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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기철 장로 사역의 위험성과 이단성(1)- 과연 질병이 저주인가?

손기철 장로 사역의 위험성과 이단성(1)- 과연 질병이 저주인가?
자료출처http://blog.daum.net/emptyship/8319426

손기철 장로의 사역은 요즘 최고의 인기이다. 그가 선택한 방법은 매우 탁월하다. 한국의 보수적 신학 풍토에서 만약 빈야드, 베니 힌 같은 노골적인 은사 집회 활동을 했담녀 아마도 그렇게 강력하게 퍼져나가지는 못했을 것이다.
 
 손기철 장로는 집회와 어느 정도 어울리지 않는, 상당히 길고, 조금은 지루하기까지 한 설교를 한다. 그리고 설교의 내용은 매우 건전하고 복음에 충실하다. 이 설교로 인하여 손기철 장로에 대한 비난이나 염려, 주의가 상당 부분 걷어진다. 이 설교를 듣고 더욱 사람들은 그 메시지의 건전함으로 인하여 집회의 건전함을 당연하게 받아 들인다. - 실제로 그의 설교가 건전한가 아닌가에 대해서는 다음에 또 다시 다루도록 하자....
 
 
 손기철 장로의 사역의 많은 문제점과 위험성 중 특별히 첫번째로 지적하고자 하는 것은 그가 말하는 '저주'에 대한 관점이다. 그는 육체에 일어나는 많은 질병들을 가리켜 '저주' 혹은 '악한 영의 역사'라고 말한다. 이는 매우 위험하다 못해 이단적이다.
 
 첫번째로 과연 질병이 저주인가?
 이것이 가장 위험한 사고이다. 과연 질병이 저주인가? 혹은 내게 일어난 수 많은 악한 일들이 악한 영의 역사인가? 그래서 내가 하나님을 아는 지식과 '왕의 기도'를 할 수 있을 만한 영적 능력을 갖추게 되면 그러한 악한 영의 세력을 몰아내어 육체와 정신의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는 것인가? 내가 안된다면 다른 중보자를 통해서라도? - 무슨 소리인가. 중보자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 밖에 없다.
 
 '질병'을 가리켜 저주라고 하는 것은 한국의 대표적인 이단인 베뢰아 김기동의 주된 가르침이다. 육체와 정신을 해치는 모든 질병과 고통의 원인을 영적 전투에서 찾는 김기동은 성도의 고통은 악한 영의 공격이라고 규정하고 그 공격을 이겨낼 만한 합당한 지식과 능력을 가질 것을 요구하고 훈련시킨다. 이게 김기동의 귀신론이다.
 한국 교회는 오랜 시간 동안, 그리고 여러 분야에서 김기동의 귀신론의 악영향을 받아 왔다. 가난, 질병, 고통 등을 저주로 인식하고, 성공, 부, 건강 등을 하나님의 은혜로 판단하고 이를 믿음의 은혜와 등가로 여기는 아주 저급하고 악하며 이단적인 사상에 젖어 있다는 것이다.
 더욱이 어떤 지식과 정보, 수준의 향상을 통하여 영적 승리를 도모할 수 있다고 가르치는 것은 초대교회 당시의 영지주의 이단의 새로운 형태일 뿐이다.
 
 '질병'이 저주인가? 육체의 연약함과 고통은 저주인가? 이는 매우 위험한 사상이다. 왜냐면 만약에 그 고통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면 그가 누가되든 여전히 저주 아래에 있는 자가 되기 때문이다. 극단적으로 예를 들자면 '바울'은 저주를 벗어난 자가 아니다. 왜냐면 그는 평생 육체의 가시로 인하여 고통을 당했기 때문이다.
 
 우리가 질병을 당하는 것은 크게 두 가지의 이유때문이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보여주시는 계시를 따라 두 가지로 나누어 생각할 수 있다.
 첫번째는 일반계시 영역 안에서의 이해이다. 즉,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건강과 환경, 육체의 상태에 따른 자연스러운 질병의 발생이다. 나는 계절이 바뀔 때마다 알레르기성 비염으로 인해 재채기를 달고 산다. 얼마나 고통스럽고 귀찮은지 모른다. 그런데 이것은 저주가 아니라 나의 육체가 환절기를 잘 견디지 못하는 체질이기 때문에 생겨난 자연스러운 현상일 뿐이다.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몸의 구조나 생리가 그렇게 움직이기 때문이다. 추운 날 밖에서 활동을 많이 하면 감기가 걸리는 것도 이와 같은 이유이다.
 아토피가 왜 생겼는가? 아토피는 저주가 아니다. 물론 아토피로 인하여 당하는 고통은 저주와 같다. 그러나 그것 자체가 저주는 아니다. 왜냐면 체질이 변하고, 피부가 건조해지고, 민감해지면서 생기는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약한 '건선'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조금만 건조해져도 피부가 거북이 껍질처럼 바뀐다. 이건 저주가 아니라 그저 내 체질이 그런 것이다.
 
 그래서 이러한 질병은 약으로 치료한다. 왜냐면 내 몸의 문제, 자연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저주가 아니란 말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자연적 질병에 대하여 '치료를 구하는 기도'도 하지 말아야 하는가? 아니다. 나는 환절기마다 나의 이 재채기를 위하여, 건선을 위하여, 심지어 상태가 안좋은 늘 높은 수치를 기록하는 나의 간을 위해서도 나는 기도한다. 나의 건강을 하나님께 비는 것과 그것을 저주로 여겨 악한 영의 역사로 규정하여 몰아내는 것은 완전히 다른 이야기이다.
 
 질병을 저주로 여기는 것, 악한 영의 역사로 여기는 일의 가장 치명적인 약점이 있다. 그것은 이 '질병'들 조차 하나님의 섭리 안에서 우리에게 주어지는 것이라는 사실이다. 즉, 어떤 질병도 하나님의 허락 없이는 우리에게 일어나지 않는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질병을 주시는 두 번째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어떤 목적을 가지고 질병을 주실 때가 있다. (사실 첫번째의 이유 역시도 이 안에 포함되는 것이다.) 이 경우에 질병은 어떤 교훈적 성격을 띄게 된다. 욥이 그랬다. 욥은 말로 할 수 없는 고통과 슬픔을 당했다. 그런데 그 고통과 슬픔에는 하나님의 교훈이 숨겨져 있었고 그 교훈은 시간이 지난 후에야 밝히 드러났다.
 어쩌면 우리가 내게 있는 질병을 가리켜 '악한 영'이라고 저주하는 것은 그 질병을 통해 내게 말씀하시는 하나님을 가리켜 '저주'하는 것과 같을 수 있다. 만약에 손기철 장로의 사역이 옳다면 하나님께서 하나님 스스로 자신이 한 일을 저주하시고 취소하시고 몰아내시는 것이다.
 하나님의 권위와 권능을 이렇게 훼손해도 된다고 생각하는가?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복이 무엇인가? 은혜가 무엇인가? 성경은 우리의 '병'이 낫는 것을 은혜와 승리와 구원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되는 일 그 자체가 우리에게 주시는 가장 큰 복이요 은혜이다. 그 이외의 모든 것은 이 믿음을 우리 안에 견고히 하기 위한 하나님의 교훈적 도구이다. 하나님의 도구를 가리켜 '악한 영의 저주'라고 부르는 것은 신성모독이다.
 
 
 두번째로 과연 '저주'라는 것이 악한 영의 역사로 일어날 수 있는 것인가?
 
 앞에서 김기동에 대한 이야기를 잠깐 했다. 이단들의 공통된 특징은 악한 영의 세력을 강조하여 성도들의 마음 속에 불안과 공포를 조장한다는 것이다. 악한 영의 저주, 악한 영의 방해들로 인하여 고통이 일어나고 이 고통을 이겨낼 힘을 구하게 만든다. 눈에 보이지 않는 영적 존재에 대한 막연한 불안과 염려, 공포는 모든 사람들 속에 있고 이를 교묘하게 건들면 사람들은 반응한다.
 쉽게 말해서 어느 점집이든 40대 아줌마가 들어가면 둘 중 하나이다. 남편 문제 아니면 자식 문제. 50%이다. 남편 문제면 승진 아니면 바람이고, 자식 문제면 비행 아닌면 성적이다. 아닌가? 온갖 잡신들을 불러 일으켜 눈에 보이는 현상에 대하여 눈에 보이지 않는 이유를 가져다 붙인다. 왜냐면 눈에 보이는 현상에 눈에 보이는 이유를 가져다 붙이면 사람들이 별로 좋아하지도 않고 신통해 하지도 않기 때문이다. 어떤 경우에는 진실이 불편할 때도 있다.
 '너 추운데 옷 얇게 입고 다니니까 감기 걸렸잖아.' 보다는 '선한 일을 하려는 악한 영이 너의 건강을 해쳐 감기가 들게 했구나.'가 사람들 안에 신비로움과 공포를 더욱 자극할 수 있다는 것이다.
 
 자극된 공포와 염려는 극단적인 순종과 믿음을 낳는다. 그리고 '해결될 것'이라는 극단적 믿음은 조작된 환상을 실제로 믿게 만든다.
 손기철 장로의 동영상에서 본 한 장면을 잊을 수 없다. 중풍에 걸리신 분이 앞으로 나와 기도를 받고 걷기 시작하셨다. 충격이었다. 왜냐면 그 환자의 걸음은 중풍걸린 환자의 걸음이었기 때문이다! 그의 말투는 중풍 걸린 사람의 말투였고, 그의 손 동작 역시 중풍 걸린 사람의 손 동작이었다! (우리 할아버지께서는 중풍으로 거의 10년을 고생하셨고, 집안에 어른 중 한분은 몇 년째 중풍으로 거동이 불편하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집회의 많은 사람들은, 심지어 그 환자마저도 자신이 치유 받았다고 소리쳤다. 그러나 아무리 봐도 그는 중풍병이 그대로 남아있는 중풍병자였다.!!!! 다음에 또 다루게 되겠지만 예수님의 치유 역사는 완전했다. 부분적이지 않았다는 것이다. 오늘은 팔, 내일은 다리, 모레는 혀가 아니라 바로 그 자리에서 완치였다. 왜냐면 우리가 구원을 부분적으로 받을 수 없기 때문이다. 오늘은 머리, 내일은 마음, 모레는 지식 이런 순으로 구원 받는게 아니라 한번에 전인격이 구원 받는 것과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순간 그 자리의 수 많은 사람들이 일률적으로 기적을 목격했다고 하는 것은 그들 안에 존재하는 질병에 대한 염려와 그 염려에 대한 눈에 보이지 않는 이유에 대한 공포, 그리고 그 공포와 실제적인 육체의 고통을 치료 받고자 하는 열망이 단체로 현실을 과정하게 만들어 버린 것이다.
 
문제는 '저주'가 과연 누구의 사역인가라는 점이다. 사단이 우리를 지금도 저주할 수 있다라고 생각하는가? 우리는 지금 어디에 있는 자들인가? 만약 지금도 사단이 신자를 저주할 수 있다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을 부정하는 것과 같다. 우리는 죄인 되었던 자들이지 지금 죄인이 아니다. 다시 말해 우리는 사단의 저주 아래에 있던 사람들이지 지금 사단의 저주 아래에 있는 자들이 아니라는 것이다.
 
 즉, 사단에 대한 모든 공포와 염려는 이미 종식되었다. 사단은 더 이상 우리를 저주하지 못한다.
 
 저주는 사단의 역사가 아니라 '하나님의 사역'이시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저주하신다라고 하지 사단이 우리를 저주한다라고 가르치지 않는다. 저주가 무엇인가? 하나님에게 버림 받는 것이 저주이다. 하나님에게 버림 받아 그 영혼이 구원 받지 못하는 것이 저주이다. 감기가, 아토피가, 알레르기가, 천식이, 비염이 저주가 아니란 말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대신하여 모든 저주를 그 십자가에서 받으셨다. 그 공로로 인하여 우리는 모든 저주에서 풀려난 자유인이다. 그 무엇도 우리를 저주 아래 묶어 둘 수 없다. 왜 그런가? 예수 그리스도 때문이다. 그런데 또 다시 반복하여 사단이 우리를 저주하는가? 악한 영이 우리를 저주하는가? 예수 그리스도를 부정하는 것이다.
 
 비로 예수의 이름으로 말한다 해도 그것은 예수의 이름을 부르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예수를 부인하는 것이다.
 마태복음 7장에 무서운 이야기가 나온다.
 
7:21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7:22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 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치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7:23  그때에 내가 저희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이름을 부르는 것이 문제가 아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아시느냐가 중요하다. 사단은 믿음 없는 자가 그저 예수 이름을 부르는 것만으로도 멀리 도망가는 존재이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된 자,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를 사단이 저주할 수 있는가?
 애초에 질병을 예수의 이름으로 쫓아낸다, 저주를 푼다는 것 자체가 틀린 것이다.
 
 신자에게 저주란 없다. 그저 조작된 공포만이 있을 뿐이다.
 
 
 세번째로 그렇다면 하나님의 '저주'를 인간이 마음대로 풀고 묶는다면 그것은 하나님을 권능을 초월하는 것이 아닌가?
 
 병을 치료하시는 권능이 하나님에게 있다면 병을 주신 권능도 하나님에게 있다. 병을 치료하실 의지를 가지신 하나님이시라면 병을 주실 의지도 함께 가지고 계신다. 단지 우리는 그 깊고 오묘한 뜻을 깨닫지 못할 뿐이다. 우리에게 주어지는 것은 '모든 것이 협력하여 하나님의 선을 이룬다.'는 약속의 말씀을 믿어 그 질병 가운데 역사하시고 가르치시는 하나님의 뜻을 찾아야 한다.
 
 질병의 치료가 목적이 아니라 그 질병을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는 것이 하나님의 목적이다. 존 스토트는 그의 책 '기독교 기본진리'에서 예수님께서 행하신 수 많은 기적들을 가리켜 '메시지의 극화'라고 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복음의 핵심은 죄사함과 구원이다. 이 죄사함과 구원이라는 복음의 메시지를 예수님께서는 병자의 치료라는 눈에 보이는 메시지를 통하여 전달하신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질병의 치료와 구원을 동시에 선포하신 것이다.
 
 우리에게 요구되는 것은 질병을 거부하는 것이 아니다. 질병을 쫓아내는 것도 아니다. 나도 많이 아파봤다. 밥 먹듯이 입원했다. 물론 지금도 건강이 좋은 편은 아니다. 얼마전에는 사랑하는 이모가 폐암으로 돌아가셨고, 내 아들도 손 가락을 크게 다쳤다.
 그렇다. 내 주위에 고통은 끊어지지 않는다.
 
 그러면 손기철 장로식으로, 아니 좀 노골적으로 말해보자. 김기동 식으로 말하면 나는 저주 아래에 있는 자이다. 그렇다면 예수 그리스도는 어디에 계신가?
 내가 기도하자. 그래서 모든 질병이 떠났다. 그럼 하나님께서는 왜 이 질병을 주셨는가? 무엇때문에...
 
고후1:8-9
1:8  형제들아 우리가 아시아에서 당한 환난을 너희가 알지 못하기를 원치 아니하노니 힘에 지나도록 심한 고생을 받아 살 소망까지 끊어지고
1:9  우리 마음에 사형 선고를 받은 줄 알았으니 이는 우리로 자기를 의뢰하지 말고 오직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시는 하나님만 의뢰하게 하심이라

바울이 무엇이라고 이야기하는가? 바울은 이 모든 질병이 '하나님만 의뢰하게 하심'이라고 이야기한다. 왜냐면 우리의 약함으로 강함을 만드시고, 우리의 부족함으로 부요함을 삼으시고, 우리의 낮음으로 높음을 삼으시기 때문이다.
 
 기억하자. 우리의 건강으로 건강을 삼으시고, 우리의 강함으로 강함을 세우시는 것이 아니다. 우리의 모든 약함과 질병과 고통은 그대로 있는 것이다. 단지 그것을 하나님께서 사용하시는 것일 뿐이다. 이 뜻을 부정하고 넘어서려 한다면. 그것 자체가 불신앙이고 배교이다.
 
 
 최근에 손기철 장로의 사역팀은 안수 받는 자의 수를 15인으로 제한했다. 예수님께서는 이러신 적이 없으셨다. 그런데 그들은 제한한다.
 
 내가 한 가지 분명한 예언을 하겠다. 앞으로 손기철 장로의 사역의 성공률은 거의 100%가 될 것이다. 15인 안에 들기 위해 사람들은 더욱 열광적으로 은혜를 사모할 것이고 그 안에서 선택 받은 자들이 받는 은혜는 더욱 강렬해 질 것이다. 복잡하게 생각할 것 없다. 오늘 당신 손에 우리나라에서 15명만 가질 수 있는 차의 열쇠가 주어졌다고 생각해보라.
 
 예수님의 사역은 지극히 일대일이었고 인격적이셨다. 군중을 향하여 가르치셨으나 그 역사와 은혜는 지극히 한 개인을 향하셨다. 그리고 그 개인을 예수님은 아셨다. 그를 아셨고 그의 마음을 아셨고 그의 상황을 아셨다.
 
 이제 손기철 장로는 모르는 사람 15명을 성령의 인도하심으로 치료한다고 할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뽑기와 같다. 하나님의 은혜로 비인격적인 추첨식으로 전락시켰다. 그리고 그 15명을 향한 사람들의 치열한 도전과 열심은 불이 날 것이다. 감정은 더욱 과잉 될 것이고 반응은 더욱 폭발할 것이다.
 
정말. 위험하다. 
  ----------------------- 댓글들 ---------------
암말기에도 견듸기위함보다 승리하기위한 힘을 주신분응 누구신가.위암전에 속이 거북할때 마귀 사탄이 이미 마음과 생각을 붙듭니다.믿음안에서는 피해를 당한자가 상대를 위해 먼저 기도하게됩니다.이단뿐만 아니라 십자가사랑이되기를 전 기도합니다.(막9:39 가라사대 내 이름을 의탁하여 능한일을 행하고 즉시로 나를 비방할자가 없느니라,반대하지 않는자는 우리를 위하는 자니라.)순교는 힘들고 판단은쉬울수있지만 주님은 아버지께 맡기고 운명하셨읍니다.그들을 매장하라 모여주길원하십니까.선지자같은 순교자라 자랑받기도 아니시면,만나서 식사하며 대화도 좋겠지만 이미 이단하시니 저도 이단이군요.꼭 한번 가고싶은데 이미 이단마귀가 붙든것인지요
함부로 남을 판단하는 것이 더 위험하다   성령훼방죄가 무섭다는걸 아셔야할듯...
함부로 남을 판단하는 것이 더 위험하다   성령훼방죄가 무섭다는걸 아셔야할듯...
성령 훼방죄가 무엇인지 먼저 아셔야 할 듯....
감사합니다. 신앙생활에도 균형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한 때는 저도 구원받았다, 라고 생각했던 적이 있었지만..그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안된다는 것을 요즘에야 깨닫고
하나님의 긍휼과 은혜로 거듭나게 해주시길 간구하고 있습니다.

한국교회, 안타깝지만..주님의 상처뿐인 신부가 되지 않도록 함께 기도하여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주님께서는 다른 것이 아닌, 마음의 중심. 곧 온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을 보시고 계시다는 것을 깨닫게 해주십니다.

한동안 은사와 체험을 통해 하나님을 알려고 했던 적이 있었음을 고백합니다, 부끄럽지만.
그러나 하나님은 살아계시는 분이십니다, 제 머리 속에 경험 속에 은사 속에만 갇혀 계시는 분이 아니라..

결론부터 말하자면 위글은 또 다른 논리의 자기모순이며 하나님의 역사를 스스로 부정할 수 있는 지나치게 복음을 좁은 시야로 보는 위험한 주장이다. 위 글의 주장 중에 하나님이 허락하신 질병을 사탄의 역사로 취급하고 하나님이 뜻하신바 목적이 있으셔서 하락하신 모든 질병(예, 욥의 질병)을 저주한다면 그것은 곧 하나님을 저주하는 것이라고 주장하여 얼핏 보면 참으로 하나님의 뜻을 존경하는 것 같이 보인다. 백보 양보하여 위의 주장을 인정한다 하더라도, 에덴 동산에서 하와를 유혹하여 죄를 짓게한 사탄을 저주하신 하나님은 스스로 스스로를 저주한것인가(?). 또 율법을 완성하시며 죄인을 구원하러 오시어 십자가의 제단에 보혈의 피를 흘리신 주님도 공생애 동안 인간을 질병의 고통 에서 해방시켜 주시려 수 없이 많은 병을 고치시며 질병을 저주하셨다. 그런 주님은 자기 자신을 저주하거나 자기를 보내신 하나님을 저주한 이단자(?)란 말인가?   위 글을 복음을 좁은 시야로 받아 들거나 앞뒤 전후 좌우를 헤아리지 않고 곧이 곧대로 따른다면 그렇게 귀결 될 수 밖에 없다. 전 후 문맥을 다 잘라 버린다면 성경에도 하나님은 안계시고 주님도 없으시다. 사실 그런가(?) 아니지 않는가? 주님께서 질병의고통을 고쳐주시며 제자들에게도 병고침의 능력을 주시고 가서 행하라 하신것은 하나님께서 한없이 사랑하시는 인간이 살아가는데 질병이 얼마나 고통을 주는지 하나님은 더 잘 아시기 때문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만약 이단적인 행위를 하는 자는 그가 누구이든 하나님이 판단하실 것이다. 다만 속아넘어가는 자가 염려가 된다면 그는 진심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하고 주님의 기적을 사모하던 자일 것이다. 그렇다면 이미 그것은   인간인 내가 염려하고 책임질 일이 아니다 . 이미 옷깃을 만진 여인처럼 그의 믿음은 이미 하나님이 기뻐 받으시고 주님이 만지셨기 때문이다.   모든 말과 사건은 그 때와 장소와 상황을 살펴 넓게 해석하여 남에게 어떤 영향을 끼칠지 사려깊게 배려하는 것도 하나님의 사랑을 실천하는 것일 것이다.  
<질병>은 하나님이 사랑하는 자녀를 품으시려 시련을 주시려는 하나님의 뜻일 수 도 있다. 그 후의 몫은 전적으로 인간에게 달렸다.

<질병>은 조상의 죄이거나   본인의 죄일 수 도 있다. 이것 역시 그 후의 몫은 전적으로 인간에게 달렸다.

<질병>은 하나님의 뜻도 조상의 죄도 본인의 죄도 아니며 사탄의 역사일 수도 있다. 이것 역시 더 더욱 그 후의 몫은 인간에게 달렸다.

<질병>을 대할 때 기도하지 않고 치료하지 않는 자체가 문제이지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 간주하고 기도하지 않는 태도는 하나님의 존재와 능력과 사랑을 인정치 않는 교만하고 무지한 소행이다.

<질병>을 하나님께서 허락하셨다 하더라도 하나님께서는 인간이 그 질병으로 인해 고통당하며 좌절하고 불신하고 기도하지 않고 무기력하게 주저 앉아 당하는 것을 원하시지 않는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질병보다 자기의 자녀인 인간을 더 사랑하시기 때문이다.

<질병>을 치료하기 위해 기도할 때는 주님이 하신 기도 방법을 따라하는 것이 자연스럽고 당연한것이다.

<질병>을 바라보는 눈은 성삼위일체 하나님께서 고쳐주시기를 기도하는 것이 당연한 믿는 자녀의 도리이다. 다만 낳고 안낳고에 매달리지 말고 잠잠히 하나님의 처분을 기다리며 순종하는 모습이 자녀된 도리이다.

<하나님>은   <자녀>를 <질병> 보다 더 <사랑>하시기 때문에, <인간>과 <질병> 둘다 만드신 <하나님>일 지라도 <질병>을 저주하기를 허락하실것이고   <인간>을 구원하실 것입니다.
01020102님.. 여기에 적으신 모든 말씀에 책임질 수 있습니까?

만약에 다 책임지시고 정말로 위에 있는 님의 말들이 진심이고 믿는 바라고 하신다면 저도 님의 글에 진심으로 답을 해드리겠습니다..

다만 바라기는.. 위의 글들 중 상당수가 님의 뜻이 아니길 바라고..
더욱 바라는 것은.. 님께서 '목회자'가 아니시기를 간절히 바랄 뿐입니다.
한마디만 하고 가겠습니다.

손기철 장로님의 사역에는 분명 성령님의 강력한 기름부으심과 임재하심이 있고
또 수많은 사람들이 경험했습니다.

이건 어떻게 설명하실건지 궁금하네요
근본적으로 '은사중지론 vs 은사지속론' 차원에서 손기철 장로님의 치유사역 문제를 다뤄야한다고 봅니다.
안수받는 자의 수를 15명으로 제한한건, 집회 후 손장로가 힘드셔서 그런게 아닌가요?
끝까지 지켜본 결과

15명만 기도해도 10시에 끝난 집회가 밤 11시가 다 되던데요.

예수님처럼 일대일로 다 기도해준다면,
아마 월요일 집회 밤새 기도해도 모자르지 않을까요?


예수님과 달리 사랑이 없고,
15명 뽑기 형식으로 사람들의 열광적인 참여를 유발시키려고 그렇게 한다는 얘기는

님의 주장에 예수님을 끼어맞추기 위해서
억지 부리신거라는 생각이, 비단 저만 드는게 아닐꺼 같네요..
  • 초신자
  • 2009.07.20 15:13
  • 수정 | 삭제
님의 말씀에 동의합니다. 저도 집회에 참석한 적이 있는데 손기철 장로님이 직접 기도를 해주는 사람의 인원을 제한하는 것은 불가피한 것으로 보여습니다. 교회를 비워주워야만 하는 시간이 있으니까요. 15명만 기도해줘도 밤 11시인데, 2-3천명의 인원을 어떻게 일일이 다 기도해주겠습니까. 대신 HTM의 스탭들이 손장로님으로부터 직접 기도를 받지 못하는 이들을 위해 기도해주고 계셨습니다. 그 역시 물론 시간이 부족하지만요.

손기철 장로님은 스스로를 깡통이라고 칭하며 치유자는 오로지 하나님이니 기도자를 바라보지 말라고 하시던데...저자가 집회의 내용을 잘 모르는 것 같아 안타깝네요.  
성령님을 제한하는 은사중지론자들의 글을 읽을 때마다, 성령님께서 깊이 탄식하시는 것 같아 마음이 아프네요~~ 위글을 하나님이 어떻게 판단하실지.... 하나님을 제한 하시지 마세요~~^^
  • 예수님은 나의 주님
  • 2008.11.28 22:28
  • 수정 | 답글 | 삭제
활동을 시작했구나.... 역시..ㅋㅋㅋㅋ
은사주의가 하나님을 제한한다?????? 지극히 성경적인것은 성경에 있는 모든 사실들을 하나도 가감없이 믿는것인데.
거기엔 당연히 은사도 있고, 믿음 소망 사랑도 있는것 아닌가?
예수님을 바르게 믿으려고 발버둥치는 분들이라면 당연이 은사도 중요하고 말씀도 중요한것을 아실텐데...
글쓴이가 이러는게 오히려 더 반 성경적이며 극히 바리새인적이며   성령을 훼방하는 짓임을 왜 모를까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님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더러운 마귀사단은 떠나갈지어다. 아멘!"
성경을 읽어보렴.....성경을 보다보면 예수님이 성령의 능력을 받으셔서 귀신들을 내쫓고 병을 고치고 못보는자를 보게하며 앉은뱅이를 일으키시는데... 바리새인들은 한결같이 그것은 하나님이 하신일이 아니라고 하며 예수님을 부인하는 장면이 나온단다.
또한 도리어 안식일에 그런 착한 일을 행했다고 예수님을 핍박하지.  
은사중단론??? 예수님의 이름으로 그리고 예수님을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고 성령님을 의지하여 병든자를 치유하고 눌린자를 자유케하는 그런 사역이 그럼 마귀의 짓이란 이야긴가????   그렇담 댁들이랑 바리새인들이랑 다른 점은 도대체 무엇인가?
말로만 예수님을 믿는다고 떠드는것?? 에라이 이 마귀들아.
꼭 종교적인 사람들이 율법적인 사람들이   예수님 힘들게하는군요..
성경을 지식적으로만 머리로만 이해할려고하니까 바리새인처럼
정죄나 하고있는지.... 진리를 아십시요.진리가 우리를 자유케한다고하였는데
당신은 지금정죄나 하고있군요. 시간이 그렇게나 남아나시군요
욥에게 임한 저주의 경우, 사탄이 욥을 하나님께 참소하였을 때 하나님께서 허락하셔서 마귀가 저지른 일이 맞습니다.. 사울왕에게 하나님의 부리신 악신이 임하였던 경우처럼 하나님께서는 사탄의 활동까지도 주권아래 두고 계심을 알수있습니다. 그러나     다윗이 수금을 연주하여 사울왕의 병을 상쾌하게 낫게 한 행위(삼상16:23)를 두고, 님과 같은 논리를 확대하여, 다윗이 하나님을 대적하는 일을 하였다고     할 수 있을까요? 그렇다면 예수님은 하나님 대적의 선봉장일 것입니다. 논리의 비약을 조심해야 합니다.. 비록 하나님의 깊은 섭리에 의한 질병일지라고 하나님은 그 질병 때문에 멸망당하는 것을 원치 않으십니다. 회개하는 동시에 병낫기를 위해 기도하는 것을 원하십니다. 성경은사탄의 활동을 정죄하고 있습니다. 이런점들이 기독교 진리의 역설(역리, Paradox)이라고 봅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시는 것을 원하셨습니다.(내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그렇다고해서 예수님을 십자가에 죽도록 하는 일에 앞장섰던, 예수님을 판 가룟유다나 예수님을 십자가에 매단 로마병정의 행위가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데 기여한 것은 사실이지만 상급받을 선한 행위를 하였다라고 할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러기는 커녕 그들은 영원한 하나님의 심판을 받을 자들입니다.(찌른 자들도 볼것이요) 이렇듯 기독교의 진리는 역설적이기에 말씀과 신앙 현상들을 해석하는 데에 신중해야 합니다. 성경이 나아가는 데 까지 가고 성경이 멈추는 데에서 멈추어야 합니다..
알러지, 환절기 질병, 아토피 등이 그 속에 적극적인 사탄의역사가 없는 자연현상으로 오는 것이라 할지라도 죄로 인한 인간에게 임한 저주의 결과입니다. 왜냐하면, 에덴동산에서 인간이 타락하기 전에는 어떤 아토피나 환절기 증상이나 알러지도 인간에게는 없었습니다. 그 모든 것은 죄로인한 저주의 결과입니다. 성령 또는 사탄의 역사인지는, 예수님의 말씀처럼 그 행위의 결과인 열매를 보면 판단할 수 있습니다. 함부로 판단하면 성령을 훼방하는 결과가 될 수 있습니다.
님은 저주의 종류에 대해 혼동하여 논리를 전개하고 있습니다. 성경을 안다면 하나님께서는 마귀조차 하나님 사역의 도구로 사용하고 계시지만 종국에는 그 사탄을 심판하신다는 것도 알고 있을 것입니다. 그점을 왜 간과하는지요?. 또한 기독교 적인 역설(역리, Paradox)을 이해할 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에덴에서 인간을 저주하신 그 저주, 즉, 영적저주(죽음)와 그 현상으로 나타난 육체의 저주(죽음), 또 육체의 죽음에 이르는 필연적 과정으로서의 질병(사고)의 저주, 구원받지 못하도록 이끄는 사탄의 저주(활동), 저주인듯이 보이지만 결과적으로 하나님의 구원의 섭리로서 오는 저주 등을 혼동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죄의 댓가로 먼저 인간을 저주하신 것은 맞습니다. 그러나 알곡과 쭉정이를 구별하기 위해 지상에서사탄이 활동하는 것을 허락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죄인을 벌하시기 위해 사탄을 통해 저주를 내렸다고 해서 그 저주가 진정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이겠습니까? 당연히 하나님은 저주를 내리시기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한사람도 멸망치 않고 구원에 이르기를 원하시며 병낫기를 위해 기도하는 것을 당연히 원하십니다. 예수님은 마귀의 일을 멸하러 오셨고 세상을 이기신 분이십니다. 님의 논리라면 예수님은     하나님의 일을 멸하시고 하나님을 이긴 분이됩니다.         분명히, 예수님께서 승천하신 후에 사도가 된 바울은 수많은 병자를 치료하는 가운데 복음을 전했습니다. 열두제자를 비롯한 많은 제자들 또한 그렇습니다.                
오늘날 저주를 인정한다고 해서 예수님의 공로을 부정하는 것일까요?     마귀는 땅으로 쫓김을 받고 공중권세를 잡고 있는 자입니다. 지금도 마귀는 우는 사자같이 두루 다니며 할수만 있으면 택하신 자도 시험에 들게 하여 구원받지 못하도록 하는 자입니다. 사탄이 무엇으로 시험에 들게 하겠습니까? 각종 육체의 질병, 사고, 정욕, 욕심, 공포, 삶의 갖가지 문제등을 일으켜 믿는 자로 하여금 의심과 불신에 빠뜨려 배교하게하는 것이 아닙니까? 그러므로 예수믿고 저주를 이긴 구원받은 자들도 언제든지 시험에 들고 병에도 걸릴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사탄이 밀까부르듯이 한다고까지 하셨습니다. 이미 예수님으로부터 주님의 교회가 세워질 반석으로까지 인정받은 베드로도 육체의 죽음앞에서(질병을 넘어) 시험에 빠져 예수님을 부인하기 까지 했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신 것 자체만으로 모든 저주가 무조건 사라지는 것입니까? 믿는 자에게만이 적용되는 것이 아닙니까? 그러기에 먼저 믿은 자들이 전도하여 믿도록 하는 것이지요.
예수님이 저주를 청산하셨으므로 저주를 인정하는 것이 과연 예수님을 배교하는 것일까요? 마귀를 대적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피하리라고 하셨습니다. 오히려 더욱 예수님의 권세로 지금도 활동하고 있는 마귀를 멸해야 합니다. 약한자와 불신하는 자를 더욱 불신하게 만들어 종국에는 지옥으로 끌고가기 때문이고 이미 믿은 자들을 각종 시험에 빠지게 하기 때문입니다.
저주를 인정하고 환영하는 것이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일까요? 멸망으로 인도하기 위한 마귀의 저주이기에 멸해야 하며 택한자를 연단하시기 위해 하나님께서 주시는 저주라 하더라도 마귀를 통해 오기 때문에 기도로 마귀에게 대적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때는 당연히 하나님께 대해서는 회개하는 동시에 병낫기를 위해 기도해야 하는 것입니다. 사탄은 인간의 이성과 논리적인 사고의 허점을 통해서도 찾아와 다른 결론에 이르게 해서 멸망으로 인도합니다.(각종 이단의 논리가 다 그렇습니다.) 소경이 소경을 인도하면 둘 다 멸망하는 것입니다. 신학까지 하겠다는 분이시라면 재고하시도록 조용히 권면하고 싶습니다. 바울사도에게 있었던 질병은 성경에 분명히 '육체에 가시 곧, 사탄의 사자'(고후12:7)라고 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바울로 하여금 교만하지 않도록, 끝까지 겸손한 주의 사도로 세우시기 위한 하나님의 계획이었습니다. 그러한 확실한 섭리의 의미를 알때까지 바울은 분명히 병낫기를 위해 기도했습니다. 안타깝군요..

아주 자세하게.. 여러가지 근거를 드시면서 설명을 하셨는데요.

정말 안타깝습니다. 서로가 서로를 안타깝다고 하고.. 서로가 서로를 틀렸다고 하니..

답은 성경에 있습니다.
에혀..
님아. 나는 손기철장로님을 우월하게 바라보지 않아요. 손기철 장로님을 의심하면서 계속 설교를 들었는데
근데 말씀으로 생각해도 난 손기철 장로님을 우월하기보다는 예수님의 사랑을 더 알수있었습니다.
그리고 내 병고침받지 않았다고 하나님을 닥달하지 않아요. 예수님의 뜻이 다 있는거져.
어떻게 님은 그렇게 딱딱하십니까? 우리가 믿는 예수님은 미친겁니까?
님처럼 신학전공안하면 아마 나는 지옥가겠네요. 내 눈에는 그렇게 밖에 안보입니다.
덜떨어진 사람이라서여. 하지만 기본적인 주님의 말씀은 알고있습니다.
이왕 주님꼐서 치료해주신다면 믿음으로 선포하고 꺠끗하게 되고싶은 갈망있는겁니다. 그것도 자녀의 특권아닙니까.
아니어도 다 주님의 뜻입니다.
내 신앙관이 잘못된겁니까?ㄱ ㅓ기에 미쳤따구요? 차라리 난 예수님한테 미쳤습니다.
어제 손장로님 집회를 참석하고나서     저 역시 조심스레 이 카페지기님과 의견을 같이 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좋아하는 백그라운드 (학벌, 사회적 지위)를 가지시고 세련되게 말씀하시는데 평소 복음을 대충 이해하고 교회다니던 분은 혹하니 넘어가기 쉽겠더군요. 복음은 우리의 구원이 행위에 의해서가 아니라 예수님을 믿는 믿음으로 된다는 것, 그리스도인은 예수그리스도로 인해 율법의 저주로 부터 속량받았다는 것까지는 잘 하시는 것같다가 결국 끝에 가서는 이 땅에서 질병, 가난, 권력 등에서 벗어난   왕의자녀의 삶을 회복해 누려야 한다는 것이 요지였습니다.


인간의 본질이 영이라는 것을 몰라서 그러시는 건지...


예수님과 믿음의 선지자들이 간 길, 사도바울, 야고보, 베드로, 주기철 목사님, 존번연, 셀수 없는 믿음의 선진들이 십자가의 길에서 맞게 된 헐벗음, 가난과 때론 질병, 사람들로부터의 비웃음과, 박해를 부인하고 있는 셈인 것입니다. 말세가 가까와 이 장로님의 집회는 당분간 더 인기를 끌 것같습니다.    


이 장로님의 메세지는 매우 대중이 좋아하는 내용으로(많은 사람들이 찾는 길) 충실히 믿게되면 결론적으로 이 땅, 세상것(건강, 재물, 권력)을 더 사모하게 할 것같으니까요.   사실 이 장로님뿐만 아니라 여러 강단에서도 복음이 정리가 안되 하늘것을 사모하게 했다, 땅의 것을 사모하게 했다 왔다갔다하게     설교하시는 분들도 많으신걸 보며 안타까울 뿐입니다.


데살로니가후서2:9-12의 무서운 경고의 말씀이 떠오릅니다.

9                     악한 자의 나타남은 사탄의 활동을 따라 모든 능력과 표적과 거짓 기적과
10             불의의 모든 속임으로 멸망하는 자들에게 있으리니 이는 그들이 진리의 사랑을 받지 아니하여 구원함을 받지 못함이라
11             이러므로 하나님이 미혹의 역사를 그들에게 보내사 거짓 것을 믿게 하심은
12             진리를 믿지 않고 불의를 좋아하는 모든 자들로 하여금 심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무질서한 은사주의 / 존 맥아더 / 이용중옮김 / 부흥과개혁사 :: 이 책을 보시면 손기철 장로님과 은사주의자들의 진실을 알게 될 것입니다.
손장로님의 집회에 동의하든 반의를 갖던, 아무 생각 없더라고 꼭 한번 보시기를 강력히 추천합니다.
좀 더꺼운 책이지만 유혹과 혼란을 너머 진리를 볼 수 있도록 도와드릴 것입니다.
그 책은 저도 몇 년 전에 잘 봤습니다. 이번에 새로 번역이 된 것 같더군요. 꼭 필요한 책입니다.
손장로님 예배에 한번이라도 참석하신적 있으신가요?
  • 남프랑스
  • 2009.03.10 15:20
  • 수정 | 삭제
손장로님 예배라...예배는 하나님께 드리는 거지요.

예배는 '하나님 앞에 내가 죽는 것'입니다.

누가 인도하는 예배인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만약 손장로님께서 하나님 앞에 신실하신 분이라면, 이렇게 자신의 이름이 유명해지는 것을

원하지 않으실 겁니다.

왜냐하면 하나님 앞에 이름이 가리워진 사람에게 복이 있으니까요.

비록 세상에서는 이름이 가리워진다해도 하나님은 다 아십니다, 오히려 기뻐하실 것 같네요.
먼저 형제님의 여러 질병이 온전히 치유되어지기를 바랍니다.

저는

형제님의 글을 읽으면서 특별히 질병에 대해 죄와 저주 가 아니다.. 라고 생각하시는 부분에

대해 형제님께 성경적인 논리로 그것이 왜 죄이며 저주인지 말씀을 드려야 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먼저 명확히 하자면 질병은 죄의 열매이며 결과이지 질병 자체가 죄가 아님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형제님께서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신 이유와 목적이 무엇인지 혹시 아시는지요..

그것은 우리가 온전케 되기를 원하시기에, 그분이 우리를 창조한 처음 그대로의 모습을 우리를 회복시키

시고 싶으시기에 우리를 구원하신 것이지요. 그것도 자신의 아들의 피로...우리는 그것을

하나님의 은혜,사랑이라 부릅니다.

그런데, 안타까운 현실은 하나님께서 행하신 그 놀라운 구원사역의 열매는 사실상 우리에게

아주 미미하게 나타나거나 그분의 본래 의도는 우리에게 있어서 우리의 제한적 믿음때문에

거의 알려지지 못하고 있습니다.

형제님은, 예수님의 십자가가 그렇게 초라하고 능력이 없어 보이십니까?

하나님께서 고작 우리에게 신념이나 생각의 변화 단순한 마음의변화 ..이런 내적인 온전함만을 위해

그 엄청남 일을 계획하시고 이루셨다고 생각하십니까?

형제님은, 구름같이 허다한 증인들이 그런 일부분적인 은헤의 경험으로 자신의 생명을         바쳤다고 생각

하십니까?

형제님은 하나님께서 자신의 아들을 십가가 위에서 처참하게 죽게하신이유에 우리의질병을 온전히

낫게 위함이 보이지 않습니까?

하나님의 사랑을 형제님의 생각과 능력의 한계로 제한하지 마십시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죄를 위해 예수그리스도를 이땅에 보내셔서 십자가란 방법으로 처참하고

처절하며 비참하고 비굴하게 죽게하셨습니다.

그리고 우리인류의 죄를 멸하셨고, 그 죄로인한 모든것, 질병,가난,고통,죽음 모든것을 이기셨습니다.

형제님,

질병은 명백히 말해서 죄의 결과이고 그이름바로 저주입니다.

가난은 죄의 결과이고 그이름이 바로 저주입니다.

인간들은 사악함은 질병을 만들어냈고, 인간들의 무지와 위정자들의 공의롭지못한 권력남용은

가난을 만들어 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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