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서택 내적치유사역원_조상의 죄가 유전된다는 가계저주론은 성경적인가?
주서택 내적치유사역원_조상의 죄가 유전된다는 가계저주론은 성경적인가?
자료출처 http://www.facebook.com/profile.php?id=100002304596263#!/notes/%EA%B9%80%EC%84%B1%EC%9D%BC/%EC%A1%B0%EC%83%81%EC%9D%98-%EC%A3%84%EA%B0%80-%EC%9C%A0%EC%A0%84%EB%90%9C%EB%8B%A4%EB%8A%94-%EA%B0%80%EA%B3%84%EC%A0%80%EC%A3%BC%EB%A1%A0%EC%9D%80-%EC%84%B1%EA%B2%BD%EC%A0%81%EC%9D%B8%EA%B0%80/147980635271059?notif_t=lik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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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잠언 26:2 "까닭 없는 저주는 이르지 아니하느니라"
주석학적 배경이 없는 짜맞추기 식의 성경해석은 치명적인 오류를 초래한다. 대부분의 오류는 본문을 그것이 등장하는 문맥과 상관없이 읽고 해석한 데서 발생한다.
"까닭 없는 저주는 이르지 아니하느니라"는 말은 내가 받는 저주는 반드시 이유가 있다는 뜻이 아니며, 더욱이 조상의 죄 때문에 저주가 일어났다는 것이 결코 아니다.
그 성경본문은 "나에게 저주가 이르렀을 때에 그 저주는 반드시 까닭이 있다"는 수동형의 뜻이 아니다.
그 성경본문은 "이유 없이 상대방을 저주하면 안 된다"는 능동형의 뜻인 것이다.
[공동번역] 참새가 떠돌듯, 제비가 날아 가듯 까닭 없는 저주는 미치지 않는다.
[표준새번역] 까닭 없는 저주는 아무에게도 미치지 않으니, 이는 마치 참새가 떠도는 것과 같고, 제비가 날아가는 것과 같다.
[현대인의성경] 이유 없는 저주는 날아다니는 참새나 제비처럼 상대방에게 돌아가지 않는다.
잠언 26:2은 가정에 닥친 저주나 조상의 죄 때문에 받은 저주의 근거를 제시하는 구절이 아니며, 남을 이유 없이 저주하지 말라는 뜻이다.
2. 예레미야 31:29; 에스겔 18:1-32 "아비가 신 포도를 먹었으므로 아들들의 이가 시다"
죄의 유전적인 전승을 주장하기 위해 든 성경 중에 많이 사용되는 것이 위의 두 구절이다.
이윤호목사보다 먼저 "가계에 흐르는 저주를 끊어야 산다"는 책을 발행한 메리린 히키는 예레미야 31:29인 "아비가 신 포도를 먹었으므로 아들들의 이가 시다"는 부분만을 인용하여 "에서가 야곱과 그의 자손들에게 원망과 분노의 쓴 뿌리를 품게 되었을 때, 그의 자녀들과 야곱의 자손들에게 쓴 뿌리를 품게 되었다"는 결론을 이끌어 내었다(가계에 흐르는 저주를 끊어야 산다 182쪽)
성경은 이렇게 부분적으로만 인용하면 전혀 다른 의미로 해석된다.
"그 때에 그들이 다시는 이르기를 아비가 신 포도를 먹었으므로 아들들의 이가 시다 하지 아니하겠고 신 포도를 먹는 자마다 그 이가 심 같이 각기 자기 죄악으로만 죽으리라(렘31:29-30)
"너희가 이스라엘 땅에 대한 속담에 이르기를 아비가 신 포도를 먹었으므로 아들의 이가 시다고 함은 어찜이뇨,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나의 삶을 두고 맹세하노니 너희가 이스라엘 가운데서 다시는 이 속담을 쓰지 못하게 되리라. 모든 영혼이 다 내게 속한지라 아비의 영혼이 내게 속함 같이 아들의 영혼도 내게 속하였나니 범죄하는 그 영혼이 죽으리라"(겔18:2-4)
성경이 말하는 내용은 정반대적인 내용이다. 아들에게 아버지의 죄가 승계되지 않으며 범죄하는 그 영혼이 죽게 된다는 것이다. 지금 이윤호목사와 메릴린 히키는 성경말씀이 본 뜻과 다른 이스라엘의 속담을 인용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본문의 문맥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아전인수(我田引水) 식의 성경해석의 위험을 보여준 대표적인 예이다.
"아비는 그 자식들을 인하여 죽임을 당치 않을 것이요 자식들은 그 아비를 인하여 죽임을 당치 않을 것이라 각 사람은 자기 죄에 죽임을 당할 것이니라"(신24:16)
위에 본문들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다시 부흥시킬 것을 약속하신 본문이다. 전에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죄로 인하여 뽑으셨던 것처럼, 이번에는 다시 씨를 뿌려 그들을 세우고 심으실 것이라는 소망을 주는 맥락이다.
그 때가 되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과 새 언약을 맺으셔서 이스라엘이 다시 하나님의 백성이 되며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죄를 다시는 기억하지 않게 될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본문은 그 동안 이스라엘 사이에서 하나님에 대하여 오해하여 자기들이 당하는 환난을 "아비가 신 포도를 먹었으므로 아들의 이가 시다"는 속담, 즉 자기들이 고난을 당하는 것이 조상들이 지은 죄 때문이라는 생각이 "잘못되었음"을 알게 되어 그런 속담을 다시는 사용하지 않게 된다는 말씀이다.
직접 죄를 짓지 않은 사람이 조상 대대로 쌓여온 죄악 때문에 자기가 불행을 겪게 된다고 생각하는 것은 개인의 책임을 강조하지 않고 모든 책임을 연대적인 책임, 집단적인 책임으로 돌리는 불신앙이다. 지금 유대인들이 이렇게 생각하여 "아들이 이가 시린 것이 아버지가 신 포도를 먹었기 때문"이라는 속담과 같이 생각하고 있는데 그러한 생각이 잘못이라는 것이다.
각 사람은 자기의 죄에 대한 책임이 있는 것이지, 다른 사람이 짊어지는 일이란 없다.
"범죄하는 영혼"이 그가 지은 죄악으로 죽는 것이다.
"범죄하는 그 영혼은 죽을지라 아들은 아비의 죄악을 담당치 아니 할 것이요 아비는 아들의 죄악을 담당치 아니하리니 의인의 의도 자기에게로 돌아 가고 악인의 악도 자기에게로 돌아가리라"(겔18:20)
3. 출애굽기 20:4, 5
"그것들에게 절하지 말며 그것들을 섬기지 말라 나 여호와 너의 하나님은 질투하는 하나님인즉 나를 미워하는 자의 죄를 갚되 아비로부터 아들에게로 삼 사대까지 이르게 하거니와 나를 사랑하고 내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대까지 은혜를 베푸느니라"(출20:5-6)
이미 앞에서 설명한 바 있으므로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가계저주에 대한 주창자들이 하나같이 가계에 흐르는 저주에 대한 내용이라고 생각하는 성경구절이 이 본문이다. 가계 저주 주창자들은 자신들의 견해를 이 성경구절에 맞춘다.
앞에서 설명한 성경 구절에서도 보았듯이 죄에 대한 책임과 의를 행한 공로는 항상 개인이 하나님과 관계한다. 그러면, 출애굽기 20:4, 5에서 말하는 아비의 죄를 삼사 대까지 이르게 한다는 말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이 구절은 반드시 그 앞에 조건으로 달려 있는 "나를 미워하는 자의 죄를 갚되"라는 말과 연결하여 이해해야 한다. 이 두 문구는 서로 동떨어져 생각할 수가 없는 말들이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가장 혐오하시는 십계명의 "우상숭배와 하나님의 형상을 만드는 문제"와 관련된 것이기 때문이다. "너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고....."(출20:4)
즉 윗 말씀은 우상숭배에 대한 경고이며, 우상숭배를 하지 말라는 하나님의 강력한 강조의 말씀이 될 것이다. 물론 우상숭배를 하던 자손이 하나님께 회개하고 하나님을 믿는다면 그가 구원을 받는다는 것이 확실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계명을 지킨 자에게는 "천대까지 은혜를 베푼다"는 구절에 대해서는 왜 동일한 방법으로 문자적인 설명을 하지 않는가?
계명을 지키는 자의 후손은 하나님을 안 믿어도 천대까지 구원의 은혜를 받을 수 있을까?
다시 말하여 본문은 강조적인 경고의 말씀이라고 볼 수 있다.
"날 때부터 맹인이 된 사람"에 대해서 제자들은 예수님께 그 사람이 맹인이 된 것이 누구의 죄 때문이냐고 물었다. 이들은 사람의 질병이 어떤 직접적인 원인, 특히 죄 때문이라고 생각하였고, 그렇다면 원인이 된 죄의 장본인은 누구냐는 것이 그들의 관심사였다.
당대 랍비들 사이에서는 반드시 죄란 원인이 있어야 결과가 생기는 법이라는 논리에 의거해, 날 때부터 지체 장애아인 경우에는 부모가 죄를 지어 자녀가 질병에 걸렸든지, 또는 아예 태아가 죄를 지어서 그렇다는, 태아가 죄를 지을 수 있다는 논리를 펴는 경우가 있었다
더욱이 예수께서는 이러한 의견을 결정적으로 부인하신다.
"제자들이 물어 가로되, 랍비여 이 사람이 소경으로 난 것이 뉘 죄로 인함이오니이까 자기오니이까 그 부모오니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이 사람이나 그 부모가 죄를 범한 것이 아니라 그에게서 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하심이니라"(요9:2-3)
또한 예수님은 빌라도에게 해를 받아 죽음을 당한 갈릴리 사람들과 망대가 무너져 사고로 죽은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보다 죄가 많아 그렇게 된 것이 아니라고 말씀하신다.
"그 때 마침 두어 사람이 와서 빌라도가 어떤 갈릴리 사람들의 피를 저희의 제물에 섞은 일로 예수께 고하니,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희는 이 갈릴리 사람들이 이 같이 해 받음으로써 모든 갈릴리 사람보다 죄가 더 있는 줄 아느냐,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니라 너희도 만일 회개치 아니하면 다 이와 같이 망하리라. 또 실로암에서 망대가 무너져 치어 죽은 열 여덟 사람이 예루살렘에 거한 모든 사람보다 죄가 더 있는 줄 아느냐,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니라 너희도 만일 회개치 아니하면 다 이와 같이 망하리라.(눅13:1-5)
특별히 하나님은 자기 백성들에게 저주를 하는 분이 아니라, 은혜를 내리는 분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예수를 믿는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자녀가 된 자들이다. 하나님은 "영의 아버지"(히12:9)이시며, 우리에게 영혼(spirit)을 주시는 분(전12:7, 히12:9, 눅12:20)이다.
하나님의 자녀가 된 사람들에게 저주가 남았다면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복음(기쁜 소식)이라고 할 수 있는가? 만일 그렇다면 예수님의 십자가는 부족한 것이며, 불완전한 것인가?
은혜와 복을 주시는 분도 하나님이고 저주를 내리는 분도 하나님이다.
가계에 흐르는 저주가 있다는 사실을 깨달아야만 저주가 없어지며, 조상들의 죄까지 회개하는 어떤 특별하고 이상한 기도를 하여야만 저주가 없어지는 것이 결코 아님을 왜 모르는가?
죄가 유전된다면, 예수 그리스도는 마리아와 그 조상의 죄도 유전 받았어야만 하므로, 그의 무죄성을 증명할 수가 없다.
그분은 참 하나님이시지만, 역시 그분은 참 사람이었기 때문이며, 예수는 신성과 인성을 그대로 보존한 연합된 본성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만일 죄가 유전된다면, 의도 유전되어야만 하는데, 조상의 믿음으로 그 후손이 구원을 받을 수는 있다는 것은 비성경적이다.
어느 누구에게나 오직 믿음으로만 구원을 받으며, 어떠한 죄인이라도 예수를 믿으면 구원을 받을 수 있기에, 복음은 우리에게 기쁜 소식이 되는 것이다.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롬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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