이 생겨나게 될까? 하는 것이다.
그것은 심리학과 성경을 혼합하기 때문이다.
심리학과 성경을 섞어서 가르치기 시작하면,
심리학에 성경을 끼워 맞추어 해석하는 어처구니 없는 일이 발생한다.
24 내가 너희를 열국 중에서 취하여 내고 열국 중에서 모아 데리고 고토에 들어가서
25 맑은 물로 너희에게 뿌려서 너희로 정결케 하되 곧 너희 모든 더러운 것에서와
모든 우상을 섬김에서 너희를 정결케 할 것이며
26 또 새 영을 너희 속에 두고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되
너희 육신에서 굳은 마음을 제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줄 것이며
27 또 내 신을 너희 속에 두어 너희로 내 율례를 행하게 하리니 너희가 내 규례를 지켜 행할지라
28 내가 너희 열조에게 준 땅에 너희가 거하여 내 백성이 되고 나는 너희 하나님이 되리라(겔 36:24-28)
여기에 대한 주석(호크마)을 보자.
(겔36:26) 또 새 영을 너희 속에 두고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되 너희 육신에서 굳은 마음을 제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줄 것이며
회복 내용의 점진적 전개로 고토 귀환, 죄의 정결에 이어 이스라엘의 내적 갱신이 기술된다. 곧 하나님의 이스라엘 회복 사역은 단순히 귀환과 죄사함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영적 갱신까지 이르는 완전한 것임을 시사한다.
새 영...새 마음 - 성경의 용례상 '영'(*, 루아흐)은 인간의 이성적 사고와 행위를 제어하는 내적 본질로(살전 5:23), '마음'(*, 레브)은 인간의 지, 정, 의를 포괄하는 인성의 좌소로 쓰여졌다는 점에서 이 두 단어는 인간의 전인격을 총괄적으로 지칭하는 것이다. 따라서 이 두 단어 앞에 '새'라는 형용사가 첨가된 것은 궁극적으로 이스라엘의 온전한 영적 갱신을 예고하는 것으로 이를 통해 이스라엘은 새 언약 백성의 반열에 들게 될 것임을 암시한다(렘 31:31).
(겔36:27) 또 내 신을 너희 속에 두어 너희로 내 율례를 행하게 하리니 너희가 내 규례를 지켜 행할지라
내 신을 너희 속에 두어 - '내 신'은 하나님의 성령을 가리킨다. 이러한 표현은 구약의 용례상 메시야 시대의 도래를 예고하는 것이란 점에서(사 42:1;44:3;59:21;욜 2:28) 본 구절 또한 이스라엘의 회복이 메시야 시대의 시작임을 보여준다(37:14;39:29).
(겔36:28) 내가 너희 열조에게 준 땅에 너희가 거하여 내 백성이 되고 나는 너희 하나님이 되리라
내 백성이...되리라 - 성경을 통해서 일관되게 제시되어온 하나님과 그에게 속한 백성 사이의 언약 체결의 주제가 다시금 반복된다.
이스라엘의 온전한 영적 갱신이 성령하나님의 역사로 말미암아 일어나게 될 것이라는 말씀이다.
메튜헨리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우리는 의롭다고 인정받기 위해 그리스도의 공로를 필요로 하듯
거룩하게 되기 위해서는 성령의 역사를 필요로 한다.
"하나님은 여기서 그들 속에 선한 역사를 일으키시겠다고 약속하신다.
하나님이 의도하신 것은 그들에게서 선한 역사를 불러 일으키려는 것이었고,
여기서는 그들의 선한 역사를 할 수 있도록 자격을 부여하시겠다고 약속하신다(25-27절)....,"
주서택 목사의 결론 부분을 다시 읽어보자.
"성령님은 이제 직접 당신의 마음판 안에 하나님의 법을 새기시기를 원하고 있다.
인간은 자기의 마음판에 새겨진 것들에 따라 행동한다.
그러므로 한번 바른 진리가 당신의 마음판에 새겨지면
당신에게서는 성령의 지속적인 변화들이 나타나지 않을 수가 없다.
강력하고 절대적인 힘이 마음판에 새겨진 생각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말씀에 대한 오해에 관한 중요한 핵심은 이것이다.
'성도가 되었다는 것은 무엇인가?'를 잘못 이해하고 있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다는 것은,
성령하나님의 역사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언약의 말씀을 자원하여 기쁨으로 지켜가는 백성으로
그 근본마음을 이미 바꾸어 놓으셨다는 것이다!
성경에서는 지금 그 말씀을 하고 있다.
그런데 주서택 목사는 무엇이라고 하는가?
이미 예수님을 믿는 성도이지만
성령님께서 내적치유에서 생각을 바로잡게 하신다는 것이다.
서두에서 주서택 목사가 한 말을 다시 살펴보자.
"성령께서 당신을 치유하시는 목적은
당신이 바른 생각을 붙잡도록 하기 위해서이다.
마음의 상처란 거짓되고 악한 생각을 만드는 원흉이다.
잘못된 생각의 길은 사람의 깊은 마음판에 새겨지게 된다.
그래서 아무리 좋은 말씀을 들어도
그 사람은 궁극적으로 자기의 마음판에 새겨진 생각의 길대로 움직인다."
이 말에 대한 증거 성경으로 에스겔서의 성령의 역사를 언급했다.
그 차이를 알겠는가?
신약의 성도란 이미 주의 언약을 지켜 행하도록 그 마음판이 새롭게 된 사람이다.
성령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영접하게 하실 때에 이미 그 마음판이 새롭게 되었다.
그런 일은 두 번 다시 일어나지 않는다.
그런데 왜 내적치유 세미나에 가서 또 그걸 한다는 말인가?
내적치유는 그럴 자격이 없다!
마치 내적치유세미나가 중생 덜 된 사람을 다시 완전하게 중생시키는 그런 곳이 아니라는 말이다.
그러니 내적치유 갈 필요가 없다.
오히려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가 무엇을 말하는지 성경을 똑바르게 가르치고 기도할 일이지,
내적치유에 가서 울고 불고 할 필요가 없다.
RPTministries 정태홍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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