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 로저스(Carl Roger, 1902-1988) - 인간중심적 상담
칼 로저스(Carl Roger, 1902-1988) -
인간중심적 상담 및 치료법 개발 -
김선남
로저스는 상담 및 심리치료 분야에서 인간 중심적 접근을 처음으로 개발한 인본주의 심리학자이다. 이 접근법의 중심가설은 상담자의 진솔성, 공감적 이해, 긍정적 존중을 내담자에게 전달하는 관계 속에서 인간의 성장잠재력이 발현된다는 것이다. 이 가설은 유기체는 자기를 유지하거나 성장시키는데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자신의 모든 능력을 계발하려는 경향성, 즉 자기실현성을 기초호 한다. 그래서 로저스는 아브라함 마슬로우(Abraham Maslow)과 함께 인본주의 심리학의 대표자로 일컬어 지고있다.
로저스는 1902년 1월 8일 미국 중서부 일리노이주 오크파크의 잘 결속된 청교도 가정에서 태어났다. 로저스는 5남 1녀 중 4째 였는데 야위고, 수줍음음 잘타며 눈물을 잘 흘리는 아이로 종종 형들의 놀림감이 되기 하였다고 한다. 그가 12세가 되던 해 그의 가족은 농촌으로 이주하였는데, 그 이유는 그들이 도시에서 멀리 떨어져 살게 되면 자녀들에게 정직한 노동의 가치와 기독교의 신앙원리들을 좀 더 많이 키워줄 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인지 로저스는 축민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 사회적 고립상태에서 보냈다. 그러나 대학생활은 로저스에게 커다란 변화를 가져다 주었다. 그는 1919년 그의 부모와 세 형들이 다닌 위스콘신 대학에 입학하여, 거기서 모범적인 종교생활 덕분으로 중국 북경에서 열리는 세계기독학생 연합회에 참가하는 12명의 미국대학생중의 한 사람으로 선발되어 6개월간 중국에 머물게 되었다. 이때 그는 다른 나라에서 온 많은 사람들이 다른 문화적 종교적 태도를 가지고 있는 것을 발견하고 그의 엄격한 인생관과 종교적 신념에 대해 의문을 가지게 되었으며, 부모와의 종교적 및 지적 유대로부터 벗어나야겠다는 생각을 자연스럽게 갖게 되었다. 중국에서 돌아온 로저스는 1924년 위스콘신 대학 사학과를 졸업하였으며 당시 심리학은 단 한 과목만을 수강하였다. 대학 졸업 후 로저스는 목사가 되기 위해 뉴욕에 있는 위스콘신 신학교에 들어갔으나 고통 받는 사람을 돕는 일은 목사 혼자서 할 수 없다는 생각에 이르자 기독교교리 및 종교학에 실망하고 2학년 말 임상 교육심리학을 공부하기 위해 콜롬비아 사범대학으로 옮겨 1928년 석사학위를 마치고 1931년 임상심리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로저스는 자신을 이른바 심리학에서 제3세력과 동일시 하고 있는데, 이는 인본주의 심리학이라는 이름아래 함께 묶이는 다양한 접근들을 말한다. 1940년대 당시까지 상담 및 심리치료 분양의 주된 접근의 하나는 정신분석 치료였다. 정신분석에서는 인간이란 본능적 무의식적 동기에 의해 움직이기 때문에 갈등을 피할 수 없는 비극적 존재라고 가정하였다. 그러나 로저스는 인간이 근본적으로 불합리하며 파괴적이라는 신념에 동의하지 않는다. 인간의 행동은 더할 나위없이 합리적이며 그의 유기체가 성취하려고 애쓰고 있는 목표를 향해 미묘하고도 질서정연한 복잡성을 가지고 움직이는 것이라고 로저스는 말한다. 인간에 대한 또 다른 심리학의 접근은 행동주의인데 인간은 내적 동기가 없이 전적으로 환경적 통제에 의해 수동적으로 움직이는 기계적 존재로 묘사된다. 행동주의에서 행동변화는 자극과 보상이라는 외적 통제에 의해 이루어진다고 보나, 로저스는 진정한 행동 변화는 인간내부에서 나온다는 신념에서 행동주의에 동의하지 않는다. 이와 같이 제3의 심리학은 제1의 정신분석과 제2의 행동주의에 대한 반동으로 대두되었다. 로저스의 인간중심 접근에 어떤 선구자가 있었는지는 의문의 여지가 있다. 역사적 조망에서 보면, 동양의 가르침, 즉 무위(無爲) 사상과 통하며, 선(禪)의 전통과도 상통한다. 인간의 모든 문제는 그 자신의 내부에서 해답을 찾을 수 있으며, 간섭은 오히려 자기를 해롭게 한다는 점을 다같이 강조하고 있기 때문이다. 로저스는 간접적으로 존듀이(John Dewey)의 영향을 받았는데, 특히 킬페트릭(W.H.Kilpartrick)의 연구에 의해서 였다. 듀이의 철학은 로저스의 책 학습의 자유(1969)에 잘 나타난다. 또 다른 영향은 오토 랭크(Otto Rank)의 연구에 의해서이다. 로저스는 랭크의 3일 연구소를 조직하는 것을 도왔으며, 랭크가 영향력을 끼쳤던 사회사업가와 정신과 의사로 이루어진 필라델피아 집단과 접촉을 가졌다. 그 밖에 마틴 부버(Martin Buber)와 키에르케고르의 실존주의 사상에도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로저스는 자신의 사고에 영향을 끼쳤던 초기의 사람들로서 고등학교에서 대학원 시절에 이르는 동안 독창적이며 학구적이고 독특한 그의 능력을 인정하고 격려해 주었던 많은 선생님들을 들고 있다. “종교에 대한 가족의 견해를 거부하고 나는 좀 더 현대적인 종교적 관점에 관심을 갖게 되어 연합신학교에서 2년동안 유익한 시간을 보냈는데, ... 의미있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어떠한 진실한 시도라도 존중하는 철학 사고의 자유에 깊이 몰입해 있었다. 나 자신의 사고는 나를 이 방향으로 유도하였고, 나는 길을 건너서 콜롬비아 대학교 사범대학으로 옮기게 되었다. ... 개인적인 도움이 필요함을 스스로 지각하거나 또는 타인들에 의해 자각되는 개인들과의 계속적인 임상경험이 나를 자극했다. 1928년 이후 30년에 이르는 기간동안 나는 휴가를 제외하고 이런 사람들을 이해하고 이들에게 치료상의 도움을 주려는데 아마 매주 평균 15-20시간을 보냈을 것이다. 내가 소유하고 있는 통찰력을 총동원해서 이러한 시간과 이러한 사람들과의 관계로부터 나는 치료의 의미, 대인관계의 역동, 성격의 구조와 기능을 이해하려 하였다.” 이러한 경험을 통해 로저스는 인간본성의 핵심을 근본적으로 합목적적이며, 전진적이며, 건설적이고, 현실적이며, 신뢰할 만한 것이라고 결론지었다. 인간은 자기가 통제할 수 없는 어떤 힘에 이끌리는 피조물이기보다 미래의 목적과 자기지시적 목적으로 지향된 에너지를 가진 활동적 존재로 본 것이다. 인간본성을 긍정적으로 본 로저스는 자기 실현 경향이라고 부르는 단 하나의 고유한 동기로 행동이 활성화되고 방향지워진다고 가정한다. 로저스의 훌륭한 삶에 대한 관점은 훌륭한 삶이 아닌 것이 무엇인가로부터 시작된다. 훌륭한 삶이란 고정된 덕망, 만족, 행복상태가 아니다. 개인이 적응하고 만족을 느끼고 실현되는 조건도 아니다. 훌륭한 삶이란 목적지가 아니라 방향이다.: “ 그것은 유기체가 어떤 방향으로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는 내적 자유가 있을 때 그가 선택하는 방향으로 움직이는 과정이다.”
로저스가 인간중심 이론을 구체화한것은 1937년에서 1941년 사이였다.
1937년에 저술하여 1939년에 발간하였던 「문제아동에 대한 임상적 치료」에서 그의 심리치료에 대한 새로운 방법이 처음으로 공개되었으며 이를 토대로 임상실제와 이론을 겸비한 접근법으로 성장하기 시작하였다.
1942년 「상담과 심리치료」를 발간하였던 이 새로운 접근법에 대해 상담자들과 심리치료자들 사이의 분위기는 매우 수용적이었다. 여기서 로저스는 상담자의 온화함과 반응성, 감정이 자유롭게 표현될 수 있는 허용적인 분위기와 어떠한 강압이나 압박도 받지 않음을 특징으로 하는 상담관계를 제안하였다. 이때문에 로저서의 새로운 접근은 「비지시적 상담」으로 불리게 되었다. 1951년 「내담자 중심치료」가 발간되었는데 이것은 ‘비지시적 상담’에서 ‘내담자 중심 상담’으로 명칭변화를 불러왔다. 이 변화는 단지 어의적인 것만은 아니였다. 이것은 부정적이고 협소한 이름인 ‘비지시적’이라는 것에서 내담자 자신의 성장 유발적 요인에 초첨을 둔 긍정적인 것으로 그 강조점이 바뀌었음을 의미한다. 1974년에는 보다 광위의 ‘인간 중심 상담’으로 다시 바뀌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이밖에도 많은 논문과 저서들이 있으나 지면제한 관계로 생략할 수밖에 없어 아쉽다.
로저스가 학계에 미친 영향은 1972년 미국심리학회로부터 우수공로자 상을 수상하였는데 상패에 새겨진 글이 잘 나타내고 있다: “그의 전인간에 대한 신념은 학교, 산업, 지역사회에서 심리학의 실천에 지침이 되고 이를 장려한 귀감이 되었다. 인간의 잠재력과 개성의 근원에 접근하는 심리치료와 상담방법을 고안하고 실행하면 평가하고 가르침으로 그는 모든 심리치료가들로하여금 새로운 각도에서 그들의 절차를 재검토하게 만든 사람이 되었다. 성격연구의 혁신자이며 참 만남 운동의 개척자로서, 그리고 조직심리학의 존경받는 선구자로서 감동을 주었다.”
*소피아21 : 이 글은 경상대신문 1995년 4월 기획시리즈 [세기의 석학]에 실린 김선남 교수(현 경상대학교 교수)의 글입니다.
자료출처 http://sophia21.com/tt/site/ttboard.cgi?act=read&db=library&idx=28
인간중심적 상담 및 치료법 개발 -
김선남
로저스는 상담 및 심리치료 분야에서 인간 중심적 접근을 처음으로 개발한 인본주의 심리학자이다. 이 접근법의 중심가설은 상담자의 진솔성, 공감적 이해, 긍정적 존중을 내담자에게 전달하는 관계 속에서 인간의 성장잠재력이 발현된다는 것이다. 이 가설은 유기체는 자기를 유지하거나 성장시키는데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자신의 모든 능력을 계발하려는 경향성, 즉 자기실현성을 기초호 한다. 그래서 로저스는 아브라함 마슬로우(Abraham Maslow)과 함께 인본주의 심리학의 대표자로 일컬어 지고있다.
로저스는 1902년 1월 8일 미국 중서부 일리노이주 오크파크의 잘 결속된 청교도 가정에서 태어났다. 로저스는 5남 1녀 중 4째 였는데 야위고, 수줍음음 잘타며 눈물을 잘 흘리는 아이로 종종 형들의 놀림감이 되기 하였다고 한다. 그가 12세가 되던 해 그의 가족은 농촌으로 이주하였는데, 그 이유는 그들이 도시에서 멀리 떨어져 살게 되면 자녀들에게 정직한 노동의 가치와 기독교의 신앙원리들을 좀 더 많이 키워줄 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인지 로저스는 축민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 사회적 고립상태에서 보냈다. 그러나 대학생활은 로저스에게 커다란 변화를 가져다 주었다. 그는 1919년 그의 부모와 세 형들이 다닌 위스콘신 대학에 입학하여, 거기서 모범적인 종교생활 덕분으로 중국 북경에서 열리는 세계기독학생 연합회에 참가하는 12명의 미국대학생중의 한 사람으로 선발되어 6개월간 중국에 머물게 되었다. 이때 그는 다른 나라에서 온 많은 사람들이 다른 문화적 종교적 태도를 가지고 있는 것을 발견하고 그의 엄격한 인생관과 종교적 신념에 대해 의문을 가지게 되었으며, 부모와의 종교적 및 지적 유대로부터 벗어나야겠다는 생각을 자연스럽게 갖게 되었다. 중국에서 돌아온 로저스는 1924년 위스콘신 대학 사학과를 졸업하였으며 당시 심리학은 단 한 과목만을 수강하였다. 대학 졸업 후 로저스는 목사가 되기 위해 뉴욕에 있는 위스콘신 신학교에 들어갔으나 고통 받는 사람을 돕는 일은 목사 혼자서 할 수 없다는 생각에 이르자 기독교교리 및 종교학에 실망하고 2학년 말 임상 교육심리학을 공부하기 위해 콜롬비아 사범대학으로 옮겨 1928년 석사학위를 마치고 1931년 임상심리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로저스는 자신을 이른바 심리학에서 제3세력과 동일시 하고 있는데, 이는 인본주의 심리학이라는 이름아래 함께 묶이는 다양한 접근들을 말한다. 1940년대 당시까지 상담 및 심리치료 분양의 주된 접근의 하나는 정신분석 치료였다. 정신분석에서는 인간이란 본능적 무의식적 동기에 의해 움직이기 때문에 갈등을 피할 수 없는 비극적 존재라고 가정하였다. 그러나 로저스는 인간이 근본적으로 불합리하며 파괴적이라는 신념에 동의하지 않는다. 인간의 행동은 더할 나위없이 합리적이며 그의 유기체가 성취하려고 애쓰고 있는 목표를 향해 미묘하고도 질서정연한 복잡성을 가지고 움직이는 것이라고 로저스는 말한다. 인간에 대한 또 다른 심리학의 접근은 행동주의인데 인간은 내적 동기가 없이 전적으로 환경적 통제에 의해 수동적으로 움직이는 기계적 존재로 묘사된다. 행동주의에서 행동변화는 자극과 보상이라는 외적 통제에 의해 이루어진다고 보나, 로저스는 진정한 행동 변화는 인간내부에서 나온다는 신념에서 행동주의에 동의하지 않는다. 이와 같이 제3의 심리학은 제1의 정신분석과 제2의 행동주의에 대한 반동으로 대두되었다. 로저스의 인간중심 접근에 어떤 선구자가 있었는지는 의문의 여지가 있다. 역사적 조망에서 보면, 동양의 가르침, 즉 무위(無爲) 사상과 통하며, 선(禪)의 전통과도 상통한다. 인간의 모든 문제는 그 자신의 내부에서 해답을 찾을 수 있으며, 간섭은 오히려 자기를 해롭게 한다는 점을 다같이 강조하고 있기 때문이다. 로저스는 간접적으로 존듀이(John Dewey)의 영향을 받았는데, 특히 킬페트릭(W.H.Kilpartrick)의 연구에 의해서 였다. 듀이의 철학은 로저스의 책 학습의 자유(1969)에 잘 나타난다. 또 다른 영향은 오토 랭크(Otto Rank)의 연구에 의해서이다. 로저스는 랭크의 3일 연구소를 조직하는 것을 도왔으며, 랭크가 영향력을 끼쳤던 사회사업가와 정신과 의사로 이루어진 필라델피아 집단과 접촉을 가졌다. 그 밖에 마틴 부버(Martin Buber)와 키에르케고르의 실존주의 사상에도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로저스는 자신의 사고에 영향을 끼쳤던 초기의 사람들로서 고등학교에서 대학원 시절에 이르는 동안 독창적이며 학구적이고 독특한 그의 능력을 인정하고 격려해 주었던 많은 선생님들을 들고 있다. “종교에 대한 가족의 견해를 거부하고 나는 좀 더 현대적인 종교적 관점에 관심을 갖게 되어 연합신학교에서 2년동안 유익한 시간을 보냈는데, ... 의미있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어떠한 진실한 시도라도 존중하는 철학 사고의 자유에 깊이 몰입해 있었다. 나 자신의 사고는 나를 이 방향으로 유도하였고, 나는 길을 건너서 콜롬비아 대학교 사범대학으로 옮기게 되었다. ... 개인적인 도움이 필요함을 스스로 지각하거나 또는 타인들에 의해 자각되는 개인들과의 계속적인 임상경험이 나를 자극했다. 1928년 이후 30년에 이르는 기간동안 나는 휴가를 제외하고 이런 사람들을 이해하고 이들에게 치료상의 도움을 주려는데 아마 매주 평균 15-20시간을 보냈을 것이다. 내가 소유하고 있는 통찰력을 총동원해서 이러한 시간과 이러한 사람들과의 관계로부터 나는 치료의 의미, 대인관계의 역동, 성격의 구조와 기능을 이해하려 하였다.” 이러한 경험을 통해 로저스는 인간본성의 핵심을 근본적으로 합목적적이며, 전진적이며, 건설적이고, 현실적이며, 신뢰할 만한 것이라고 결론지었다. 인간은 자기가 통제할 수 없는 어떤 힘에 이끌리는 피조물이기보다 미래의 목적과 자기지시적 목적으로 지향된 에너지를 가진 활동적 존재로 본 것이다. 인간본성을 긍정적으로 본 로저스는 자기 실현 경향이라고 부르는 단 하나의 고유한 동기로 행동이 활성화되고 방향지워진다고 가정한다. 로저스의 훌륭한 삶에 대한 관점은 훌륭한 삶이 아닌 것이 무엇인가로부터 시작된다. 훌륭한 삶이란 고정된 덕망, 만족, 행복상태가 아니다. 개인이 적응하고 만족을 느끼고 실현되는 조건도 아니다. 훌륭한 삶이란 목적지가 아니라 방향이다.: “ 그것은 유기체가 어떤 방향으로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는 내적 자유가 있을 때 그가 선택하는 방향으로 움직이는 과정이다.”
로저스가 인간중심 이론을 구체화한것은 1937년에서 1941년 사이였다.
1937년에 저술하여 1939년에 발간하였던 「문제아동에 대한 임상적 치료」에서 그의 심리치료에 대한 새로운 방법이 처음으로 공개되었으며 이를 토대로 임상실제와 이론을 겸비한 접근법으로 성장하기 시작하였다.
1942년 「상담과 심리치료」를 발간하였던 이 새로운 접근법에 대해 상담자들과 심리치료자들 사이의 분위기는 매우 수용적이었다. 여기서 로저스는 상담자의 온화함과 반응성, 감정이 자유롭게 표현될 수 있는 허용적인 분위기와 어떠한 강압이나 압박도 받지 않음을 특징으로 하는 상담관계를 제안하였다. 이때문에 로저서의 새로운 접근은 「비지시적 상담」으로 불리게 되었다. 1951년 「내담자 중심치료」가 발간되었는데 이것은 ‘비지시적 상담’에서 ‘내담자 중심 상담’으로 명칭변화를 불러왔다. 이 변화는 단지 어의적인 것만은 아니였다. 이것은 부정적이고 협소한 이름인 ‘비지시적’이라는 것에서 내담자 자신의 성장 유발적 요인에 초첨을 둔 긍정적인 것으로 그 강조점이 바뀌었음을 의미한다. 1974년에는 보다 광위의 ‘인간 중심 상담’으로 다시 바뀌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이밖에도 많은 논문과 저서들이 있으나 지면제한 관계로 생략할 수밖에 없어 아쉽다.
로저스가 학계에 미친 영향은 1972년 미국심리학회로부터 우수공로자 상을 수상하였는데 상패에 새겨진 글이 잘 나타내고 있다: “그의 전인간에 대한 신념은 학교, 산업, 지역사회에서 심리학의 실천에 지침이 되고 이를 장려한 귀감이 되었다. 인간의 잠재력과 개성의 근원에 접근하는 심리치료와 상담방법을 고안하고 실행하면 평가하고 가르침으로 그는 모든 심리치료가들로하여금 새로운 각도에서 그들의 절차를 재검토하게 만든 사람이 되었다. 성격연구의 혁신자이며 참 만남 운동의 개척자로서, 그리고 조직심리학의 존경받는 선구자로서 감동을 주었다.”
*소피아21 : 이 글은 경상대신문 1995년 4월 기획시리즈 [세기의 석학]에 실린 김선남 교수(현 경상대학교 교수)의 글입니다.
자료출처 http://sophia21.com/tt/site/ttboard.cgi?act=read&db=library&idx=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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