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내적치유는 심리학적 스트레스 치료가 아닙니다/주서택_71번글에 대하여~ 과연그럴까요?
Re:내적치유는 심리학적 스트레스 치료가 아닙니다/주서택_71번글에 대하여~ 과연그럴까요?♡자유 게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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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글 중에 다음과 같은 글이 있습니다. 『내적치유』는 예수님의 사역이었고 중세의 수도원의 깊은 영성훈련 속에서 나타난 성령의 역사였습니다. 예수님께서 공적인 사역을 시작하신 후 처음 고향인 나사렛에 가셔서 제일 먼저 사람들 앞에서 읽은 말씀이 바로 이사야 61장 1절부터 3절로 하나님께서 우리의 깨어진 속사람을 치유하기 원하신다는 말씀이었습니다 (자료인용출처http://cafe.daum.net/jaxhopes/Kx6J/71) 이 말에서, "예수님께서 공적인 사역을 시작하신 후 처음 고향인 나사렛에 가셔서 제일 먼저 사람들 앞에서 읽은 말씀이 바로 이사야 61장 1절부터 3절로 하나님께서 우리의 깨어진 속사람을 치유하기 원하신다는 말씀이었습니다"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인용하신 이사야 61장 1-3절이 과연 그런 뜻일까요? 이사야서의 그 말씀이 과연, "하나님께서 우리의 깨어진 속사람을 치유하기 원하신다는 말씀"일까요? 1 주 여호와의 신이 내게 임하였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내게 기름을 부으사 가난한 자에게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나를 보내사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며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갇힌 자에게 놓임을 전파하며 2 여호와의 은혜의 해와 우리 하나님의 신원의 날을 전파하여 모든 슬픈 자를 위로하되 3 무릇 시온에서 슬퍼하는 자에게 화관을 주어 그 재를 대신하며 희락의 기름으로 그 슬픔을 대신하며 찬송의 옷으로 그 근심을 대신하시고 그들로 의의 나무 곧 여호와의 심으신 바 그 영광을 나타낼 자라 일컬음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사 61:1-3, 개역) 그러면 좀 더 객관적으로 본문을 이해하기 위하여, 주석으로 하나 하나 그 의미를 살펴보겠습니다. (사61:1) 주 여호와의 신이 내게 임하였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내게 기름을 부으사 가난한 자에게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나를 보내사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며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갇힌 자에게 놓임을 전파하며 *주 여호와의 신이 내게 임하셨으니 - 이는 바벨론에서 고통받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위로를 주기 위해 이사야가 공식적으로 위임받는 대목으로 이해될 수도 있다(Gesenius, Rosemnuller). 그러나 보다 근본적으로는 메시야에 관한 언급으로 해석되어지는데, 이를 뒷받침하는 결정적 근거는 예수께서 본절을 자신에 관한 예언으로 명시하셨다는 사실이다 :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 예수께서 저희에게 말씀하시되 이 글이 오늘날 너희 귀에 응하였으니라"(눅 4:18-21). 예수께서 공생애를 처음 시작하신 순간에도 그 사역의 공적 인정을 위하여 성령이 임하신 바 있다(마 3:16;요 1:32). *기름을 부으사(*, 마솨흐) - 이 용어에서 '메시야'란 단어가 유래된다. 이스라엘의 왕(삼상 16:13), 제사장(출 30:30), 선지자(왕상 19:16) 등은 그들의 중요 직책을 위해 구별될 때 그 머리 위에 기름 부음을 받았다(삼상 16:1-5 주제 강해, '기름 부음의 영적 의미' 참조). 여기서는 하나님께서 메시야를 구별해 세우신 것을 암시하기 위해 본 표현이 사용되었다. 메시야를 언급하려고 이와 동일한 용어를 사용한 것은 시 45:7;히 1:9 등에도 나온다. *가난한 자(*, 아나윔) - 원래 이 용어는 상처나 억압으로 인해 고통당하는 자를 뜻하며, 여기서는 1차적으로 낙담 중에 있었던 포로된 이스라엘 백성을 뜻할 수 있다. 그러나 더 나아가서는 이 용어는 자신에게는 소망이 없으므로 오직 하나님이 보낼 메시야를 고대하며 사는 심령이 가난한 자를 가리킨다고 봄이 더 정확하겠다(마 5:3). 이 말은 시편에서 개인적 재난에도 불구하고 여호와를 고대하였던 신실해 자들을 가리키는 용어로 종종 사용되었다(시 9:12,18). 예수께서는 자신의 지혜를 의지함으로 말미암아 구약에 예언된 메시야이신 자신이 왔음에도 불구하고 알아보지 못한 마음이 교만한 자를 '지혜롭고 슬기 있는 자'라고 풍자하셨고 반대로 그를 알아본 자들을 '어린 아이들'이라고 부르셨는데 이자들이 바로 가난한 자들이다(눅 10:21).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 1차적으로는 포로 귀환을, 더나아가서는 죄와 죽음으로부터의 구원을 예언하는 내용이다. 또한 본 표현은 희년의 때에 모든 종된 자에게 선포되는 자유를 동시에 연상케 한다(레 25:10;렘 34:8,9). *갇힌 자에게 놓임 - 원문상으로는 '갇힌 자의 감옥문을 여는 것'이란 뜻이다. 여기서 '여는 것'이란 메시야의 도래와 연관지어 볼 때 죄와 사망의 올무로부터의 해방(롬 6:18;7:24,25;히 2:5) 혹은 영적으로 장님되었던 자가 영의 눈을 뜨는 것을 가리킨다(Ewald). 눅 4:18은 본절을 그대로 인용하면서 본절에는 없는 '눈 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이란 구절을 첨가함으로써 후자의 뜻을 뒷받침 해주고 있다. (사61:2) 여호와의 은혜의 해와 우리 하나님의 신원의 날을 전파하여 모든 슬픈 자를 위로하되 *여호와의 은혜의 해(*, 쉐나트 라초 라훼) - 문자적인 뜻은 '여호와의 기뻐하시는 해'이다. 이것은 나팔이 올리고 온 이스라엘 땅에 자유가 선포되었던 희년의 때를 연상시키는 표현이다(레 25:9,10). 희년의 때와 마찬가지로 메시야의 때도 '해방'이란 이미지를 내포한다. 메시야의 도래의 때는 온 세계 인류를 죄의 노예 상태로부터 해방시키는 때인 것이다. 메시야의 도래로 시작된 해방의 때는 은혜의 때라고 불리기도 한다('지금은 은혜받을 만한 때요, 구원의 날이로다', 고후 6:2). *하나님의 신원의 날 - 문자적인 뜻은 '하나님의 보복의 날'이다. 1차적으로 이날은 바벨론으로부터의 포로 귀환의 날을 가리킨다. 그런데 바로 이날을 '복수의 날'로 묘사하고 있다는 사실을 주목할 만하다. 바로 앞에 언급된 바 '여호와의 은혜의 해'의 대비적 표현으로 본 표현이 언급된 것은, 이스라엘에게 '은혜의 해'가 되는 때가 그 대적에게는 '복수', 곧 '심판'의 때가 된다는 것을 암시한다. 이를 역으로 말하면, 마지막 심판날에 하나님이 대적들을 멸하시는 보응은 곧 성도들에게는 영광을 얻는 결과를 가져온다는 것이다(요 12:47;고전 15:52;고후 4:17;계 21,22장). (사61:3) 무릇 시온에서 슬퍼하는 자에게 화관을 주어 그 재를 대신하며 희락의 기름으로 그 슬픔을 대신하며 찬송의 옷으로 그 근심을 대신하시고 그들로 의의 나무 곧 여호와의 심으신 바 그 영광을 나타낼 자라 일컬음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화관을 주어 그 재를 대신하며 - 원문 직역은 '아름다움을 주어 그 재를 대신하며'이다. '아름다움'에 해당하는 '페에르'(*)는 본래 여자들이 머리에 쓰던 아름답고 화려한 관을 말하며, '희락의 옷', '찬송의 옷'과 함께 즐거운 축제 때를 연상시킨다(G.W. Grogan). 이제 여호와의 구원과 은혜의 때가 이르면 슬픔의 표로 뒤집어 썼던 재를(에 4:1,3;렘 6:26) 털어내고 대신 아름다운 관을 쓰고 기쁨을 누리게 될 것이다. *희락의 기름 - 당시는 기쁨의 축제 때 특히 초청한 귀빈의 머리 위에 향내나는 값비싼 기름을 붓곤 하였다(시 23:5;45:7;암 6:6). 그외 성경은 축제 혹은 기쁨 그 자체를 뜻할 때 '기름'이란 용어를 사용하고 있다(57:9). 공적인 재난 혹은 슬픔의 때에는 결코 기름을 사용하지 않았다(삼하 14:2). *찬송의 옷 - 절망에 빠진 자를 삼베옷을 입은 것에 비유하는 대신, 찬송과 감사를 드리고있는 자는 밝은 채색옷을 입은 것에 비유한다. *의의 나무(*, 엘레 하체데크) - '나무'에 해당하는 '엘레'(*)는 팔레스틴에서 많이 볼 수 있는 상수리나무를 뜻한다. 이 나무는 굵고 튼튼하여 힘의 상징으로 여겨졌다 한다(이런 맥락에서 탈굼역, 제롬역, 시리아역 등은 이을 '강한 것' 혹은 '힘센 것'으로 번역했음). 본문의 '의의 나무'는 한때 죄악으로 인해 넘어졌으나 은혜로 말미암아 회복되어 굳건한 믿음 안에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주의 백성을 가리킨다. 그들이 그렇게 변할 수 있는 것은 정원사가 나무를 심듯이 하나님이 친히 그들을 구원하여 세우셨기 때문이다. 따라서 하나님이 그들을 통해 영광을 열어야 함은 당연한 일이다.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에 의해서만 세움을 받는 사실은 주님이 사용하신 비유에도암시도이가 있다 :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심은 것마다 내 천부께서 심으시지 않은 것은 뽑힐 것이니"(마 15:13). 이 주석자료에서 살펴보듯이, 예수님의 이 말씀은 "1차적으로는 포로 귀환을, 더나아가서는 죄와 죽음으로부터의 구원을 예언하는 내용이다. 또한 본 표현은 희년의 때에 모든 종된 자에게 선포되는 자유를 동시에 연상케 한다(레 25:10;렘 34:8,9)." 는 말씀임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 이것은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이유에 대하여 신자라면 분명히 알고 있는 사실이다. 그러나 주서택 목사는 말하기를, "『내적치유』는 예수님의 사역이었고 중세의 수도원의 깊은 영성훈련 속에서 나타난 성령의 역사였습니다. 예수님께서 공적인 사역을 시작하신 후 처음 고향인 나사렛에 가셔서 제일 먼저 사람들 앞에서 읽은 말씀이 바로 이사야 61장 1절부터 3절로 하나님께서 우리의 깨어진 속사람을 치유하기 원하신다는 말씀이었습니다. " 라고 말하고 있다. 여기에서, "하나님께서 우리의 깨어진 속사람을 치유하기 원하신다"는 말은 성경본문의 의도와는 일치하지 않는 해석이다. 주서택 목사가 범하는 오류 중에 가장 치명적 것 중에 하나는, 성경에서 말씀하는 단어의 의미와 심리학에서 말하는 단어의 의미를 동일하게 사용한다는 것이다. 주서택 목사가 말하는 속사람은, "내면아이" 곧 "내 속에 울고 있는 아이"를 말한다. 성경이 말하는 속사람은 그런 의미가 아니다. 성경이 말하는 속사람은 옛사람과 대조적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말미암아 새로워진 사람 곧 성도를 두고서 하는 말이다. 주서택 목사의 내적치유 사역이 잘못된 길로 가게 되어 결국 뉴에이지 내적치유로 가게 되는 것은 바로 이 "속사람" 곧 "내면아이"에 대한 잘못된 이론에 근거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의미는, 예수님께서 오셔서 죄와 사망으로부터 구원해 내신다는 의미이다. 그러나 주서택 목사가 하는 말의 의미는, "내면아이"를 치유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런 것은 주석을 조금만 찾아봐도 알 수 있는 기본적인 지식이다. 예수님께서는 이사야 61장 1-3절을 통하여 내면아이를 치유할 것이라고 말씀하시지 않으셨다. 그 내면아이를 치유하기 위하여 뉴에이지 구상화를 사용하라고 말씀하시지 않으셨다. 메뉴헨리의 주석을 보자 The Messiah, his character and office. (1-3) His promises of the future blessedness of the church. (4-9) The church praises God for these mercies. (10,11) 1-3 The prophets had the Holy Spirit of God at times, teaching them what to say, and causing them to say it; but Christ had the Spirit always, without measure, to qualify him, as man, for the work to which he was appointed. The poor are commonly best disposed to receive the gospel, #Jas 2:5|; and it is only likely to profit us when received with meekness. To such as are poor in spirit, Christ preached good tidings when he said, Blessed are the meek. Christ's satisfaction is accepted. By the dominion of sin in us, we are bound under the power of Satan; but the Son is ready, by his Spirit, to make us free; and then we shall be free indeed. Sin and Satan were to be destroyed; and Christ triumphed over them on his cross. But the children of men, who stand out against these offers, shall be dealt with as enemies. Christ was to be a Comforter, and so he is; he is sent to comfort all who mourn, and who seek to him, and not to the world, for comfort. He will do all this for his people, that they may abound in the fruits of righteousness, as the branches of God's planting. Neither the mercy of God, the atonement of Christ, nor the gospel of grace, profit the self-sufficient and proud. They must be humbled, and led to know their own character and wants, by the Holy Spirit, that they may see and feel their need of the sinner's Friend and Saviour. His doctrine contains glad tidings indeed to those who are humbled before God. 여기에 어디 주서택 목사가 말하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깨어진 속사람을 치유하기 원하신다"는 의미가 있는가? 없다!!! 죄의 지배 하에 있는 우리를 구원하시고, 사탄의 능력 아래 있는 우리를 그의 성령으로 구원하여 자유를 주신다!!1 조금만 살펴봐도 알 수 있듯이, 주서택 목사의 "속사람"은 심리학에 오염된 개념을 성경에 끼워맞추고 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깨어진 속사람" 곧 "깨어진 내면아이"를 치유하는 것이 아니라, 죄와 사망의 권세 아래, 사탄의 능력 아래 종살이 하고 죽은 죄인들을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피로 구원하여 내신다. 오늘도 성령하나님께서는 그 구원의 역사를 펼쳐가고 계신다. 이것이 복음이다!!! 오늘도 수많은 영혼들이 심리학과 뉴에이지에 물든 내적치유에서 돌아오기를 그리고 오직 하나님의 말씀에 기초하여 신앙생활을 하기를 기도한다. RPTministries 정태홍 목사 http://www.esesang91.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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