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기철 장로의 HTM 사역의 이단성(개요)
손기철 장로의 HTM 사역의 이단성(개요)
자료출처 http://blog.daum.net/emptyship/7384938
앞으로 쓸 글은 아마도 다음의 개요로 쓰여질 것 같다.
1. 서론
손기철 장로의 신학적 배경
신앙의 배경
훈련 배경
은사주의 운동의 위험성
2. 본론
1) 설교와 책을 중심으로
- 중보성에 대한 왜곡 : 예수 그리스도만이 중보가 되셔야 함에도 불구하고
- '왕의 기도'에 대한 분석
명칭의 문제 - 빈야드 운동의 '능력기도'와 이름만 다를 뿐 같은 것
내용의 문제 - 예수께서 선포하신 '권위'와 동일한 권위가 과연 우리에게 있을 수 있는가?
- 치유의 기적에 대하여
예수의 치유 사역과 자신의 치유 사역을 동일하게 보는 것의 위험성
예수의 치유 사역 - 치유 사역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님. 치유는 2차적. 1차적 목표는 예수 그리스도 그 분 자신을 드러내는 것.
치유가 목적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 그 분 자신과 복음 증거가 목적
손기철 장로의 치유사역 - 치유 사역 자체를 성령의 역사로 봄 : 성령의 역사는 예수를 믿어 구원에 이르게 하는 것
믿음의 은혜에 대한 왜곡 - 믿음은 구원 얻는 통로이지 자신의 목적을 이루는 것이 아님.
2) 치유 사역, 집회에 대하여
- 양태론적 이단성 : 특별히 '성령'을 부리는 행위에 대하여 ; 성령의 인격성을 무시하고 자신의 지시, 구호에 의해 성령이 역사하는 것처럼 함. 전형적인 빈야드계열의 행위. 성령의 역사를 부정하고 성령을 자신이 부리는 듯함
- 환자를 부름 : 환자의 환부를 하나씩 정확히 짚어내는 것 역시 빈야드 계열의 특징
병명 지적 : 거의 '찍기'식. 아니면 말고 식.
예) 다리에 쇠를 박은 사람 - 수천명이 모이면 반드시 있다.
전립선 - 40대 이상 남자들에게는 흔하다.
인터넷을 보는 사람들의 질병 - 불특정 다수를 향한 지명은 반드시 걸린다.
척추 - 주로 많이 사용. 가장 많은 디스크 환자가 척추 몇 번에서 나타남.
환자의 환부를 부르는 것은 마치 점쟁이가 앉은 사람을 보자마자 문제를 짚어내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
수천명을 모아 놓고 수가지의 병명을 읊어대는 것은 거의 찍기와 같음
- 중보자 사역 : 하나님과 그 백성 사이에 중보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 누구를 통하여 하나님을 만나는 것이 아님.
내가 치료 받기 위해서는 나의 믿음으로 내가 기도하여 하나님께 나아가 은혜를 받는 것. 중간에 아무도 설 수 없음.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 그러나 그는 자신이 그 자리를 대신하려고 함.
- 모순 : '이 자리에 모든 사람이 치료 받습니다.' 곧바로 '믿음을 가진 자만이 치유 받습니다. 못 받은 사람은 믿음이 없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능력은 인간의 믿음의 여하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그분의 의지에 의하여 결정되고 실행되는 것이다.
스스로의 모순에 빠진다.
믿음은 '병 고침'으로 증명되는 것이 아니라, '구원'이 그 목적이고, 실제 삶에서 믿음으로 살아가는 삶, 곧 성화의 열매로 증거되는 것이다.
- 물질에 대한 언급 : 반드시 '물질'에 대한 언급이 빠지지 않는다. 성경을 보면 '가난'과 '질병'은 단순히 '저주'가 아니다. 오히려 하나님의 은혜의 섭리일 때가 훨씬 많았다. 하나님께서 그 섭리 가운데 베푸신 '가난'과 '질병'을 끊어버린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뜻에 맞서는 배교이다.
3. 결론
손기철 장로의 HTM 사역은 전형적인 빈야드 형태의 사역으로 대한예수교 장로회 합신을 비롯한 많은 교단에서 금지하고 있는 형태를 반복하고 있다.
손기철 장로의 개인적 믿음의 여하는 판단하기 어렵다. 그러나 그의 사역은 분명히 위험하다.
개인의 믿음의 여부를 내면의 성찰과 복음에 대한 진지한 고백, 죄에 대한 회개와 돌아섬으로 말하지 않고 단순히 눈에 보이는 현상으로 결정하는 것은 믿음 그 자체를 모르거나 믿음을 왜곡하는 심각한 오류이다. 거의 이단에 가깝다.
그러므로 손기철 장로의 사역은 금지해야 한다.
내 개인적인 의견으로는 건전한 신학을 가진 교단과 교회는 하루 속히 손기철 장로의 사역에 대하여 조사를 해야 하고 그에 합당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
자료출처 http://blog.daum.net/emptyship/7384938
앞으로 쓸 글은 아마도 다음의 개요로 쓰여질 것 같다.
1. 서론
손기철 장로의 신학적 배경
신앙의 배경
훈련 배경
은사주의 운동의 위험성
2. 본론
1) 설교와 책을 중심으로
- 중보성에 대한 왜곡 : 예수 그리스도만이 중보가 되셔야 함에도 불구하고
- '왕의 기도'에 대한 분석
명칭의 문제 - 빈야드 운동의 '능력기도'와 이름만 다를 뿐 같은 것
내용의 문제 - 예수께서 선포하신 '권위'와 동일한 권위가 과연 우리에게 있을 수 있는가?
- 치유의 기적에 대하여
예수의 치유 사역과 자신의 치유 사역을 동일하게 보는 것의 위험성
예수의 치유 사역 - 치유 사역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님. 치유는 2차적. 1차적 목표는 예수 그리스도 그 분 자신을 드러내는 것.
치유가 목적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 그 분 자신과 복음 증거가 목적
손기철 장로의 치유사역 - 치유 사역 자체를 성령의 역사로 봄 : 성령의 역사는 예수를 믿어 구원에 이르게 하는 것
믿음의 은혜에 대한 왜곡 - 믿음은 구원 얻는 통로이지 자신의 목적을 이루는 것이 아님.
2) 치유 사역, 집회에 대하여
- 양태론적 이단성 : 특별히 '성령'을 부리는 행위에 대하여 ; 성령의 인격성을 무시하고 자신의 지시, 구호에 의해 성령이 역사하는 것처럼 함. 전형적인 빈야드계열의 행위. 성령의 역사를 부정하고 성령을 자신이 부리는 듯함
- 환자를 부름 : 환자의 환부를 하나씩 정확히 짚어내는 것 역시 빈야드 계열의 특징
병명 지적 : 거의 '찍기'식. 아니면 말고 식.
예) 다리에 쇠를 박은 사람 - 수천명이 모이면 반드시 있다.
전립선 - 40대 이상 남자들에게는 흔하다.
인터넷을 보는 사람들의 질병 - 불특정 다수를 향한 지명은 반드시 걸린다.
척추 - 주로 많이 사용. 가장 많은 디스크 환자가 척추 몇 번에서 나타남.
환자의 환부를 부르는 것은 마치 점쟁이가 앉은 사람을 보자마자 문제를 짚어내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
수천명을 모아 놓고 수가지의 병명을 읊어대는 것은 거의 찍기와 같음
- 중보자 사역 : 하나님과 그 백성 사이에 중보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 누구를 통하여 하나님을 만나는 것이 아님.
내가 치료 받기 위해서는 나의 믿음으로 내가 기도하여 하나님께 나아가 은혜를 받는 것. 중간에 아무도 설 수 없음.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 그러나 그는 자신이 그 자리를 대신하려고 함.
- 모순 : '이 자리에 모든 사람이 치료 받습니다.' 곧바로 '믿음을 가진 자만이 치유 받습니다. 못 받은 사람은 믿음이 없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능력은 인간의 믿음의 여하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그분의 의지에 의하여 결정되고 실행되는 것이다.
스스로의 모순에 빠진다.
믿음은 '병 고침'으로 증명되는 것이 아니라, '구원'이 그 목적이고, 실제 삶에서 믿음으로 살아가는 삶, 곧 성화의 열매로 증거되는 것이다.
- 물질에 대한 언급 : 반드시 '물질'에 대한 언급이 빠지지 않는다. 성경을 보면 '가난'과 '질병'은 단순히 '저주'가 아니다. 오히려 하나님의 은혜의 섭리일 때가 훨씬 많았다. 하나님께서 그 섭리 가운데 베푸신 '가난'과 '질병'을 끊어버린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뜻에 맞서는 배교이다.
3. 결론
손기철 장로의 HTM 사역은 전형적인 빈야드 형태의 사역으로 대한예수교 장로회 합신을 비롯한 많은 교단에서 금지하고 있는 형태를 반복하고 있다.
손기철 장로의 개인적 믿음의 여하는 판단하기 어렵다. 그러나 그의 사역은 분명히 위험하다.
개인의 믿음의 여부를 내면의 성찰과 복음에 대한 진지한 고백, 죄에 대한 회개와 돌아섬으로 말하지 않고 단순히 눈에 보이는 현상으로 결정하는 것은 믿음 그 자체를 모르거나 믿음을 왜곡하는 심각한 오류이다. 거의 이단에 가깝다.
그러므로 손기철 장로의 사역은 금지해야 한다.
내 개인적인 의견으로는 건전한 신학을 가진 교단과 교회는 하루 속히 손기철 장로의 사역에 대하여 조사를 해야 하고 그에 합당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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