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서택 내적치유사역원_우리는 그들을 어떻게 대할 것인가???
주서택 내적치유사역원_우리는 그들을 어떻게 대할 것인가???
내사연 관련 블로그에 다음과 같은 글이 있다.
누구를 의식하고서 올린 글인지 매우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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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그들을 어떻게 대할 것인가?

최근 어떤 사람이 내적치유사역원은 죄를 상처라고 말하고
죄를 죄라고 말하지 않는다고 비판을 했다.
그 말을 들으며 문득 생각난 성경의 한 이야기가 있었다.
그것은 요한복음 8장에 나온 이야기이다.
돌을 들어 당장이라도 집어 던질 듯 팽팽한 긴장이 맴돌고 있었던 그 때
주님은 몸을 굽혀 땅에 뭔가 쓰시더니 일어나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 말씀 하셨고,
그 말에 모두 양심의 가책을 받아 그 자리를 떠나갔다.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의 주장은 그 여인이 간음죄를 졌기 때문에
모세의 율법에 따라 죽여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주님께서는 그 여인에게 뭐라고 하시는가?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니 가서 죄를 범치 말라"
모세의 율법을 모르셨을까? 죄를 쉽게 취급해서 일까?
우리는 세미나에 참석한 사람들의 마음이 아프다고 말하고
하나님의 사랑으로 치유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왜냐하면 가슴에 또 한 번의 칼을 꼽는 정죄는 문제 해결의 방법이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 주위에는 정죄하는 사람은 많지만
믿어주고 기다려주고 격려와 사랑으로 싸매어 주는 사람은 소수이다.
(이미지 &글 자료출처 http://blog.naver.com/bsj5377?Redirect=Log&logNo=401223802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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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시작에서 보면,
"최근 어떤 사람이 내적치유사역원은 죄를 상처라고 말하고
죄를 죄라고 말하지 않는다고 비판을 했다."
라는 말이 있다.
내적치유에서는 "상처의 차원"으로 접근한다.
인간이 상처를 받고 살지만,
그것을 어떤 차원으로 해석하느냐?가 중요하다.
성경은 먼저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된 인간을 말하며,
하나님께 문제의 근거가 있지 않고 인간의 죄와 타락을 말한다.
그래서 인간의 죄인됨을 다룬다.
죄의 관점에서 다루지 않으면 상처는 오로지 남 탓이다.
구상화를 통하여 이루어지는 치유는 그래서 거의 대부분이
"내 죄입니다"는 없고, "너 때문이야"로 결론이 난다.
위의 글 내용 중에, 다음과 같은 말이 있다.
"우리는 세미나에 참석한 사람들의 마음이 아프다고 말하고
하나님의 사랑으로 치유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왜냐하면 가슴에 또 한 번의 칼을 꼽는 정죄는 문제 해결의 방법이 아니기 때문이다."
중요한 문장들을 보면, 이렇다.
"마음이 아프다." "하나님의 사랑으로 치유되어야 한다."
"정죄는 문제 해결의 방법이 아니다."
마음이 아프다고 말해야 하는가?
진정한 치유를 위해서는 죄가 무엇인지 말해 주어야 한다.
그렇다고 죄를 지적하는 과정은 위협적이지 않다.
그것은 온유한 심령과 영혼을 사랑하는 따뜻한 마음이 함께 가는 것이 성도이다.
누가 누구를 정죄하는가?
내사연의 말들은 본질을 왜곡하는 말들이다.
내적치유의 본질적인 문제가 무엇인지 말해 주는 것에 귀를 기울이지 않고,
그것을 "정죄"라고 몰아가는 것은 더 나쁘다.
내적치유는 심리학과 세상의 사상으로 안해도 된다.
하나님의 말씀만으로 치유는 이루어진다.
수많은 사람들을 세상의 심리학으로 물들어 가르치고 있으면서도
심리학을 안가르치는 것처럼 말하는 것에 대해서는 왜 침묵하는가?
그것이 침묵일까? 아니면 숨기는 것일까?
인본주의 심리학으로 상처를 바라보지 말고,
하나님의 말씀 앞에 바르게 서게 하는 것이 진정한 치유다.
인본주의 심리학으로 사람들을 가르치지 말고,
하나님의 말씀만으로 치유하는 것이 바른 길이다.
RPTministries 정태홍 목사
http://www.esesang91.com
http://twtkr.com/rptministries
http://www.facebook.com/RPTministries
내사연 관련 블로그에 다음과 같은 글이 있다.
누구를 의식하고서 올린 글인지 매우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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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그들을 어떻게 대할 것인가?

최근 어떤 사람이 내적치유사역원은 죄를 상처라고 말하고
죄를 죄라고 말하지 않는다고 비판을 했다.
그 말을 들으며 문득 생각난 성경의 한 이야기가 있었다.
그것은 요한복음 8장에 나온 이야기이다.
돌을 들어 당장이라도 집어 던질 듯 팽팽한 긴장이 맴돌고 있었던 그 때
주님은 몸을 굽혀 땅에 뭔가 쓰시더니 일어나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 말씀 하셨고,
그 말에 모두 양심의 가책을 받아 그 자리를 떠나갔다.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의 주장은 그 여인이 간음죄를 졌기 때문에
모세의 율법에 따라 죽여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주님께서는 그 여인에게 뭐라고 하시는가?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니 가서 죄를 범치 말라"
모세의 율법을 모르셨을까? 죄를 쉽게 취급해서 일까?
우리는 세미나에 참석한 사람들의 마음이 아프다고 말하고
하나님의 사랑으로 치유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왜냐하면 가슴에 또 한 번의 칼을 꼽는 정죄는 문제 해결의 방법이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 주위에는 정죄하는 사람은 많지만
믿어주고 기다려주고 격려와 사랑으로 싸매어 주는 사람은 소수이다.
(이미지 &글 자료출처 http://blog.naver.com/bsj5377?Redirect=Log&logNo=401223802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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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시작에서 보면,
"최근 어떤 사람이 내적치유사역원은 죄를 상처라고 말하고
죄를 죄라고 말하지 않는다고 비판을 했다."
라는 말이 있다.
내적치유에서는 "상처의 차원"으로 접근한다.
인간이 상처를 받고 살지만,
그것을 어떤 차원으로 해석하느냐?가 중요하다.
성경은 먼저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된 인간을 말하며,
하나님께 문제의 근거가 있지 않고 인간의 죄와 타락을 말한다.
그래서 인간의 죄인됨을 다룬다.
죄의 관점에서 다루지 않으면 상처는 오로지 남 탓이다.
구상화를 통하여 이루어지는 치유는 그래서 거의 대부분이
"내 죄입니다"는 없고, "너 때문이야"로 결론이 난다.
위의 글 내용 중에, 다음과 같은 말이 있다.
"우리는 세미나에 참석한 사람들의 마음이 아프다고 말하고
하나님의 사랑으로 치유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왜냐하면 가슴에 또 한 번의 칼을 꼽는 정죄는 문제 해결의 방법이 아니기 때문이다."
중요한 문장들을 보면, 이렇다.
"마음이 아프다." "하나님의 사랑으로 치유되어야 한다."
"정죄는 문제 해결의 방법이 아니다."
마음이 아프다고 말해야 하는가?
진정한 치유를 위해서는 죄가 무엇인지 말해 주어야 한다.
그렇다고 죄를 지적하는 과정은 위협적이지 않다.
그것은 온유한 심령과 영혼을 사랑하는 따뜻한 마음이 함께 가는 것이 성도이다.
누가 누구를 정죄하는가?
내사연의 말들은 본질을 왜곡하는 말들이다.
내적치유의 본질적인 문제가 무엇인지 말해 주는 것에 귀를 기울이지 않고,
그것을 "정죄"라고 몰아가는 것은 더 나쁘다.
내적치유는 심리학과 세상의 사상으로 안해도 된다.
하나님의 말씀만으로 치유는 이루어진다.
수많은 사람들을 세상의 심리학으로 물들어 가르치고 있으면서도
심리학을 안가르치는 것처럼 말하는 것에 대해서는 왜 침묵하는가?
그것이 침묵일까? 아니면 숨기는 것일까?
인본주의 심리학으로 상처를 바라보지 말고,
하나님의 말씀 앞에 바르게 서게 하는 것이 진정한 치유다.
인본주의 심리학으로 사람들을 가르치지 말고,
하나님의 말씀만으로 치유하는 것이 바른 길이다.
RPTministries 정태홍 목사
http://www.esesang91.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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